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 해임, 멍석은 깔았으나…
  • 김지영 (young@sisapress.com)
  • 승인 2008.08.12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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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이사회, 정연주 사장 해임안 의결 … 관련법에 ‘제청권’ 명시 없어 ‘불법’ 논란 일 듯
▲ 정연주 KBS 사장이 기자회견도중 기자의 질문을 경청하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정연주 KBS 사장이 결국, 물러나는 수순을 밟게 되었다. 여권으로부터 강한 사퇴 압력을 받아온 정사장은 “임기(내년11월)를 채우겠다”라고 공언한 바 있다. 하지만 그는 이명박 정부와의 전쟁에서 패하고 말았다. KBS 임시 이사회는 지난 8월8일 ‘감사원의 해임 요구에 따른 해임 제청 및 이사회 해임 사유에 따른 해임 제청안’을 통과시켰다. 모두 11명으로 구성된 이사회에서 해임 제청안 상정에 반대해온 친야 성향의 이사 4명이 퇴장한 가운데 나머지 이사 6명의 전원 찬성으로 해임안을 의결한 것이다. 이춘발 이사는 이날 개인 사정으로 불참했다. 지난 8월5일 감사원이 KBS 특별감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KBS 이사회에 요구한 정사장 해임을 수용한 셈이다.

KBS 이사회는 의결 직후 보도자료를 통해 “감사원이 요구한 정연주 사장 해임 제청 처분 요구가 타당하다고 판단하여 이를 수용했다. 정사장은 감사원의 지적대로 부실 경영, 인사 전횡, 위법 또는 부당한 사업 추진 등으로 KBS 대표자로서 직무를 수행하는 데 문제가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라고 밝혔다. 이사회가 해임안을 통과시킴으로써 유재천 이사장이 정사장의 해임을 임명권자인 이명박 대통령에 게 제청하면, ‘공’은 이대통령에게로 넘어간다.

‘임명권’ 가진 대통령에게 ‘해임권’ 있는지 불분명

이대통령이 당장 정사장을 내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KBS 사장 임명권’을 갖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에게 ‘해임권’도 있는지를 놓고 논란이 빚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987년 개정된 한국방송공사법은 대통령의 면직권에 관한 조항은 그대로 둔 채 임명 제청의 주체만 주무 장관에서 이사회로 바꿨다. 그런데 2000년 1월 통합방송법으로 바뀌면서 대통령의 면직 규정을 없앴기 때문에, 이명박 대통령에게 정사장을 해임할 권리가 있는지는 불분명한 상태다. 따라서 해임안이 이사회를 통과했더라도, 이대통령이 정사장을 면직시키기에는 부담이 따를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청와대는 정사장 해임권을 행사하겠다는 뜻을 비치고 있다. 박형준 청와대 홍보기획관은 지난 8월8일 평화방송과의 인터뷰에서 “KBS 이사회의 결정을 검토한 뒤 대통령이 결정하겠지만 경영상 부실이나 비리 등의 문제에 대해 ‘이유가 있다’라고 판단되면 해임 요구안 제청을 받아들일 것이다. KBS 사장의 경우 다른 공기업과 마찬가지로 임명권자가 해임권을 갖고 있다는 것이 주된 법리적 해석이다.

KBS 사장 임면권은 대통령이 갖고 있다는 것이 정부의 기본 입장이다”라고 언급했다. 여권의 한 인사는 “이대통령이 정사장을 해임하면 굳이 시간을 끌 필요 없이 한 달 이내에 공모 등의 절차를 거쳐 새로운 사장을임명하게 될 것이다”라고 내다보았다. 정사장 후임으로 누가 임명되느냐에 따라 KBS 내부에서는 친정연주진영과 반정연주 진영 간 또 한 차례 충돌이 빚어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신임 사장이 ‘낙하산 인사’일 경우, KBS는 걷잡을 수 없는 혼란 속으로 빠져들 공산이 크다.

정사장, 물러나도 검찰 수사 등 또 다른 ‘고난의 행군’

정사장이 KBS 사장 자리에서 물러난다고 해서 그의 거취 문제가 모두 정리되는 것은 아니다. 당장 정사장을 배임 혐의로 수사하고 있는 검찰이 어떻게 나올지 지켜보아야 한다. 검찰은 KBS와 국세청 사이에 벌어진 법인세 반환 소송과 관련해 지난 4월 KBS 전직 간부가 정사장을 배임 혐의로 고발함으로써 수사에 착수했다. 그동안 검찰은 5차례 출석을 요구했으나, 정사장은 모두 거부했다. 검찰은 지난 8월4일에는 베이징올림픽의 공식 행사에 참석할 예정이던 정사장에 대해 출국금지 조치를 내렸다. 한때 검찰은 정사장을 불구속 기소할지,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강제 구인에 나설지를 놓고 고민하면서도 불구속 기소 쪽에 무게를 실었다.

하지만 KBS 이사회의 해임 결정에 영향을 받은 때문인지 강경하게 바뀔 태세다. 정사장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조사하는 방안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정사장이 계속 출석 요구에 불응하면 체포해서 정상적인 사법처리 절차를 밟게 될 가능성이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KBS 이사회의 결정에 영향을 받은 것이냐”라는 기자의 질문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정사장이 계속 소환에 응하지 않는 것에 대한 검찰 내부의 불만이 강제 구인 쪽으로 방향을 바꾸게 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사회의 정사장 해임안 의결과는 별도로, 감사원법에 따른 감사원의 해임 요구가 방송법을 적용받는 KBS사장과 관련이 있는지에 대한 법적 검토가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KBS 이사회의 사장 해임 제청권이 관련법에 명시되어 있지 않아 ‘불법 해임’이라는 논란도 일 전망이다. 정사장의 변호인인 백승헌 변호사는 “감사원의 해임 요구는 KBS이사회에 해임 제청권이 있으며, 최종적으로 대통령에게 해임권이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하지만 방송법 어디에도 이런 조항은 없다”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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