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통법 풀리면 CMA 계좌 날개 돋칠까
  • 정은호 (제로인투자자문 대표 ()
  • 승인 2008.08.19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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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사들, 내년 법 개정 앞두고 고객 유치 안간힘

▲ 내년 2월부터 자본시장통합법이 시행되면서 은행과 증권사 등 금융계가 고객 확보에 머리를 싸매고 있다. ⓒ뉴시스

20대 80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전체 인구의 20%가 국가 전체 80%의 부를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 주목한 경제학자 파레토가 주창한 법칙이다. 이 법칙은 단순히 국가마다 부의 분배가 평등하지 않다는 사실에 대한 지적을 넘어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다. 어느 회사나 20%의 인력이 나머지 80%의 직원을 먹여 살린다. 매출의 80%는 20%의 고객으로부터 나온다. 이러한 사실은 기업 입장에서는 주요한 마케팅 도구가 된다. 금융시장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은행의 경우 상위 8%의 고객이 전체 수신액의 70%를 차지한다고 한다. 당연히 이런 사람들을 위한 서비스가 개발되어 있다. PB(Private Banker)라고 불리는 전문 인력이 부자 고객들에게 제공하는 자산 관리 서비스가 그것이다.

내년 2월부터는 자본시장통합법이 시행된다. 정확히는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로서 현재의 증권거래법, 선물거래법, 자산운용업법, 신탁업법, 종합금융회사에 관한 법률, 기업구조조정투자회사법, 증권선물거래소법 등 7개로 나누어진 증권 관련법을 하나로 통합한 것이다. 이런 이유로 흔히 자본시장 통합에 관한 법률, 약칭 자통법으로 불린다. 자통법에 따라 분리되어 있던 증권업, 자산운용업, 선물업, 종금업, 신탁업 등 5개 업종이 금융투자업이라는 하나의 업종으로 통합되어 운영이 가능해진다. 이에 따라 신설되는 금융투자회사는 이상의 모든 업무를 한 군데에서 할 수 있게 된다. 그 중심에는 증권사가 있다. 자통법의 시행으로 증권사들은 업무 영역이 대폭 확대되어 좀더 다양한 수익원의 개발이 가능해진다. 따라서 증권사가 그동안 가장 큰 수익원으로 삼고 있던 위탁 매매는 그 중요성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현재 증권사들의 최고 화두는 투자은행(Investment Banking) 업무의 확대와 자산 관리다. 실제로 국내의 제한된 시장에서 모든 증권사들이 진정한 투자은행으로 성장할 만한 먹을거리를 개발할 수 있느냐는 흥미롭기는 하지만, 개인들의 입장에서는 그다지 직접적으로 와 닿는 일이 아니다. 그보다는 앞으로 급속히 확대될 자산 관리 분야에서 어떤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느냐가 현실적인 관심사가 될 것이다.

PB를 중심으로 한 거액 투자자 시장은 은행의 고유 영역인 여수신뿐 아니라 금융 상품, 펀드 상품 등 은행이 취급하는 다양한 상품을 판매할 수 있는 주요한 통로였다. 다양한 자산관리 서비스가 1 대 1 맞춤 형식으로 제공되기 때문에 간접적으로 상당한 수수료를 지불하는 데 대한 저항도 없다. 문제는 이런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고객이 제한되어 있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은행의 PB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기준은 부동산을 제외한 금융 자산이 10억원 이상인 사람들이다. 최근에는 금융 소득의 증가로 이런 기준에 부합되는 사람들이 늘어나자 기준을 한층 강화한 서비스도 생겨나고 있다.

개인들에게는 어떤 서비스 주어질지가 관심사

신한은행은 자산 규모 100억원 이상의 고객을 대상으로 하는 이른바 ‘울트라 PB센터’를 별도로 설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국민은행도 금융 자산 30억원 이상인 고객을 대상으로 하는 PB센터를 운영 중이다. 물론 다른 은행들도 유사한 서비스를 운영하거나 고려 중이다. 거액 고객에게 제공되는 서비스는 증권사도 크게 다르지 않다. 울트라까지는 아니더라도 일반 PB 서비스도 받을 여건이 안 되는 일반인의 입장에서는 남의 나라 이야기로 들릴 뿐이다. 문제는 이러한서비스의 차별화와 양극화로 인해 수익률의 가능성에 대한 접근에서도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빈익빈 부익부를 고착화시키는 구조가 자산 관리 시장에 이미 형성되어 있는 것이다.

