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음악’으로 뱃속 채운 사람들
  • 정락인 (freedom@sisapress.com)
  • 승인 2008.10.06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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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저작권협회 임직원들, 조직적으로 저작권료 빼돌려 “회장이 선거 자금도 뿌렸다”

▲ 지명길 회장이 서울 신당동 자택을 나서고 있다(위쪽). 오른쪽은 지회장이 회장 선거 당시 참모에게 입금한 통장 사본. ⓒ시사저널 유장훈

한국음악저작권협회(이하 음저협)가 부정과 비리로 몸살을 앓고 있다. 고구마 줄기처럼 당기면 당길수록 새로운 것이 뽑혀 나오고 있다. 회원들에게 돌아가야 할 저작권료를 가지고 협회와 특정 임직원들의 배만 불리고 있다는 지적이 안팎에서 들린다.

<시사저널>은 지난 7월22일자(제978호)에 음저협의 분배 조작 실상을 특집으로 보도했다. 보도가 나간 후 음저협에 대한 각종 제보가 잇따랐고, 경찰은 본격 수사에 착수했다. 경찰은 음저협에 대해 ‘20억원 횡령·배임’ 혐의를 적용하고, 사건을 검찰에 넘겼다. 경찰청 경제범죄특수수사대 이범해 반장은 “경찰에서는 사건을 종결하고 지난 9월29일에 검찰로 송치했다. 사안에 따라 기소와 불기소가 있는데 어떻게 적용할지는 검찰의 몫이다”라고 말했다.

음저협은 음악 창작자들을 대신해 음악저작권을 신탁·관리하는 비영리 사단법인이다. 그런데도 그동안 광범위하게 회원들의 저작권료를 빼돌리고 횡령했다. 여기에는 협회의 일부 임직원들이 조직적으로 개입한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또한, 지난 2005년 회장 선거 때 회원들에게 거액의 돈이 뿌려졌다는 의혹이 추가로 제기되고 있다.

<시사저널> 취재에 따르면 음저협은 지난해에만 총 6억9천6백46만원의 공탁금(8건) 이자를 일반회계로 전용함으로써 사실상 회원 저작료를 횡령했다. 예를 들어, 엠넷미디어(과거 도레미, GM기획)와 회원 69명이 법원에 20억원을 공탁한 후 이자 6억6천5백만원이 발생했다. 음저협은 이자로 발생한 금액 중 10%(약 6천6백50만원)를 수수료로 떼고 나머지 약 6억여 원을 회원들에게 분배했어야 하는데도 분배하지 않았다.

공탁금 이자 6억9천여 만원 일반회계로 전용

음저협은 신탁법에 따라 영리 행위를 하지 못 하도록 되어 있다. 회원의 권익과 저작권 사용료의 공정한 징수와 분배만 할 수 있다. 따라서 협회 발전기금이나 복지기금, 장학금 등 어떤 명목으로도 돈을 받을 수가 없다. 그런데도 음저협은 음악저작물 무단 도용 관련 소송을 하면서 벅스로부터 7억원의 복지기금을 받았다. 이 돈에 대해 어떤 명목으로 영수증 처리를 했는지도 의문이다. 현재 음저협의 회원은 총 7천여 명이다. 이 중 선거권, 피선거권을 가진 정회원은 6백여 명으로 10%가 채 안 된다. 음저협의 운영 시스템은 종신 회원인 정회원에 의해 결정되며, 정회원의 70~80%는 60세 이상의 원로들로 구성되어 있다.

정회원 위에는 25인의 평의원회가 있다. 평의원회는 이사회에서 의결된 사항을 다시 심의하고 변경할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음저협의 실질적인 의사결정권은 25명의 평의원회가 좌지우지하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기형적인 구조로 인해 협회 집행부는 평의원회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다. 결국, 다수의 회원들이 소수의 정회원이나 평의원회를 위해 권리를 침해당하고 희생당하는 일이 반복 되는 것이다.

이미 알려진 대로 음저협의 분배 조작은 일상화되다시피 했다. 보고서 조작, 가짜 저작권자를 내세워 저작권료 챙기기, 협회임원 등 특정인에게 과다하게 분배하기 등 분배 조작이 광범위하게 이루어졌다. 지난 2006년 문화관광부가 낸 한국저작권협회 ‘지도 감독 보고서’에 의하면 음저협 직원들에 의한 분배 조작 금액이 6억7천만원에 이른다. 음저협 직원이 민주당 최문순 의원에게 보낸 ‘분배 조작 진술서’에는 “협회의 주요 업무인 분배 업무는 가장 중요한 업무로서 규정대로 분배를 하지 않을 경우 많은 피해자가 발생하는 일인데, 협회의 사무총장은 (분배 조작을) 지시하고 분배 부장은 실행하고 협회장은 묵인하고 직원들은 지시에 따라서 엉터리 분배를 하고 있다”라고 진술했다.

