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턴의 꼼수 “부통령을 달라!”
  • 로스앤젤레스ᆞ진창욱 편집위원 ()
  • 승인 2008.06.17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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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기 백악관 입성 위한 정치적 입지 확보 노려…오바마, 부동표 향방 계산하며 ‘저울질’

▲ 대선 후보 지명 유세 고별 연설을 하던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엄지손가락을 쳐들어 보이고 있다. ⓒAP연합
민주당 대통령 후보 지명을 위한 마지막 예비선거를 치른 다음 날인 지난 6월6일 힐러리 클린턴은 민주당 전국위원회(DNC)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이제 그만 선거운동을 접고 패배를 인정하라”는 권고를 받은 것이다. 말이 권고였지 압력이나 다름없었다. 이미 판세가 결정되었으니 오는 8월 전당대회까지 끌고가 당 내부 분열을 조장하는 것은 오는 11월 존 매케인 공화당 후보와의 결전에 이롭지 않다는 암시였다.

이미 패배를 인정하기는 했지만 끝까지 밀고 나갈 수 있다는 생각을 버리지 않았던 클린턴은 DNC의 권고를 순순히 받아들였다. 그리고 다음 날인 지난 6월7일 패배 선언과 함께 경쟁 상대인 버락 오바마를 지지한다는 연설을 했다.

패배 선언 직후의 클린턴 후보 인터넷 홈페이지에는 밝고 환하게 웃는 클린턴의 사진이 큼직하게 올랐다. 그리고 패배를 인정하는 연설 동영상을 올렸다.

클린턴의 표정은 밝고 태도도 의연했다. 예비선거를 통해 미국 여성이 백악관을 향해 한 걸음 더 전진했음을 확인한 자신의 역할에 의미를 부여했고, 오바마에 대한 칭찬도 잊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을 지지한 많은 미국 여성 유권자와 노인층, 저소득 노동계층 그리고 이민자들을 향해 오바마를 지지해줄 것을 호소했다. 미국 언론은 클린턴의 이날 패배 연설이 지난 16개월 동안 진행된 선거운동과 지난 6개월간의 예비선거 경쟁 과정에서 가장 훌륭한 것이었다고 평가했다.

연설은 전날까지만 해도 오바마의 중앙 정치 경력 부족을 들어 흠집내기에 주력했던 클린턴의 대변신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다.

미국 언론 “클린턴, 패배 연설이 가장 훌륭했다” 평가

클린턴의 이같은 급격한 변신을 두고 많은 추측도 잇따른다. 깨끗한 승복과 의연한 경쟁 상대 지지 선언에는 미국 정치의 전통인 깨끗한 승복 정신 외에 다른 의도가 깔려 있다는 것이다. 바로 클린턴의 러닝메이트 제안설이다.

클린턴은 이미 지난주 초 러닝메이트로 오바마에 협력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그녀는 기자들의 질문에 ‘국가와 당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하겠다’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이같은 분명한 메시지와 패배 연설이 담고 있는 협력과 협조 메시지는 오바마에게 자신을 러닝메이트로 결정하라는 강한 압력을 담고 있다.

클린턴의 선거 전략팀은 이미 패배 선언 이후의 전략으로 러닝메이트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예비선거는 끝났지만 오는 11월 부통령직 확보를 위한 운동은 계속한다는 것이다.

클린턴을 러닝메이트로 지정할지 여부는 오바마가 선택한 사안인데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닐 것이라는 추론이 점차 설득력을 얻고 있다.

우선 클린턴이 예비선거 기간 중 민주당원의 거의 절반에 가까운 1천8백만 표를 획득한 사실을 오바마도 무시할 수 없다. 클린턴이 예비선거를 끝까지 밀고 나간 것은 이같은 절반의 표를 확인하고 이후의 정치적 거래에서 힘을 얻기 위한 계산 때문이었다. 오바마는 1천8백만 표의 절반이라도 잃는다면 매케인과의 본선에서 승산이 없게 된다. 특히 오바마의 약점인 이민자 표와 여성 표 그리고 백인 저소득 노동계층 표는 결코 버릴 수 없는 달콤한 유혹이다.

미국의 최근 여론조사 결과에서는 클린턴의 오바마 지지 연설 이후 오바마가 매케인에 이길 승률이 훨씬 높아진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같은 여론조사 결과가 오는 11월까지 별다른 변수 없이 이어진다면 오바마-클린턴 티켓은 미국 언론들이 말하는 것처럼 ‘드림 티켓’이 될 것이 틀림없다. 오바마가 클린턴의 지지 없이 매케인을 누를 수 있다면 이런 드림 티켓이 필요없겠지만 아직은 오바마가 클린턴을 내치기에는 우위를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다.

