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일 뛰는데 꽉 막힌 남한
  •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sisa@sisapress.com)
  • 승인 2008.08.12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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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서로 삿대질하며 초강수로 일관 경색 장기화하면 ‘주도권’ 뺏길 수도
▲ 금강산 관광객 총격 피살 사건 정부합동조사단 황부기 단장이 서울 외교통상부 청사 브리핑실에서 중간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냉각된 남북 관계가 좀처럼 풀릴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지난 7월11일 이명박 대통령의 국회 개원 연설 당일 벌어진 북측의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건과 국회연설에 대한 평가 절하로 남북 관계는 급속히 냉각되고 있다. 이로 인해 북핵 진전과 함께 남북 관계 복원을 시도했던 이명박 정부의 전향적 대북 정책 추진 노력은 무위로 돌아갈 위기에 처했다.

베이징 6자회담에서의 북핵 진전을 계기로 남북 관계 회복을 모색했던 정부로서는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건을 둘러싼 책임 공방과 북측의 대화 제의 거부로 시련이 깊어졌다. 피격 사건 직후 북측은 7월12일 명승지종합개발지도국 대변인 담화를 발표하고 사망 사고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라고 하면서도 “이번 사고의 책임은 전적으로 남측에 있다”라고 주장했다. 금강산 관광의 잠정 중단에 대해서 북측은 그들에 대한 도전과 모독이라고 하면서 “남측이 이번 사건에 대해 올바로 사과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세울 때까지 남측 관광객을 받지 않는 조치를 취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우리 정부는 북측이 관광객 피격 사건에 대한 남북 공동의 진상 조사 요구를 수용하지 않자 이를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의 주요 의제로 제기하고 국제 공조를 통한 대북 압박을 시도했다. 하지만 북측이 10·4 선언 지지 표명을 의장 성명에 넣는 맞불을 놓음으로써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민족 내부 문제를 국제 무대로 들고나갔다가 국제 관례에도 어긋나는 의장 성명의 삭제 파문을 겪기도 했다.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건을 계기로 남북 문제가 다시 국제 무대로 옮겨져 ARF 의장 성명 삭제 파문이라는 한바탕 해프닝을 벌였던 것이다.

국제 공조로 북한 압박하려다 망신살만

ARF 의장 성명에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망 사건에 대한 관심을 표명하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지만, 10·4 남북정상선언에 주목하고 이에 기초한 남북 대화 지지라는 내용이 들어갈 경우 남북 관계 경색의 원인이 10·4 선언이 이행되지 못한 데 있다는 것을 국제적으로 공인하는 문제점을 노출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명박 정부는 대통령의 국회 연설에서 남북 간 합의문의 이행 협의 용의를 밝혔음에도 의장 성명에 10·4 선언이 언급되는 것을 피하려 했던 것이다.

남측이 진상 규명을 위한 현지 합동 조사, 재발 방지 대책, 책임 소재 규명 등 대북 압박을 지속하고 있는 가운데, 북측은 8월3일 조선인민군 금강산지구 군부대 대변인 특별담화를 통해서 금강산 군사통제구역은 북측의 자주권이 행사되는 지역이라는 점을 들어 남측의 현지 합동조사 요구를 거부하고 불필요한 남측 인원 추방, 군사분계선 통과에 관한 엄격한 제한과 통제, 사소한 적대 행위에 대한 강한 군사적 대응 조치 등을 취할 것이라고 더 강경한 입장을 내세웠다. 특별담화에서 북한 군부는 “현실은 이명박 역도가 동결 상태에 있는 북남 관계를 파국적인 사태로 몰아가고 있으며, 이제는 역사적인 6·15 공동선언과 10·4 선언을 부정하는 데로부터 그 이행을 완전히 파기하는 행동 단계에 들어섰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라고 언급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맞서 8월6일에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는 처음으로 북한의 인권 개선을 공개 촉구하고, 부시 대통령이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망 사건에 대한 유감 표명과 함께 남측의 남북 대화 재개에 대한 지지 입장을 공식 표명했다.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건을 둘러싼 남북 갈등은 사건 진상을 둘러싼 입장 차에서 찾을 수 있다. 북측은 군사통제구역에서의 자주권 행사 차원의 군사적 대응 조치로 보는 반면, 남측은 비무장 여성 관광객에 대한 총격 사망은 어떠한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남북 간 합의서 등에 대한 명백한 위반이라는 입장이다. 남측은 사과, 진상 규명, 재발 방지 약속 등이 이루어져야 금강산 관광을 재개할 수 있다는 입장을 정해놓고 대북 압박을 강화하고 있다. ‘강경에는 초강경’으로 맞선다는 선군 정치 논리에 따라 북측은 ‘강한 군사적 대응 조치’를 언급하고 있다. 남측은개성 관광 중단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대북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지만, 북측은 금강산 남측 인원 추방으로 맞서고 있다.

