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향력도 ‘여대야소’… 이명박 1위
  • 소종섭 (kumkang@sisapress.com)
  • 승인 2008.08.19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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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17번째 실시한 <시사저널>의 ‘한국을 움직이는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조사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선전’했다. 이건희 전 삼성 회장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음에도 건재를 과시했고, 박근혜 전 대표도 지난해 4위에서 다시 3위로 올라섰다.

ⓒ뉴시스 ⓒ연합뉴스 ⓒ시사저널 자료 ⓒ시사저널 임영무

올해로 17번째다. 1989년 창간 이후 해마다 이루어지는 <시사저널>의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 조사는 한국 사회의 인물과 세력군, 언론 매체의 변화를 오랜 기간에 걸쳐 보여주는 보기 드문 기획이다. 한국 언론에서 이처럼 꾸준하게 장기 기획 보도를 하는 경우는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가 유일하다.

이 조사는 일반인이 아닌 관료·교수·기업인·언론인 등 10개 분야에서 100명씩 모두 1천명의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실시한다. 그만큼 현장의 흐름에 밝고 영향력이 있는 이들이 답한 조사이기 때문에 무게감이 있다고 평가되고 있다. 조사 결과가 공개되면 순위에 오른 인물들과 매체들이 남다른 관심을 보이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각 질문에 대해 3개까지 중복 응답을 허용한 이 조사에 나타나는 인물의 부침은 그대로 우리 사회의 자화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조사에서 ‘영향력 1위’에 단골로 오르는 인물은 현직 대통령이다. 올해도 예외는 아니었다. 임기 초반부터 낮은 지지율 때문에 힘겨운 행보를 계속하는 이명박 대통령은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 조사에서는 선전했다. 조사 대상자의 72.7%가 ‘이명박 대통령이 가장 영향력이 있다’라고 지목했다. 전임 노무현 대통령은 집권 첫해인 2003년 이 조사에서 70.9%를 기록했다. 노 전 대통령은 이듬해인 2004년 조사에서는 75.7%로 뛰어올랐다.

관료ᆞ교수ᆞ언론인ᆞ금융인들이 상대적으로 높게 지목

이명박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보다는 선전했지만 김영삼·김대중 두 전직 대통령과 비교하면 이들의 2년차 때 수치와 비슷하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집권 1년차인 1993년에는 96.2%라는 놀라운 수치를 나타냈지만 2년차에서는 76.8%로 떨어졌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집권 2년차 때 74.4%였다. 이대통령이 이들 두 전직 대통령처럼 임기 첫해에 최고치를 기록하고 하락하는 수순을 밟을지, 아니면 노 전 대통령처럼 2년차에 오히려 반등하는 길을 걸을지 주목된다. 이대통령은 요즘 ‘집토끼’인 보수 세력을 결집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분야별로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관료·교수·언론인 금융인들이 이대통령의 영향력에 평균 이상의 점수를 줬다. 언론인들이 81%의 지목률을 보여 가장 높았다. 반면 사회단체·문화예술인·종교인들은 ‘이대통령의 힘’을 평균보다 낮게 평가했다. 최근 들어 ‘종교 편향’ 논란에 휩싸여서인지 종교인들이 62%로 가장 낮게 평가했다.

‘경제 대통령’으로 불리는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의 영향력은 지난해보다 떨어졌지만(33.8%에서 25.6%로) 여전히 건재함을 과시했다. 이 전 회장은 1992년에 7위로 처음 톱 10에 이름을 올린 이래 4~6위권을 맴돌다가 2003년 3위에 오른 뒤 최근에는 ‘단골 2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그는 삼성그룹 법무실장을 지낸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로 특검 수사를 받은 뒤 경영권 불법 승계 및 조세 포탈 혐의로 기소되어 요즘 재판을 받는 중이다. 삼성그룹 회장직에서 물러난 그는 1심에서 조세포탈 혐의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및 벌금 1천100억원을 선고받았는데 오는 8월25일 첫 항소심 재판을 받는다. 특히 법조인과 관료, 언론인들이 이 전 회장의 영향력을 높게 평가했다. 이 전 회장과 함께 경제인으로서 10위 안에 든 인물로는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이 있다. 8위를 기록한 그는 비자금을 조성하고 회사 자금을 횡령한 혐의로 지난 6월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사회봉사명령 3백 시간의 형이 확정되었는데 이번 8·15에 특별 대사면을 받았다.