음저협의 관리·감독 기관은 문화관광부 (이하 문광부)이다. 그동안 협회 회원 일부는 음저협의 방만한 운영과 분배 조작, 저작권료 횡령 등에 대해 문광부에 여러 차례에 걸쳐 진정서를 냈다. 하지만 그때마다 문광부는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고 지난해 1월과 7월에야 두 번에 걸쳐 음저협에 대한 업무 점검과 감사를 진행했다. 그런 정황을 들어 음악저작권자들 사이에서는 문광부와 음저협의 유착 관계를 의심하고 있다. 이들은 지난 2005년 유영건 전 회장 때 문광부 산하 저작권보호센터에 5억원을 낸 것을 문제 삼고 있다. 당시 1회에 한해 5억원을 주기로 했으나 지명길 회장 체제가 들어선 뒤에도 1억원을 줄여서 4억원씩 지원하고 있다. 이것도 역시 회원들에게 동의를 구하지 않고 집행부가 임의로 결정했다고 한다.

강영철 전 음저협 감사는 “4억원은 결국, 협회 회원들의 저작권수수료에서 만들어진 돈이다. 한 번만 5억원을 주기로 한 것인데 전임 회장이 계약을 잘못했다는 이유로 해마다 지원하고 있다. 회원들의 피 같은 돈을 협회 집행부가 함부로 사용하고 있다. 또, 지회장은 저작권법을 위반하는 등 신탁계약약관 규정에 따라 회원 자격이 없으므로 회장에서도 물러나야 한다고 여러 차례 주장했다. 그런데도 문광부가 이런 것을 왜 묵인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겠다”라고 말했다.

지명길 회장 선거 참모 “내가 보는 앞에서 봉투 건넸다”

▲ 서울 내발산동에 위치한 한국음악저작권협회. ⓒ시사저널 임영무

문광부는 음저협에 관한 문제가 불거지자 지난 9월12일자로 저작권 업무를 담당하던 저작권 정책관리실장(국장급), 저작권과 과장, 주무서 기관과 사무관 등을 일괄 교체했다. 한나라당 이정현 의원실은 이번 국정감사 기간 동안 문광부와 음저협의 유착 관계를 집중 조사할 방침이다.

지난 2005년 회장 선거 당시 지명길 회장의 선거 자금 출처에 대한 의혹도 끊이지 않고 있다. 당시 지회장의 선거 참모는 10여 명이다.

선거 참모로 활동했던 A씨는 “지회장이 선거 자금으로 2억원 이상을 썼다. 핵심 참모가 5명 정도 되었는데 이들이 정회원들을 만나면서 돈을 뿌렸다”라고 밝혔다. A씨는 그 증거로 지회장이 선거 자금 명목으로 입금한 통장 사본을 제시했다. 통장 사본에는 2005년 11월23일과 28일 두 번에 걸쳐 각각 100만원씩 2백만원이 입금되었다. A씨는 이 돈을 회원 6명에게 30만~60만원씩 전달했다고 한다.

A씨는 또 “나한테는 2백만원만 입금했지만 최측근 2~3명에게는 수천만 원의 뭉칫돈이 들어갔을 것이다. 계좌 추적을 하면 곧바로 나온다. 내가 보는 앞에서 지회장이 회원들에게 봉투를 직접 건네기도 했다. 지회장은 음저협 회장에 세 번을 나와 두 번 떨어진 후 당선되었다. 그동안 선거를 치르면서 알거지가 되었을 텐데 선거 자금이 어디에서 나왔는지도 의문이다. 음저협 회원들 사이에서는 과거 지부장 출신의 ㅅ씨가 선거자금을 댔다는 말이 있고, 그 대가로 자신이 추천한 사람을 지부장 자리에 앉혔다는 소문이 파다하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지명길 회장은 “나는 선거 때 혼자 움직였다. 참모가 따로 없었다. 누구한테 선거 자금을 뿌린 적도 없고 이미 그와 관련해서 검찰에서 조사도 받았다. 조사 결과 무혐의로 나와 결백하다. 의심이 가면 조사를 해보면 될 것 아니냐”라며 사실 무근임을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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