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에 줄줄이… 영장 후한 사법부 정권 눈치 보나
  • 김지영 (young@sisapress.com)
  • 승인 2008.07.15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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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단 영장 기각으로 ‘법ᆞ검 갈등’ 초래했던 법원 현 정부 들어서 “기류 달라졌다” 구설

ⓒ시사저널 임영무

정권이 교체되면서 사법부의 잣대도 바뀐 것일까. 노무현 정부 때만 해도 세인들의 주목을 받았던 대형 사건에서 법원은 자주 영장을 기각했다. 그럴 때마다 영장을 청구했던 검찰의 체면은 이만저만 구겨진 것이 아니었다. 그러면서 이른바 ‘법·검 갈등’이 초래되었다. 그런데 현 정부 들어서는 촛불 집회 등 시국 사건을 비롯한 대형 사건과 관련해 법원의 영장 발부가 관대해졌다는 분석이 법조계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노무현 정부 때 사법부가 엄격한 잣대로 영장을 기각했던 사례는 적지 않았다. 검찰은 지난 2006년 외환은행 헐값 매각 의혹 사건으로 론스타코리아 유회원 대표에 대해 네 차례나 영장을 청구했으나, ‘소명 부족’을 이유로 연거푸 기각당했다. 당시 정상명 검찰총장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라며 법원의 영장 기각에 강한 불만을 토로했다. 같은 해 12월에는 한·미 FTA 반대 시위 참가자들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역시 무더기로 기각당했다.

“촛불 집회ᆞ민주노총 파업 관련 영장 별 어려움 없이 발부”

지난해 학력 위조 파문을 일으킨 신정아씨와 부산 건설업자로부터 로비 의혹을 받은 정윤재 전 청와대 비서관에 대한 구속영장도 발부되지 않았다. 그러자 정상명 총장은 또다시 “정말로 법원이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라며 격앙했다. 법원이 검찰의 영장 청구에 번번이 퇴짜를 놓음으로써 법·검 갈등은 정점에 달했다. 그러면서 법조계에서는 ‘로또 영장’이라는 말이 유행했다. 영장을 발부받기가 로또 복권 당첨될 확률만큼이나 어렵다는 것이었다.

지난 2월 김경한 법무부장관에 대한 인사청문회에서도 영장 발부를 둘러싸고 벌어진 법·검 갈등에 대한 의원들의 질문이 이어졌다. 이에 김장관은 “갈등은 기본적으로 영장 발부 기준에 대한 견해 차이 때문”이라고만 에둘러 답변했다.

법원의 이같은 엄격한 영장 심사는 올해 초 삼성 특검에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삼성 특검팀이 이건희 회장 자택 등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는 과정에서 법원과 갈등을 빚었던 것이다. 이에 당시 조준웅 특검은 “검찰이 청구한 영장에 대해서는 법관이 지나치게 세세한 수사 내용을 보고 판단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수사에 어려움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라는 심경을 털어놓기도 했다.

이랬던 법원이 지난 5월 촛불 정국이 시작되면서 영장 발부에 관대해졌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특히 현 정부 들어 법원의 영장 발부 기준이 완화된 것이 아니냐는 관측까지 제기된다.

법조계의 한 인사는 “이용훈 대법원장은 (2005년) 취임 이후 누누이 공개 재판 중심주의와 불구속 재판 원칙을 강조해왔다. 노무현 정부 때 법·검 갈등이 발생한 것도 그같은 원칙 때문이었다고 본다. 하지만 현 정부 들어 그러한 사법부의 원칙이 무뎌진 것 같다. 촛불 집회나 민주노총 파업 관련자 등에 대한 영장이 별 어려움이 없이 발부되는 것을 보면 사법부가 변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라고 말했다.

촛불 집회 참가자 14명은 이미 구속된 상태다. 여기에 촛불 집회를 주도한 혐의로 광우병대책회의 관계자 6명에게 체포영장뿐 아니라 이들의 사무실과 자택 등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이 발부되었다.