올해 조사에서 영향력 면에서 이명박 대통령, 이건희 전 삼성 회장과 함께 삼각축을 이룬 인물은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다. 2004년 한나라당 대표 시절 그녀는 27.8%를 기록하며 단숨에 3위에 진입해 처음으로 톱 10에 이름을 올렸다.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 조사에서 그녀는 여성으로서 톱 10에 오른 첫 번째 인물이었다. 2005년, 2006년 조사에서도 3위를 유지했던 박 전 대표는 지난해에는 대선 후보 경선에서 떨어진 뒤 14% 이상 수치가 떨어지며 4위를 기록했다.

그런데 올해는 지난해보다 7.5% 상승한 11.8%를 기록하며 다시 3위에 복귀했다. 2006년만큼은 아니지만 그녀의 영향력이 상당 부분 다시 회복되고 있다는 것이 조사 결과에 그대로 드러난다. 그녀는 ‘차기 대권과 관련한 가장 잠재력 있는 정치인’ 항목에서도 압도적으로 1위를 차지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당분간 박 전 대표를 능가하는 대중 정치인을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박 전 대표의 한 측근 의원은 “박 전 대표는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을 도우며 당분간 의정 활동에 전념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정치권 분석가들은 2010년 6월에 실시되는 지방선거가 박 전 대표가 다시 정치 활동을 본격화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분야별로 보면 박 전 대표는 이명박 대통령에게 낮은 점수를 준 문화예술인과 종교인들로부터 높은 점수를 받았다. 정치인들로부터도 평균보다 5% 가까이 많이 지목되어 그녀의 인기를 보여주었다.

ⓒ시사저널 자료 ⓒ뉴시스 ⓒ연합뉴스

김수환 추기경, 한 번도 빠짐없이 10위권 고수…DJ도 ‘장수’

한국인 최초의 유엔 사무총장인 반기문 총장도 갈수록 위력을 떨치고 있다. 2006년 처음 10위 안에 들더니 지난해 7위에서 올해 4위로 뛰어올랐다. 세계를 무대로 움직이는 반총장의 활약이 그의 영향력을 키우고 있다고 분석된다.10위 안에 빠지지 않고 이름을 올리는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수환 추기경은 올해도 빠지지 않았다. 김추기경은 <시사저널> 조사가 시작된 이래 단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순위에 오르는 놀라운 저력을 보여주었다. 그는 최근 자신을 지칭해 ‘바보’라고 쓴 판화전을 열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김 전 대통령은 잊을 만하면 한 번씩 현안에 대해 의견을 밝히며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다. 일본 도쿄에서 납치되어 살아 돌아온 지 35주년이 되는 지난 8월12일에는 “햇볕 정책이 6자회담을 성공시키는 열쇠가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지식인 사회와 호남 지역을 중심으로 강력한 지지 세력을 갖고 있는 김 전 대통령의 영향력은 앞으로도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올해 10위 안에 새로 진입한 사람은 정세균 민주당 대표와 강만수 기획재정부장관,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 등 세 명이다. 정대표는 야당에 대한 기대감을, 강장관은 경제 살리기에 대한 기대감을 상징하는 인물들이다. 여론 주도층이 경제 문제와 합리적인 여야 관계 조성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는 10위에 턱걸이 했다. 집권 여당 대표로서 ‘관리형 대표’라는 평가에서 보여지듯 박대표는 자기 정치를 하는 대신 당내 화합과 당청 관계를 조율하는 데 노력하고 있다. 이들 세 명이 새로 진입한 반면 지난해와 비교해 두 명이 빠졌다. 민주당 대선 후보를 놓고 경쟁했던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와 정동영 전 통일부장관이다. 두 사람은 지난해 각각 9위, 10위를 기록했는데 올해는 완전히 추락했다. 각각 한 명씩만 이들을 지목했다.

