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병통치약’도 알아야 보약이지
  • 노진섭 (no@sisapress.com)
  • 승인 2008.07.15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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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용량 아스피린, 혈전ᆞ암 예방 목적 복용자 늘어…장기 복용시 위장 출혈 등 부작용도
ⓒ시사저널 황문성


“애들은 가라! 묘약이 왔어요!” 약장수들이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며 ‘만병통치약’을 팔던 시절이 있었다. 감기부터 무좀까지 웬만한 병은 다 고친다는 말에 혹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플라시보 효과(placebo effect) 때문인지 실제로 병이 나았다는 사람도 있을 정도였으니 그 위력은 짐작하고도 남는다.

진통 해열제의 대명사격인 아스피린은 현대판 만병통치약으로 통한다. 오래전부터 전해온 ‘두통에는 아스피린’이라는 인식이 사람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다. 아스피린은 무려 1백60가지 통증을 완화시켜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의사의 처방 없이도 주변 약국에서 구할 수 있어 누구에게나 매우 친숙한 약이다. 일반의약품(OTC)인 까닭에 가정에서는 상비약으로 챙겨놓기도 한다. 최근에는 심혈관질환까지 예방한다는 사실이 알려져 아스피린을 만병통치약으로 여기는 것도 무리는 아닌 듯하다. 이렇게 아스피린 선풍이 불면서 “먹어도 해 될 것이 있겠느냐” “매일 꾸준히 먹으면 암도 예방한다더라”라는 식의 믿음까지 생겨나 복용자가 늘어나고 있다.

과연 아스피린을 맹목적으로 믿어도 되는 것일까?

미국의사협 “심혈관질환 예방 위해 복용 권고”

아스피린은 용량에 따라 두 가지로 나뉜다. 5백mg짜리를 고용량, 100mg짜리를 저용량이라고 부른다. 과거에는 이를 성인용과 소아용으로 구분했지만, 사실 고용량 아스피린은 해열·진통제로 만들어진 것이다. 두통에 시달릴 때 약국에서 사먹는 아스피린은 고용량이다.“아스피린의 원조 제조사인 바이엘은 최근 고용량보다 저용량 아스피린의 마케팅에 역점을 두고 있다. 과거 해열·진통제의 대명사였던 아스피린이 항혈전제로 거듭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판매되고 있는 저용량 아스피린은 바이엘의 아스피린 프로젝트(Aspirin Protect)와 보령제약이 호주 웨인 사로부터 수입한 아스트릭스(Astrix)가 대표적이다. 기존 항혈전제 중에는 플라빅스(Plavix)가 유명하지만 1정이 2천1백71원으로 비싸 환자에게는 적지 않은 부담을 준다. 아스피린보다 수십 배 이상 비싼 약이지만 그렇다고 약효가 수십 배 이상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효율 대비 가격 면에서 아스피린이 이상적인 항혈전제인 셈이다.

저용량 아스피린이 심혈관질환을 예방한다는 사실은 여러 연구 결과에서 확인되었다. 아스피린의 주성분인 아세틸살리실산(acetyl-salicylic acid)이 혈소판의 응집을 차단해 혈전의 생성을 막는다. 심근경색 등 심혈관질환의 주범인 혈전을 처음부터 생기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이런 특성 때문에 1978년 아스피린이 뇌졸중 위험을 31% 떨어뜨린다는 캐나다 연구팀의 연구 결과가 발표된 이래 현재까지 심혈관질환과 관련한 아스피린의 다양한 효능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1989년에는 심장병에 대한 아스피린의 효능을 연구한 미국 하버드 의대 찰스 헨켄스 교수가 아스피린을 복용하면 심장병 발병률을 44% 감소시킨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최근에는 심혈관질환뿐만 아니라 다른 질병 예방에도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고 있다. 스페인 연구팀은 지난 4월 아스피린이 비만 환자의 혈액 내 인슐린 분비량을 증가시켜 혈당을 줄인다고 밝혔다. 미국 하버드 의대 연구팀은 이틀에 한 번씩 아스피린을 복용하면 10년 동안 천식의 발병 위험이 약 10% 정도 줄어든다고 보고했다.

