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코 전화 한 통이 건강 해칠 수 있다
  • 이석 (ls@sisapress.com)
  • 승인 2008.09.23 11:25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휴대전화 전자파의 유해 여부를 둘러싼 논란이 최근 유해론 쪽으로 쏠리고 있다. 휴대전화에서 나오는 전자파는 인체에 얼마나 해를 끼치고 있을까? <시사저널>이 그 실상을 알아보고 대응책을 모색했다.


세계보건기구는 이미 휴대전화 전자파를 잠재적인 위험 요소로 지목하고 있다.
유해성이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향후 위험의 소지가 다분한 만큼 주의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시사저널 황문성

담배나 석면도 처음에는 위험 물질로 간주되지 않았다. 과학적 증거가 부족하다 해서 대수롭지 않게 넘길 일이 아니다. 광우병 파동이 있었지만 휴대전화 전자파로 인한 인체 피해를 본격적으로 따져보면 대란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지금처럼 쉬쉬했다가는 훗날 대재앙을 맞게 될 수 있다.”

휴대전화 전자파의 유해성을 취재하면서 만난 학계나 시민단체 인사들의 한결같은 목소리이다. 휴대전화 전자파의 유해 여부를 놓고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전자파가 인체에 해롭다는 주장과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아 별 문제가 없다는 주장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그러나 최근 논란의 무게 중심이 ‘유해론’ 쪽으로 급속히 기울고 있다. 휴대전화 사용 인구가 급증하고, 관련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휴대전화 전자파의 위험을 경고하는 조사 결과가 속속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김덕원 세브란스의대 의학공학교실 교수는 “휴대전화 전자파가 뇌종양이나 암, 심지어 DNA 변이를 유발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이미 여러 차례 외국에서 발표되었다. 국내에서도 향후 미칠 파장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인체 영향 연구에 대한 범정부적 지원이 필요하다”라고 지적했다.

설문 응답자 93% “휴대전화 전자파 유해할 것”

하지만 휴대전화를 인체에 위험한 기기라고 인식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휴대전화 전자파의 폐해를 알리는 연구 결과가 연이어 발표되고 있지만,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관련 기관이 이를 덮으려고 급급하는것이 문제이다. 휴대전화를 연일 끼고 다니며 사용해도 당장 피해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유해성 논란에 대해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있다.

이같은 분위기는 환경운동연합 시민환경연구소가 최근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여실히 나타나고 있다. 휴대전화 전자파의 인체 유해성을 묻는 질문에 93%가 “해로울 것 같다”라고 응답했다. 눈에 띄는 사실은 응답자 중 55.5%가 “영향은 있겠지만 우려할 만한 수준은 아니라고 본다”라고 답했다는 점이다. “유해할 것”이라는 의견은 37.5%에 불과했다. 휴대전화의 전자파가 인체에 해로울 것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문제의 심각성을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최예용 환경운동연합 시민환경연구소 연구원은 “국제적으로도 전자파 안전 기준이나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휴대전화 전자파로 인한 피해가 늘어나고 있는데도 아직까지 소극적 대응에 그치고 있는 현실을 심각하게 우려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지난해 8월 미국 뉴욕의 알바니아 대학에서는 국제과학자그룹의 포럼이 열렸다. 국제과학자그룹은 과학자 및 공중보건정책 전문가로 구성된 글로벌 연구 모임이다. 포럼에서는 뇌종양 분야 전문가인 스웨덴 오레브로 대학병원의 레나드 하델 교수의 연구 결과가 공개되었다. 휴대전화를 10년 이상 사용한 사람들에게서 뇌종양 발생률이 20% 이상 증가하고, 휴대전화를 계속 한쪽 귀로 사용하면 발병 가능성이 2배 이상 증가한다는 것이 발표 내용의 요지이다.

최연구원은 “국제과학자그룹은 포럼을 앞두고 그동안 발표된 2천여 건의 보고서와 논문을 분석했다. 이를 바탕으로 현재 우리가 적용하고 있는 전자파 안전 기준이 공중 보건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다”라고 설명했다.

휴대전화 전자파 연구의 세계적인 권위자로 꼽히는 호주의 브루스 암스트롱 교수(시드니 대학 공중위생학부)의 경우 기존의 입장을 번복하면서까지 휴대전화의 인체 유해성을 적극 설파하고 있다. 그는 그동안 호주 언론을 통해 “휴대전화 사용이 종양 리스크를 높인다는 증거는 없다”라고 단언해왔다.

그러나 그는 지난 4월 일본의 한 TV 프로그램에 출연해 공격적인 발언을 쏟아냈다. “휴대전화 사용과 종양 리스크의 연관성을 나타내는 증거가 연이어 나오고 있다”라는 것이었다. 그는 “건강을 위해 휴대전화의 헤비 유저가 되고 싶지 않다”라는 개인적인 소견도 덧붙였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이미 휴대전화 전자파를 잠재적인 위험 요소로 지목하고 있다. 유해성이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향후 위험의 소지가 다분한 만큼 주의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국제암연구소(IARC)도 지난 2001년 전자파를 암 유발 가능 인자로 분류해놓은 상태이다.

때문에 미국에서는 담배 소송과 유사한 법적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 2005년 5월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서는 법원이 휴대전화 전자파가 인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처음으로 인정하기도 했다. 휴대전화 제조업체들 역시 “휴대전화 전자파가 인체에 유해하다는 증거는 없다”라는 논리로 맞서고 있다.

