쇠고기 앞에서 ‘우로 좌로’…조선일보의 굴욕
  • 감명국 (kham@sisapress.com)
  • 승인 2008.06.17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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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이 추락하는 브랜드 파워에 위기감 고조…논조 변화 지적에 “이명박 정부 비난하는 쪽으로 내부 방침 정했다”

▲ 조선일보 사옥이 바라보이는 광장에서 촛불집회가 열리고 있다. 가운데 작은 사진은 시위대가 버린 쓰레기들과 항의 스티커들로 어지럽혀진 조선일보사 정문. ⓒ시사저널 황문성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최대 히트 신조어 가운데 하나가 ‘잃어버린 10년’이다. 김대중·노무현 정권 10년을 폄하하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이 신조어를 만들어낸 곳이 조선일보로 알려지고 있다. 그런데 그런 조선일보가 최근 부메랑을 맞고 있다. 이명박 정부의 ‘잃어버린 100일’은 고스란히 조선일보를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 일각에서는 ‘조선일보의 굴욕’이라는 말까지 들린다.

조선일보의 한 전직 간부는 기자에게 이렇게 말한다. “조선일보 특유의 중심을 이미 잃고 있는 느낌이다. 그만큼 외부 환경의 저항이 거세고 변화가 빠른데, 그 빠른 변화에 조선일보가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점점 뒤처지는 느낌이 든다.” 그는 현재도 조선일보 관계사의 고위 임원을 맡고 있다.

조선일보는 국내 ‘부동의 1위’ 언론사로 통한다. 노무현 정권과 끊임없는 긴장 관계를 형성했지만 ‘잘 버텨냈다’고 자평한다. 내부 관계자의 전언에 따르면, 조선일보는 올해 1월과 2월 상당한 매출 성장세를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호시절은 잠깐이었다.

이명박 정부가 취임한지 한 달여 만에 서서히 내리막길을 치달으면서 조선일보의 위기도 함께 왔다. 3월 이후에 접어 들어서는 오히려 지난해보다도 매출 실적이 떨어진다는 전언이다. 그 불안한 조짐은 결국 5월 촛불 집회 정국이 도래되면서 폭발했다. “창사 이래 최대 위기”라는 말이 서슴없이 들려 나올 정도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조선일보는 당황해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지난해 5월 대비 매출 16% 감소

조선일보가 갖는 위기감은 ‘조선일보’라는 브랜드 파워의 한없는 추락 때문이다. “네티즌들의 ‘안티 조선’ 운동이 더욱 격렬해지고 조직적으로 진행되고 있지만, 그래도 견딜 만하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최근 광고주들이 잇따라 “앞으로 조선일보에 광고를 하지 않겠다”라고 사과문을 게재하는 등 시민들의 요구에 굴복하는 현상 앞에서 큰 충격을 받은 모습이다. 김대중 조선일보 고문은 6월8일자에 게재한 특별 기고에서 이를 ‘시민 권력’의 광고 압박으로 규정했다.

김고문은 6월12일 <시사저널>과의 전화통화에서 “자신의 주장이 옳다고 해도 다른 사람의 주장을 경청할 줄 아는 것이 민주사회 시민으로서의 기본적인 예의인데, 이것이 실종되고 있다. 과거 독재 권력이 광고주를 협박해서 신문을 죽이려 한 적이 있다. 30여 년이 지난 지금의 민주사회에서 국가 권력이 아닌 시민 권력에 의해 (그것이) 또 복기되고 있다”라고 현 상황을 비난했다.

조선일보의 한 내부 인사가 전하는 말에 따르면, 과장을 조금 보태서 현재 광고국은 패닉 상태라고 한다. “여기저기서 광고를 중단해야겠으니 양해해달라는 전화가 이어진다”라는 것이다. 조선일보의 한 관계자는
“한 건설 시행사가 우리 신문에 분양 광고를 내면서 분양 문의 전화번호를 함께 게재했는데, 이 전화로 분양 문의는 오지 않고 온종일 ‘조선일보에 왜 광고를 냈느냐’는 항의 전화만 온다고 하소연이다. ‘광고를 내지 말라’는 압박은 참을 수 있는데, 항의 전화가 분양 문의용 전화로 집중되다 보니 업무가 완전히 불통이 된 상태라고 하소연을 하더라”라고 전했다. 한 임원급 인사는 “지난해 5월 대비 현재 광고 매출이 16% 정도 떨어지는 것으로 알고 있다. 마이너스 수치가 두 자리 숫자를 넘어섰다는 점에서 상당히 크게 떨어진 것은 맞다”라고 전했다.

이런 조선일보의 고민은 최근 신문 지면에 그대로 투영되고 있다. 우선 살이 빠졌다. 통상 본지 36면, 경제 섹션 16면씩 해서 전체 52면을 발행해왔던 조선일보가 6월10일부터는 8면이 줄어든 44면으로 발행되고 있다. 광고 역시 기업 광고보다는 분양 광고와 생활정보 광고가 주를 이루었다.

조선일보가 처한 최대의 딜레마는 ‘논조의 변화’에 대한 주변의 시선이다. 안티 세력에게는 조롱 섞인 비아냥거림으로, 주 독자층에게는 실망감으로 다가온다는 것이다. 조선일보는 5월 초만 해도 ‘미국산 쇠고기는 안전하며, 광우병 논란은 과장된 측면이 많고, 촛불 집회에 불순한 선동 세력이 있다’라는 목소리를 내왔다. 하지만 5월20일을 전후로 해서 조선의 논조는 눈에 두드러지게 변하고 있다. 그 시발점이 5월19일자 ‘최종 준비 1주일, 처음부터 밀린 협상’이라는 제하의 기사였다. 이명박 정부의 졸속 협상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조선일보가 국민 여론을 두려워하게 되었다”

▲ 동아일보 신문 게시판이 시위대의 낙서로 뒤덮여 있다. ⓒ시사저널 황문성
결정판은 5월30일자 10면에 톱기사로 실린 ‘그들은 참을 수 없는 순정으로 나왔고…’라는 르포 기사였다. 편집국 사회부장이 직접 현장을 취재한 후 펜대를 잡았다. 불과 10여 일 전만 해도 ‘시위 현장의 배후에 좌파 불순 세력이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던 조선일보는 슬그머니 방향을 전환했다.

