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만 하면 히말라야도 올라간다”
  • 노진섭 (no@sisapress.com)
  • 승인 2008.08.26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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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관절 질환 전문의 윤택림 전남대병원 정형외과 교수 / “36년 동안 걷지 못 했던 환자, 지금은 걸어다녀”
ⓒ시사저널 박은숙

팔에 어깨관절이 있다면 다리에는 고관절(coxa)이 있다. 엉덩이관절이라고도 불리는 고(股·엉덩이)관절은 골반과 대퇴골(넓적다리뼈)이 닿는 부위의 관절이다. 이 관절에 이상이 생기면 심한 고통이 생기고 심할 경우 걷지 못하게 된다.

피가 통하지 않아 뼈가 썩는 대퇴골두 무혈성 괴사증(avascular necrosis)이 대표적인 고관절 질환이다. 이 질환에 걸리면 연골이 빠른 속도로 닳으면서 골반과 대퇴골이 직접 맞닿아 심한 통증이 생긴다. 30~60대에 걸쳐 고루 발병하는 이 질환의 치료법으로는 수술이 효과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세계적인 골프 선수 잭 니클라우스도 고관절에 이상이 생겨 결국 인공 관절로 갈아 끼우는 수술을 받았다.

고관절 수술 분야에서 윤택림 전남대병원 정형외과 교수가 국내 최고의 권위자로 꼽힌다. 윤교수는 지금까지 약 7천 건의 수술을 해 세계 최다 수술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되도록 수술 부위를 적게 절개해 환자의 회복 기간을 크게 단축시키는 등 세계 의학계가 놀랄 만한 수술법을 속속 개발해 우리나라 고관절 치료 수준을 세계 수준으로 올려놓았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윤교수를 만나 최신 치료법에 대해 들어보았다.

고관절 질환 중 가장 흔한 것은 무엇인가?
대퇴골두 무혈성 괴사증이라는 질환이 있다. 넓적다리뼈인 대퇴골에서 골반과 맞물려 회전하는 부분이 대퇴골두다. 이 관절을 고관절이라고 하는데, 어떤 이유로든 고관절에 피가 통하지 않아 대퇴골두가 썩는 병이다. 이 병에 걸리면 소위 물렁뼈라는 연골도 급속히 닳으므로 골반과 대퇴골두가 직접 닿아 심한 통증을 유발한다. 더 방치하면 골절되거나, 심하면 걷지 못하게 된다. 또 고관절이 파괴되어 2차성 골관절염을 유발한다.

어떤 증상이 나타나는가?
허벅지, 엉덩이, 허리 등이 아프지만 엑스레이 촬영을 해도 뚜렷한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대퇴골두 무혈성 괴사증을 의심해야 한다. 계단을 헛디디거나 물건을 운반할 때 갑자기 통증을 느끼는 경우가 있다. 대부분은 신경통이나 외상으로 여긴다. 휴식을 취하거나 파스, 주사, 침 등으로 통증이 일시적으로 사라지므로 더욱 쉽게 생각한다. 그런데 나중에는 통증이 가시지 않을 정도로 심해지고 골절, 보행 불능 상태가 된다.

대퇴골두 무혈성 괴사증을 일으키는 원인은 무엇인가?
뚜렷한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피부병이나 천식 치료에 사용되는 부신피질 호르몬제인 스테로이드제를 복용하거나 술을 많이 마시는 사람들 중 일부가 이 질환에 걸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만성 신장질환, 장기 이식, 흡연, 당뇨, 지방간, 간경화, 동맥경화 등이 원인으로 의심된다. 이런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뼈의 미세혈관을 막아 혈액 순환 장애를 일으키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래서 고관절 질환을 혈관성 질환으로 보는 의사도 있다.

최신 치료법은 무엇인가?
안타깝게도 수술 외에는 적절한 치료법이 없다. 수술은 두 가지로 나누어 생각해볼 수 있다. 환자 자신의 뼈를 이용하는 수술과 인공 관절로 바꾸는 수술이다. 물론 본인의 뼈를 이용한 수술이 바람직하다. 대퇴골두의 괴사 범위가 작으면 회전 절골술(rotational osteotomy)을 권장한다. 말 그대로 대퇴골두를 회전시켜 괴사 부위와 정상 부위의 위치를 바꾸는 것이다. 한쪽이 찌그러진 야구공을 생각하면 쉽다. 찌그러진 부분을 아래로 돌려 정상 부분이 위로 향하도록 뒤집는 것이다. 이때 대퇴골에서 대퇴골두를 잘라낸 후 괴사한 부분과 정상인 부분을 위 아래로 회전시켜 정상 부위가 골반과 맞물리도록 한 후 나사못으로 고정한다.

