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추 트레인'을 누가 멈추랴
  • 김형준 (메이저리그 전문기자) ()
  • 승인 2008.09.30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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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저리거 추신수 선수, 수술 9개월 만에 복귀해 5할 넘는 장타율 기록... '주전 확보' 예감
▲ 8월 22일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추신수 선수가 투런 홈런을 친 뒤 동료들과 하이파이브하고 있다. ⓒAP연합

4백17승을 거둔 메이저리그의 전설적인 투수, 월터 존슨의 별명은 ‘빅 트레인’이다. 공이 기차 소리를 내며 들어왔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다. 2005년 22승을 올렸던 돈트렐 윌리스의 별명은 이니셜을 딴 ‘D-트레인’이다. 어린 시절 할머니가 지어주었다. 추신수(26·외야수)는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팬들로부터 ‘추추 트레인’으로 불린다. ‘choo-choo’는 우리말로 ‘칙칙폭폭’이다.

추신수가 타석에 나설 때마다 클리블랜드의 홈구장 프로그레시브필드에는 ‘우~’라는 소리가 저음으로 울려퍼진다. ‘추우~’가 그렇게 들리는 것으로, 야유가 아니라 응원이다. ‘추추 트레인’은 그에 힘입어 최근 신바람을 내며 달리고 있다. 추신수의 질주는 어떤 의미일까. 그리고 무엇이 그런 질주를 가능하게 했을까.

2000년 8월, 시애틀 매리너스가 부산고의 좌완 에이스이자 4번 타자인 추신수를 데려가자 모두가 투수를 시킬 것으로 예상했다. 추신수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시애틀이 추신수의 손에 쥐어준 것은 방망이었다. 시속 1백45km 이상의 강속구를 뿌릴 수 있는 왼손잡이는 당연히 투수가 된다. 애틀랜타 브레이브스가 신일고의 좌완 에이스이자 4번 타자였던 봉중근을 마운드에 올린 것도 당연했다. 하지만 시애틀은 ‘좌완 추신수’를 포기했다. 마운드에 묶어두기에는 올라운드 플레이어로서의 재능이 너무나 뛰어났기 때문이다.

2005년 4월, 추신수는 한국인 타자 2번째로 메이저리그에 입성했다. 하지만 대타 세 타석 만에 마이너리그로 돌아갔다. 9월에 다시 올라왔지만 선발 5경기가 전부였다. 이듬해 7월 3번째 승격에서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시애틀에는 추신수의 자리가 없었다. 우익수 스즈키 이치로는 팀의 상징이며, 좌익수 라울 이바네스는 중심타자이다. 중견수를 맡기에는 홈구장 세이프코필드의 외야가 너무 넓었다. 난감해진 시애틀은 다시 투수를 해보지 않겠냐고 했다. 추신수는 거절했다. 포기하기에는 여태까지 한 노력이 너무 아까웠다. 시애틀은 결국, 그를 클리블랜드로 보냈다. 시애틀이 준 기회는 고작 28타석이었다. 오비이락이었는지, 추신수가 떠난 얼마 후 이치로는 우익수를 포기하고 중견수가 되었다.

‘홈런 쇼’도 보여주며 강타자 면모 과시

클리블랜드는 유망주에게 기회를 주는 데 인색하지 않은 팀이었다. 추신수는 데뷔전에서 홈런을 때려냈다. 나흘 후에는 조시 베켓의 강속구를 받아쳐 결승 만루 홈런을 만들어냈다.
‘추추 트레인’이 등장했다. 이적 후 기록한 타율2할9푼5리는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2007년 6월, 추신수는 트리플A에서 메이저리그의 부름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왼쪽 팔꿈치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되자 감독을 찾아가 부상 사실을 알렸다. 추신수는 팔꿈치 수술 중 가장 위험하며 회복 기간이 가장 오래 걸리는 인대 접합 수술을 받았다.

지난 6월, 추신수는 수술 9개월 만에 메이저리그 경기에 나섰다. 하지만 팀은 이제 막 부상에서 회복한 그를 올림픽에 보낼 수 없었다. 추신수는 올림픽에 꼭 나가고 싶었다. 고교 이후 달지 못한 태극마크에 대한 열망도 컸지만, 병역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추신수는 주전 확보도 하지 못할 경우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놓치는 상황에 몰렸다. 첫 53경기 성적은 타율 2할5푼3리 4홈런. 특히 4할1푼4리에 불과한 장타율이 실망스러웠다. 이대로라면 주전은커녕 시즌 후 방출되더라도 이상하지 않았다. 결국 그의 올림픽 출전은 무산되었다.

