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뇌의 CEO ‘앞쪽뇌’를 사수하라
  • 노진섭 (no@sisapress.com)
  • 승인 2008.09.23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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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의 앞쪽에 있다고 해서 ‘앞쪽뇌’라고 불리는 전두엽이 손상되면 사람 구실을 못한다는 연구 결과가 속속밝혀지면서 전두엽이 의학계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뒤쪽뇌와 감정뇌의 사령탑 역할을 하는 전두엽의 모든 것을 알아본다.



2008 베이징올림픽에서 8관왕을 차지한 미국 수영 선수 마이클 펠프스는 일곱 살 때 ‘주의력 결핍 과다행동장애(ADHD)’를 다스리기 위해 수영을 시작했다고 한다. ADHD 증상은 행동 억제 및 실행 기능에 결함이 생겨 나타나는데, 이는 대뇌의 전두엽(frontal lobe)이 손상되었을 때의 증세와 유사하다. 전두엽이 손상되면 한마디로 ‘사람 구실을 못한다’는 사실이 최근 연구 결과에서 속속 밝혀지면서 의학계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전두엽은 뇌의 앞쪽에 있다고 해서 ‘앞쪽뇌’라고도 불린다. 대뇌를 옆에서 보았을 때 세로로 얕게 패인 중심 고랑(central sulcus)을 기준으로 앞쪽뇌와 뒤쪽뇌가 나뉜다. 쪽뇌를 제외한 나머지 부분 즉, 마루엽(두정엽), 뒤통수엽(후두엽), 관자엽(측두엽)을 합해 뒤쪽뇌라고 부르는데 뒤쪽뇌가 발달된 사람은 음감이 예민하고 색감이 뛰어나다. 남의 감정을 잘 읽어내고 감성이 풍부하다. 이런 기능은 앞쪽뇌가 제대로 작동하는 데 꼭 필요하다. 앞쪽뇌는 뒤쪽뇌에 저장된 정보를 가져와 편집하고 종합해서 가장 효율적인 결정을 내리는 기능을 한다. 이 결정은 사람의 말이나 행동, 얼굴 표정 등으로 나타난다.

또, 대뇌의 내부 아래쪽에 있는 감정뇌는 식욕, 성욕, 충동 등 인간의 욕구와 희로애락을 주관하는 곳이다. 정뇌에서 올라오는 인간의 본능적인 욕구도 앞쪽뇌가 조절한다. 결국 앞쪽뇌는 뒤쪽뇌에서 오는 외부 자극과 감정뇌에서 들어오는 내부 욕구를 통합하고 조절하는 사령탑인 셈이다. 나덕렬 삼성서울병원 신경과 교수는 “기억력이 좋은 사람은 뒤쪽뇌가 발달된 경우이다. 창의력이 좋은 사람은 앞쪽뇌가 발달되어 있다. 뒤쪽뇌가 손상되면 기억력만 떨어지지만 앞쪽뇌가 손상되면 다른 사람을 못 알아볼 뿐 아니라 자아를 상실한다. 이런 사람은 기억력에 별 문제가 없고 계산도 잘한다. 길을 잃지 않기 때문에 혼자서 돌아다니는 데에도 문제가 없다. 그러나 전체 목표를 잊어버리고 사소하고 조그만 것에 매달린다. 판단력 장애가 있기 때문에 말도 안 되는 판단을 하거나 충동 억제가 안 되어서 별일도 아닌 일에 화를 내기도 하며, 조급증이 있어 주위 사람을 불안하게 만든다”라고 설명했다.

앞쪽뇌에 대해 학자들이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최근의 일이다. 앞쪽뇌의 기능이 밝혀지지 않은 과거에는 앞쪽뇌를 수술로 절제하기도 했다. 정신적인 문제로 난폭한 기질을 지닌 환자의 앞쪽뇌를 잘라냄으로써 난폭함을 없애는 것이다. 수술 후 난폭한 행동은 완화되지만 다른 정상적인 앞쪽뇌 기능이 손상되므로 지금은 수술을 하지 않는다. 그만큼 과거에는 앞쪽뇌에 대한 관심이 적었고, 연구도 거의 없었다. 서상원 삼성서울병원 신경과 교수는 “최근 들어서 앞쪽뇌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특히 자기공명영상(MRI) 등 뇌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영상 장비가 개발되면서 앞쪽뇌에 대한 연구가 많이 진행되고 있다”라고 말했다.

