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 대결 떠나 색깔 대결에서도 ‘불꽃’ 튀겠네
  • 김회권 (judge003@sisapress.com)
  • 승인 2008.06.17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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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원 투표 기록으로 본 오바마와 매케인의 성향/군사ᆞ국방ᆞ총기 문제 등에서 입장 차이 ‘극과 극’


이제 선수는 정해졌다. ‘변수’일 줄 알았던 버락 오바마가 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결정되면서 ‘상수’가 되었다. 11월4일에 벌어지는 본선에 민주당에서는 오바마가, 공화당에서는 존 매케인 상원의원이 나선다. 오바마가 대선 후보로 선출된 사건을 두고 미국 정치의 진보성을 이야기하는 전문가가 많다. 흑인이라는 인종적 한계를 뛰어넘은 젊은 정치인이 본선 무대에 오르면서 미국 대선은 역사상 처음으로 흑백 대결의 양상을 띠게 되었다.

오바마는 이미 가장 진보적인 정치인으로 꼽힌 바 있다. 미국의 정치 주간지인 <내셔널 저널>은 2007년 한 해 동안 오바마의 상원 투표 성향을 분석했다. <내셔널 저널>은 매년 각 상원 의원들이 99개 법안을 놓고 어떻게 투표했는지 평가해 정치적 성향을 분석하고 있다. 같은 조사에서 오바마의 상대 매케인은 53위를 기록해 ‘중도적’이라는 평가를 들었다.

‘가장 진보적’이라는 민주당 의원과 의외로 ‘중도적’이라는 공화당 의원이 맞붙는 이번 미국 대선은 벌써부터 히트 상품이 될 조짐이 보인다.


오바마 ‘진보 중 진보’ , 매케인 ‘유연한 보수’

각 당의 후보들이 정말 그러한지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vote smart(현명한 투표·http://www.votesmart.org)’라는 곳을 방문하면 된다. 미국 유권자의 현명한 선택을 돕기 위해 각 후보자의 법안 투표 기록을 보관하고 그들의 삶의 흔적도 업데이트해 전기를 만드는 곳이다. 회원으로 활동하는 수천 명의 시민들이 흔적들을 주워 업데이트한다.

이곳의 기록들 중 가장 가치 있는 것은 후보자들이 법안에 대해 어떻게 투표했는지 볼 수 있는 ‘투표 기록’이다. 미국 상원도 당론에 따라 정당 투표를 하지만 우리 국회보다는 자유 투표의 분위기가 강한 편이다. 따라서 투표 기록들만 잘 훑어본다면 개인들도 <내셔널 저널>처럼 대선 후보의 성향을 분석할 수 있다.

오바마와 매케인이 같은 법안을 두고 처음 함께 투표한 때는 2005년 1월6일이다. 이후 올해 5월까지 총 5백3건의 법안에서 각자의 생각을 찬성, 반대, 혹은 기권으로 나타냈다. 오바마와 매케인 양자 모두 기권이나 불참으로 투표권을 행사하지 않은 안건은 1백45건이었다. 나머지 3백58건 중 찬성이든 반대든 입장이 일치했던 적은 66번에 불과했다. 나머지 2백92건을 두고는 서로 찬반이 갈리거나 한쪽이 투표를 포기하는 등 다른 입장을 보였다(한쪽이 투표권을 행사하지 않은 경우도 소극적인 의사표현으로 보고 의견이 서로 다른 것에 포함시켰다).

오바마와 매케인은 어떤 분야의 법안에서 의견의 일치를 많이 보았을까? 일단 자료 수집 과정에서 법안 상정이 10건 아래인 분야는 제외했다. 정리해보면 오바마와 매케인의 의견이 가장 일치된 분야는 세출과 관련한 법안으로 44%의 안건에서 같은 입장을 보였다. 이어서 정부조직법(41%), 이민법(31%) 등에서도 일치 비율이 높게 나타났다.

여기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이민법에서 매케인이 유연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는 점이다.

