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진정한 ‘친구’는 누구?
  • 조 철 (2001jch@sisapress.com)
  • 승인 2008.08.26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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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국들의 역학관계에서 엿보는 동아시아 패권 다툼의 역사
▲ 한승동 지음 / 교양인 펴냄막스 폰 브란트 지음 / 김종수 옮김 / 살림출판사 펴냄
지난 7월 말 미국 지명위원회(BGN)가 독도의 영유권 표기를 한국이 아닌 ‘미지정 지역’으로 변경해놓은 것이 드러났을때 ‘대한민국의 동맹 국가’에서 어떻게 그런 일이 벌어질 수 있나 하고 의아해한 국민이 많다. 독도를 ‘침략’하려는 일본의 ‘기획’에 미국이 어떤 형식으로든 엮였을 것이라는 등의 추측도 무성했다.

한국은 일본의 야욕을 짓누르고 독도를 지킬 수 있을까. 독도 문제에 적극 나서지 않고 한국과 일본을 저울질하는 미국의 속셈은 무엇일까. 최근 출간된 <대한민국 걷어차기>의 저자 한승동씨는 이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해서 동아시아에서 벌어지는 강대국들의 패권 다툼 양상과 각국의 전략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적어도 한·중·일 세나라가 다른 강대국과 어떤 역학 관계로 얽혀 있는지, 각국의 외교 전략은 무엇인지 분석해야 적절한 대비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의 동아시아 상황이 100년 전과 비슷하다며 그 당시에서 교훈을 찾아야 한다는 주장도 끊이지 않는다. 19세기 말 동아시아에서 독일 외교관으로 활동한 동아시아 전문가 막스 폰 브란트(1835~1920)가 쓴 <격동의 동아시아를 걷다>가 최근 국내에 출간된 취지도 그렇다. 이 책을 펴낸 이는 ‘동아시아라는 무대 속의 이권으로 똘똘 뭉친 서구 열강들, 무지막지한 약육강식의 논리, 그들의 눈에 비친 우리의 모습, 서양을 철저히 벤치마킹한 일본의 로드맵과 실천, 끝 간 데를 모르는 중국의 자부심과 우월의식, 이 모든 것들은 현재 동아시아의 지정학적 상황과 너무도 닮아 있다. 팍스 아메리카나를 부르짖는 절대 강자 미국, 지친 몸을 추스르고 원기를 회복 중인 러시아, 불과 100~200년가량을 제외하고 언제나 세계의 중심이었다는 중국의 중화의식과 주변부의 역사를 깡그리 중심부의 역사로 편입시킨 동북공정 프로젝트, 일본의 재무장과 군사 대국화,신자유주의와 세계화, 유럽연합과의 자유무역협정 추진에 따른 줄다리기 등을 보면 한반도의 역사는 예나 지금이나 열강들의 이권 다툼 속에서 변한 것이 없다’라고 출간 취지를 밝혔다.

중국 견제 위한 미ᆞ일 동맹 강화로 일본의 야욕 ‘부활’

저자 브란트는 19세기 말 일본과 조선을 기술하면서 “일본이 조선에 대해 야욕을 품기 시작한 것은 조선의역사만큼이나 오래되었다. 일본이 고구려와 신라에 대해 야욕을 품기 시작한 것은 조선의 역사 만큼이나 오래되었다. 일본이 고구려와 신라에 대해 일으킨 전쟁은 이미 선사 시대 때부터 시작되었으며, 길고 짧은 휴전을 거듭하면서 계속 전개되었고,급기야 16세기 말에는 거대한 원정대가 조선으로 출정하기에 이르렀다.

왜군은 조선에서 끔찍한 난동을 부렸으며, 승리의 징표로 살육한 조선 병사들의 귀와 코를 잘라내어 교토로 보냈다. 조선 병사들의 귀와 코를 매장한 무덤은 오늘날에도 전해지고 있다” 라고 전하고 있다. 독일 외교관조차 일본의 뿌리 깊은 야욕에 경계심을 늦춰서는 안 된다고 경고한 것이다.

▲ 맥아더 장군과 히로히토 천황(맨 왼쪽). 왼쪽은 신사 참배를 강행한 고이즈미 전 총리. ⓒ교양인 제공
<대한민국 걷어차기>는 전후 동아시아 질서의 핵심인 미국의 이이제이(以夷制夷) 정책의 본질과 내용, 탈아입구(脫亞入歐)를 꿈꾸며 주변국들을 고통에 빠뜨렸던 일본 우파가 지금은 단지 대상을 바꾼탈아입미(脫亞入美)로 여전히 대동아 공영권을 꿈꾸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저자 한씨는 미국과 일본이 비밀리에 한반도와 필리핀을 나눠 먹었던1905년의 가스라-태프트 밀약이 100년 만에 다시 재현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좌파들이 몰락하면서 우경화로 치닫고 있는 최근 일본의 평화 헌법 폐기 조짐과 역사 교과서 왜곡, 독도 영유권 주장 등위험하기 짝이 없는 행보, 거대 중국의 등장으로 긴장한 미국과 일본의 동맹 강화와 미사일 방어(MD)전략은 제2차 세계대전 후 동아시아 질서의 핵심이었던 미·일의 결합이 한층 강화되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라며, 21세기판 가스라-태프트 밀약을 경계하라고 덧붙였다. 다시 말해 미국이 일본의 군사 대국화 움직임을 요구하고 부추기고 있는 것은 ‘강한나라’ 일본과 동맹을 강화함으로써 중국을 견제하려 한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현 정부가 ‘친미 외교’ ‘실용 외교’에 치우쳐 동아시아 국제 관계에서 고립을 자초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정부 정책에 비판적인 시각이든 100여 년 전 독일 외교관의 시각이든 귀기울여 참고한다면 좀더 현명하게 외교를 펼칠 수 있지 않을까. 선사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아도 근·현대사에 역사적인 교훈을 얻을 지점이 많다는 것을 깜박해서는 안 될 것이다.

<시사저널> 제981호는 커버스토리로 일본의 ‘독도 무력 점령 음모’를 파헤쳤다. 그 기사에서도 일본이 독도를 무력 침공하는 빌미가 주어지는 순간 한국의 ‘공든 외교’에도 아랑곳없이 미국·러시아·중국 등 강대국들은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따지며 먼산 불구경하는 모습을 보일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모든 우려 앞에서 가장 실용적인 외교가 무엇인지는 참 어려운 문제다. 한국이 강대국들의 역학관계에서 ‘종속 변수’가 아닌 ‘주체’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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