또한, 여론조사에서는 오바마의 러닝 메이트 후보 7명 가운데 클린턴이 제1순위로 꼽히고 있다. 오바마와 클린턴이 손을 잡으면 차기 백악관은 민주당이 차지하리라고 보는 분위기마저 형성되고 있다.

미국 여성의 입장을 대변하는 여성 언론인들은 요즘 ‘클린턴 부통령 만들기’에 앞장서고 있다. 11월 대통령 선거 본선에서 승리를 보장하고 여성의 백악관 동반 입성을 달성하며 민주당의 화합을 과시하기 위해서는 오바마가 클린턴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지름길이자 탄탄대로를 마다할 이유가 오바마에게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오바마 진영에서는 클린턴 러닝메이트 지정에 난색을 표시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무엇보다도 예비선거 기간 중 서로 싸우면서 감정이 격해졌고, 헐뜯기에 주력했던 상대들이 마음을 합치는 것이 쉽지 않다고 본다. 일찌감치 오바마 지지를 선언한 에드워드 케네디 상원의원 역시 ‘오바마-클린턴 티켓은 일어날 수 없는 사건’이라고 못을 박았다. 민주당 대통령 후보 지명전에 나선 적이 있는 흑인 목사 재시 잭슨 역시 부정적인 입장을 나타내고 있다.

오바마측 선거 참모들은 또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사실상 승패와 당락을 결정하는 주 요소인 부동표 가운데 상당수가 클린턴에 부정적이라는 여론조사 결과를 지적한다. 클린턴 티켓은 이들 무소속 표를 공화당의 매케인에게 넘겨주는 화를 부를 것이라고 우려한다.

“백악관에 동반 입성하면 불협화음 나올 것” 우려도

다른 오바마 참모들은 성격이 강한 클린턴이 백악관에 동반 입성했을 경우 고개를 숙이고 저자세로만 지낼 것 같지 않다는 우려도 내비친다. 현 딕 체니 부통령이 부시 행정부에서 강한 입김을 행사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클린턴이 오바마에게 영향력 행사를 시도할 가능성이 있다는 걱정이다. 더구나 클린턴의 남편인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단순히 부통령의 남편으로만 지내지 않을 것이라는 소리도 나온다. 이들은 한마디로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한 이후 백악관에서의 불협화음을 의식해 클린턴 부통령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클린턴의 러닝메이트 지명을 강력하게 주장하는 여성 칼럼니스트 매리안 민즈는 최근 캘리포니아 주 <데일리뉴스>에 기고한 글에서 독특한 제안을 했다.

그는 클린턴의 남편 빌 클린턴을 걱정하기 전에 오바마는 먼저 그의 아내 미셀 오바마를 걱정해야 한다고 일침을 가했다. 미셀은 예비선거 기간 중 “나는 성인이 되기 전까지 미국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지 않았다”라고 말해 구설에 올랐다.

미셀은 또 클린턴 지지 유세에 나선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을 향해 “그의 눈을 찢어버리고 싶다”라고 말했다. 이어 ‘농담’이라고 해명했지만 이미 미셀과 힐러리 클린턴은 쉽게 결합할 수 없는 관계가 되어 있다. 민즈는 오바마에게 먼저 부인 미셀을 단속하고 그리고 빌 클린턴을 조처하면 된다는 기발한 대안까지 내놓았다. 즉, 빌 클린턴을 영국 대사로 내보내 백악관에 상주하지 않도록 하면 된다는 것이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빌 클린턴을 영국으로 귀양보내고 힐러리를 혼자 남겨두면 백악관 내부 갈등을 예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오바마-클린턴 티켓에 대해 긍정과 부정이 엇갈림에도 클린턴이 러닝메이트 희망설을 제기하는 이유를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가장 유력한 해석은 오바마 이후의 차기 백악관 주인이 되기 위해서는 부통령직을 차고 있어야 한다는 계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오는 11월 오바마가 당선되고 4년 후 재선이 된다고 전제하면 앞으로 8년 후를 위해 부통령직은 정치적으로 가장 유리한 자리가 될 수 있다. 또, 미국 역사상 최초의 여성 상원의장이 되는 영광도 작은 것이 아니다. 미국 상원의장은 부통령이 차지하는 당연직이다.

흑인 대통령 후보 또는 흑인 대통령이 안고 있는 신변 위험도 클린턴이 감안하고 있다는 설도 있다. 오바마에게 유고 상황이 닥칠 경우 후보직이나 대통령직의 자동 승계라는 ‘만일에 대비한’ 포석이라는 것이다.
이유야 어떻든 클린턴이 백악관을 향한 집념을 버리지 않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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