또한 검찰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핵심 측근인 문재인 전 비서실장과 천호선 전 홍보수석, 전해철 전 민정수석 등 청와대 보좌진 20여 명에 대해 휴대전화 통화 내역을 무더기로 조회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에 대해 검찰은 지난해 청와대가 한나라당 이재오 전 의원 등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한 사건의 수사 일환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명예훼손 고소 사건에서 피고소인도 아닌 고소인의 통화 내역을 조회한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로 받아들여진다. 동시에 “법원이 검찰이 통화 내역을 조회할 수 있도록 허가한 기준이 무엇이냐”라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법조계 인사들이 적지 않다.

조금 과장해서 표현하면, 노무현 정부 당시에는 사사건건 갈등을 빚었던 법원과 검찰이 현 정부 들어서는 ‘허니문’에 들어간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는 마당이다.

ⓒ시사저널 황문성

‘시국 사건 기각률’ 낮아져…“신공안 정국 부활” 비난 봇물

이처럼 법원의 영장 발부가 관대해진 기류 탓인지 검찰과 경찰은 영장 청구에 자신감을 갖는 분위기다. 검찰이 <PD수첩> 원본 테이프 제출 요구에 불응한 MBC에 대해 또다시 테이프 제출을 요구하고, 압수수색 영장 청구를 검토하고 있다는 말까지 흘러나오고 있어 주목된다. 여기에 경찰은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가 지난 7월2일 부분 파업을 벌인 것과 관련해 노조 간부 15명에 대해 출석 요구서를 보냈는데, 이에 불응할 경우 법원으로부터 체포영장을 발부받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더불어 법무부와 검찰은 촛불 집회가 과격한 양상을 보이자 연일 엄단 방침을 밝히며, 체포와 구속 등 집행에 나서고 있다. 이에 시민·사회단체 등은 검찰과 경찰을 겨냥해 ‘신공안 정국’, ‘정치 검찰의 부활’이라며 강하게 비난하고 있다. 검찰 내에서는 이에 대한 볼멘소리도 들려온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아무리 검찰이나 경찰이 엄단 방침을 밝히더라도 영장을 발부하는 곳은 결국 법원이다. 법원이 영장 청구를 기각하면 아무리 검·경이 강경하게 나가려 해도 그렇게 하기 힘들 것이다. 그런데도 검찰과 경찰만 비난의 뭇매를 맞고 있다. 거기서 법원은 빠져 있는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일반 사건’과 ‘시국 사건’을 포함해 전체 구속영장이 기각되는 확률은 해마다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법원행정처에 따르면, 2005년도 영장 기각률은 12.2%였으며, 2006년에는 15.9%, 2007년에는 21.8%로 높아졌다. 올해 들어서도 지난 5월 말 현재 23.8%로 상승 추세를 이어가고 있다.

이에 대해 법원 관계자는 “영장 기각률이 높아지는 대신 법정 구속 건수는 늘어나고 있다. 이는 피고인에게 충분한 방어권을 주기 위해서 불구속 재판이 늘어나고 있다는 증거다”라고 설명했다. 특히 이용훈 대법원장 체제에서 법원의 영장 기각률은 더 높아지고 있다. 이 대법원장이 “영장을 발부하는데 있어 신중을 기해야 한다”라고 주문했던 것이 실제 법정에서도 반영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 정부 들어 발생한 촛불 집회나 파업 사태 등 시국 사건과 관련해서 청구된 영장은 별 어려움 없이 발부되고 있는 상황이다. ‘일반 사건’에 대한 영장 기각률은 높아지는 데 비해 ‘시국 사건’ 기각률은 오히려 낮아지고 있는 셈이다. 법조계 일각에서 “사법부가 정권의 눈치를 보는 것 아니냐”라고 의심하는 것도 이같은 이유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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