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품 꺼지자 줄줄이 도산 투자는 없었다
  • 정은호 (제로인투자자문 대표) ()
  • 승인 2008.09.23 14:1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미국 최대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도 ‘움찔’ 파생 상품 없었다면 이런 위기 없었을 것
ⓒEPA

골드만삭스, 모건스탠리, JP모건체이스, 리먼브라더스, 메릴린치. 최근 1년 사이에 우리나라 일반인들에게까지 이름을 널리 알린 미국의 투자은행(IB) 순위이다. 세계 금융시장을 쥐락펴락했던 이들 투자은행들이 하나씩 퇴출 수순을 밟고 있다. 5위인 베어스턴스는 이미 지난 3월 JP모건체이스에 헐값에 넘어갔다. 4위 리먼브라더스는 15일 파산 보호를 신청했고, 5위 메릴린치는 뱅크오브아메리카(BOA)로 넘어간다. 2위 모건스탠리도 독자 생존에 한계를 느끼고 상업은행과의 합병을 모색하고 있다고 한다. 철저한 위험 관리로 ‘별 문제없다’는 1위 골드만삭스의 손실 규모가 궁금해진다.

그렇다면 이제 서브 프라임 모기지로 인해 생긴 금융권의 부실에 대한 고해성사와 환부 도려내기가 끝난 것일까? 답은 ‘아니다’라는 쪽에 더 무게가 실리고 있다. 반 정도 드러났다고 보는 쪽이 더 많다. 투자은행이라는 용어가 생겨난 것은 금리 상한 규제(Regulation Q)를 도입한 것으로 유명한 1933년 글래스-스티걸 법(Glass-Steagall Act)에 의해서였다. 당시 경제 공황의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된 상업은행(commercial bank)들의 위험한 거래를 막기 위해 도입된 이 법률에 의해 전통적인 예대 업무를 주로 하는 상업은행과 증권 중개와 매매를 포함한 위험이 큰 모든 업무를 주관하는 투자은행이 구분되고 겸업이 금지되었다. 이에 따라 당시 입법의 주요 타깃이었던 JP모건은 상업은행 업무를 담당하는 JP모건과 투자은행인 모건스탠리로 분리되었다. 이처럼 IB는 태생적으로 위험이 수반되는 업무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여기에 경쟁이 치열해지는 전통적인 채권의 인수와 중개를 통해서는 수익을 내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자연히 상대적으로 위험이 크고 고수익을 낼 수 있는 파생 상품 관련 영업에 치중하게 되는 것이다.

모기지 증권에 막대한 자금 투자했다 파산 불러

만일 파생 상품이 없었더라면 서브 프라임 문제는 미국의 집값 하락에 의한 주택담보대출(mortgage)의 담보 가치 부족 문제 정도로 끝났을 것이다. 물론 이것도 간단한 사안은 아니다. 일본을 ‘잃어버린 10년’을 넘어 ‘사라진 20년’으로까지 몰고가고 있는 경제 침체의 도화선도 부동산을 중심으로 한 자산 가치 하락이었다. 향후 우리나라에서도 상호저축은행을 비롯한 금융권의 시한폭탄이 바로 부동산 가치의 하락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미국의 주택 가격 하락은 미국 금융계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 사안이라는 데에 이의가 없다.

모기지를 이용한 파생 상품이 없었더라면 담보 가치의 하락이라는 단순한 문제가 현재와 같이 IB들을 한 번에 날려버리는 상황으로 번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IB들은 담보 대출을 통해 미래에 들어올 것으로 기대되는 대출 이자 수입과 원금 상환분을 기초로 발행한 채권, 이른바 모기지 증권에 막대한 자금을 투자했다. ‘자산 유동화’라는 과정이다. 물론 채권의 이자와 원금 상환은 담보 대출을 통해 들어오는 원리금 상환분으로 충당한다. IB들은 주로 차입을 통해 이런 증권을 매입한다. 차입에 대한 담보는 다시 이런 모기지 증권이다. 미국의 주택 경기가 악화되면서 최초의 대출금에 대한 연체가 늘어난다. 담보 가치가 떨어지는 것이다. 미국의 전국 집값은 1년 만에 평균 15%가 하락했다. 집값 하락은 신용도가 가장 낮은 계층의 파산을 부르고 모기지는 부실화된다.