스지오카(Sugioka)라는 일본 전문의가 개발한 이 수술은 대퇴골 윗부분의 바깥쪽으로 튀어나온 돌기인 대전자부를 잘라낸 후 다시 금속 와이어를 이용해 붙여놓는다. 수술 후 이 뼈가 잘 붙지 않아 환자는 장기간 거동에 불편함을 느낀다. 그래서 나는 대전자부를 잘라내지 않는 수술법을 개발했다. 마치 한옥을 지을 때 목재끼리 홈을 맞춰 끼우면 못이 필요 없는 이치를 적용했다고 이해하면 쉽다. 수술 시간이 빠를 뿐만 아니라 환자가 느끼는 통증도 상당히 덜 수 있다.

인공 관절 치환술은 어떤 경우에 하는가?
제 기능을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손상된 경우에 대퇴골두를 제거하고 인공 관절을 끼워 넣는다. 대다수 의사들은 인공 관절 치환술을 할 때 허벅지 근육을 15~20cm 정도 절개한다. 수술 시야를 확보하기 위한 것이지만 신체나 근육을 많이 절개하면 할수록 환자에게는 여러 모로 좋지 않다. 통증도 통증이지만 수술 후 회복이 더디다. 통상 수술 후 1~2주 이상 경과해야 걸을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래서 연구한 것이 평균 7.5cm만 절개하고 수술하는 ‘근육 보존 인공 고관절 수술’이다. 5년째 시행하고 있는데 수술 후 다음 날부터 평행봉을 잡고 걸을 수 있을 정도로 수술 후 회복이 빠르다. 다만 수술 시야가 좁기 때문에 풍부한 해부학적 지식과 수술 경험이 많은 의사가 해야 한다.

인공 관절의 수명은 얼마나 되는가?
플라스틱 재질이었던 과거에는 빨리 닳았다. 현재는 세라믹과 금속 재질이 많은데, 보통 20년 정도 사용할 수 있다. 이 말은 인공 관절이 수명을 다하면 재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인공 관절 개발이 숙제로 남아 있다.

수술할 때 연골도 교체하는가?
과거에는 연골을 놔두고 대퇴골두만 교체했다. 그런데 연골과 금속 인공 관절이 닿아 통증을 일으키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최근에는 연골과 대퇴골두를 세라믹-세라믹, 금속-금속, 폴리에틸렌-금속 등 다양한 재료로 교체한다.

대퇴골두의 일부만 괴사한 경우라면 다른 뼈를 이식해서 치료할 수는 없는가?
그런 치료 방법이 있다. 괴사 부위에 비골, 경골 등 이른바 종아리뼈나 허리띠가 닿은 큰 뼈인 장골의 일부를 이식한다. 최근에는 혈관까지 붙어 있는 뼈 이식(vascularized grafts)이 권장된다. 괴사 부위의 혈관 재형성을 촉진하고, 괴사 진행을 막는 정도가 단순히 뼈만 이식했을 때보다 우수하다.

수술 후 회복 속도도 빨라 수술 성공률이 90%에 이른다. 골을 채취한 부위에 동통(疼痛)이 있을 수 있고, 수술 후 6~12개월까지는 체중 부하를 주지 않아야 하는 단점이 있다. 하지만 회전 절골술이 불가능한 경우 고려할 수 있는 치료법이다.

골이식과 회전 전골술을 병행할 수는 없는가?
실제로 ‘골이식과 절골술의 병합술(combined surgery of osteotomy and bone graft)’이라는 수술법이 있다. ‘혈관유경 장골이식’이나 ‘근육유경 장골이식’ 등 골 이식은 괴사 부위에 혈액을 공급하는 장점이 있고, 회전 절골술은 대퇴골두의 함몰을 방지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때문에 두 가지 수술법을 동시에 시행하면 단독 수술로 치료하기 힘든 경우에 적합하다.

무엇보다 수술 후에 정말 정상인처럼 움직일 수 있는지 궁금하다.
약 36년 동안 다리를 움직이지 못했던 환자가 있었다. 치료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수술을 받고 지금은 걸어다닌다. 고관절 수술을 받은 환자의 움직임은 정상인의 90% 정도라고 생각한다. 과거에는 탈골 위험 때문에 재래식 화장실을 이용하지 말라고 했지만, 최신 수술법으로 쪼그려 앉기도 가능해졌다. 수술 후 히말라야를 등반한 환자도 있다.

고관절 질환은 어떻게 진단할 수 있는가?
초기라면 엑스레이가 효과적이다. 검사 물질을 주사해서 뼈에 밀집되는 정도를 촬영하면 더욱 명확하게 진단할 수 있다. 대퇴골두의 괴사 정도와 함몰 부위를 파악할 때는 자기공명영상(MRI)과 전산단층촬영(CT)도 사용한다.

고관절 환자는 우리나라에 얼마나 있는가?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통계를 보면 인공 관절 수술 환자는 연간 2만명 정도다. 여기에 회전 골이식이나 절골술을 받은 환자까지 포함하면 약 3만~4만명은 될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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