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쪽뇌만 잘 키워도 ‘머리짱’ 된다
  • 나덕렬 (삼성서울병원 신경과 교수) ()
  • 승인 2008.09.23 14:37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독서ᆞ쓰기ᆞ외국어 공부ᆞ창작 활동 등 반복하면 뇌겉질 두꺼워져
▲ 독서는 앞쪽뇌 활성화의 첫걸음이다. 기억력은 물론 상상력까지 동원함으로써 앞쪽뇌가 활발히 작동하기 때문이다. ⓒ시사저널 임영무

”근육형 인간이 되어야 한다.” 이 말은 운동을 열심히 해서 근육과 체력을 키워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운동을 통해 근육이 발달하는 것처럼 뇌도 자극을 많이 주면 변한다는 뜻이다. 근육을 사용하면 알통이 생긴다. 이 ‘알통 이론’이 뇌에도 똑같이 적용되는 셈이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의사들은, 뇌는 근육이 아니므로 노력해도 뇌세포에 변화가 생기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뇌는 한 번 굳어지면 변하지 않는다고 인식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뇌세포는 어떤 노력을 하느냐에 따라 변한다는 사실이 쥐를 통한 실험 결과로 밝혀졌다.

캐나다의 브라이언 콜브 박사는 쥐의 등을 붓으로 매일 반복해서 쓰다듬으면 일부 뇌세포에 변화가 나타난다고 보고했다. 쥐의 뇌세포를 현미경으로 관찰해보니 나무에서 새순이 돋아나듯이 뇌세포의 수상돌기에 가지가 증가했다는 것이다. 이를 뇌유연성(brain plasticity)이라고 하는데 무엇을 듣고, 행동하고, 생각하느냐에 따라 뇌세포가 변한다는 의미이다.

뇌의 유연성은 동물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영국 런던 대학의 엘리노어 맥과이어 박사는 런던 택시 운전사들의 뇌 구조를 자기공명영상(MRI)으로 살펴보았다. 런던에서 택시 운전사를 하려면 수천 개의 장소를 헤매지 않고 찾는 훈련을 한 후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약 2년 동안 길 찾기 훈련을 한다고 한다. 이런 런던 택시 운전사들의 해마 뒷부분은 일반인보다 크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특히 운전 경력이 긴 운전사일수록 더욱 컸다. 길 찾기 훈련으로 뇌세포가 그만큼 늘어난 것이다.

 
▲ 발표와 창작 활동은 앞쪽뇌 활성화에 도움을 준다. 사진은 아시아 문화중심 도시 설계를 발표하는 장면과 손가락으로 그림을 그리는 화가의 모습. ⓒ뉴시스 ⓒ연합뉴스

런던 택시 운전사들의 해마 뒷부분 일반인보다 커

2004년 과학 전문지 <네이처>에 발표된 연구 결과는 더욱 놀랍다. 20대 일반인들에게 3개월 동안 서커스 저글링을 연습시켰다. 물론 저글링을 해본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이 사람들의 뇌를 연습 전과 후에 촬영했더니 뇌겉질이 두꺼워졌다. 과거에는 머리를 많이 쓰면 뇌세포와 세포 간 연결이 기능적으로 강화된다고 믿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뇌겉질이 두꺼워지거나 얇아진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또 저글링 연습을 했던 사람을 3개월 동안 연습하지 못하게 한 후 뇌를 촬영했더니 뇌겉질 두께가 다시 원상태로 얇아졌다.

뇌겉질이 두꺼워진다는 것은 앞쪽뇌가 발달한다는 의미이다. 다행스럽게도 앞쪽뇌를 발달시키면 뒤쪽뇌도 같이 발달한다. 예를 들어 그림 그리는 사람은 그림 감상하기가 쉽다. 영어 회화에서 자기가 자주 쓰는 표현을 아무리 빨리 지나가도 귀신같이 들을 수 있다. 말하기를 하면 듣는 능력도 저절로 좋아진다는 말이다. 따라서 앞쪽뇌를 발달시키면 뒤쪽뇌까지 발달하는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다.

그렇다면 일상 생활에서 앞쪽뇌를 활성화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다음의 방법들은 의학적으로 앞쪽뇌 활성화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증명된 바 있다.

■ TV 대신 책 읽기
영화 <해리포터>를 보았다고 하자. 이후 <해리포터>를 책으로 읽으면 영화 내용이 머리에 그려진다. 이는 상상력이 아니라 기억력이다. 반대로 책을 먼저 읽으면 책의 정보를 조합해 장면과 인물을 상상한다. 이는 앞쪽뇌가 뒤쪽뇌에 저장되어 있는 장면 조각들과 인물 정보를 모아서 마치 영화를 만들듯이 재생하는 셈이다. 그러므로 TV나 영화를 보는 것보다 책을 읽는 것이 앞쪽뇌뿐만 아니라 뒤쪽뇌까지 발달시킨다.