“앞쪽뇌 기능 저하되면 폭력적 범행 부추겨”

실제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 인지과학연구소의 존 던컨 교수는 최근 공간 지각, 언어 능력에 대한 연구를 하면서 양전자 단층 촬영(PET)으로 시험 문제를 푸는 피실험자의 뇌를 살펴보다가 앞쪽뇌가 활성화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미국 워싱턴 대학의 토드 브레이버 교수도 최근 학생들에게 단기 기억을 활용하는 문제 풀이를 시키는 동안 MRI로 뇌를 관찰해서 앞쪽뇌가 활성화되는 결과를 얻었다. 범법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 결과도 있다. 신영철 강북삼성병원 정신과 교수는 2005년 청송감호소 피감호자를 대상으로 신경심리 기능 검사를 했다. 그 결과 상습적인 범죄자는 앞쪽뇌 기능이 현저히 낮은 수준으로 나타났다. 심교수는 연구 결과 보고서에서 “대상자 가운데 강도나 성폭력 등을 저지른 폭력범은 절도나 사기를 저지른 비폭력범보다 앞쪽뇌 기능이 더 떨어지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앞쪽뇌의 기능 저하가 상습적이고 폭력적인 범행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앞쪽뇌는 머리 앞쪽에 있는 부분부터 전전두엽(prefrontal lobe), 운동피질(motor cortex), 신체감각피질로 나눌 수 있다. 이 중에서 특히 이마 쪽에 가까운 부분인 전전두엽이 가장 중요한 부위라고 한다. 같은 전두엽이라도 전전두엽보다 뒤쪽에 있는 운동피질과 신체감각피질은 수의운동(voluntary movement)을 관장한다. 수의운동이란, 의식을 가지고 신체의 근육을 움직이는 행동을 말한다.

전전두엽은 사고, 의욕, 창조, 감정 조절 등 인간다운 정신 활동을 관장한다. 전두엽을 앞에서 살펴보면 전전두엽이 보이는데 이는 안쪽면, 바깥면, 아랫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안쪽면은 동기 센터로서 무엇을 하려는 의욕을 발산하는 곳이다. 바깥면은 계획 센터인데 판단력과 기획력을 관장한다. 아이디어를 뿜어내므로 독창 센터라고도 불린다. 아랫면은 감정과 욕망을 억제하는 충동억제 센터이다.

이 세 부분 중 어느 부위가 손상되었는가에 따라 증상이 다르게 나타난다. 전전두엽의 안쪽면인 동기 센터가 망가지면 눈에 띄게 말수가 적어지고 무표정하게 된다. 이곳이 손상되면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는 무의지증, 무의욕증이 생긴다. 말이 없어지는 무언증, 행동이 없어지는 무동증으로 표출된다. 운동을 싫어하고 소파에 누워 하루 종일 잠만 자면서 시쳇말로 폐인처럼 지내기 일쑤이다.

김수남씨(71·가명)는 전전두엽의 안쪽면 손상으로 자의적인 생활이 불가능해졌다. 그는 옛날 사람치고는 키가 크고 체격도 좋았다. 목소리도 쩌렁쩌렁하고 입담도 좋았다고 한다. 어떤 모임에서든 좌중을 휘어잡아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인데, 어느 날 갑자기 입을 다물어버렸다. 말을 해도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처음 1주일 동안은 계속 잠만 잤다. 잠에서 깨어나도 의욕이 안 보이고 모든 일에 흥미를 잃었다. 소파에 멍하게 앉아 있는 날이 늘어났고 밥 먹으라면 먹고 자라면 잤다. 앞쪽뇌 혈관이 막히면서 산소 결핍으로 뇌세포가 괴사한 것이다.

