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탁 덮는 또 다른 불안덩어리, GMO
  • 이석 (ls@sisapress.com)
  • 승인 2008.07.15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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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변형식품(GMO)이 전국 곳곳에서 팔리고 있지만 이를 아는 소비자들은 많지 않다. 안전성을 놓고 업계와 시민단체, 학계의 의견도 엇갈리고 있다. GMO 표시제를 의무화해야 한다는 주장과 괜한 불안감만 조성한다는 견해가 그것이다. GMO는 과연 먹어도 안전한가.



유전자변형식품(GMO)은 지금 전국 곳곳에서 팔리고 있다. 안전성 논란이 지속되고 있음에도 왜 이제야 문제가 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식품업체 간부 ㅈ씨)

“GMO 표시제를 확대한다 해도 무용지물이 될 가능성이 크다. 대책을 마련하지 않는다면 GMO는 표시제의 허점을 뚫고 줄줄이 들어올 것이다.”(식약청 관계자 ㄱ씨)

지난 6월 초 전분당업계가 GM 옥수수를 대량 수입하면서 ‘GMO 논쟁’이 다시 폭발했다. 시민단체들은 해당 수입업체를 상대로 ‘불매 운동’을 벌이며 반발하고 있다. 식품업계는 이런 반발 기류를 피하기 위해 ‘GMO 프리’를 선언하는 등 대응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GMO가 국내에 들어온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유전자 변형 원료로 만든 간장이나 식용유, 다시다 등이 국내 시장에 이미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GMO가 그동안 암암리에 들어와 우리 식탁의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윤상훈 녹색연합 정책팀장은 “판매업체들이 쉬쉬해서 알지 못할 뿐이다. GM 대두나 GM 옥수수로 만든 식용유와 간장, 다시다, 아이스크림, 제과류 등 제품의 종류도 무척 다양하다. 소비자들은 이런 사실을 전혀 모르고 구입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표시제 시행 이후에도 GM 식품 대량 수입

그러나 이들 식품에서 변형된 DNA가 검출되었다는 발표는 한 번도 없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시민단체나 식품업계에서는 허술한 GMO 표시제에 근본 원인이 있다고 한목소리로 말한다.

우리나라는 지난 2001년부터 GMO 표시제를 시행해왔다. 그러나 원료 함유량이 3%를 넘지 않을 경우 ‘비(Non)-GMO’로 인정을 했다. 유럽연합이 0.9%를 넘기면 무조건 GMO로 규정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윤팀장은 “과거의 경우 3% 이하는 기술적으로 문제의 DNA를 검출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기술이 발전해 유럽 수준의 검출 능력을 갖추고 있다. 그럼에도 정부는 경제적인 측면만 따져 표시제 확대를 주저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간장이나 식용유의 경우 아예 GM 성분의 검출 자체가 불가능하다. 가공 과정에서 DNA가 전혀 남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식품업계에서 두부, 콩나물은 Non-GMO 원료를 쓰지만 간장이나 식용유는 GMO 원료를 마구 들여와 쓰고 있다.

임두성 한나라당 의원이 식양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최근 8년간 GM 식품 수입 현황’ 자료에 따르면 GM 표시 대상 식품의 수입은 매년 꾸준히 늘고 있다. 반면 표시율은 해마다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GMO 표시제가 처음 시행된 지난 2001년 대두, 옥수수 등 농산물과 가공식품은 총 1백85만7천t(3천6백7건)이 수입되었다. 이 중 절반 정도인 98만5백20t(6백76건)이 GMO 표시를 했다.

이듬해에는 두 배가 넘는 3백61만9천t(8천25건)이 수입되었지만 GMO 표시는 전년 수준을 조금 웃도는 1백20만4천t(1천62건)에 불과했다. 이후에도 GMO 수입량은 매년 비슷한 수준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GMO 표시 대상은 해가 갈수록 감소했다.

특히 식용유나 전분당 재료인 옥수수의 경우 사실상 GMO 표시가 거의 없었다. 지난 2003년 0건, 2004년 0건, 2005년 0건을 기록했다. 2006년에 1건(12t), 2007년 6건(99t)이 최근 5년간 표시한 것의 전부다. 판매용 대두의 표시 건수도 2001년 2만6천62t(26건)에서 2002년 2백8t(5건)으로 대폭 줄었다. 이후에도 2~5건 정도만 매년 GMO 표시를 하고 있는 실정이다.

ⓒ시사저널 황문성

임의원은 “수입업자들이 법망을 교묘히 피해감에 따라 표시제 자체가 유명무실해지고 있다. 결국, 피해는 소비자들에게로 갈 수밖에 없다. 이같은 폐단을 막기 위해 최근 GMO 표시 관련 법안을 국회에 발의했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GM 식품의 위해성이 그동안 적지 않는 논란을 불러일으킨 만큼 GM 식품의 구매여부는 소비자들이 결정해야 한다. 따라서 해당 제품에 GM원료가 사용되었는지를 명확하게 표기하는 것은 ‘소비자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기 위해 식품 기업이 반드시 이행해야 할 책무다”라고 강조했다.

