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부로 ‘삽질’하다 큰코다친다
  • 김재태 편집부국장 (niceshot@sisapress.com)
  • 승인 2008.10.06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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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인 얀 마르튀스 베르트랑은 지구촌 곳곳을 누비며 항공 사진을 전문으로 찍는 작가이다. 그는 지난해 몇 차례 한국의 땅과 하늘을 찾아 다도해의 영롱한 섬들과 산사(山寺)들의 고즈넉한 자태에 흠뻑 취한 채 돌아갔다. 그의 렌즈 안에서 산중의 묘소는 미소 짓는 사람의 얼굴이 되었고, 연해의 김 양식장은 모딜리아니의 그림만큼 아름다운 구상화로 탈바꿈했다. 그러나 상공의 헬리콥터에 앉아 연신 “뷰티풀!”을 외치던 그의 표정도 유독 서울에서만은 밝지 못했다. 그가 서울의 하늘에서 건져올린 사진은 고작 빌딩 숲 사이에 엉거주춤 불편하게 자리를 편 고궁이나 기형적인 미감의 쓰레기장 같은 것이 대부분이었다. 촬영을 끝낸 후 그는 무겁게 이런 말을 남겼다. “서울은 아무리 봐도 도시 계획이 잘 되어 있지 않은 곳 같군요.”

 일찌감치 도시를 구획 정리했고 다수의 세계적인 건축물을 지니고 있는 데다 관광지로도 명성이 높은 파리에서 활동한 그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지 모른다. 가본 사람들은 대부분 느꼈겠지만 파리는 단조로우리만치 구도가 잘 짜여진 도시이다. 시내의 건물들은 거의 모노톤의 색채로 5층 높이에서 키를 맞추고 있다. 파리가 이처럼 일찍이 모법적인 도시의 모습을 갖추게 된데는 오스만 남작이라는 걸출한 선각자의 공이 컸다. 그는 19세기 중반에 당시로서는 무모하리 만큼 거대한 프로젝트를 세우고 이 오래된 도시에 도로와 상·하수도망이라는 새 혈관을 체계적으로 뚫어 줌으로써 후대가 두고두고 감사할 ‘위대한 유산’을 남겼다.

 지난달에는 서울에서도 ‘역사적인’ 일이 있었다. 여의도 면적의 72배에 달하는 군사 시설 보호 구역과 분당의 16배에 이르는 그린벨트 지역이 해제된다는 정부 발표가 그것이다. 이는 미국의 ‘금융 식중독’ 사태와 멜라민 파동 등 굵직한 이슈에 묻혀 크게 주목되지 못했지만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는 뉴스였다. 실로 엄청난 규모의 땅이 자연의 손에서 사람들의 손으로 인도된다는 얘기이다.

 산에 자주 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경치 좋은 곳은 어김 없이 군부대가 차지하고 있는 것을 보고 한 번쯤 혀를 찼을 것이다. 그런 ‘비밀의 땅’들이 오랜만에 국민의 품으로 돌아오는 것은 결코 나쁜 일이 아니다. 사실 너무 오래 묶여 있었다는 느낌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문제는 그 반환의 방식이다. 이렇게 많은 땅을 한꺼번에 풀면 그 뒤의 일은 보지 않아도 뻔한 악몽이다. 지나간 시대에 그토록 무차별적으로 국토를 할퀴었던 난개발의 재앙이 재연될 것은 자명하다. 그런 일이 되풀이된다면 지금 정부가 외치는 ‘녹색 성장’은 그야말로 지나가던 소도 웃을 공염불이다.

 그 분명하고 가공할 위험 앞에서 정부는 이제라도 머리를 단단히 싸매야 한다. 금싸라기 같은 땅들을 풀긴 풀되 영리하게 하라는 말이다. 방법은 한 가지이다. 일괄 해제하는 대신 합리적이고 친주민적으로 계획이 잘 세워진 곳부터 순차적으로 푸는 것이다.

 한 번 상처난 국토가 제대로 치유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드는지를 우리는 이미 뼈 아프게 체험했다. 그리고 호흡기가 상할 대로 상한 우리 땅의 폐활량은 아직도 허약하기만 하다. 기형이 된 서울의 모습을 안타까워한 베르트랑의 탄식을 흘려들어서는 안 된다. 발은 누울 자리를 보고 뻗어야 하며, ‘삽질’은 아무 데서나 하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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