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G 아이폰 뜨자 ‘빅 5’ 움찔
  • 김규태 (전자신문 기자) ()
  • 승인 2008.08.19 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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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시 3일 만에 100만대 팔려…휴대전화 ‘강자’들에게 엄청난 위협 줄 수도
▲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한 외국인이 아이폰 포스터 앞을 지나며 전화를 하고 있다. ⓒAP연합

지난 7월11일 애플이 3세대 휴대전화인 ‘3G 아이폰’을 출시한 지 3일 만에 100만대가 팔렸다. 지난해 6월29일 첫선을 보인 뒤 74일 만에 100만대가 팔린 ‘2G 아이폰’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팔려나가고 있다. 3G 아이폰은 출시 10일 만에 재고가 바닥이 났다고 각종 외신들은 전했다. 미국 등의 3G 아이폰 판매상들은 예약 주문을 받느라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3G 아이폰은 우리나라에서도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 유럽형 통신 규격을 사용한 2G 아이폰과 달리 세계 공통의 3G 규격인 WCDMA 네트워크를 사용해 곧 국내로 들어올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3G 아이폰은 세계 시장에서 삼성전자, LG전자 등과 경쟁이 불가피할 뿐 아니라 내수 시장에서도 ‘일합’을 겨룰 것으로 보인다.
물론 아직 3G 아이폰의 국내 입성을 단정짓기는 힘들다. 3G 아이폰이 들어오기 위해서는 무선인터넷 플랫폼인 위피(WIPI)를 의무적으로 탑재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 SK텔레콤, KTF 등 통신서비스 사업자들은 3G 아이폰이 당장 흥행을 일으킬지는 몰라도 장기적으로 해가 되는 ‘독사과’일 수도 있다고 말한다. 무료 전화통화가 가능한 만큼 수익 구조에 큰 변화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3G 아이폰의 기세가 지속된다면 연내 1천만대 판매도 어렵지 않을 전망이다. 애플의 최고경영자 스티브 잡스가 3G 아이폰을 내놓으면서 1천만대 판매를 공언했고, 유명 증권사 애널리스트들도 이에 맞장구를 쳤다. 3G 아이폰이 왜 이렇게 인기인가에 대해서 정보기술(IT)업계 종사자들의 공통된 답변은 “애플이니까”다.

‘애플’의 명성에 최첨단 기능 탑재…국내 입성하기는 아직 힘들어

맥켄토시 PC부터 MP3 플레이어인 아이팟을 통해 얻어진 브랜드 명성이 2G 아이폰을 넘어 3G 아이폰으로 면면히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아이폰이 가진 여러 가지 기능도 중요하겠지만 소비자들은 브랜드 가치를 높이 평가하고 있다. 아이팟이 그랬던 것처럼 소비자들이 꼭 가져야 하는 이른바 ‘머스트 해브’(must-have) 품목이 된 셈이다.

3G 아이폰의 기능을 간단하게 말하면 ‘2G 아이폰+알파(α)’다. 2G 아이폰의 특징을 살리면서 3G 네트워크를 활용할 수 있는 점들이 보강되었다. 소비자가 느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점은 역시 손가락으로 화면을 옮길 수 있는 터치스크린 기능을 활용한 사용자 환경(UI)이다. 아이팟 기능도 갖추었다. 손가락 터치로 음악을 선택하고 3.5인치 화면으로 16 대 9 비율의 영상 콘텐츠를 볼 수도 있다.

여기에 HSDPA(high speed downlink packet access) 방식의 3.5세대 망을 활용함으로써 2.5세대 EDGE(enhanced data GSM environment) 방식의 2G 아이폰에 비해 2배 이상 빠르다. 무선 인터넷망을 이용해 인터넷 접속이 가능한 ‘작은 PC’라는 별명이 붙은 이유다.

애플은 지난해 2G 아이폰을 내놓으면서 단말기에 보조금을 주는 방식이 아니라, 통신료 수익을 통신서비스 사업자와 나누어 갖는 모델을 제시했다. 이러한 수익 모델은 노키아 등도 시도하는 것으로 통신 사업자와는 대립각을 세우게 되었고, 단말기 가격은 고가를 유지해야 했다.

