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드라마, ‘감’ 잡았다
  • 하재근 (문화평론가) ()
  • 승인 2008.07.22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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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식문화 다룬 <식객>, 재미 넘어 삶의 이야기로 공감에 감동까지 ‘진수성찬’
ⓒ제이에스 픽쳐스 제공

’삼국지’ 이래로 삼파전은 언제나 흥미 있다. 드라마 왕국인 이 나라에서 벌어지는 방송 3사의 드라마 삼파전도 그렇다. 월화 미니시리즈, 수목 미니시리즈, 주말 드라마 삼파전은 관심의 초점이 된다. 그중에서 요즘에는 월화 미니시리즈 대전이 특히 뜨겁다.

<식객>과 <최강칠우>, <밤이면 밤마다>의 대결이다. 김래원과 에릭, 김선아-이동건 커플의 대결이기도 하다. 주연들의 면면만 보면 모두 트렌디 드라마인 것 같다. 그런데 의외로 전통을 다룬 작품들이다.

공교롭게도 월화 미니시리즈 대전에서 맞붙은 세 주자가 모두 우리 문화와 관련이 있는 것이다. <최강칠우>는 아예 사극이고, <밤이면 밤마다>는 우리 문화재를 다룬다. 그러나 우리 문화와 가장 깊은 관련이 있을 것 같은 <최강칠우>는 퓨전 사극에 ‘쾌걸 조로’ 같은 설정으로 우리 삶과도 문화와도 아무런 상관이 없는 작품이 되었다.

<식객>에는 우리 식문화가 나온다. 단지 식문화를 소개하는 것이라면 다큐멘터리도 있다. <식객>에는 그것이 이야기와 함께 나온다. 그것도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 속에 나오는 것은 우리 삶이다. 그것이 겉돌지 않고 제대로 버무려져 ‘맛있다’.

인상적이었던 ‘정형사 에피소드’

반면에 <최강칠우>는 사극에 어울리지 않는 트렌디한 주인공들의 연기와 이야기가 겉돌고 있다. <최강칠우>는 <쾌도 홍길동>, <일지매>와 더불어 서민 영웅 퓨전 사극이다. 이 중에서 순수한 창작 영웅은 <최강칠우>뿐이다. 그 시도는 좋았으나 결과물은 아직까지 기대에 못 미친다. 셋 다 에피소드를 하나씩 풀어가는 구성인데 <최강칠우>의 전개가 가장 느슨해 보인다.

<밤이면 밤마다>에는 아기자기한 맛이 있다. 김선아와 이동건이 의외로 잘 어울린다. 삼순이 때에 비해 살을 뺀 김선아는 보기 좋고 이동건은 멋있다. 김정화는 여태까지 드라마에서 본 이래 가장 생동감이 넘친다. <밤이면 밤마다>의 재미는 트렌디 드라마의 그것과 닮았다. 전문직 청춘남녀의 사랑 만들기에 문화재가 소품으로 등장하는 격이다.

<식객>은 우리 맛을 찾아간다. <밤이면 밤마다>는 우리 문화재를 찾아간다. 하지만 그것을 감싸고 있는 것이 <식객>은 우리 삶이고, <밤이면 밤마다>는 청춘남녀인 셈이다. 청춘남녀 이야기는 기본적인 재미를 주지만 어느 정도 이상을 넘기 힘들다. ‘삶’의 이야기는 잘못하면 진부하지만 잘 다루면 시청률 대박이다. 보편적인 공감을 얻게 되면 그렇다. 공감을 넘어 감동까지 가게 되면 동시간대 제왕이 된다. <식객>에서 그런 기미가 보인다.

<식객>의 정형사 에피소드는 완벽했다. 정형사란 도축한 동물을 부위별로 나누는 직업이다. 옛날 말로 하면 백정이다. 즉, 칼을 들고 고기를 자르는 사람이다. 사농공상(士農工商)이라는 우리식 관념으로 치면 최하층에 해당하는 직종이다. 요즘 우리는 상사공농(商士工農) 시대를 살고 있다. 옛날이든 요즘이든 손 쓰고 오물 묻히는 직업은 한국 사회에서 최하층, 즉 서민 중의 서민이다.

<식객>은 쇠고기를 소중히 다루었던 우리의 식문화를 좇으면서 결국 정형사까지 찾아간다. 이 드라마에서 정형사는 최고의 전문직이다. 어떻게 보면 <식객>이야말로 진정한 전문직 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에서는 대기업 회장이 요리사를 찾아가고, 그 요리사는 정형사를 찾아가 머리를 숙인다. 유통업체 사장도 정형사를 찾아가 삼고초려한다.