시민단체도 GMO 표시제 강화를 외치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정체불명의 식품들이 난무하는 상황에서 GM 옥수수까지 무분별하게 들어올 경우 식품의 안전성을 확보하기란 더욱 어려워진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김희정 녹색연합 활동가는 “전분당은 음료나 과자, 빙과류, 심지어는 병원에서 사용하는 포도당에도 들어간다. 전분당을 만드는 재료가 옥수수다. 이 옥수수가 GMO라면 국민이 알고 먹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GM 식품 수입은 해마다 증가, 표시는 감소세

황선옥 소비자시민모임 이사는 “GMO에 문제가 없다는 것은 현재의 과학기술 수준에서 나온 결과일 뿐이다. 고엽제의 후유증도 20년 이후에야 발견되었다. GMO 후유증이 나타나지 말라는 보장이 없는 만큼 소비자들에게 관련 제품을 선택하거나 거부할 기회는 주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이처럼 논란이 가중되자 정부는 현행 GMO 표시제의 개선을 서두르고 있다.

김솔 식약청 바이오식품팀 사무관은 “GMO 표시제를 어떻게 개선할지에 대해 아직 확정한 것은 없다. 외국의 사례를 중심으로 다양한 방안을 준비하고 있다. 개선안의 방향이 잡히면 앞으로 토론회와 공청회 등을 통해 다양한 의견을 수렴한 다음 최종안을 확정하겠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식품업계는 정부가 비교적 엄격하게 표시제를 적용하는 유럽식으로 가는 것이 아니냐 해서 고심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식품업계 관계자는 “우리도 GMO 원료를 사용하지 않으면 좋다. 그러나 최근 곡물 값 상승으로 인해 Non-GMO 찾기가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렵다. 그렇다고 제품을 안 만들 수는 없는 것 아니냐”라고 토로했다.

그는 특히 시민단체가 ‘GMO=유해하다’로 몰아가는 분위기에 대해 불만을 제기한다. 이 관계자는 “최근 인도에서 GM 면화를 먹은 양과 염소가 죽었다고 언론에 보도되었다. 그러나 현지 전문가들도 이 죽음의 원인이 GM 면화 때문이라고 보지는 않았다. 우리나라에서만 이 사건을 부각시켜 GMO와 연관 짓고 있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물론 식품업계의 불만 표출은 강도가 그리 세지 않다. 자칫 시민단체의 집중 공격을 받는다면 상상할 수 없는 타격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GM 혼합 비율이 유럽과 비슷한 수준인 0.9%로 줄어든다면 안 걸릴 제품이나 업체가 몇 개나 되겠느냐”라고 지적한다. 한 업계 관계자는 “GM 콩의 경우 유통 과정에서 보통 콩과 섞일 가능성이 많다. 이렇게 만들어진 제품들을 유럽식 표시제에 따라 엄격하게 통제하면 식품업계는 살아남을 수 없다”라고 우려했다.

이 관계자는 “간장이나 식용유의 경우 가공 과정에서 DNA가 사라지게 된다. 표시제가 확대되어도 정부에서 어떻게 GM 유전자를 검출할지 걱정이다. 괜히 표시제를 강화한다 해서 국민의 불안감만 가중시키는 것이 아닌지 걱정된다”라고 말했다.

ⓒ시사저널 박은숙

식약청 관계자 “전면 표시제 도입하면 식품 공장 문 닫을 판”

식양청도 현재 여론에 떠밀려 표시제 개선을 시도하고는 있지만 이를 썩 반가워하는 눈치는 아니다. 유럽과 우리나라의 식품 환경에는 엄연히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김솔 사무관은 “GMO 표시제가 까다로운 유럽의 경우 원료 농산물의 자급률이 100%에 이른다. 그러나 우리는 콩은 1%, 옥수수는 10%밖에 되지 않는다. 전면 표시제를 할 경우 관련 식품업계는 원료를 구하지 못해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원산지 표시제 확대에 따른 적잖은 ‘후폭풍’을 우려하고 있다. 자칫 국내 농가에서 출하되는 원료만 조사 대상에 올라 ‘역차별’을 받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김사무관은 “ 수입 원료는 자체 조사를 통해 GMO 여부를 가려낼 수 있다. 그러나 해외에서 제조해 들여오는 가공품의 경우 확인할 방도가 없다. 결국, 표시제의 대상이 국산 원료를 쓰는 가공품에만 국한될 가능성이 있다”라고 말했다.

전문가들 사이에도 GMO 표시제 확대를 둘러싸고 찬반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확대를 찬성하는 측에서는 소비자의 알 권리 보호를 강조하고 있다. GMO의 유해성 우려가 있는 만큼 충분히 알려 소비자에게 합리적인 선택을 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문현경 단국대 식품영양학과 교수는 “소비자가 GMO를 모르는 이유는 자신이 GM 식품을 먹고 있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려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김대규 변호사는 “GMO 표시는 소비자의 알 권리 외에 생명권과도 관련이 있다. 현재 과학 기술 수준으로 유해성이 확인되지 않는다 해서 그냥 넘겨서는 곤란하다. 국민 건강을 보호하는 차원에서 정부가 유해 여부를 가려내고 심사하는 능력을 강화해야 한다”라며 GMO 표시제 확대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반대 의견도 만만치가 않다. 반대론자들은 “국민의 알 권리에 집착하다가 오히려 소비자를 더욱 불안하게 할 수 있다”라고 경고한다. 특히 GMO와 관련한 확인되지 않은 여러 소문들에 매달려 관련 식품을 유해하다고 몰아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경규항 세종대 식품영양학과 교수는 “시민단체들은 곡물 수출국인 EU를 좇아 표시제를 확대하자고 주장하지만 난센스다. 우리나라 상황에 맞게 GMO 제도를 운영하는 것이 옳다”라고 주장했다.

지규만 고려대 영양학과 교수는 “GMO는 철저한 통제 과정과 안전성 시험을 거쳐 탄생했다. 소비자들이 근거 없는 유해 주장에 넘어가 GMO 식품을 거부하다가는 생활의 질에 큰 타격을 받을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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