현재 소송을 당한 삼성전자의 한 관계자는 “전자파 관련 내용을 공지한다는 것은 휴대전화의 유해성을 인정하는 것으로 인식될 수 있다. 휴대전화의 유해성이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경고문을 올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라고 해명했다. 정부의 입장도 비슷하다. 조관복 방송통신위원회 초음파감리정책과 사무관은 “정부에서도 그동안 다양한 조사를 벌였지만 아직까지 유해성을 입증할 만한 근거는 나오지 않았다. 확실하지 않은 정보로 소비자들에게 불안감만 심지 않을까 걱정스럽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들조차도 현재 “휴대전화가 인체에 안전하다”라고 장담하지는 못하고 있다. 특히 휴대전화 전자파의 유해성에 대한 연구를 해온 기간은 현재 길어야 10년이다. 암이나 백혈병, 유전자 변이가 나타나려면 발병 물질의 장기간 잠복기를 거치는 점을 감안할 때 유해하지 않다는 결론을 내릴 수 없기 때문이다. 하미나 단국대 예방의학교실 교수는 “어떤 발암물질에 노출되어 암이 되려면 적어도 10년 이상은 걸려야 한다. 제대로 된 연구가 나오려면 향후 10년은 더 지나야 할 것으로 본다”라고 설명했다.

인터넷의 각종 사이트에도 현재 휴대전화 전자파의 유해성을 실험하는 각종 동영상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휴대전화 전자파의 유해성을 주장해온 미국 텍사스의 독립 연구가 제임스 B. 빌은 최근 휴대전화 3~4대를 사용해 팝콘 낱알들을 터뜨리는 동영상을 공개했다. 휴대전화의 전파 시그널이 고열의 마이크로웨이브 전파를 발사해 낱알들을 수 초에서 수십 초 만에 팝콘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 대다수 휴대전화 사용자들은 당장 눈에 보이는 피해가 없기 때문에 전자파 유해성에 덜 민감한 편이다. ⓒ시사저널 황문성

영국은 단말기에 경고문 끼워 판매…“우리도 전자파 표시제 실시하자”

휴대전화 전자파를 이용해 소고기를 굽는 동영상도 현재 인터넷 포털 사이트나 동영상 사이트를 통해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같은 실험 결과를 놓고 “과학이 아니라 트릭”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하지만 휴대전화 전자파에 장기간 노출될 경우 우리의 뇌도 이와 같은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점에서 무작정 무시하고 넘어갈 일은 아니다.

특히 미성년자의 경우 성인에 비해 위험도가 높아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유럽에서는 이미 어린이들에게 휴대전화 사용을 자제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휴대전화 사용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위험하다는 것은 입증되지 않았지만, 그 반대로 위험하지 않다는 것 또한 입증되지 않은 만큼 휴대전화 사용 자체를 막거나 제한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영국의 경우 지난 2001년 이후 모든 휴대전화에 ‘과도한 사용에 따른 건강 위험’을 알리는 경고문을 끼워서 판매하고 있다.

박민용 연세대 전자공학과 교수는 “전자파 영향은 노출 기간, 노출된 거리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미성년자는 어렸을 때부터 휴대전화를 사용하게 된다. 성인에 비해 노출 기간이 길다는 점에서 문제가 될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우리도 외국처럼 전자파 표시제를 시행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이경재 한나라당 의원은 “아직까지 휴대전화 전자파에 대한 뚜렷한 위해 기준이 없다. 때문에 전자파 노출량을 모두 공개하고 소비자들에게 판단을 맞기는 것도 하나의 해결책이 될 것이다”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정부는 이런 움직임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조관복 방송통신위원회 사무관은 “전자파 표시제는 현재 영국 등 유럽의 일부 국가에서 도입하고 있는 제도로 성공적이라고 평가하기 어렵다. 현재로서는 도입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지 않다”라고 말했다.

세월 가는 줄 모르는 방통위–환경부 ‘밥그릇 싸움’
전자파 연구, 왜 지지부진한가

 

휴대전화 전자파 논란과 관련해 또 한 가지 주목되는 것이 정부 내 엇박자이다. 정부는 지난 2000년 10월 전자파 인체 보호 기준을 정해 지속적으로 연구해 오고 있다. 정보통신부와 산업자원부, 환경부 등이 외부 연구기관들에 용역을 발주해 활발한 조사를 벌여왔다. 그러나 부처 간 이견으로 인해 아직까지 가시적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환경부는 지난 2006년과 2007년 두 차례에 걸쳐 17개월간 전자파 노출 인구 산정 및 건강 영향 조사를 벌였으나 아직까지 뚜렷한 결과물을 내지 못하고 있다. 전종철 환경부 생활환경과 사무관은 “당초 다양한 조사를 통해 전자파 연구를 위한 장기 기술 로드맵을 마련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지식경제부나 방송통신위원회와 법적인 분규의 소지가 있어 조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라고 토로했다. 이와 관련해 방통위측은 “정보통신 관련 부처가 조사를 주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라고 주장한다. 조관복 방송통신위원회 사무관은 “전세계적으로도 전자파 관련 연구를 담당하는 부처는 정보통신 쪽이다. 우리가 로드맵을 세우면 환경부에서 세부 사항을 연구하는 쪽으로 가야 바람직하다”라고 말했다.

때문에 업계나 학계에서는 소비자의 건강을 놓고 부처 간 밥그릇 싸움을 벌이는 것이 아니냐는 비난이 일고 있다. 또, 관련 연구를 아예 보건복지부나 식약청으로 이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학계 관계자는 “옛 정통부 기금을 일부 지원받았다는 이유로 연구 결과조차 마음대로 공개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휴대전화 전자파 연구의 실효성을 위해서는 정부가 유해성 여부를 가려내겠다는 의지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