더 나아가 암을 예방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지난 5월 미국국립암연구소는 51~72세 성인 12만7천명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 아스피린을 꾸준히 복용하면 유방암 발병을 16% 줄일 수 있다고 발표했다. 유방암은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으로부터 영양분을 공급받는데, 아스피린이 에스트로겐의 활성을 차단한다는 것이다. 아스피린이 대장암 발병을 21% 줄인다는 보고도 있다. 아스피린 복용 시간에 대한 연구 결과도 있다. 스페인 비고 대학(University of Vigo) 연구팀은 지난 5월 혈압이 높은 환자들이 혈압을 낮추기 위해 아침보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 아스피린을 복용해야 효과가 좋다고 보고한 바 있다. 이유는 확실하지 않지만 밤에 위장의 약물 흡수가 더 잘되기 때문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아스피린의 효능이 속속 밝혀지자 미국의사협회(AMA)는 최근 시카고에서 열린 2008년 연례회의에서 심혈관질환 및 뇌졸중의 위험을 예방하기 위해 저용량 아스피린의 적절한 복용을 권고해야 한다는 지침까지 마련했다. 미국의사협회 임원인 윌리엄 하젤 박사는 “이는 9만5천명 이상 성인을 대상으로 6개월간 연구한 결과다. 심혈관질환은 미국에서 줄곧 사망 원인 1위를 차지하는 병으로 환자들에게 아스피린의 적절한 복용을 권유하면 심혈관질환 발생률을 줄이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미국심장학회(AHA)도 아스피린이, 매년 5천명 이상의 미국인이 심장마비 등으로 사망하는 것을 예방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아스피린은 세계보건기구(WHO)가 정한 심혈관질환 예방 필수 약물 리스트에도 올라 있다.

ⓒ시사저널 황문성


‘고용량’ 쪼개 먹는다고 ‘저용량’ 효과 못봐

이같은 순기능만 믿고 아스피린을 마치 비타민이나 건강 보조식품처럼 복용하는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그러나 전문의들은 아스피린은 엄연히 의약품이므로 부작용이 생기는 역기능도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대표적인 부작용이 위장 출혈이다. 장기간 복용하면 아스피린은 위점막에 손상을 주어 위장 출혈 등 위장 질환을 유발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아스피린을 먹으면 속이 쓰린 이유다. 매일 술을 소주 세 잔 이상 마시는 사람이 아스피린을 복용하면 위장출혈 가능성이 더욱 커진다. 아스피린은 혈액이 응고되지 않도록 묽게 만들므로 한 번 출혈이 시작되면 피가 응고되지 않아 심각한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 특히 혈우병 환자나 수술을 앞둔 환자는 아스피린을 피해야 한다.

저용량 아스피린이 혈전 예방에 효과가 있다면 고용량 아스피린을 먹으면 그 효과가 증가하지 않을까? “득보다 실이 많다”라는 것이 정답이다. 혈전 예방을 위해 고용량 아스피린을 매일 복용하면 오히려 위장 출혈로 병원에 입원할 위험이 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월 미국 켄터키 대학 연구팀은 미국인 25만명이심장마비와 뇌졸중을 예방하기 위해 고용량 아스피린을 복용해 위장 출혈로 병원에 입원한 상태라고 밝혔다. 미국의학협회 저널에 발표된 연구 결과에 따르면 고용량의 아스피린이 저용량 아스피린보다 심혈관질환을 예방하는 효과가 더 우수하지도 않으면서 위장 출혈 위험을 더욱 높인다. 송영천 서울아산병원 약제팀장은 “고용량 아스피린은 저용량 아스피린보다 용량이 5배이기 때문에 고용량 아스피린을 5분의 1로 쪼개서 먹는 환자도 있다. 저용량 아스피린은 위에서 녹지 않고 장에서 녹도록 약에 코팅이 되어 있다. 그런데 고용량 아스피린은 해열·진통제이므로 코팅이 되어 있지 않다. 고용량 아스피린을 쪼개 먹으면 위에서 녹기 때문에 위장 출혈 등 위장 장애를 겪을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연합뉴스


천식ᆞ두드러기 환자, 아스피린 과민증 보이기도

아스피린 복용은 위장 질환 유발 말고도 다른 부작용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 아이가 밤새 울면서 열이 나면 무심코 아스피린을 먹이는 경우가 있다. 만일 아이가 라이증후군(Reye’s syndrome)에 걸려 있다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라이증후군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독감)나 수두 바이러스에 감염된 아이에게서 드물게 발생하는 병이다. 흔한 증상이 발열인데 해열제로 아스피린을 먹이면 뇌압 상승과 간 효소 상승 등의 증상을 보이며 경련, 혼수 상태, 사망에까지 이른다. 또 라이증후군은 아스피린 복용과 관련이 있다고 추정되는 만큼 병원에서는 수두를 치료할 때 아스피린 사용을 금하고 있다. 구홍회 삼성서울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아스피린에 대한 연구 과정에서 라이증후군이라는 부작용을 발견했다. 딱히 이것 때문만이 아니더라도 소아·청소년은 아스피린을 복용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라고 말했다.

