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락하는 것에는 ‘외국인 매도 폭격’이 있다
  • 황금단 (삼성증권 투자정보파트 연구위원) ()
  • 승인 2008.07.29 14:2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국내 증시, 외국인 연속 순매도로 8조9천억여 원 빠져나가 … 미국의 금융 위기와 유가 급등으로 인한 인플레이션 우려 탓

ⓒ그림 최익견

외국인 매매의 흐름을 되짚어 보면 외국인들의 기록 경신이 놀랍다. 하지만 주식 투자자 입장에서는 전혀 달갑지 않은 소식이다. 우리 주식시장에 투자하는 외국인들이 1992년 증시 개방 이후 최장 기간 연속 매도 기록을 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6월9일부터 7월23일까지 거래일수로 33일 연속 거래소에서 순매도 행진을 펼치고 있는데, 이 기간 동안 외국인들이 순매도한 금액은 총 8조9천억원이 넘는다. 시장도 외국인들의 매도 폭격을 견디지 못하고 단기간에 지수가 1천8백 포인트에서 1천5백 포인트까지 3백 포인트 이상 하락하는 취약한 흐름을 보였다.

좀더 긴 시(時) 계열을 놓고 외국인들의 매매 추이를 살펴보면, 지난1998년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외국인 투자자들은 국내 주식 투자 제한이 완전히 풀린 이후 매수에 열중해왔다. 2004년까지 외국인들의 순매수 규모는 60조원을 웃돌았고, 당시 외국인의 투자 금액이 전체 시가총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2%를 넘어 서기도 했다. 그러나 2005년 이후에는 우리 주식시장의 상승에도 외국인들은 주로 매수보다 매도로 일관해왔다.

2005년 이후 외국인들이 순매도한 규모 역시 60조원을 웃돌고 있는데, 이는 전체 시가총액 2백40조원의 30% 수준이다. 2005년 이후 ‘브릭스’로 눈 돌린 외국인 투자자도 계속 늘어나 단적으로 표현해서 외국인들은 투자 원금을 쏙 빼가고 딴 돈으로만 우리 시장에서 플레이하고 있는 셈이다. 최근 외국인들의 매도가 하루도 빠짐없이 이어지는 데다가 규모도 큰 편이어서 국내 투자자들을 궁지에 몰아넣고 있지만, 사실상 외국인들은 2005년 이후부터 이른바 브릭스(BRICs)로 일컬어지는 경제 고성장 국가들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지난해부터는 서브프라임 관련 이슈가 불거질 때마다 현금을 확보하기에 가장 용이한 시장으로 우리 증시를 활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외국인들이 요즘 들어 주식 매도에 더 열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크게 세 가지 요인을 꼽을 수 있다. 첫째, 지난 3월 베어스턴스 투자은행의 매각으로 잠잠해졌던 미국의 금융 위기가 이번에 국책 모기지 업체인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에 대한 재무부와 연준의 구제안 마련으로 제2 라운드에 진입한 것. 일부 중소 모기지 업체와 지방 은행에서 자금 인출 사태가 발생하면서 금융회사 및 헤지펀드 등은 급전을 마련하느라 물불을 가리지 않는 모습이다.

둘째, 7월 들어 한때 유가가 배럴당 1백45달러를 돌파하는 급등세를 보이자 전세계적으로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가 높아졌는데, 특히 신흥지역 국가들의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줄줄이 올리면서 그동안 세계 경제를 이끌어왔던 고성장에 제동이 걸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경계심이 형성되었다. 우리나라는 수출 기업들이신흥 시장에서 막대한 이익을 올리고 있는 터라 신흥시장의 경제 둔화는 곧 기업 실적의 악화로 연결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고, 이러한 시각에서 보면 국내 주식의 투자 매력이 떨어질 수 있다.