금강산 피격 사건 이후 한반도 정세에서 주목할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첫째, 남북 관계 경색의 책임이 북측으로 넘어갔다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북측이 실용주의 대북 정책에 반발하면서 남북 관계가 냉각될 때는 이명박 정부의 대북 강경 정책에서 남북 관계 정체의 원인을 찾았다. 하지만 피격 사건 이후 남북 관계 경색의 원인이 북측의 ‘잘못된 조치’로 옮겨지게 되었다. 관광지에서의 비무장 민간 여성에 대한 총격은 ‘어떠한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유감스런 사건’으로 인식되면서 북측이 수세에 몰리게 된 것이다.
둘째, 금강산 사건이 부각되면서 북핵 해결의 초점이 흐려졌다. 부시 대통령의 임기를 고려할 때 북핵 불능화를 위한 2단계 조치를 조속히 마무리하고, 3단계 핵폐기 협상을 서둘러야 함에도 금강산 사건이 부각되면서 ARF 등에서 북핵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지 못한 감이 있다. 금강산 관광객 피살 사건이 발생하면서 북핵 해결을 위한 우리 정부의 집중력이 떨어졌다고 할 수 있다.

‘북한 길들이기’ 계속하면 남한만 손해

셋째, 금강산 사건을 계기로 남북 문제가 국제화되는, 퇴행적인 모습을 보였다. 6·15 선언 이후 ‘우리 민족끼리 정신’에 따라 남북 문제의 당사자 해결 구도가 정착하다가 금강산 사건을 계기로 남측이 이 문제를 국제 무대로 들고 나감으로써 한반도 문제는 다시 국제화하고 있다. ARF 의장 성명 파동에서 확인한 것처럼 민족 내부 문제를 국제 무대로 들고나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북한은 남한 당국 배제 정책을 펴면서도 민간 교류는 지속하며 실리를 챙겨왔다. 하지만 관광객 피격 사건을 계기로 금강산 관광이 중단됨으로써 민간 교류 협력도 위축되고 있다. 남북 화해의 상징 사업인 금강산 관광 사업의 중단은 남북 모두에게 부담이 될 것이다. 당국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는 가운데 민간 교류 협력 사업마저 중단됨으로써 남측의 대외 신인도는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고, 이명박 정부의 ‘경제 살리기’에도 악영향을 줄 것이다. 북측으로서는 외화 수입 감소에 따라 경제난이 가중될 것이다.
남북 대치가 정점으로 치달으면 양측 모두에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관광객 피격 사건을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기 위해서는 남북 대화를 하루속히 재개해야 한다. 그러나 남북 당국은 금강산 문제를 둘러싸고 서로
‘적반하장’이라고 주장하면서 대화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대화 통로를 확보한 현대아산측의 노력도 한계에 봉착한 것으로 보인다.

북측이 금강산 사건의 책임을 남측에 전가하면서 진상 규명에 난색을 표함으로써 남북 관계 경색은 장기화할 것으로 보인다. 남과 북이 신뢰를 회복하고 남북 대화를 재개하려면 다소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북한이 남측 대통령의 실명을 거명하면서 대남 비방을 해왔기 때문에 어느 날 갑자기 아무 일 없었던 듯이 남북 대화에 나오고 관계를 진전시키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선군 정치’를 하고 있는 북한이 공동 진상 조사에 나와 군의 잘못을 시인하기도 어려운 문제다. 남측 정부도 기존 입장을 바꿔 대화하고 지원할 의사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이번 기회에 북측의 잘못된 버릇을 고쳐놓겠다는 태세다. 이명박 정부는
‘상생과 공영의 대북 정책’을 펼칠 것이라고 공언하고 있지만 북한의 본질이 변해야 한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북·미, 북·일 관계에 진전이 있는 데도 불구하고 남북 관계가 교착될 경우 한반도 문제 해결 국면에서 우리의 주도권이 상실될 수 있고 이에 대한 비판 여론이 비등해질 수도 있다. 북핵 문제 해결을 계기로 북한이 미국과 일본 등 서방과의 관계 개선을 본격화해서 서방과의 대타협이 이루어질 경우 남한 당국 배제 정책을 통해서 체제 이완 현상을 막고자 할지도 모른다.

북한은 그동안 반제·자주의 기치 아래 지름길보다는 주체·선군의 험로를 걸어왔다. 남측이 북한식 특수성을 인정하지 않고 국제 규범과 보편 가치를 내세우고 ‘북한 길들이기’를 계속할 경우 북한은 서울을 통하지 않고 전통 우방인 중국, 러시아와 관계를 돈독히 하면서 미국, 일본 등 서방과의 관계 정상화를 모색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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