■ 읽기보다 쓰기
책을 읽더라도 아무 생각 없이 읽으면 앞쪽뇌가 활성화되지 않는다. 문장이 복잡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면 좌측 앞쪽뇌의 표현 기능이 강화된다. 또, 단순한 읽기보다는 쓰기가 앞쪽뇌를 발달시킨다. 물론 단순히 글을 베끼는 것은 뒤쪽뇌가 관장하지만 문장을 생각하고 구성하고 표현하는 것을 앞쪽뇌가 맡는다. 편지·일기 쓰기 등이 앞쪽뇌 활성화에 좋다.

■ 발표하기
언어 중추는 크게 두 가지 센터로 나뉜다. 듣는 센터와 표현하는 센터이다. 듣는 센터는 뒤쪽뇌에, 표현하는 센터는 앞쪽뇌에 있다. 따라서 듣기보다 말할 때 앞쪽뇌가 활성화된다. 물론 말하기도 말하기 나름이다. 친구들과 가벼운 대화는 자주 쓰는 단어와 표현을 사용하기 때문에 앞쪽뇌 활성화에 효과가 덜하다. 반면 연설이나 발표는 앞쪽뇌를 강하게 자극한다. 특히 원고를 보지 않고 발표하면 앞쪽뇌 활성화에 더 큰 효과가 있다. 즉 말수 자체보다는 내용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 적절한 단어로 표현하기
발표나 연설을 할 때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므로 앞쪽뇌가 좋아지는 것은 끊임없이 단어를 탐색하기 때문이다. 발표할 기회가 좀처럼 없다면 신문 기사나 책을 읽은 다음 자신의 생각을 남에게 얘기하는 것도 앞쪽뇌 활성화에 좋은 방법이다.

제한된 시간에 어떤 단어를 가능한 한 많이 생각해내는 행동은 앞쪽뇌를 자극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예를 들어 자신이 알고 있는 꽃 이름을 1분 안에 빨리 말해보는 것이다. 꽃 이름은 뒤쪽뇌에 저장되어 있는데, 이 정보를 검색하고 끄집어내어서 말하는 것은 앞쪽뇌가 주관한다. 말꼬리 잇기 게임이나 십자말 풀이(cross word puzzle)도 같은 효과가 있다.

■ 작업 기억 용량 늘리기
우리의 뇌는 중요한 것을 오래 기억하고 덜 중요한 것은 짧은 순간 기억한다. 이를 각각 장기 기억과 단기 기억이라고 한다. 단기 기억을 작업 기억(working memory)이라고도 한다. 작업 기억은 장기 기억으로 보관되기도 하고, 반대로 장기 기억 정보를 작업 기억으로 불러와 사용하기도 한다.

그런데 작업 기억은 정보를 잠시 보유하고 조작하는 등의 작업을 한다. 예들 들어 ‘1-8-4-2-9-5-6’을 불러주고 따라 하라고 하면 단기 기억에 의해 따라 한다. 그러나 이를 거꾸로 기억해내라고 하면 작업 기억이 작동해야 한다. 뒤의 숫자부터 기억하고 다시 조합하는 작업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작업 기억은 앞쪽뇌에서 일어나므로 작업 기억을 많이 사용할수록 앞쪽뇌가 좋아진다. 예를 들면 100에서 13을 순차적으로 빼는 암산을 하거나 전화번호나 긴 단어를 거꾸로 말하기, 장기나 바둑에서 다음 수 생각하기 등이 대표적인 방법이다.

■ 외국어 말하기
연구 결과에 따르면 모국어보다 외국어를 말할 때 활성화되는 뇌 부위가 넓다. 모국어를 사용할 때는 왼쪽뇌만 사용하지만 외국어를 말할 때는 오른쪽뇌까지 활성화된다. 모국어보다 외국어를 말할 때 뒤쪽뇌에 저장되어 있는 단어를 검색하는 데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고, 단어와 단어를 조합해서 문장을 구성하는 문법 능력이 필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문법 능력은 앞쪽뇌에서 나온다. 그러므로 외국어로 말하거나 발표하는 것은 앞쪽뇌 발달에 많은 도움이 된다.

▲ 발표나 프리젠테이션을 할 때도 적절한 단어를 사용하는 노력이 앞쪽뇌를 활성화시킨다. ⓒ뉴시스

■ 창작 활동
시나 소설, 시나리오 쓰기, 작사나 작곡 하기, 게임 개발, 조각, 디자인, 설계, 만화 그리기, 영화 찍기 등 창작 활동을 할 때는 앞쪽뇌를 활발하게 사용한다. 창작에는 고통이 따른다. 산을 오르는 사람과 산을 멀리서 바라보는 사람의 차이처럼 창작하는 사람과 창작물을 감상하는 것은 앞쪽뇌 활성화에 큰 차이가 있다.