그 정형사에게는 아픔이 있다. 한국 최고의 정형사임에도 뿌리 깊은 이 땅의 차별 의식 때문에 일개 법조인에게 딸자식이 파혼을 당한 것이다. <식객>의 주인공은 정형사를 찾아가 직업의 자부심과 가족을 다시 찾아준다.


사윗감이 정형사에게 무릎 꿇고 ‘장인 어른’이라고 부를 때는 극 중에서 정형사도 울었지만 나도 감동받았다. 아마 다른 시청자들도 인간적인 감동을 받았으리라 생각된다. 이런 것은 어떤 전문적인 식견이나 젊은이들만의 독특한 감성이 아닌, 한국인으로서의 보편적인 감성과 연결된 그 무엇이다. 드라마가 이런 것을 주기 시작하면 경쟁작들은 힘들어진다. 이 장면에서 <식객>이 중원을 평정하고 패자로 등극하는 느낌을 받았다.
<식객>에서는 정형사가 딸에게 줄 쇠고기를 정형하는 모습이 세밀히 방영되었다. 이것도 감동이었다. 이것은 보편적일 수도 있고 개인적일 수도 있겠다. 서민 중의 서민이 신명을 다해 당당히 기예를 펼친다는 점에서는 보편적이겠고, 특별히 손을 쓰는 노동이라는 점에서는 무척 인상 깊었다.


한국 역사에서 처음으로 ‘백정’에게 시민권이 발부되는 듯한 환상까지 보았다. <대왕 세종>에 관한 글에서도 썼었지만 ‘손’은 중요하다. 손 쓰는 사람을 천대하는 풍조로는 절대로 우리 사회가 도약할 수 없다. 우리가 ‘손’을 천대한 결과 서민들이 한 많은 삶을 사는 것은 물론이고, 우리 산업 경쟁력도 다른 차원으로 도약하지 못하고 있다. 일본의 장인, 독일의 마이스터들이 나오지 않는 것이다. 정형사는 천대받는 한국판 마이스터였다.

아기자기한 웰빙 드라마의 재미까지 갖춰

<식객>에서 가장 중요한 물품은 ‘칼’이다. <식객>은 칼을 만드는 사람, 칼을 쥐고 쓰는 사람들의 신화적인 연대기다. ‘칼’을 만드는 사람도 당연히 ‘손’을 쓴다. 주인공은 이렇게 손을 쓰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그들의 가족을 복원시켜준다. 그 손을 쓰는 사람들의 연대기란 바로 우리 민중의 고단한 역사다. 우리 삶이고 우리의 마이스터들이다. 이 드라마에서는 대장장이, 백정, 요리사가 전면에 서며, 펀딩으로 기업화하려는 사람들은 주변부로 배치된다. 대장장이와 백정과 요리사가 최고의 전문직, 최고의 예술가로 묘사되는 드라마다.

만약 <식객>이 극 중 주요 무대인 운암정에서 궁중 요리를 가지고 경연대회나 열었다면 보편적인 감동을 이끌어낼 수 없었을 것이다. <식객>이 처음 시작되었을 때는 그런 기미가 보였었다. 우리 삶과 아무런 상관도 없는 기기묘묘한 고급 음식들을 전시하며 게임 진행하듯이 드라마를 시작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식객>에는 아기자기한 재미는 있었을지 몰라도 진정한 드라마의 힘은 없었다.

<식객>은 주인공이 운암정을 박차고 ‘필드’로 나오면서 극에 생명력이 생겼다. 이제 주인공이 다루는 식재료는 듣도 보도 못한 것들이 아닌 우리 삶 속의 것들이다. 주인공이 활동하는 무대는 궁중 요리를 다루는 요정이 아닌 시장 바닥이다. 그곳에서 서민들, 즉 우리들을 만난다. 우리 식재료와 우리 음식, 그리고 서민. <식객>이 국민 드라마로 발돋움할 수 있는 키워드들이다. 그 가능성을 ‘정형사’ 에피소드에서 감동적으로 보여주었다.

게다가 의미와 아기자기한 웰빙 드라마의 재미까지 있다. 월화 미니시리즈 대전에서는 <식객>의 독주가 이어질 듯하다. 이제 흥미로운 것은 2위 게임이다. 에릭의 사극 적응과 김선아의 부활 여부. 그리고 <식객>의 질주가 과연 어디까지 갈 것인가도 흥미롭다. 주중 미니시리즈의 한계를 딛고 국민 드라마로의 도약이 가능할 것인가. 그것은 뒷심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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