민주당은 전통적으로 이민자들에게 호의적인 입장을 취해왔고, 공화당은 ‘이민자가 유입되면서 미국 노동자들의 실업률이 증가해 사회 불안을 일으킨다는 점’을 내세워 부정적이다. 반면 매케인은 2005년에 공화당 의원치고는 유연한 입장의 ‘포괄적인 이민 개혁 법안’을 발의한 바 있다. 이 법안은 1천2백만명에 달하는 불법 체류자를 사면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지난해 6월 새 이민법이 공화당 의원들의 주도로 부결되었을 때도 매케인은 민주당 의원들과 함께 찬성의 입장에 섰다. 오바마와 매케인 모두 이민법을 개혁한다는 데 공감하고 있다는 점에서 미국 이민자의 한 축을 구성하고 있는 재미교포들에게 나쁜 소식은 아닌 셈이다.

하지만 새 이민법과 같은 시기에 상원 의회는 ‘영어를 국가 공용어로 지정하는 법안’을 상정했는데 이때 매케인은 찬성표를 던졌다. 이 법안을 적용하면 국민이 정부에 영어가 아닌 다른 언어로 된 문서나 서비스를 요구할 권리는 없어지게 된다. 선거 때는 히스패닉에게 구애하면서 막상 히스패닉이 사용하는 스페인어가 범람하자 일정 부분 제동을 거는 데 찬성한 것이다.

두 후보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은 분야는 역시 군사 부문(86%)이었다. 시민의 자유와 권리에 관한 법안(81%), 법률 문제(77%), 국방 문제(74%) 등에서도 다른 의견을 보였다. 군사나 국방 부문은 부시 정권이 들어선 이후 민주당과 공화당이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는 분야다. 2006년에 상정된 ‘2006년 회계 연도 에너지와 수자원 예산’ 표결에서 오바마는 찬성표를, 매케인은 반대표를 던졌다.

매케인, 동성애 문제 등에서 오바마와 ‘한 배’

예산안을 두고 갈등이 일어난 이유는 에너지부 예산으로 핵 벙커버스터 연구비 4백만 달러를 삭감하는 내용이 포함되었기 때문이다. 매케인이 반대표를 던진 이유다. 핵 벙커버스터는 지하 벙커를 뚫는 소형 핵무기로 한때 북한의 은닉 무기를 노리고 개발한다는 얘기가 나왔다. 2007년 7월 ‘이라크 주둔 미군 감축안’에 대해서도 오바마는 ‘찬성’, 매케인은 ‘반대’했다. 매케인도 군사·국방 문제에 있어서는 공화당의 틀을 벗어나지 못했다.

둘 다 동시에 기권을 하거나 불참해 투표권을 행사하지 않은 경우에서는 건강 문제(57%)가 가장 많았다. 환경 문제(56%), 예산·지출·세금에 관한 안건(41%)에서도 동시에 기권하는 경우가 많았다.

미국 대선에서는 매번 거론되는 민감한 문제가 있다. 낙태와 총기 규제, 동성애다. 특히 공화당은 낙태 문제에 민감하다. 그래서 심지어는 ‘기독교 복음주의’ 정당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민감한 문제이기 때문에 발언을 자제하는 경우도 많다.

낙태 문제에 관한 안건은 총 4번 등장했는데 오바마조차 세 번이나 투표권을 행사하지 않았다. 단 한 번 둘의 의견이 갈렸다. 10대 여성들의 임신 예방 프로그램과 응급 피임을 지원하는 내용을 담은 ‘예기치 않은 임신에 관한 개정안’이 상정되었을 때 오바마는 찬성표를, 매케인은 반대표를 던졌다.

총기 규제에서도 오바마는 일관되게 ‘찬성’을, 매케인은 ‘반대’를 택해 낙태 문제만큼이나 전선이 분명하게 그어진다. 재미있는 것은 동성애 문제다. 2006년 공화당은 동성 간의 결혼 허용이 주마다 다른 것을 문제 삼아 ‘헌법에 동성 결혼 금지를 명문화해 금지’시키려는 시도를 했다. 상원에 회부된 이 안건을 두고 오바마는 반대표를 던졌고, 매케인도 반대표를 던졌다. 매케인의 중도적인 성향이 얼핏 엿보이는 대목이다.