4개의 짧은 선이 있다. 이들을 서로 연결해 여러 모양을 만들 수 있다. 4분 안에 서로 다른 모양을 최대한 많이 만들어보자. 정상인은 여러 가지 모양을 만들지만 앞쪽뇌 손상 환자는 같은 것만 여러 개 만들게 된다.

■ 시간 관리하기
시계가 없는 곳에서 삐 소리를 순차적으로 들려준 다음 그 사이 몇 초가 지났는지 알아맞히게 했다. 정확도가 꽤 높았다. 책을 읽게 해서 정신을 다른 곳으로 분산시켜도 그 시간을 곧잘 맞춘다. 뇌에는 시계 능력이 있는데 단순히 하나, 둘, 셋 등으로 숫자를 세는 일에는 작은골(소뇌)이나 바닥핵(basal ganglia)이 주로 관여한다. 그러나 어떤 일을 하다가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가늠하는 것은 앞쪽뇌가 한다.

앞쪽뇌는 뇌 안의 시계와 외부 시계를 이용해 시간 관리를 하는 곳이다. 시간 관리를 잘해서 앞쪽뇌가 활성화되는 것인지, 앞쪽뇌가 좋아서 시간 관리를 잘하는 것인지 명확히 밝혀진 바는 없다. 하지만 시간 관리를 제대로 하면 앞쪽뇌는 좋아진다고 할 수 있다.

■ 계획 세우기
앞쪽뇌가 손상된 사람은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우지 못한다. 계획을 세우거나 일의 순서를 정하더라도 당장 눈앞에 보이는 일과 쾌락적인 것에 우선순위를 둔다. 계획이란 급한 것과 덜 급한 것, 중요한 것과 덜 중요한 것에 따라 우선권을 부여하는 것이다. 일의 경중을 따져 계획을 세우는 것은 앞쪽뇌 발달에 좋다.

■ 결단력 키우기
어떤 정보를 수집한 다음 편집하고 종합해 최종 결론을 내리는 작업은 앞쪽뇌를 활성화시킨다. 장기나 바둑을 둘 때 현재 상황을 참작해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계산한 다음 가장 유리하다고 생각되는 것을 고른다. 이때 앞쪽뇌 기능이 증진된다. 그만큼 신중한 결정을 내리기 위해 앞쪽뇌가 활발하게 움직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간단한 결정에도 장고하는 것은 앞쪽뇌 활성화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점심으로 자장면을 먹을까 짬뽕을 먹을까 하는 선택은 바로바로 결정하는 것이 좋다.

▲ 창작과 논리는 앞쪽뇌 활성화에 필요하다. 외국어 활용도 앞쪽뇌를 자극하는 한 방법이다. 사진은 지능형 모형차 경진대회(오른쪽)와 부산에 생긴 ‘잉글리시 버스’ 내부(맨 오른쪽). ⓒ연합뉴스 ⓒ뉴시스

■ 논리력 키우기
논리적인 사고 역시 앞쪽뇌를 활성화시킨다. 학생들이 논술문을 쓰거나 판사가 판결문을 쓰는 것이 좋은 사례이다. 찬성과 반대로 나누어 토론하기도 매우 좋다. 찬반 역할을 바꾸어 하는 훈련을 통해 논리력이 향상되면서 앞쪽뇌도 활성화된다.

■ 예측 기능 높이기
앞으로 일어날 일을 미리 예측하는 것이 앞쪽뇌에 좋다. 기업인이나 공무원이 몇 달 또는 몇 년 앞을 예측해 계획을 짜는 것이 좋은 예이다. 과학자가 데이터를 모아 가설을 세우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명절 때 고향을 가기 위해 언제, 어떻게 이동하는 것이 좋을지 미리 예상하는 것, 여행할 때 여행 기간의 일정을 고려해 알맞게 짐을 꾸리는 것, 한 달 생활비를 계획하는 것, 자녀 교육, 내집 마련을 위해 저축이나 보험을 들어 재산을 관리하는 것 등도 일상생활에서 앞쪽뇌를 활성화할 수 있는 방법이다.

■ 내 마음 모니터링하기
하루에도 많은 사람을 만난다. 어떤 사람은 하루 종일 남의 험담을 늘어놓는다. 그러나 본인은 얼마나 부정적인지 전혀 모른다. 이런 자신을 보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어느새 부정적인 평가는 긍정적인 평가로 바뀌면서 앞쪽뇌가 강력하게 발달하기 시작한다.

■ 사람 귀하게 여기기
평소 사람을 귀하게 여겼던 한 아줌마가 있었다. 앞쪽뇌에 이상이 생기면서 사람보다 돈과 먹을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기기 시작했다. 사람을 돕지도 않고 예의도 없어졌다. 앞쪽뇌가 손상되면 인간보다 물건이 더 중요하게 보인다. 이 사실을 뒤집어 생각해보면 사람을 귀하게 여기면 앞쪽뇌가 발달한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