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 배치도 못 하는 국회 ‘직무 유기’ 도가 넘었다
  • 유창선 (정치평론가 ()
  • 승인 2008.08.12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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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현안 연계’ 구태에 발 묶여…80여 일째 상임위원회 구성 못한 것은 ‘국회법 위반’…협상재개되어도 ‘밥그릇 싸움’만 할까 걱정

해도 해도 너무한다. 18대 국회 임기가 시작된 지 벌써 두 달하고도 열흘이 지났건만, 여전히 국회 원 구성은 이루어지지 못한 상태다. 국회의장 한 사람만 선출해놓았을 뿐, 국회부의장도 상임위원장도 모두 공석이다. 아니, 18대 국회의 상임위원회 구성조차 확정되지 않은 상태다. 물론 국회법 위반이다. 국회법 제15조는 의장과 부의장에 대한 선거는 국회의원 총선거 후 최초 집회일에 실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한 국회법 제41조는, 상임위원장 선거는 국회의원 총선거 후 최초 집회일부터 3일 이내에 실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렇게 국회의원들의 손으로 만들어진 국회법이 그들에 의해 철저히 무시되고 있는 것이 지금의 정치 상황이다.

18대 국회가 이렇게 장기표류하고 있는 이유를 모르지 않는다. 18대 국회가 시작하려던 마당에 미국 쇠고기 문제가 터져나왔고 촛불 정국이 전개되었다. 야당은 거리로 나갔고 쇠고기 재협상 없는 국회 등원을 거부했다. 촛불 정국이 마감되고 야당이 국회로 들어가려니까 다시 쇠고기 국정조사를 둘러싼 갈등이 빚어졌다. 그 뒤에도 원 구성 협상이 타결 일보 직전까지 갔다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 문제라는 돌발 변수가 발생해 다시 원구성에 실패하고 말았다. 상황마다 여당의 입장이 있었고, 야당의 입장이 있었다. 한나라당은 원 구성 협상에 응하지 않은 민주당을 비난해왔고, 민주당은 대화의 분위기를 깨는 여권의 독주를 비난해왔다. 이러한 상황에서 어느 쪽의 책임이 더 크냐를 따지고 있는 것은 무의미하다. 경제적으로 국민 생활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는 상황에서도 국회의 파행이 이토록 장기화될 수 있다는 놀라운 사실은, 우리 정치권 전체의 뻔뻔스러움을 보여주는 장면이기 때문이다.

국회 정상화 선도 못하는 여당도 문제지만 야당의 책임도 커

한나라당은 18대 국회가 시작된 지 두 달 반이 넘도록 야당을 협상에 끌어들이는 정치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요지부동인 야당을 어찌하겠느냐는 하소연을 할지 모르겠지만, 야당 내의 협상론자들에게 힘을 실어줄 수 있는 적극적인 노력을 얼마나 기울여왔는지는 의문이다. 야당의 태도를 결정하는 데에는 결국 정국을 운영하는 여당의 기조가 가장 큰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원 구성 협상에 응하지 않는 것은 야당이었지만, 야당이 국회에 정상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정치를 선도하지 못한 것은 여당이었다.

국회 파행에 대한 야당의 책임은 더욱 무겁게 지적되어야 한다. 원 구성과 관련해 막무가내식 거부로 일관했던 민주당의 모습은 비판받아 마땅한 것이었다. 국회의 원 구성은 기본 가운데 기본이다. 그것은 국회가 임기를 시작했으면 당연히 해야 할 의무이지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계속해서 원 구성 문제를 다른 현안들과 연계시키며 여기까지 왔다. 쇠고기 문제나 장관 인사청문회가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다. 아무리 중요한 정치적 쟁점 현안이 있더라도 일단 기본은 지키면서 그 위에서 시시비비를 가리는 자세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것이 사안별로 시시비비를 가려나가는 합리적인 국회 운영의 모습이다. 걸핏하면 등장하는 무조건적인 ‘연계’의 전략은 구시대 정치의 산물이다. 정치 현안을 갖고 예산안 처리와 연계시키는 진부한 전략이 비판받아야 하듯이, 다른 쟁점들을 갖고 원 구성과 연계시킨 전략은 낡은 관성으로 비판받아 마땅했다. 최근의 현안들에 대한 민주당의 정치적 입장에 대한 동의 여부를 떠나, 오랜 시간 동안 계속된 민주당의 원 구성 거부는 분명 과거 시대 정치의 모습을 다시 보여주는 것이었다.

