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진보 대리전에 공교육만 골병들라
  • 정락인 (freedom@sisapress.com)
  • 승인 2008.09.01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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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택 서울시교육감, 전교조와 전면전 선포하며 전방위 압박 수순 밟을 듯 …지지율 낮은 ‘반쪽자리 교육감’은 태생적 한계
▲ 민선 1기로 취임한 공정택 서울시교육감. ⓒ뉴시스

’경찰에 어청수가 있다면, 교육계에는 공정택이 있다’라는 말이 있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이명박 대통령의 전위대 역할을 한다는 데 있다. 어청수 경찰청장은 이명박 정부에서 공권력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공정택 서울시교육감은 이대통령의 교육 정책인 ‘자율 경쟁’의 전도사가 되고 있다. 공교육감이 추진하고 있는 ‘국제중학교 설립’이 대표적인 예다.

공정택 서울시교육감은 첫 주민 직선으로 뽑힌 상징성이 있다. 그래서인지 그는 연일 거침없는 언행으로 주목받고 있다. 자신의 소신이 워낙 강하다 보니 ‘독선’ ‘아집’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이래저래 공교육감 취임 후 교육계가 소란스럽다. 더욱이 취임하자마자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과의 전면전을 선언하면서 시끄러운 앞날을 예고하고 있다.

그는 가장 먼저 전교조 서울시지부에 단체협약 재협의를 통보했다. 서울시교육청은 한 발짝 더 나아가 서울시지부가 사용하고 있던 사무실을 비워줄 것을 요구했다. ‘반전교조’를 내걸고 당선된 공교육감이기 때문에 충분히 예상했던 수순이었다. 그는 선거 기간 중에 ‘전교조에 휘둘리면 교육이 무너집니다’라는 구호를 내걸며 반전교조 전선을 확실히 했다. 한편으로는 “전교조를 파트너로 안고 가겠다”라고 했으나 스스로 약속을 깼다.

서울시교육청, 전교조에 사무실 비워달라 요구

지난 2004년에 체결한 단체협약은 서울시교육청과 전교조가 체결한 것이 아니다. 서울시교육청과 교원노조, 즉 한국교원노동조합(한교조)과 전교조 그리고 서울시교육청이 공동으로 맺은 것이다. 그런데도 서울시교육청은 마치 전교조와 직접 맺은 협약인 것처럼 말했다.

현재 지방에서는 시·도교육청과 교원노조 간의 단체교섭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지난 7월29일에는 대전시교육청과 대전교원노조가 27차례의 협의 과정을 거쳐 조인식을 가졌다. 정진화 전교조 위원장은 “2004년 공정택 교육감이 오면서 단체협약을 맺지 못했다. 정책협의회는 1년에 6회를 하게 되는데, 보통 3회는 교육감이 참석하게 되어 있다. 공교육감은 2년 동안 한 번밖에 나오지 않았다. 단체협약을 맺기 위한 의지가 없는 것으로 밖에 생각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공교육감이 ‘독소 조항’이라고 못 박은 단체협약은 전임 유인종 서울시교육감 시절에 맺은 것이다. 여기에는 ‘수업 계획서를 교장에게 제출하지 않는다’ ‘출퇴근 시간 기록부를 사용하지 않는다’ ‘주번·당번 교사 제도 폐지’ 등의 내용이 들어 있다. 이 협약 내용에 대해 공교육감은 “교사들을 위한 것이지 학생들을 위한 조항이 아니다”라며 재협의 의사를 분명히 했다. 만일 전교조가 협의에 응하지 않으면 폐지하겠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진보 교육단체들은 “단체협약 해지의 속셈은 학교장과 이사장 챙기기가 목적이다”라고 반발하고 있다. 김행수 사학개혁국민운동본부 사무국장은 “서울시교육청이 문제 삼는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서울시교육청의 단체협약 해지는 비판 세력 길들이기와 그의 열성 지지자인 학교장과 이사장 챙기기라는 꿩 먹고 알 먹기를 노린 정치적 술수다”라고 강조했다.

서울시교육청은 계속 전교조와 대립각을 세울 것으로 보인다. 우선 공교육감이 전교조에 대해 강공 드라이브를 유지할 것이 뻔하다. 여기에는 그럴 만한 속사정이 있다. 공교육감의 최대 견제 세력이자 반대 세력은 전교조다. 자신의 숙원 사업인 국제중학교 설립에 전교조는 반대하고 있다. 공교육감으로서는 전교조를 파트너로 인정하면 교육 행정 하나하나를 전교조와 협의해야 한다.

만약 반대에 부딪치면 자기 맘대로 밀고 가기가 힘들다. 때문에 전교조를 파트너로 택하지 않고 차라리 고립시키는 전략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서 자신의 지지층과 보수층을 결집하고 여기에 보수 언론을 끌어들여 전교조의 반대를 무력화하려고 할 것이다.