성인도 아스피린에 예민한 증상을 보이는 경우가 있다. 심한 천식이 있거나 몸 여기저기에 두드러기가 생기는 만성 두드러기 환자에게 아스피린은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만성 두드러기에서 생성된 유독물질인 히스타민(histamine)이 아스피린과 반응해 부작용을 일으킨다. 아주대병원의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만성 두드러기 환자 2백27명 중 81명(35.7%)이 아스피린 과민증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심혈관질환 환자라고 해서 모두 아스피린의 효과를 보는 것도 아니다. 동아대병원 진단검사의학과 한진영 교수는 지난 5월 대한혈액학회 학술대회에서 “아스피린을 복용한 사람의 13%는 약효가 없다”라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한마디로 아스피린 저항성이 생긴 환자들이다. 미국 버펄로 대학 연구팀에 따르면 아스피린 복용 환자의 20% 정도가 아스피린 저항성을 보인다.

아스피린 저항성이 있는 심혈관질환자가 아스피린을 복용하면 심근경색과 뇌졸중에 걸리거나 사망할 위험이 4배까지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캐나다 맥매스터 대학 보건과학센터의 마이클 부커넌 박사는 “아스피린 저항성이 있는 환자에게서 심근경색과 뇌줄중이 발생할 확률은 39%로, 그렇지 않은 환자(16%)보다 높게 나타났다”라고 발표한 바 있다. 아스피린 저항이 있는 환자는 여성이 남성보다 많으며, 과거에 신장질환 병력이 있는 사람들에게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건강은 건강할 때 지킨다’는 생각만으로 아스피린을 꾸준히 복용하는 사람이 많다. 건강한 사람이 아스피린을 매일 장기 복용하면 위험한 직업으로 알려진 소방관만큼 위험하다는 연구 결과가 나와 눈길을 끈다.

미국 터프츠 대학 뉴잉글랜드 메디컬센터의 뉴만 박사팀은 “50세 이상 성인이 매일 아스피린을 복용하면 인구 10만 명당 10.4명이 사망할 위험이 있다. 인구 10만 명당 10.6명이 사망할 위험이 있는 소방관과 비슷한 수치다. 아스피린을 꾸준히 먹는 것은 소방관처럼 항상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것과 다르지 않다. 사무직 종사자들은 인구 10만 명당 0.4명, 비행기 탑승자는 인구 10만 명당 0.15명이 사망할 위험이 있는 것과 비교하면 매운 높은 수치다”라고 밝힌 바 있다.

ⓒ연합뉴스


청국장이 혈전 예방에 더 낫다는 연구 결과도

아스피린을 먹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이렇다. 심혈관질환이 있는 환자만 복용하라는 것이 전문의들의 공통된 소견이다.

박미선 서울대 의대 가정의학과 교수는 “심혈관질환자라도 의사의 처방을 받아 아스피린을 복용해야 한다. 같은 심혈관질환자라고 해도 워낙 개인차가 크기 때문에 아스피린이 필요한 환자가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다. 또 고혈압·고지혈증·당뇨 예방에 아스피린이 효과적이라고 해서 무조건 아스피린 사용을 권하지 않는다. 아스피린을 먹은 환자 중에 위장 출혈로 대변 색까지 검게 변한 경우가 있는가 하면 발등에 갈색 반점이 생긴 적도 있다”라고 강조했다.

아스피린이 75~81mg 정도라면 출혈 없이 심혈관질환 예방을 목적으로 의사의 처방하에 복용해도 된다. 물론 건강한 사람은 전혀 아스피린을 복용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부작용을 초래할 수도 있다. 아스피린은 꼭 필요한 환자에게는 ‘약’이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독’이 된다. 그래서 아스피린을 놓고 야누스의 얼굴과 같다고 말한다.

한편, 청국장이 아스피린보다 혈전 예방에 뛰어나다는 연구 결과가 나와 의학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 순천향대 생명공학과 오계헌 교수는 지난 5월 “전통 발효식품인 청국장을 발효시키는 바실루스균이 혈전 생성을 예방하고 이미 생성된 혈전까지 녹이는 강력한 혈전 용해 성분을 만든다”라고 밝혔다. 오교수는 이 성분을 피브자임(fibzyme)이라고 명명했다. 피브자임은 혈액을 응고시키는 물질인 피브린(fibrin)을 용해하는 효과가 매우 크고, 아스피린과 달리 이미 생성되어 있는 혈전까지 녹이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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