원 구성조차 하지 못한 채 직무유기를 계속하는 18대 국회를 향한 국민의 비판은 비등하고 있다. 더욱이 국민 생활과 직결되어 있는 민생 경제 관련 법안들이 처리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그런데도 원 구성 문제는 교착 상태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8월 임시국회가 민생 경제 법안들을 제대로 처리할 수 있을지 아직 기약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번에는 이명박 대통령이 인사청문회를 거치지 않은 장관 후보자들을 그대로 임명해버린 데 따른 갈등 때문이다. 야당은 이대통령의 사과와 재발 방지 약속을 요구하며 원 구성 협상과 8월 임시국회 거부 입장을 밝히고 있지만, 야당으로서도 무한정 대치가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무한정 원 구성을 거부하기 어려운 현실, 게다가 정기국회와 국정감사가 다가오고 있다는 점도 야당의 운신의 폭을 좁혀놓는 요인들이다. 결국 냉각기를 거치고 야당에게 최소한의 명분을 세워주는 여당의 ‘성의 표시’가 있다면, 원 구성 협상은 조만간 재개될 것으로 보인다. 더 이상 원 구성을 미루고 있다가는 민생 경제 법안 처리는 물론이고 정기국회마저도 엉망이 되어버릴 벼랑 끝에 국회가 서 있기 때문이다.

▲ 국회 상임위가 열리지 않아 국회 의안 배부실에 법안들이 쌓여 있다. ⓒ뉴시스

교섭단체 3개로 치열한 다툼 예상…국민에게 달라진 모습 보여줘야

그러나 원 구성 협상이 가까스로 재개된다 해도 국회의 앞길이 순탄해 보이지는 않는다. 원 구성 협상이 재개되면 ‘밥그릇 싸움’이 기다리고 있다. 물러설 수 없는 밥그릇 싸움의 전선은 두 개다. 하나는 상임위원장 자리 배분을 둘러싼 교섭단체들 간의 대결이고, 또 하나는 인기 상임위원회를 배정받기 위한 의원들 간의 경쟁이다. 예나 지금이나 이 두 가지는 원 구성 단계에서 양보 없는 밥그릇 싸움의 오랜 주제였다.

상임위원장 배분 문제는 사실 한나라당과 민주당 사이에 12 대 6으로 배분하기로 잠정 합의가 이루어진 바 있다. 논란이 되었던 법사위원장 자리를 민주당에게 준다는 합의까지 이루어졌다. 그러나 그 사이에 사정이 바뀌어버렸다. 자유선진당과 창조한국당이 ‘선진과 창조의 모임’이라는 공동 교섭단체를 구성함에 따라 교섭단체는 3개로 늘어났고, 이에 따라 상임위원장 배분은 원점에서 다시 논의되게 되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이제 선진창조모임에 1~2개의 상임위원장 자리를 내주어야 할 판이고, 어느 상임위원회를 주느냐도 쟁점 사안이 되고 있다. 18개 상임위원장 자리를 11 대 5 대 2로 나누느냐 11 대 6 대 1로 나누느냐를 놓고 치열한 다툼이 전개될 전망이다.

의원들의 상임위원회 배정이 어떻게 되는지는 아직 공개적으로 드러나지 않은 상태다. 그러나 의원들의 입장에서는 사활을 거는 문제가 바로 상임위원회 배정 문제다. 인기 상임위원회로 배정받느냐, 아니면 비인기 상임위원회로 밀려나느냐에 따라 2년 동안 자신의 주가가 좌우되기 때문이다. 물론 자신의 전문성에 따라 비인기 상임위를 소신 지원하는 의원들도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대다수 의원들은 자신의 전문성 여부는 접어두고, 잘나가는 인기 상임위에 ‘묻지마 지원’을 하는 모습이다. 소속 의원들의 상임위 배정 권한은 해당 교섭단체 대표, 즉 각 당의 원내대표가 갖고 있다. 인기 상임위를 둘러싼 소속 의원들 간의 경합이 치열해질 경우, 아무래도 힘센 의원들의 요구가 더 먹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다 보면 전문성을 우선하는 상임위 배정의 원칙은 많이 퇴색할 수밖에 없다. 원 구성 때면 상임위 배정에 불만을 품은 의원들의 불만이 폭발하곤 한다. 도리 없는 측면도 있지만, 탈락자가 수긍할 수 있는 배정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18대 국회는 원 구성을 시작하는 단계에서 지켜보는 국민의 진을 빼버렸다. 그러다 보니 국회가 원 구성만 해도 다행이라는 분위기가 되어버렸다. 그러나 원 구성의 내용은 아직 제대로 공개되지도 않은 상태다. 상임위원장 배분이나 상임위 배정이 과연 전문성의 원칙에 따라 이루어지는지, 아니면 과거처럼 힘센 의원들의 막후 흥정에 의해 원칙 없는 배분과 배정이 이루어지지는 않는지, 그 내용을 제대로 지켜보고 감시해야 할 때다. 18대 국회가 이제까지 국민에게 지은 ‘죄’를 의식한다면, 원 구성의 내용만큼은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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