▲ 국제중 설립 반대 집회를 여는 전교조 서울시지부. ⓒ연합뉴스

국제중학교 설립 최대 걸림돌은 전교조

지금까지 진행 과정에서 보면 공교육감의 전략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서울시교육청과 전교조의 대립이 진보와 보수의 이념 대결로 치닫고 있기 때문이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공교육감이나 국제중학교 설립에 대해 완전 다른 논조를 내놓고 있다. 보수 언론은 공교육감을 ‘교육 개혁의 선구자’로 치켜세우며 공정택의 방패가 되고 있다.

또 한 가지는 공교육감의 태생적인 한계다. 지난 선거 결과를 놓고 보면 당선은 되었으나 게임에서는 패한 싸움이었다. 그는 서울 전체 25개 자치구 중에서 8개구에서만 승리했다. 나머지 17개구에서는 상대 후보에게 졌다. 강남권의 몰표가 승리의 주요 요인이다. 낮은 투표율과 낮은 지지율 그리고 보수·상류층 밀집 지역인 강남 지역의 승리는 공교육감을 반쪽짜리 교육감으로 만들었다. 공교육감의 아킬레스건이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서울시민 전체의 이해를 대변하기보다 자신의 기반이 된 ‘상류층 지지자’들의 이해를 대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또 자신의 공약이자 숙원 사업인 ‘국제중학교 설립’은 자신의 지지층과도 연결된다.지금까지 공교육감은 누구보다도 국제중학교 설립에 강한 집착을 보여왔다. 지난 2005년 관선 교육감 시절에도 서울에 국제중학교를 설립하겠다고 밀어붙이다가 사교육비 증가를 우려한 학부모들의 반발로 무산되었다. 공교육감은 이런 것을 의식했는지 지난 선거에서는 사교육비 경감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하지만 취임 후 발표한 첫 사업이 ‘국제중학교 설립’이다. 지금 상황으로 보면 내년 3월에 일부 과목을 제외한 모든 과목의 수업을 영어로만 진행하는 국제중 2곳이 개교한다. 공교육감은 국제중 설립에 ‘올인’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교육계 일각에서는 “민선 1기의 성공 모델로 국제중을 생각하는 것 같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공교육감의 성공은 요원하다. 국제중 설립을 국민적 여론 수렴 없이 졸속으로 추진하는 데다가 사교육 확산의 폐단을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전교조 등 교육단체들의 반대도 만만치 않다. 전교조는 지난 8월26일 서울시민 10명 가운데 6명이 반대한다는 설문조사 결과를 내놓았다. 설문에 응답한 서울시민들은 국제중이 세워지면 ‘초등 단계에서 사교육비 폭등’과 ‘입시 과열’ ‘귀족 학교화로 계층 간 위화감 조성’ 등을 크게 우려하고 있었다.

서울시교육청이 국제중 설립 이유로 내세운 ‘국제화를 선도할 인재 양성 기여’나 ‘엘리트 양성 목적’ 등의 취지에도 ‘공감하지 않는다’는 의견이 많았다. 국제중에 진학할 생각을 밝힌 사람 가운데 44.7%가 강남구와 서초구, 송파구에 살고 있는 부유층이었다.

▲ 전교조는 서울 시민 10명 가운데 6명이 국제중학교 설립을 반대한다는 설문조사 결과를 내놓았다. 오른쪽은 서울 사직동에 있는 전교조 서울시지부. ⓒ시사저널 임영무

“이명박 대통령에게 국제중 설립 재가받았다” 자랑도

공정택 교육감이 이명박 대통령의 대리인이냐, 아니냐를 놓고 논란이 있다. ‘반전교조’와 ‘특목고 확대’는 이대통령의 정책 기조와 뜻을 같이한다. 한나라당은 사립학교법 개정 국면에서 ‘전교조에게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맡길 수 없다’라는 현수막을 내걸었다. 결국 공교육감의 교육 행정은 ‘이명박 대통령-한나라당-상류층’과 맥이 닿아 있다.

공교육감의 지난 8월25일 발언에서도 알 수 있다. 그는 교육감에 당선된 후 청와대를 찾아갔다. 여기에서 대통령과 나눈 대화를 공개했다가 구설에 올랐다. 공교육감은 대통령으로부터 “(국제중 설립)에 소신껏 잘하라”는 칭찬까지 받았다고 자랑했다. 국제중 설립에 대해 이명박 대통령의 허락을 받은 것처럼 발언한 것이다.