대출 채권 자체의 손실은 모기지 업체의 부실을 가져올 뿐 아니라 이들 모기지 증권에 투자하고 다시 이를 담보로 자금을 조달한 IB들의 파산을 가져오고 있는 것이다. 15%의 하락이 이 정도의 영향력인데 향후는 더욱 문제이다. 아직 구체적인 징후는 나오지 않고 있지만, 가장 신용도가 높은 프라임 등급과 서브 프라임 사이의 중간 등급인 알트A(Alt-A) 등급의 모기지도 부실화될 수 있다. 서브 프라임 등급의 대출 규모는 8천5백50억 달러, 그 위의 알트A 등급의 대출 규모는 이보다 더 큰 1조 달러에 이른다. 미국의 주택 가격이 회복되지 못하거나 추가적으로 하락한다면 알트A도 안전하지 않은 것이다.

상업용 부동산 가격의 하락 가능성은 또 다른 뇌관이다. 신용 파생 상품에 의한 손실도 점차 드러날 것이다. IB들의 청산만으로 서브 프라임 문제가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국제통화기금(IMF)은 미국발 서브 프라임 부실에 따른 전세계 금융회사 손실액이 최대 1조 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현재까지 전세계 투자은행들이 자백하고 상각한 금액은 5천억 달러 수준이다. 아직 절반이 남아 있다는 얘기이다. 문제는 미국의 주택시장이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이면서 시간이 흐를수록 부실 규모가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번 파장으로 전세계 거의 모든 투자자들이 날벼락을 맞았다. 리먼의 파산 보호 신청 직후 다우의 전 종목이 하락했다. 망연자실 하락하는 주가를 쳐다보는 미국의 상황을 어느 잡지는 자유 낙하(free-fall)라는 말로 표현했다. 중국 초상은행과 중국은행이 리먼브러더스 채권을 각각 7천만 달러와 5천만 달러 어치 보유하고 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상하이 종합지수는 지난해 고점의 3분의 1인 2천선마저 내주며 폭락했다.

▲ 금융대란 속에서 파산 위기에 몰려 뱅크 오브 아메리카에 팔린 뉴욕 리먼브라더스 본사. ⓒ로이터

폭격 맞은 증시는 ‘자유 낙하’ 중

국내 증시도 90 포인트까지 밀리며 1천4백선 밑으로 주저앉았다. 다음 날 다시 폭락하면서 장중에는 연중 최저치까지 밀렸다. 날고 긴다는 월가의 매니저들도 날벼락을 맞았다. 최고의 매니저 중 하나인 레그 메이슨의 빌 밀러도 프레디맥의 주식을 5달러 수준에서 3천만주나 매수했다가 모두 날리는 처지가 되었다. 우리 금융기관의 리먼브라더스와 메릴린치 관련 자산 규모는 약 15억 달러 규모로 발표되고 있다. 그중에 메릴린치에 물린 규모로 알려진 7.2억 달러는 인수하는 뱅크오브아메리카에 승계될 것으로 보인다. 국민연금도 위탁 투자를 통해 페니매와 프레디맥에 약 5백억원을 투자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문제는 일반 투자자에게까지 직접적으로 피해가 미친다는 점이다. 리먼의 파산 신청으로 이 회사가 발행한 주가연계증권(ELS)에 투자하는 주가연계펀드(ELF)의 돈이 묶여버린 것이다. 만기가 되었거나 조기상환 조건이 충족되었는데도 리먼으로부터 돈이 들어오지 않아 투자자에게 지급이 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가장 먼저 문제가 된 것은 우리CS운용의 ‘우리투스타KH-3호 ELF’이다. 이 펀드는 한국전력과 현대자동차 주식을 기초 자산으로 매 6개월마다 일정 조건이 충족되면 연 11.5%의 수익률을 지급하도록 설계되었다. 이미 조기 상환 조건이 충족되었지만 리먼으로부터 돈을 받지 못해 환매가 연기되었다.

이번 미국 IB의 몰락 과정을 통해 우리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내년부터 시행될 자통법의 핵심 중 하나는 투자은행의 육성과 관련되어 있다. 올해 국내 모든 증권사, 은행의 화두는 투자은행이었다. 그리고 그 모델은 바로 미국의 IB들이었다. 이번 사태로 미국식 자본주의의 위기에서부터 IB의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맞는 말이다. IB는 속칭 돈이 되는 것은 무엇이든 한다.

문제는 신종 상품의 개발과 판매를 통한 수익에만 치중하고 위기에 대한 분석이나 자기 자본의 30배가 넘는 부채 사용의 레버리지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는 점이다. 충분한 준비가 없다면 우리나라의 IB도 똑같은 길을 가게 될 것이다. 우리나라가 미국의 IB에 직접 투자해서 날린 돈은 향후 드러나게 될 규모까지 감안하면 10억 달러에까지 이를 수 있다. 교훈을 배우기에는 충분한 수업료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