‘이번 촛불 시위의 뚜렷한 특징이라면, 아직은 ‘중앙 통제식’이 아니라는 점이다. 설령, 시위를 ‘주도’하는 단체들이 있다 해도, 시위 인파를 한 방향으로 몰아가지는 못하고 있었다. 현장에서 만난 대다수 참가자는 인터넷 등에서 돌아다니는 정보를 신봉하고 ‘참을 수 없는 순정(純情)’으로 나온 것 같았다’라고 쓰고 있다.

조선일보의 한 기자는 “과거 노무현 정권에서는 일부 네티즌과 안티 세력들이 우리 신문의 논조를 비판하더라도 국민 여론이 우리 편이라는 자신감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우리가 비빌 언덕이 그 아무 데도 없는 듯하다. 전체 국민 대다수가 쇠고기 협상이 잘못되었다고 외치고 있는데, 우리만 ‘그게 아니다’라고 떠들 수는 없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최근의 논조 변화 지적에 대한 변명인 셈이다. ‘왜 처음부터 그렇게 하지 않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솔직히 잘못 판단한 것 같다. 상황의 심각성에 대한 오판은 이명박 정부뿐만 아니라 우리 신문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좌파 세력들이 광우병을 핑계로 한·미 FTA 비준과 이명박 정부의 발목을 잡으려는 불순한 의도가 있구나 하는 데에만 너무 치중한 나머지 본질적인 문제를 제대로 못 본 것 같다”라고 인정했다. 그는
“조선일보가 최근 논조가 다소 바뀌었다는 주변의 평가를 겸허히 인정한다. 또 그만큼 조선일보가 국민 여론을 두려워한다는 반증이 아니겠는가”라고 해명했다.

한 임원급 인사는 “논조의 변화에 대한 지적에 별로 동의하지 않는다”라고 답했다. 그는 “원래 조선일보는 매 정권 때마다 항상 비판의 날을 세워왔다. 경영진은 ‘시국이 조용하면 신문은 죽는다’라는 인식을 강하게 갖고 있다. 그만큼 정권에 대해 날을 세워오는 것이 조선의 전통이었다. 현 정부라고 해서 예외는 될 수 없다. 다만, 매 정권 때마다 취임 초 한 100일 정도는 좀 지켜보고 난 뒤에 비판을 가하곤 했는데, 마침 이번 촛불 시위가 취임 100일과 시기가 묘하게 맞아떨어진 점도 있다”라고 말했다.

‘어쩔 수 없이’ 단서 붙인 ‘쇠고기 재협상’ 사설, 어정쩡한 위치 드러내

조선일보 노조가 자사 기자 5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노보 6월5일자 게재)는 현 상황에 대한 편집국의 내부 분위기를 잘 보여준다. 이에 따르면 ‘한·미 쇠고기 협상 내용이 잘못되었다’라고 응답한 기자가 무려 80%에 달했다.

광우병 쇠고기와 관련된 조선의 보도에 대해서도 ‘못했다’(41.1%)라는 인식이 ‘잘했다’(25.4%)를 훨씬 앞섰다. ‘자사가 여론을 잘 반영하고 있다고 보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도 ‘그저 그렇다’는 응답이 50%를 차지한 반면, ‘어느 정도 반영했다’와 ‘매우 잘 반영했다’는 40%에 그쳤다. ‘잘 못했다’는 응답도 7.2%였다.
촛불 집회에 모인 시민들에 대해서도 ‘자발적으로 모인 것’이라고 보는 기자가 34.5%로 가장 많았다. ‘재미삼아 집회에 참가한다’도 24.1%였다.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는 응답은 19%에 그쳤다. 향후 보도 방향에 대해서도 ‘좀더 정확한 정보를 알리는 데 주력해야 한다’는 의견이 40%를 차지했다. 한 발짝 더 나아가 ‘좀더 비판적인 입장을 취해야 한다’가 27.3%, ‘근본적인 성찰이 필요하다’가 20.1%나 되었다.

조선일보 관계사의 한 고위 임원은 지금 조선일보가 안고 있는 복잡한 내부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일단 이명박 정부에 대해 그 실정을 신랄히 비난하는 쪽으로 좀더 강하게 가자는 데에는 내부적으로 합의가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물론 한겨레나 경향신문을 흉내 낼 수는 없다. 무엇보다도 조선이 버릴 수 없는 고유의 가치관이 있다. 보수 이념의 기조를 유지하면서도 반 이명박 정부로 강하게 몰아가기란 그 공통 영역이 그리 넓지 않다는 데 고민이 있다. 그런 고민의 일단을 가장 잘 드러낸 것이 지난 6월3일 ‘무역 피해 오더라도 쇠고기 재협상 논의하는 수밖에’라는 사설인 것으로 보인다.”

이 사설에서는 국민이 요구하는 것이니 만큼 재협상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라는 단서가 붙는다. 즉, 재협상이 바람직한 것은 아니라는 인식을 빠뜨리지 않으려 한다. 그러면서 이렇게 된 원인을 이대통령의 리더십 부재 탓이라고 결론 내렸다. 현재 조선일보가 서 있는 어정쩡한 위치를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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