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시장 호령하는 "박현주파워"의 그늘
  • 이석 (ls@sisapress.com)
  • 승인 2008.07.01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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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에셋그룹의 박현주 회장이 지난해 의욕적으로 내놓은 인사이트펀드가 중국 증시에서 고전해 3분의 1 토막이 나다시피 했다. 그런 상황에서 박회장이 소유한 비상장 주식의 가치는 오히려 급등하자 1인 지배 구조에 대한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또, 박회장의 가족 회사인 케이알아이에이가 급성장하게 된 배경에도 시선이 쏠리고 있다.

ⓒ시사저널 임영무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이 보유한 비상장 주식의 실체가 처음으로 공개되었다. 재계 전문 사이트인 ‘재벌닷컴’은 지난 6월18일 발간한 <비상장 기업 분석 2008>에서 박회장의 비상장 주식 평가액이 8천5억원에 이른다고 밝혔다. 이는 국내 재벌 총수나 그들의 2, 3세를 통틀어 두 번째로 많은 액수다.

재계 황태자로 불리는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5천6백74억원)나 정의선 기아차 사장(1천7백76억원)도 박회장에게 한참 뒤진다. ‘비상장 왕국’으로 통하는 롯데그룹의 신동빈 부회장(1천4백6억원)이나 신동주 일본롯데 부사장(1천1백52억원)도 주식 가치로는 박회장에 훨씬 못미친다. 유일하게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8천2백7억원)이 박회장을 앞섰지만 차이는 미미했다.

이런 분석 결과는 최근 시장에 팽배한 이른바 ‘박현주 불신론’과 겹쳐 묘한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미래에셋그룹의 성장 동력은 ‘펀드’였다. “미래에셋 펀드 하나쯤 보유하지 않으면 한국 사람이 아니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그러나 지난해 하반기부터 상황이 급변했다. 미국발 서브프라임 사태에 이은 국제 유가 폭등, 중국 주식시장 악화 등으로 인해 펀드 수익률이 바닥을 기고 있다. 이로 인해 미래에셋이 지난해 의욕적으로 내놓은 인사이트 펀드 수익률이 3분의 1 토막 나다시피 했다.

그럼에도 박현주 회장의 주식 가치는 오히려 급등했다. 증시 안팎에서는 의아해하고 있다. 몇몇 시장 전문가들의 입에서는 “투자자들 돈으로 박회장의 배만 불리는 것 아니냐”라는 비아냥이 나오기도 한다.

 투자자들 돈으로 박현주 회장 배만 불렸다?

미래에셋측은 “흔히 벌어질 수 있는 일인데 지나치게 비약해 해석한다”라고 해명하고 있다. 임명재 미래에셋자산운용 홍보실장은 “오를 때가 있으면 내리는 날도 있는 것이 주식시장 불변의 법칙이다. 미래에셋 펀드는 장기적 관점에서 투자하도록 설계되었다. 현재 시장이 어렵기는 하지만 조만간 회복될 것으로 본다”라고 주장했다.

박현주 회장도 최근 잇따른 외부 강의나 언론 인터뷰를 통해 “중국 펀드가 단기적으로 손실을 내고 있지만 우려할 수준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중국은 펀더멘털이 튼튼한 만큼 일시적인 부침보다 큰 흐름을 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박회장도 “조금 더 기다려보라”라는 말 말고는 아직까지 뚜렷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 사이 투자자들의 한숨 소리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뉴시스

이런 와중에 박회장 중심의 지배 구조가 도마에 오르고 있다. 미래에셋그룹 계열사의 모든 소유 구조가 박회장 1인에게 집중되어 리스크 관리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미래에셋그룹의 지배 구조는 현재 박회장을 중심으로 단순화되어 있다. 박회장이 지주회사 격인 미래에셋캐피탈(34.77%)과 케이알아이에이(43.68%), 미래에셋맵스자산운용(79.81%)의 지분을 대량 보유하고 있다. 미래에셋캐피탈은 다시 상장사인 미래에셋증권(36.95%)과 미래에셋생명(59.67%) 지분을, 미래에셋증권은 미래에셋벤처투자(75.37%) 지분을 각각 보유하고 있다.

박회장이 대주주인 비상장 회사 케이알아이에이도 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미래에셋자산운용과 미래에셋캐피탈 지분을 각각 26.82%와 9.11% 보유하고 있다. 브랜드무브의 경우 케이알아이에이가 100% 지분을 갖고 있다. 이렇게 얽혀진 구조를 보면 박현주 회장이 전 계열사를 지배하고 있는 셈이다. 특히 박현주 회장이 대주주인 케이알아이에이의 경우 최근 사세가 급속히 커져 뒷말이 나오고 있다. 이 회사는 박현주 회장이 지난 1997년 자신의 고향인 광주에 설립해 자금 대여업이나 경영 컨설팅, 부동산 임대 및 관리를 해왔다. 지난 2007년 2월 골든파트너스를 인수하면서 코리아리얼이스테이트어드바이저에서 현재의 케이알아이에이로 사명을 변경했다.

