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산, 차도까지 점령하나
  • 심정택 (자동차산업 전문가) ()
  • 승인 2008.06.17 11:34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OEM 형식으로 수입될 가능성…현대기아차 시장 독과점 흔들릴 수도

▲ 베이징에서 열린 '베이징 오토 쇼'에서 방문객들이 중국이 자체 개발한 경차 체리를 둘러보고 있다. ⓒAP연합

현대·기아차그룹의 국내 시장 독과점이 중국 차들의 공세에 흔들릴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대우자판의 이동호 사장은 최근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미 한국에는 중국 자동차회사의 디자인·설계 업무를 대신해주는 중소 규모의 독립 회사가 적지 않다. 이들 회사를 잘 활용해 중국의 기존 차량에 한국 소비자가 원하는 디자인·사양을 충분히 반영한 자동차를 2~3년 내 중국에서 위탁 생산하겠다”라고 밝혔다. 맞춤형 중국 차의 판매 차종에 대해서는 “연료 절약형 소형차와 한국의 일부 완성차 업체가 독점하고 있는 15인승 이상 승합차나 미니밴을 먼저 들여올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대우자판은 4백여 개의 영업망을 가지고 있다. 자체의 자동차 판매 사업 비중 축소로 과거 6백여 개에 비해서는 많이 줄어들었다. 하지만 특정 세그먼트(차종별 시장)에서 대우자판의 영업망을 활용한 중국산 차의 공세가 만만치 않으리라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쌍용차의 대주주인 상하이기차(SAIC)가 자체 영업망을 어떻게 정비하느냐도 관심거리다. 제대로 정비해 대우자판보다 더 빨리 가동한다면 중국산 차를 서울 도심 한가운데서 볼 날도 멀지 않다. 쌍용차는 실제 중국계 물류회사에 자사의 영업 전시장을 시범 운영토록 하고 있다. SAIC가 최우선으로 팔 수 있는 차는 중국 내 사업에서 협력 관계를 맺은 GM 및 폭스바겐의 중국산 차들이다. 쌍용차가 수년 전 중국 업체에 매각한 소형 상용차 이스타나도 물망에 오른다.

업계 “대우자판 통한 중국산 차 공세 만만치 않을 것”

중국산 차의 한국 시장진출 가능성은 기술 발전에 대한 자신감에서 나온다. 우선 승용차나 SUV 부문에서는 중국산이 한국 제품에 비해 다소 품질이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나, 그 기술 격차가 오래지 않아 좁혀지리라는 것이 중국 자동차업계의 주장이다. 중국 자동차업계는 10여 년 전부터 미국이나 유럽의 자동차 회사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유학파 출신 엔지니어들을 대거 스카우트해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금은 업계에서 물러나 후학을 양성 중인 쉬민(許敏) 상하이 교통대학(대학원 과정) 자동차 공정연구원장은 일본, 미국 자동차업계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엔지니어로, GM대우의 마티즈 카피 모델로 논란을 빚은 치루이(奇瑞) 자동차의 경차 개발 책임자를 지냈다. 쉬 원장은 최근 국내 지인에게 “현재 자동차 기술 면에서 한국이 중국을 수년 정도 앞서 있지만 앞으로 중국 기술 발전이 빨리 이뤄진다면 달라 질 것”이라며 기술 역전을 장담했다. 그는 또한 “중국이 한국을 따라잡는 것은 간단하다. 현대차 같은 곳을 사버리면 단번에 한국을 추월할 수 있다”라고도 했다.

한국 파트너와의 협력 관계에 의한 중국산 차 공세뿐만 아니라, 중국 자동차 산업의 성장 자체가 한국 자동차 산업을 위협하고 있다. 최근 중국 자동차업계는 독자적인 기술 및 고유 모델 개발을 통한 ‘홀로서기’와 인수·합병을 통한 ‘덩치 키우기’를 지상 과제로 삼고 있다. 이치(一汽), 둥펑(東風), 상치(上汽) 등 3대 국유 자동차그룹은 합종연횡과 고유 모델 개발을 지향하고 있고, 체리(奇瑞)와 지리(吉利)는 외국 기업과의 적극적인 합작 모색 및 증시 상장을 통한 도약을 모색 중이다. 이 중 체리의 2007년 자동차 판매 대수 38만대는 전년에 비해 24.8% 늘어난 수치로 동종 업계 최고 수준이고, 수출 대수 12만대는 2006년에 비해 두 배 급증한 것으로 5년 연속 중국 최대 승용차 수출 기업으로 자리 잡았다. 체리는 크라이슬러와 이미 신차 개발 단계로까지 합작을 진행시켰고, 피아트와의 합작 협상은 일부 세부 사항만 남겨놓았다.