공교육감의 말대로라면 ‘국제중 설립’은 이명박 대통령의 의중이라고 볼 수 있다. 국제중 설립은 교육과학기술부와 협의 사항이다. 그런데도 협의를 거치지 않은 상태에서 청와대와 사전 조율을 했다는 의혹을 사기에 충분하다. 청와대와 서울시교육청 사이에 인가권자인 교과부가 들러리를 서고 있는 모양새다. 국제중 설립뿐만 아니라 반전교조 노선도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된 것이라는 확대 해석이 가능하다.

한나라당 의원들도 전교조 때리기에 나섰다. 신지호 의원은 최근 전국 시·도교육청의 전교조 지원 현황 자료를 토대로 전교조 지부의 운영비 등을 공개했다. 신의원은 “2008년 7월 말 현재 지역별 사무실 전·월세금 등 운영비로 총 42억8천2백40만원을 지원받고 있다. 전교조 각 지부가 주최하는 사업에도 올해 총 6억3천여 만원의 교육청 예산이 지원된 것으로 나타났다”라며 전교조가 귀족 노조라고 질타했다.

한편, 전교조는 전국대의원대회를 열어 올해 하반기 활동 방향을 ‘이명박 교육 정책 반대 투쟁’으로 정하고 강력히 밀어붙일 계획이라고 한다. 공교육감과 전교조, 정부와 전교조 사이에 벌써부터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 정부와 서울시교육청의 교육 정책을 비판하는 정진화 위원장. ⓒ시사저널 황문성

전교조가 서울 국제중학교 설립 저지를 위해 실력 행사까지 불사하겠다고 나섰다. 지난 8월26일에는 서울 세종로 교육과학기술부 정문에서 ‘전교조의 대응 방안을 발표’하는 기자회견까지 열었다. 교과부장관에게 보내는 공개질의서도 전달했다. 이날 오후 2시에 서울 영등포에 위치한 대영빌딩에서 정진화 전교조 위원장을 만났다.

이명박 정부의 교육 정책을 어떻게 보는가?
정부가 내세우는 교육 정책이 여러 번 국민의 비난을 받았다. 대표적인 것이 인수위원회 시절에 들고 나온 영어 몰입 교육인데, 나중에 대통령이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된다’며 한발 물러났다. 앞으로 고교 다양화·특성화를 내세우며 국제중학교와 자율형 사립고 100여 개가 설립된다. 새 정부는 특목고를 늘리겠다고 하고 서울시교육감은 국제중학교를 만들겠다고 한다. 제주도는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까지 무려 12개의 국제학교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앞으로 교육의 양극화가 심화될 것이 뻔하다. 부자들만의 학교가 나올 것이다.

공정택 서울시교육감이 전교조를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는 것 같다.
서울시교육감이 취할 태도로 적절하지 않다. 교원단체와의 정책적 협의는 필수 사항이다. 교육은 현장 교사들을 통해 구현하는 것이다. 교육감이 보수 언론처럼 아무 때나 (전교조를) 때리고 하는 것이 아니다. 지방에서 전교조 행사가 있으면 교육감이 축사도 한다. 유독 서울시만 문제가 되고 있다. 교육감에 대한 견제 장치로 ‘학부모 소환제’나 ‘주민소환제’가 필요하다. 정부나 서울시교육청이 전교조를 대화 상대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것은 우리 교육의 추락이며 후퇴다.

공정택 서울시교육감 체제에 대해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우리는 이전보다 후퇴할 것으로 본다. 완전한 후퇴가 아니라 새로운 상황에서의 후퇴가 있을 수 있다. 세계화에 역행하는 정책이 노골적으로 집행되고, 양극화의 골은 더욱 깊어지는 상황이 전개될 것이다. 이렇게 나가면 국민이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전교조가 지나친 ‘교사 감싸기’를 하다 보니 교육 개혁에 미흡하다는 지적도 있다.
전교조는 내년에 창립 20주년을 맞이한다. 그동안 전교조는 교육계의 투명성 확보, 권위주의적인 행정의 변화를 이루어냈다. ‘교사 감싸기 때문에 교육 개혁에 미흡하다’는 지적에는 모순이 있다. 예를 들어 교원평가제를 보더라도 전교조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교사·학생·학부모가 참여할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가 필요한데 그렇지 못하다.

참교육을 실현하기 위한 전교조의 대안은 무엇인가?
우리 교육의 미래를 위한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려고 한다. ‘성공 신화’를 만들기 위한 교육이 아니라 희망을 만드는 교육 토대가 필요하다. 우리는 이것을 ‘제2의 참교육’이라고 부른다. 앞으로는 학교 차원의 개혁 바람이 불어야 한다. 새로운 학교를 만들어야 한다. 이미 실험이 시작되었다. 앞으로 새로운 학교 모델을 여러 군데 만들어서 희망 있는 교육을 제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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