박현주 회장이 이 회사 지분의 43.68%를, 부인인 김미경씨가 10.24%를 보유하고 있다. 박회장의 자녀인 하민씨, 은민씨, 준범씨도 각각 8.19%씩 지분을 보유해 사실상 박회장 가족의 기업이다.

문제는 이 회사가 최근 미래에셋그룹의 적극적인 지원에 힘입어 급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회사는 지난 2005년 1억4백만원의 적자를 냈고, 2006년에는 11억2천2백만원으로 적자 폭이 더욱 커졌다. 그러나 지난해에는 17억9천9백만원의 흑자를 기록했다. 당기순이익이나 경상이익이 2년 만에 10배 이상 증가하면서 알짜 기업으로 변신한 것이다. 매출도 2년 만에 5배 이상 증가했다. 특히 부채율은 1백14%인 데 반해, 자본유보율이 2천8백79%나 되어 재무 건전성이 매우 양호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케이알아이에이의 성장에는 미래에셋그룹의 도움이 컸던 것으로 나타났다. 일례로 서울 마포구 공덕동에 위치한 미래에셋생명 한쪽에는 최근 케이알아이에이 서울지사 사무실이 들어왔다. 사옥 관리를 이 회사에 맡긴 것이다. 미래에셋생명의 한 관계자는 “미래에셋생명 사옥의 경우 그동안 자체 관리를 해왔다. 그러나 지금은 케이알아이에이가 위탁을 받아 건물 관리를 하고 있다. 나머지 다른 사옥들도 마찬가지인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귀띔했다. 이와 관련해 미래에셋측은 “단순한 아웃소싱일 뿐이다”라고 밝혔다.

미래에셋의 1인 지배 체제 강화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최정표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박현주 회장이 그동안 미래에셋을 잘 이끌어왔다. 그러나 앞으로도 잘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1인 지배 구조를 내부에서 견제할 수 없다면 의외로 큰 문제에 봉착할 수 있다. 미래에셋은 수많은 투자자들의 돈을 굴리는 금융기업이다. 만일 최고경영자 1인의 판단이 잘못될 경우 발생하는 피해는 보통 기업과는 다르다”라고 지적했다.

특히 피해가 주주에게 뿐만 아니라 투자자에게 전가된다면 금융 재앙을 부를 수도 있다고 최교수는 강조했다. 물론 지배 주주의 지분이 많다 해서 마냥 부정적으로 보아서는 곤란하다는 견해도 있다. 미래에셋의 경우 박회장 개인의 역량으로 일궈낸 기업인 만큼 그의 영향력을 배제한 기업 경영은 상상하기 어렵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부 교수는 “미래에셋의 경우 1인 지배 구조이기는 하지만 오히려 오너를 중심으로 발 빠르게 변화에 대처할 수 있다. 최근의 경영 환경에서는 이같은 지배 구조가 오히려 도움이 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수십조 원에 달하는 고객의 돈을 운용하는 금융기업이 한 사람의 판단에 좌우될 경우 예상되는 위험을 걱정하는 소리가 커지고 있다.

김선웅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 소장은 “금융업은 제조업과 다르다. 제조업의 경우 잘못되면 주주만 피해를 보지만 금융업은 투자자들마저 휩쓸릴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내부 견제가 없는 1인 지배 구조는
‘약’보다 ‘독’이 될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금융업 특성상 잘못될 경우 투자자 피해 더해


증권계 안팎에서는 케이알아이에이의 지배 구조를 박회장 후계 구도의 연장선상에서 보고 있다. 이 회사를 중심으로 앞으로 미래에셋 경영권 승계 작업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얘기다. 요컨대 케이알아이에이를 상장할 경우 박회장 일가는 막대한 시세 차익을 챙기게 된다. 여기에서 축적된 자금력을 기반으로 지주회사 격인 미래에셋캐피탈 지분을 매입해 지배 구조를 완성하지 않겠느냐는 것이 관련 업계의 시각이다. 그렇게 되면 박회장 1인 지배 구조는 어느 누구도 견제를 할 수 없게 된다.

그룹 내에서도 현재 비슷한 의견이 나온다. 드러내놓고 말하지는 않지만 곳곳에서 박회장 1인 지배 구조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회사 관계자는 “국내 최대 투자 운용사의 지배 구조가 개인 회사 수준이라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내부에서 케이알아이에이를 문제시하는 소리가 있다”라고 귀띔했다.
이에 대해 미래에셋그룹측은 “근거 없는 소문에 불과하다”라고 일축한다. 임실장은 “케이알아이에이는 후계 구도와는 상관이 없다. 10년 전 지분이 지금까지 내려온 것뿐이다. 미래에셋의 지배 구조는 체계적으로 정립되었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미래에셋의 경우 독립 경영을 위해 부문 대표제를 운영하고 있다. 박회장이 큰 방향을 제시하면 부문 대표이사가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혹시 회사가 잘못되어도 투자자 보호 장치는 잘 마련되어 있다. 회사와 고객의 자산이 엄격히 분리되어 있어 회사가 잘못되어도 투자자들은 피해를 입지 않는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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