앞쪽뇌의 바깥면인 계획 센터가 망가지면 목표 의식이 사라진다. 어떤 일을 계획해서 실행하고 마무리하는 능력이 없어지는 것이다. 목표 의식이 없어지거나 있더라도 목표에 이르는 방법을 생각해내지 못한다. 또 목표를 향해 가다가도 중간에 쉽게 포기하는 경향을 보인다.

주부 이미란씨(42·여·가명)는 최근 살림을 게을리하고 우두커니 먼 곳을 바라보는 시간이 많아졌다. 과거에는 돈을 아껴쓰는 편이었는데 언제부터인가 돈을 펑펑 쓰게 되었다. 시장에 가도 물건을 얼마나 사야 하는지 판단하지 못하고 돈이 있는 대로 물건을 산다. 한 끼니에 두 가지 국을 끓여 음식이 남기 일쑤였고, 밥이 있는데도 새롭게 밥을 지었다. 이씨 역시 앞쪽뇌 혈관이 막히면서 뇌세포가 심하게 파괴된 경우이다.

식욕이나 성욕은 외부 자극 없이 저절로 발생하는 내부 욕구이다. 이 욕구는 감정뇌에서 올라오는데, 앞쪽뇌의 아랫면 즉 충동억제 센터가 손상되면 충동이나 쾌락을 조절하지 못한다. 우발적인 강간을 저지르거나 충동 구매를 심하게 한다면 앞쪽뇌의 충동억제 센터가 손상되어 있을 가능성이 크다.

나희숙씨(55·여·가명)는 최근 식사량이 부쩍 늘어났다. 가족들은 나씨의 식욕이 좋아진 것으로만 알았다. 그런데 어느 날 호텔 뷔페에서 가족끼리 식사를 하던 중에 이상한 점이 발견되었다. 음식을 접시 가득 채우고도 수십 차례 날라다 먹는 바람에 주위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될 정도였다. 몸무게가 1년 새 10kg이나 불었다. 나씨는 병원에서 전두엽 손상으로 인한 치매 초기 진단을 받아 치료 중이다.

마약이나 도박에 빠지는 사람은 앞쪽뇌의 충동억제 센터가 손상을 입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미국 플로리다 주립대학의 하일만 교수는 마약 환자의 인지기능을 연구했다. 마약 때문에 앞쪽뇌가 망가지는 것이 아니라 앞쪽뇌가 망가져서 마약을 할 수 있다는 결과를 내놓았다. 충동과 욕구를 억제하지 못해 마약에 손을 댄다는 것이다.

손상의 주 요인은 뇌졸중ᆞ외상ᆞ음주

앞쪽뇌가 손상된 사람들은 이 외에도 다양한 증상을 보인다. 교통 신호가 바뀌기도 전에 강박적으로 경적을 울려대는 조급증을 보이는가 하면 아무런 이유도 없이 특정 물건을 모으는 집착증이 생긴다. 예를 들어 50세 성인이 아이들 장남감총에 사용하는 비비탄이라는 까만콩 모양의 플라스틱 총알을 병적으로 수집하기도 한다.

다른 사람의 행동과 말을 무의식적으로 따라하는 모방증이 강해지고, 같은 그림을 똑같이 여러 번 그리는 반복증도 나타난다. 예를 들어 집과 나무가 있는 그림을 보여주고 똑같이 그리게 하면, 집은 그리지 않고 종이 가득 똑같은 나무만 계속 그려놓는 증상을 보인다. 나덕렬 교수는 “사람의 두뇌는 매우 중요한 기관이다. 특히 앞쪽뇌라 불리는 전두엽은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회사에서 CEO이고, 국가의 대통령 역할을 하는 부분이 몸에서는 바로 앞쪽뇌이다. 따라서 앞쪽뇌가 손상되지 않게 주의해야 한다.

뇌졸중, 외상, 음주 등이 앞쪽뇌 손상의 주요인이다. 이런 요인을 피해 앞쪽뇌 손상을 예방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평소에 앞쪽뇌를 활성화시켜두는 것이다. 이런 경우에는 앞쪽뇌가 손상되어도 그 증상이 심하게 나타나지 않는다.