셋째, 외국인 투자자들이 한 사람이 아니다 보니 그중에는 투기적 성향이 짙은 투자자도 있을 텐데, 이들이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공매도 기법을 활용해 매도에 가세했을 가능성이 있다. 증권선물거래소에서 공매도 데이터가 제공되기 시작한 6월23일부터 7월22일까지 일평균 공매도 규모는 2천억원에 달한다. 이 기간 동안 외국인들의 일평균 매도 규모는 1조4천억원인데, 만약 공매도 중 외국인 비중이 90%라고 하면 외국인의 공매도 규모는 일평균 1천8백억원 수준이고 전체 외국인 매도의12.8%가 공매도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공매도’는 주식 없이 매도했다는 뜻으로 증권 거래에서 ‘미수’와 반대 되는 개념으로 이해하면 쉽다. 미수는 돈 없이 주식을 매수했다가 사흘후 결제 시점에서 주식을 되팔거나 돈을 넣으면 된다. 공매도는 주식 없이 주식을 매도했다가 사흘 후 결제 시점에서 주식을 되사거나 다른 곳에서 주식을 빌려 채워넣으면 된다. 이때 주식을 빌리거나 갚는 것이 ‘대차거래’인 셈이다. 과거 공매도는 가격 급락의 압력이 가중되므로 제도상 거래가 제한되어왔으나, 최근 규제가 일부 완화되었다.

현실적으로 개인 투자자들은 주식을 빌리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에, 공매도는 주로 기관투자자들 사이에서 이루어졌고, 특히 외국인들은 선진 금융 시장에서 이같은 매매를 활발하게 해온 것으로 판단된다. 증권선물거래소에 따르면, 2007년 1월~2008년 2월 공매도 거래 주체 중 외국인이 89.7%, 기관이 9.5%, 개인이 0.8%인 것으로 알려졌다. 공매도는 사흘 후 결제를 지켜야 하지만, 대차거래의 경우는 주식을 빌리고 빌려주는 거래 상대방과의 계약이므로 약정 기간에 따라 주식을 되갚는 시기가 달라진다.

투기적 세력의 ‘공매도’도 지수 하락과 주가 교란 몰고 와

외국인들이 최근 국내 주식을 공매도한 이유는 주가의 추가 하락에 베팅한 것이나 다름없다. 투기적 거래를 하는 헤지펀드 쪽에서 관련 매매가 이루어졌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일각에서는 ‘공매도 물타기’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열을 올리는 것으로 비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예상과 달리 주가가 강하게 반등하는 국면이 이어지면 포지션을 풀면서 결국 주식을 사게 될 수 밖에 없는데, 이러한 매매를 ‘Short covering(환매수)’이라고 한다. 이때에는 적군이었던 외국인이 아군으로 돌아서며 주가 상승에 힘을 실어줄 수 있다.

최근 외국인의 공매도가 시장의 하락 위험을 키우고 주가를 교란하는 요인 중 하나로 꼽히고 있으며, 심지어는 이를 추종하는 개인 매매 기법을 모색하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개인이 주식을 빌려서 공매도 거래를 하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때문에 주가의 추가 하락을 예상할 경우 코스피 200 지수 선물의 매도 또는 개별종목 선물의 매도를 활용하는 방법을 고려해 볼 수 있다. 한 가지 주의할 점은 차익거래가 아닌 한 방향 매매는 전망이 어긋날 경우, 큰 손실을 입을 수 있으므로 위험 관리를 병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록적인 외국인 매도를 차단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금융위기가 잠잠해지고 △신흥시장의 인플레이션 위험이 완화되며, △투기적인 세력의 공매도 규모가 줄어야 할 것이다. 미국의 금융 위기는 국책 모기지 업체에 대한 공적자금 투입 시점에서 최악의 고비를 넘길 가능성이 있고, 신흥 시장의 인플레이션 위험은 국제 유가가 하향 안정화된다면 한결 시름을 덜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그리고 투기적 세력의 공매도는 주가가 제대로 반등할 경우 감소될 여지가 있어 보인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