국내 업체의 한 임원은 “중국은 내수 시장이 연간 9백만대를 넘어 1천만대 시대에 곧 접어들 것이다. 중국 업체들은 이를 바탕으로 사회주의 국가에서 나타나는, 국가 핵심 권력과 연결된 경영진들의 강력한 리더십으로 이른 시간 내에 손익 분기점을 돌파했으며, 바다 건너에 있는 한국 시장 공략은 시간 문제다”라고 우려를 나타냈다.

그동안 현대차를 비롯한 국내 완성차 업체들은 국내외에서 프리미엄 브랜드들에 대응한 중·대형 승용차와 럭셔리 카 개발에 힘써왔다. 그것도 엔진이나 트랜스미션, 차체 경량화 등 자동차의 핵심 기술 개발에 주력하기보다는 편의 장치를 위주로 신규 개발, 팩키지로 옵션화하는 방식으로 수익 극대화에 매진해 왔다.

▲ 중국 상하이기차가 국제산업박람회에서 자체 브랜드로 선보인 로위550. ⓒAP연합
최근의 세계적인 초고유가 흐름에 적합한 경차나 고연비 차 개발에는 상대적으로 등한시 해왔던 셈이다. 실제 GM대우의 마티즈, 기아차의 모닝 등 경차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반면, 내수 경기의 침체로 여타 세그먼트 차종들의 수요는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다. 특히 그중에서도 경유 가격 급등의 영향을 받는 SUV 차종은 감소 폭이 심각한 수준이어서 쌍용차는 SUV 생산라인의 가동을 중단하는 극단의 조치를 취하고 있다. 이같은 차종별 수급 불안은 완성차 및 협력 업체 간 불균형도 낳고 있다. 기아차 모닝은 ‘동희 오토’라는 협력 업체에서 완성차로 생산해 기아차 브랜드로 판매되고 있다. 완성차 업체의 주력 생산 라인은 한가한 반면 협력 업체의 공장 가동률은 높아지는 웃지 못할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모닝 등 경차 출고가 지연되면서 중고 경차 가격이 신차를 상회하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소규모 무역 업체들도 수입 판매에 ‘눈독’

한편, 외환위기 이후 국내 상용차 업체들의 구조 조정으로 현대차그룹이 상용차 시장에서도 독점적 지위를 누리고 있는데, 수년 사이에 대폭적인 차 가격 인상으로 소비자들의 불만이 극에 달해 있다.

15t 이상의 대형 상용차 부문은 국내 외국계 완성차 업체들과의 경쟁으로 가격 오름 폭이 크지 않았지만 주로 자영업자들의 수요가 많으면서 뚜렷한 경쟁 업체가 없는 1t급 소형 상용차 부문에서 가격 인상 폭이 상대적으로 크다. 특히 이 분야에서 독과점적 지위를 누리고 있는 현대차그룹에 대해 소비자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이와 같이 수급 불안이 있는 경차나 소형 상용차를 생산하는 중국 업체들이 한국 사양에 맞는 차를 개발해 적합한 가격에 국내 시장에 공급할 경우 시장의 양상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 업계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대우자판 이동호 사장의 언급은 그래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판매는 국내 시장을 잘 아는 자동차판매 전문 회사가 담당하면서 가격이나 물류 경쟁력이 있는 중국 업체들에게 외주를 주는 방식으로 비완성차 업체가 신차 판매 시장에 뛰어들면 소비자들은 중국산 차를 구매할 것으로 예상된다.

판매 방식에서도 기아차-동희 오토의 관계처럼 국내 판매 회사가 주문자상표 방식(OEM)으로 중국 업체에 외주를 주고, 국내에서는 판매회사의 통합 브랜드로 마케팅 전략을 구사할 경우 파급 효과는 예상을 뛰어넘을 수도 있다는 것이 자동차 마케팅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일부 소규모 자동차 무역 업체들도 잔존해 있는 과거 국내 자동차업체들의 영업 A/S 전문 인력들을 재활용해 중국산 차 판매 사업 참여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국내 한 업체는 중국의 사업 파트너로 ‘위해’에 위치한 ‘H자동차’를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H자동차’는 1~2t급 소형 상용차를 연간 15만대 수준으로 생산하는 업체다. 이 업체는 일정한 기술 수준이 요구되는 SUV는 사업을 추진하다 품질 수준을 맞추지 못해 생산을 중단했다. 중국 업체들이 직·간접으로 한국 시장을 공략할 경우 그 파급 효과는 처음에는 미미하지만 중국 자동차 산업의 성장력을 고려해볼 때, 중장기적으로는 국내 전체의 업계 판도를 바꿀 수 있는 변수가 되기에 충분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