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순간까지 의사를 믿고 따르세요”
  • 노진섭 (no@sisapress.com)
  • 승인 2008.06.24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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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언장까지 쓰려다 임파선암 완치한 권혁원씨
ⓒ시사저널 박은숙

필리핀으로 이민을 간 후 20년째 마닐라에 살고 있는 권혁원씨(62)는 지난 2002년 갑자기 목이 부어 현지 병원을 찾아갔다. 조직검사까지 했지만 뚜렷한 증세가 없었다. 권씨는 “목에 달걀 같은 덩어리가 만져졌지만 병원에서는 별 이상 없으니 좀더 관찰해보자고 했다. 그런데 얼마 후 그런 덩어리가 한 개 더 생겼다. 임파선암이었다”라며 자신의 투병기를 털어놓았다.

2003년 2월 목에서 2.5~3.5cm가량 되는 종양 4개를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다. 수술은 별 탈 없이 잘 끝났다. 44회에 걸쳐 방사선 치료도 받아 건강을 회복한 듯했다. 그러나 최종 CT 검사 결과는 정반대였다. 권씨는 “암세포가 간과 비장으로 전이되었다는 말을 들었다. 암은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며 한평생을 건강하게 살아왔지만 그때만은 어쩔 수 없었다”라고 당시의 심경을 털어놓았다.

생명에 위협을 느낀 권씨는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필리핀 의사들과 가깝게 지냈지만 그들에게 자신의 생명을 맡길 수는 없었다. 귀국 후 그가 가장 먼저 한 일도 자신의 생명을 책임질 최고 전문의를 찾는 것이었다.

권씨는 “모든 의사들이 서울대병원 허대석 교수를 임파선암 최고 전문의로 꼽았다. 그래서 허교수에게 몸을 맡겼다. 조직 검사를 마치자 항암 치료를 권했다. 허교수는 이번이 암을 치료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말도 덧붙였다. 적극적인 자세로 치료에 임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였다”라고 말했다.

9번에 걸친 항암 치료가 시작되었다. 첫 항암 치료 후 40℃를 넘는 고열에 시달리다 결국, 앰뷸런스를 타고 서울대병원 응급실에 실려간 후에야 열을 내릴 수 있었다. 무엇인가 크게 잘못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허교수의 말은 달랐다.

권씨는 “환자를 입원시키면 돈을 벌 수 있을 텐데 허교수는 나에게 열도 내렸으니 퇴원하라고 했다. 여러 음식도 먹고 산책도 하면서 평소대로 생활을 하라는 것이었다. 사실 장뇌삼이다, 코브라탕이다 몸에 좋다는 것을 다 먹어보았다. 그러나 이것들은 암을 더 빨리 키우고 전이를 촉진하는 부작용을 일으켰다”라고 했다.

허교수의 권유에 따라 3번의 항암 치료를 추가로 받은 후, 필리핀과 우리나라를 6개월에 한 번씩 오가면서 치료를 받아도 될 정도로 건강을 회복했다. 그는 “골프를 하는데, 18홀을 돌아도 아무 이상이 없을 정도로 건강이 좋아졌다. 병원에서도 6개월에 한 번씩 정기검진만 해도 된다고 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에게 암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2005년 12월 검사를 마친 허교수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상태가 심각하다는 신호였다. 권씨는 “소변도 짙은 갈색이었고 대변도 적색이었다. 이상하다 싶었는데 CT촬영을 해보니 담도암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허교수는 수술을 하라고 했지만 나는 절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수술도 하지 않고 집안 식구들을 모두 불러모았다. 유언을 남기려고 했다. 눈과 몸에 황달기까지 생기면서 증세는 더욱 심각해지기 시작했다”라고 당시의 몸 상태를 설명했다.

2006년 초 그는 담도와 쓸개를 제거하고 췌장도 일부 떼어내는 대수술을 받았다. 이후 권씨는 건강을 되찾았다. 2년이 지난 현재까지 별다른 증상 없이 6개월에 한 번씩 정기검진을 받기 위해 한국행 비행기에 오른다.

권씨는 병마에 시달리고 있는 환자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그는 “허교수는 나에게 교과서 같은 존재였다. 의사의 판단을 믿고 따르는 것이 중요하다. 다른 환자들에게도 최고 전문의를 찾으라고 말하고 싶다. 한 번 의사에게 자신의 생명을 맡겼다면 그 의사를 신뢰해야 한다. 또, 현실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라고 강조하고 싶다. 암 진단을 받으면 절망하기 쉽다. 하루라도 빨리 절망에서 벗어나야 치료도 제대로 받을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인터뷰를 마친 권씨는 아내와 함께 서울대병원을 나서 창경궁 돌담길을 걸어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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