앞쪽뇌 활성화는 개인뿐만 아니라 국가 경쟁력 확보 측면에서도 고려해볼 일이다. 국민의 창의력, 의지력이 높은 국가가 미래를 이끌어갈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앞쪽뇌가 활성화된 사람이 우리나라에 많으면 좀더 이른 시일 내에 세계 강국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앞쪽뇌 손상이 치매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말한다. 뇌에 문제가 생겨 치매가 발생하는데 특히 앞쪽뇌에 문제가 생기면 가장 심각한 치매 증상을 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앞쪽뇌를 활성화하는 것은 단순히 머리가 좋아지게 할 뿐만 아니라 치매 예방 효과까지 있는 셈이다.

▲ MRI를 이용한 뇌 기능 영상은 뇌 구조 영상을 얻을 수 있다. ⓒ동서신의학병원 제공

앞쪽뇌를 손상시키는 요인은 수없이 많다. 우선 뇌혈관이 막히는 뇌경색과 뇌혈관이 터지는 뇌출혈 등으로 인한 이른바 중풍이 주요 요인 중 하나이다. 이같은 뇌혈관 질환으로 앞쪽뇌가 망가질 가능성이 크며, 뇌의 다른 부위가 망가진 경우보다 심한 증상을 보인다. 예를 들어 뒤쪽뇌가 손상되면 기억력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정도이지만, 앞쪽뇌가 손상되면 사람을 못 알아보는 등 ‘나 아닌 나’가 되는 경우가 왕왕 있다.

즉, 혈관성 치매에 걸리면 앞쪽뇌가 쉽게 손상된다. 혈관성 치매에서는 큰 뇌혈관이 반복적으로 막히는 경우와 작은 뇌혈관이 반복적으로 막히는 경우가 있다. 앞쪽뇌에 산소를 공급하는 큰 뇌혈관이 막히면 앞쪽뇌가 손상되지만 이는 앞쪽뇌 혈관에서만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이에 비해 앞쪽뇌에서는 작은 뇌혈관이 빈번하게 막힌다. 작은 혈관 막힘은 증상이 미미하기 때문에 평상시에 잘 느끼지 못하고 살지만 가벼운 뇌졸중이 반복적으로 생기면서 앞쪽뇌에 그 흔적이 남게 된다. 이 흔적이 많아지면 앞쪽뇌가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된다.

외상으로 앞쪽뇌가 손상되기도 한다. 한 50세의 남성 환자는 회사에서 승진한 기념으로 부서원들과 술을 마셨다. 술에 취해 계단을 내려가다 굴러떨어져 뇌를 다쳤다. 수술 후 의식은 회복했지만 앞쪽뇌가 손상되었다. 기억력은 그대로였고 방향 감각과 계산 능력도 정상이었다. 그러나 직장 생활을 계속할 수는 없었다. 사고 이후 일을 할 때 감정 조절이 되지 않아 사소한 것에도 화를 내고 감정이 폭발하면 욕설까지 퍼부었다. 또 여성에 대한 관심이 지나치게 커졌다. 여성의 말이라면 무조건 믿었고, 여성 점원이 파는 신발 깔창을 35만원이나 주고 사 부인으로부터 빈축을 사기도 했다.

음주도 앞쪽뇌의 최대의 적이다. 알코올은 좌뇌와 우뇌를 연결해주는 섬유다발인 뇌교량을 주로 손상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과거에는 일산화탄소가 주성분인 연탄가스로 인해 많은 사람들의 앞쪽뇌가 손상되기도 했다.

이런 위험 요소에 대한 치료법은 거의 없지만 퇴행성 치매를 제외하고는 예방이 가능하다. 따라서 예방이 최선의 치료법이다. 다만 앞쪽뇌에 대한 연구가 전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만큼 더욱 적극적인 치료법이 개발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까지 뇌세포는 한 번 손상되면 재생이나 회복이 불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최근 뇌세포 일부가 회복된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고 있다. 또 여러 신체 조직으로 분화할 수 있는 줄기세포(stem cell)를 이용해서 손상된 뇌세포를 치료하는 연구도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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