그러나 애플은 3G 아이폰을 출시하면서 돌연 태도를 바꾸었다. 기존의 수익 모델을 과감하게 포기했다. 이러자 통신서비스 사업자들은 가입자를 유치하기 위해 기존 애플에 제공할 통신 사용료를 보조금으로 활용했다. 이에 따라 소비자는 2G 아이폰 가격 4백99달러보다 절반 이하 가격인 1백99달러에 3G 아이폰(8GB 모델)을 살 수 있게 되었다. 애플의 이같은 가격 정책 변화는 3일 만에 100만대가 팔리는 기록을 세우게 하는 동력이 되었다.

3G 아이팟은 세계 시장을 질주하는 우리나라 휴대전화 산업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미국의 투자분석회사 파이퍼 재프레이(Piper Jaffray&Co)는 내년에 3G 아이팟이 4천5백만대가량 판매될 것으로 전망했다. 절대적인 판매량에서는 노키아, 삼성전자, LG전자, 모토로라, 소니에릭슨 등 소위 휴대전화 ‘빅 5’사에는 미치지 못하더라도 엄청난 위협이 될 수는 있다.

이 위협은 국내 시장에도 미칠 것으로 보인다. 3G 아이폰은 한국어 지원 기능을 갖추었다. 이 때문에 3G 아이폰이 조만간 국내 시장에도 진출하는 것이 아니냐는 전망이 강하게 나오고 있다. 물론 3G 아이폰의 국내 진입에는 여전히 큰 장벽이 있다. 국내에서 휴대전화를 팔려면 의무적으로 장착해야 하는 국산 무선 인터넷 플랫폼 위피라는 수문장이 있다.


‘이동통신과 PC의 융합’이 국내 통신산업에도 변화 몰고 올 듯

국내 휴대전화 연간 판매량은 2천만대로 추산된다. 결코 작은 시장은 아니다. 그러나 애플이 3G 아이폰에 위피를 탑재할 수 있는 열의를 갖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3G 아이폰의 운용체계(OS)에 위피가 연동될 수 있도록 해야 하기 때문이다. KTF 고위 관계자는 “애플을 사기 위해 세계 곳곳에 줄을 서는 상황에서 우리나라 시장만을 위해 휴대전화를 개발하려고 뛰어들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라고 조심스런 의견을 피력했다.

그러나 ‘실용’을 키워드로 내세운 이명박 정권에서 국내 휴대전화 산업을 지키는 수문장 역할을 했던 위피의 위력도 다소 흔들리고 있다. 이미 위피 플랫폼이 없는 휴대전화가 출시된 바 있다. 또 위피를 장려했던 정보통신부가 지식경제부와 방송통신위원회로 기능이 나뉘면서 위피 사용 의무가 다소 약해진 것도 사실이다. 이를 두고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위피를 풀기 위한 논리를 찾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 연말을 전후해 3G 아이폰이 국내로 입성할 것 같다”라고 전망했다.

해외에서는 3G 아이폰을 내면서 애플과 통신사업자 사이에 친밀도가 높아졌지만 국내 사업자와의 관계도 좋을지는 두고 봐야 한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SK텔레콤과 KTF 입장에서는 당장 아이폰이 들어오면 가입자 유치전도 시작되고 삼성전자와 LG전자 등을 견제하는 효과가 있다. 데이터 통신을 활용함으로써 가입자당 매출(ARPU)을 올리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바로 이것이 통신 사업자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

PC 같은 휴대전화로 고속데이터 통신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인터넷전화(VoIP)를 무선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얘기도 된다. 특히 아이폰은 HSPDA망과 함께 와이파이(Wi-Fi:무선랜 기능)를 사용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무선랜 환경에서 VoIP 프로그램을 사용해 거의 무료로 전화통화를 하게 되면 현재 주 수익원인 음성 ARPU를 급속하게 떨어뜨릴 수 있다. 정보기기 활용에 강한 대학생들이 학창 시절부터 VoIP 등 대안적인 통신에 익숙하게 되면 5~10년 뒤 통신 사업자들의 수익성은 보장할 수 없다.

3G 아이폰은 단순한 휴대전화가 아니다. 이동통신과 PC의 융합(컨버전스)이라는 상징성이 있다. 애플에 이어 컴퓨팅산업에서 잔뼈가 굵은 델, 구글 등 글로벌 거인들도 언젠가는 이동통신 분야에서 맞붙을 전망이다. 3G 아이폰이 우리나라에 들어오고 여기에 국내 소비자와 업체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가 향후 10년간 국내 통신산업의 향배를 가르게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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