매케인을 원칙주의자로 평가하는 사람도 있다. 그 때문에 공화당 의원들로부터 욕을 많이 먹는다. 대표적인 것이 지난 2002년 통과한 ‘선거자금 개혁법’이다. 매케인은 러스 페인골드 상원의원과 함께 정당에 무제한적으로 기부할 수 있는 소프트머니(후보 개인이 아니라 정당에 기부되는 돈으로 상한선이 정해져 있지 않아 기업이나 이익단체의 로비 창구로 이용된 자금)를 금지하고 특별 이익단체가 선거일 60일 전까지는 특정 후보를 지지하거나 비난하는 정치 광고를 할 수 없도록 하는 법안을 발의해 통과시킨 바 있다. 소포트머니의 비중이 큰 공화당에게는 악재였다.

마찬가지로 지난해 8월 상원에 올라온 ‘로비와 기부 행위 제한에 관한 법률’도 정치인에게 그리 달갑지 않다. 오바마는 찬성표를 던졌는데 의외로 매케인은 반대표를 던졌다. 이유가 재미있다. 매케인은 “실질적인 제한 조치로서는 너무 약하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원칙(?)을 너무 강조하다 보니 한반도를 뒤흔든 경우도 있었다. 지난 2004년 북한인권법이 만장일치로 미국 상·하원을 통과한 다음 해에 매케인은 ‘민주주의 증진법’의 공동 발의자로 나섰다. 민주주의라는 대의야말로 매케인에게는 원칙 중의 원칙이다. 북한인권법과 민주주의 증진법을 양 날개로 삼아 북한을 압박하겠다는 의도였다.

‘원칙주의자’ 매케인이 완전 보수화하면 오바마와 간극 더 커질 듯

오바마의 원칙은 매케인에 비해서는 부드럽다. 국방·군사 문제뿐만 아니라 에너지·환경 문제에서도 그의 원칙을 엿볼 수 있다. 오바마는 그동안 “풍력과 태양 에너지 등 대체 에너지 개발로 고유가 시대를 극복해야 한다”라고 주장해왔다.

오바마는 재생 가능 에너지 포트폴리오 기준을 2008년 2%에서 2030년에 10%까지 강화하는 법안에 찬성표를 던졌다. 청정 에너지로 생산하는 전기의 비율을 높이는 안건에도, 대체 에너지 개발을 재촉하기 위해 해외 석유 수입분을 줄이는 내용에도 찬성표를 던졌다.

특히 군사·국방 문제에서는 매케인과 대척점에 서 있다. 오바마는 지난해 7월 수감자에 대한 비인간적인 처우를 금지하는 ‘관타나모 수감자에 대한 개정안’에 찬성했다. 그리고 같은 해 12월 ‘이라크 철군 개정안’에는 반대표를 던졌다. 이 개정안에는 1천2백20억 달러 규모를 지원하는 전쟁 비용 관련 법안에서 철군과 관련된 문구를 삭제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앞서 언급한 <내셔널 저널>의 분석 결과에 따르면 오바마는 상원의원이 된 첫해인 2005년에는 16번째 진보적인 정치인으로 자리매김하더니 2006년에는 10위, 그리고 지난해에는 1위를 기록했다. 미국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는 전통적으로 후보 경선이 벌어지기 전에는 상당히 진보적인 입장을 취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경선 과정이 시작되면 정제된 입장을 취한다.

매케인 역시 마찬가지다. ‘공화당의 이단아’라는 소리를 들어가며 중도적인 입장을 취하기도 하지만 이라크 문제에서는 부시정부와 궤를 같이하고 있다. 게다가 이제부터는 전통적인 공화당원의 지지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더 오른쪽으로 갈지도 모른다. 마침 매케인이 공화당의 후보로 확정된 것과 발맞춰 대표적인 이민제한파인 제프 세션스 상원의원은 ‘2009 회계 연도 연방 예산안’과 연계해 수정안 형태로 이민 단속 관련 법안들을 통과시키려 하고 있다. 오바마와 매케인이 어떤 인물인지 알아보는 것은 어찌 보면 지금부터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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