10위권 밖에서는 10위 안에 들기 위한 순위 다툼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정몽준 한나라당 최고위원, 정진석 추기경, 박원순 아름다운재단 상임이사,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20위권 안에 이름을 올렸다.

새로 진입한 인물은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 한승수 국무총리,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 김형오 국회의장, 이용훈 대법원장이다. 지난해와 달리 올해는 입법·사법·행정부의 최고 책임자인 3부 요인이 모두 20위권 안에 들었다. 지난해에는 당시 정상명 검찰총장이 19위를 기록했는데 올해 조사에서는 단 한 명만이 임채진 검찰총장을 지목해 순위가 한참 처졌다. 검찰이 이렇다 할 대형 수사 결과를 내놓지 못하는 상황을 반영한 결과로 해석된다.

그동안 단골로 20위권 안에 이름을 올렸던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올해 26위를 기록해 지난해보다 15계단이나 밀렸다. 남북 관계가 교착 상태에 빠진 데다가 ‘금강산 총격 사건’ 등이 터진 것이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문국현 창조한국당 총재, 철학자인 김용옥씨,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도 20위권 밖으로 떨어졌다.

올해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조사에서는 정권 교체를 실감하게 하듯 여권 인사들이 약진한 점과 박근혜 전 대표가 부활한 점이 주목되는 부분이다.


 20위권 밖에는 누가 있나

정치인과 관료가 주축을 이룬 20위권 안과 달리 20위권 밖을 보면 인물군들이 한층 다양해진다. 지난 총선과 ‘촛불 정국’에서 맹활약한 강기갑 민주노동당 대표가 22위에 올라 정치적인 잠재력을 보여주었다. 정치인으로는 한나라당 이상득 의원, 원혜영 민주당 원내대표, 김영삼 전 대통령, 천정배 민주당 의원 등의 이름이 보인다. ‘차기’를 꿈꾸는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문수 경기도지사도 맹추격 중이다.

문화예술계나 스포츠·종교계 인사들도 대거 포진해 있다. 베이징올림픽 수영 종목에서 한국 최초로 금메달을 딴 박태환 선수와 피겨 요정 김연아 선수, 가수 서태지ᆞ비 씨, 야구의 박찬호 선수 그리고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장관, 영화배우 배용준씨, 지관 조계종 총무원장, 법정 스님 등이 뒤를 잇고 있다.

최근 ‘독도’에 대한 관심을 보여주듯 박기태 반크 단장의 이름을 거명한 사람도 세 명이나 되었다. ‘반크’는 한국을 해외에 바로 알리는 활동을 하는 사이버 민간 외교 사절단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 정주영 전 현대그룹 회장 등 이미 세상을 떠난 이들도 30위권 안에 들었다. 오늘의 한국이 있기까지 경제 성장에 큰 역할을 한 이들의 영향력이 여전히 막강하다는 것을 알게 하는 대목이다. 개신교계에서는 조용기 순복음교회 원로목사가 24위에 올라 제일 영향력이 큰 것으로 조사되었다.

이밖에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 진중권 중앙대 겸임교수,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 대학 교수, 도법·수경 스님, 이장무 서울대 총장, 영화배우 배용준씨, 대통령 부인 김윤옥 여사, 김근태·유시민·이해찬 전 의원, 박진영 JPY엔터테인먼트 대표, 개그맨 유재석·강호동 씨, 가수 김장훈·이효리 씨 등도 이름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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