한 일간지의 조사에 의하면 PB들의 투자자문 서비스를 받는 고객은 월 소득이 3백만원 이상부터 5천만원에 이르는 사람들이라고 한다. 이 범주에 속하지 못한 일반인들이 이런 형태의 서비스를 최초로 경험하게 되는 경로는 아마도 펀드에 가입하는 시점일 것이다. 감독 당국은 펀드의 불완전 판매를 방지하기 위해 펀드 가입 고객의 투자 성향을 파악하고, 자산 배분에 기초해 펀드를 권유하도록 하고 있다. 이에 따라 펀드 판매사들은 고객들에게 투자 성향 분석표 혹은 유사한 명칭의 질문지를 사용해 고객의 성향을 작게는 세 가지, 많게는 다섯 가지 유형으로 구분하고 기준에 맞추어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그러나 어떠한 투자 성향을 보이더라도 최종적으로 권유하는 상품은 자신들이 주력으로 판매하는, 혹은 상담직원이 선호하는 몇 가지 상품으로 제한될 수밖에 없다. 고객의 재산 상황에 대한 세부 내역에서부터 세무, 부동산, 상속 등 자금과 관련된 거의 모든 서비스를 맞춤형으로 제공하는 PB 서비스와는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판매사 입장에서도 적립식으로 월 10만원 혹은 50만원 정도 투자하는 고객들에게 이 이상의 서비스는 한마디로 원가가 나오지 않는 장사인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사전에 정해진 몇 가지 유형으로 고객들을 밀어넣고 정해진 조합의 상품을 권유하게 되는 것이다.

증권사에서 자산 관리 영업을 위해 가장 공을 들이고 있는 것이 CMA(Cash Management Account)라고 불리는 종합자산관리 계좌다. 본래 CMA는 미국의 메릴린치가 위탁 매매 수수료 하락을 타개하고 업무 영역을 확대하기 위해 1977년에 개발한 상품이다. 고객의 예탁금을 단기 자금으로 운용해 은행보다 높은 수익률을 제공하면서, 주식 매매도 가능하고 수표 발행도 가능한 복합 계좌 상품으로 가장 성공적인 증권사 상품이었다. 자통법에서는 증권사의 CMA도 소액 자금의 지급 결제가 가능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이 계좌를 통해 비교적 높은 수익을 제공받으면서 동시에 신용카드 대금의 결제, 자금 이체, 수시 입출금 등의 다양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현재 은행이 제공하는 거의 모든 서비스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자통법의 시행으로 안전성과 저축을 기본으로 하는 은행권으로부터 수익률을 중심으로 하는 자본시장으로 자금 이동이 대거 발생할 것이라는 예측의 근거가 여기에 있다.

소액 고객들에게도 자산 늘릴 기회 주어지나

요즘 많은 광고를 하고 있는 한 증권사의 CMA는 머니백, 담보 대출, 체크카드, 은행식 입출금, 이체와 결제 및 납부, 통합 조회, 주식 거래, 금융상품 투자 등 증권사와 은행의 거의 모든 서비스를 하나로 통합하고 있다. 증권사 CMA는 최근의 금융 상품 중 가장 많은 자금을 끌어 모으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통합 상품은 거래를 편리하게 만들어주는 형식 요건일 뿐, 단순히 CMA에 가입한다고 해서 투자를 포함한 자산 관리 서비스가 제공되는 것은 아니다. 이런 서비스를 대중화하기에는 아직까지 인프라가 너무 빈약하다. PB의 수도 부족할 뿐 아니라 PB들 간의 수준 차이도 현격하다. 지원되는 프로그램도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것들이 많다. 현재 각 증권사들은 자산 관리 부문의 PB를 육성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삼성증권이나 동양종금증권 등에는 전 직원의 PB화를 표방하고 있다. 그러나 전문 인력의 양성이나 시스템의 개발 등에는 많은 시간이 소요되며, 하루아침에 유능한 PB가 되는 것은 아니다.

물론 경쟁은 서비스의 수준을 진화시킨다. 가격도 낮아진다. 자본주의의 기본 원리인 수익성이 크게 훼손되지 않으면서 소액 고객들에게도 적절한 수준의 자산 관리 서비스가 제공될 수 있는 환경이 자산 관리 시장의 종착지가 될 것이다. 금융시장은 제로섬(zero sum)이 아니다. 실물 경제의 성장과 함께 확대되는 금융시장의 과실을 함께 나눌, 분배를 위한 최소한의 요건은 자산 관리 서비스에 달려 있다. 일반 투자자들도 부를 증대시킬 수 있는 균등한 기회를 가져야 한다. 자통법 시행을 계기로 금융권의 노력과 경쟁을 통해 높은 수준의 자산 관리 서비스의 대중화 시기가 앞당겨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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