▲ 8월 12일 볼티모어 오리올스와의 경기에서 2루타를 치고 나간 추신수 선수가 런다운 상황에 걸렸다가 재치있게 위기를 모면하고 있다. ⓒAP연합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추신수의 방망이가 불을 뿜기 시작했다. 8월11일 1경기에서 2루타 3개를 때려낸 것을 시작으로 8개의 안타 중 7개를 2루타로 만들어내는 ‘2루타 쇼’를 선보였다. 2루타는 다시 홈런으로 업그레이드되었다. 8월22일 23경기 만에 홈런을 때려낸 것을 시작으로 10경기에서 5개의 홈런을 몰아쳤다. 9월20일에는 처음으로 한 경기 2개를 쏘아 올렸다. 3개의 2루타를 때려낸 그날 이후 성적은 38경기에서 타율 3할8푼 9홈런 31타점. 출루율은 4할6푼7리에 장타율은 7할2푼9리이다. 같은 기간 메이저리그에서 추신수보다 더 높은 타율을 기록한 선수는 없다. 홈런과 타점은 알렉스 로드리게스와 같다.

그렇다면 무엇이 추신수를 달라지게 했을까. 국내외 미디어에서는 ‘왜 좋아졌는지’에 대한 리포트를 작성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스윙이나 스탠스 등 기술적인 변화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추신수의 방망이가 매섭게 돌아가게 된 이유는 단 하나, 바로 시간이었다. 지난해까지 추신수가 메이저리그에서 얻은 기회는 2005년 21타석, 2006년 1백79타석, 지난해 20타석이 전부였다. 좌완 선발이 나오면 빠졌기 때문에 꾸준히 나오지도 못했다. 하지만 클리블랜드는 추신수가 한 달 넘게 좋은 활약을 하지 못했음에도 기회를 거두어들이지 않았다. 경험이 쌓이면서 추신수는 메이저리그 투수들과 그들의 피칭에 대해 비로소 눈을 떴다.

 
‘한국 출신 성공한 타자’ 1호 탄생 기대

9월25일 현재 추신수의 성적은 타율 3할7리, 출루율 3할9푼7리, 장타율 5할4푼8리이다. 규정타석은 채우지 못했지만 타율 3할, 출루율 4할, 장타율 5할이라는 강타자의 조건에 부합된다. 출루율과 장타율의 합인 OPS는 9할4푼5리. 3백50타석 이상 출장한 메이저리그 타자 중 추신수보다 OPS가 높은 외야수는 매니 라미레스, 카를로스 퀸튼, 라이언 루드윅, 맷 할러데이 4명뿐이다.

특히 큰 의미는 5할4푼8리의 장타율이다. 최희섭이 메이저리그에서 기록했던 가장 좋은 장타율은 4할5푼3리이다. 올해로 8년 연속 2백 안타를 달성한 이치로의 장타율은 3할8푼9리, 4년간 4천8백만 달러 계약을 맺고 화려하게 입성한 후쿠도메 고스케(시카고 컵스)의 장타율은 3할7푼7리이다.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일본인 타자 중 최고의 파워라는 마쓰이 히데키의 최고 장타율은 2004년에 기록한 5할2푼2리이다. 마쓰이는 나머지 다섯 시즌에서는 5할을 넘기지 못했으며, 통산 4할7푼8리에 그치고 있다. 메이저리그 진출 직전, 마쓰이는 일본에서 50개의 홈런을 날렸고 6할9푼2리의 장타율을 기록했다. 통산 장타율도 5할8푼2리에 달했다. 그런 마쓰이가 메이저리그에서 30홈런을 넘기는 것도 힘들어하자 ‘장타력’은 동양인 타자의 벽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추신수는 그 벽을 깼다.

그렇다고 추신수가 ‘메이저리그 주전 외야수’라는 목표를 이룬 것은 아니다. 단지 ‘주전 유력’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내년 스프링캠프에 참가할 수 있게 되었을 뿐이다. 메이저리그에서는 2년차와 4년차에 큰 고비가 찾아온다. 신인 때 좋은 활약을 한 선수는 대부분 이듬해 크게 고전한다. 1년 사이 상대 팀들이 약점을 낱낱이 밝혀내기 때문이다. 그렇게 약점을 2번 이상 극복하는 과정을 거쳐야 메이저리그에서 자리를 잡을 수 있다.

WBC 4강과 올림픽 금메달에 빛나는 우리야구는 메이저리그에서 성공한 선발투수(박찬호)와 마무리(김병현)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타자는 아직 없다. 게다가 일본도 아직 진입시키지 못한 파워히터이다. 그 꿈을 위해 ‘추추 트레인’은 지금도 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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