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이 되살려낸 ‘삐라의 추억’
  • 김회권 (judge003@sisapress.com)
  • 승인 2008.10.14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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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 단체들, 북한에 전단지 뿌리기 계속 통일부의 자제 요청에도 “개의치 않는다”

▲ 과거에 북한이 남한에 주로 날렸던 ‘삐라’가 이제는 북한의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 ⓒ시사저널 이종현

때지난 ‘삐라’가 다시 등장했다. 지난 10월2일 판문점 남측 지역 ’평화의 집’에서는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이후 처음으로 군사실무회담이 열렸다. 화두는 ‘삐라’였다. 북측은 “남측의 삐라 살포를 중단하고 살포 행위자의 처벌과 재발 방지를 약속해달라”라고 요구하면서 1시간30분 만에 회담을 접었다.

남측 대표단은 난감하다. 경색된 남북 관계를 풀기 위한 첫 단추가 ‘삐라’ 때문에 꼬여버렸다. 예전처럼 국방부가 뿌리고 있다면 덜 억울하겠지만 지금은 민간 단체가 뿌리고 있어서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곤혹스럽다. 삐라를 북으로 날려도 법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국방부 관계자는 “민간 단체의 삐라 살포를 막을 법적인 근거가 현재는 없다”라고 밝혔다.

김호년 통일부 대변인은 지난 10월8일 브리핑에서 “이들 단체에 남북 간 합의와 군사실무회담 내용 그리고 현재 남북 관계 상황 등에 대해 설명하고 도와달라고 했으며 해당 단체들의 반응을 지켜보고 있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삐라를 살포하는 단체들은 “웃기는 이야기”라며 무시하는 분위기이다. 한창권 탈북인단체총연합 회장은 “청와대에서도 전화가 와서 이번에는(삐라를 보낸 10월10일은 조선노동당 창건일이다) 좀 자제해달라고 하더라. 하지만 우리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라고 말했다.

삐라를 북으로 보내는 단체들은 모두 탈북자들이 만든 민간  단체들이다. 탈북자 단체들은 이구동성으로 “정부의 지원은 하나도 없다”라고 말한다. 기독교계나 보수 단체 등에서 조금씩 지원해주는 돈으로 조직을 유지하고 있다. 이들은 남한 내의 무관심에 서운해했다. 자유북한운동연합의 박상학 대표는 “오히려 대한민국 국민이나 정부는 북한의 눈치만 보면서 인권 문제에 대해서 외면한다”라고 말했다.

“평양 같은 대도시에 보내는 게 목표”

자타가 공인하는 ‘삐라의 달인’은 기독북한인연합의 이민복 대표이다. 이대표는 한 달에 약 2백만장 정도를 북쪽으로 날려보낸다. 이대표가 달인이 된 데에는 자신의 전공이 한몫했다. 그는 1995년에 탈북하기 전까지 북한과학원의 병리육종 분야 전문연구원으로 활동했다. 삐라를 효과적으로 날리기 위해 ‘기술 혁신’에 열중했다. 이대표는 2005년 8월, 비닐하우스용 비닐에 수소를 넣은 15m 크기의 대형 풍선을 개발한 뒤부터 더 많은 양의 삐라를 보낼 수 있었다. 하나의 풍선에는 1만장 정도의 전단을 매달 수 있다. 그는 “작은 풍선을 이용해 수없이 삐라를 보내도 반응이 없던 북측에서 본격적으로 항의를 해온 시기도 대형 풍선을 이용한 이때부터였다”라고 설명했다.

삐라를 땅으로 떨어뜨리기 위해서는 주로 화공 약품을 사용한다. 이대표는 화공 약품을 매듭 끈이나 철사에 발라 일정 시간이 지나면 끊어지는 방법을 고안했다. 이런 방법은 현재 다른 탈북자 단체들이 모두 배워 따라하고 있다. 삐라는 일반적인 종이가 아닌 비닐 재질을 이용해 제작한다. 낱장별로 흩날리게 하기 위해서이다. 종이는 뭉텅이 채 떨어지기 쉽다. 지면 디자인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정보를 담기 위해 글로만 빽빽이 채운다. 한국전쟁이 남침이라는 내용,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대한 이야기, 남한의 발전상 등은 지면의 단골 메뉴이다. 한창권 회장은 “남한 사람들이 보면 웃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진실된 내용을 북한 사람들이 읽기 쉽게 일부러 그쪽 말투로 적는다. 거기 실정 맞게 쓰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설명했다.

풍선을 날리는 기술이 발달하면서 이제는 파주, 포천, 문산, 철원, 강화도 등 경기도 북부 지역이라면 바람 방향이 맞을 경우 가리지 않고 띄운다. 남동풍이 불 경우에는 속초 등지에서 띄우기도 한다. 하지만 그래도 명당 자리는 있다. 삐라를 뿌리기에 가장 좋은 장소는 백령도이다. 북쪽 땅이 바로 지척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백령도는 차를 배에 싣고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비용이 많이 들어 자주 가는 장소는 아니다.

▲ ‘삐라’는 종이 대신 비닐 재질을 이용해 제작한다. ⓒ시사저널 임영무

일부의 삐라가 평양에서 발견되었다는 소문이 돌았지만 사실 대다수의 삐라는 황해도와 강원도를 넘지 못한다고 탈북자 단체들도 인정하고 있다. 삐라를 뿌리는 입장에서도 그것이 가장 큰 고민거리이다. 대도시에 떨어뜨린다면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지만 미사일처럼 정확히 떨어뜨리는 것은 로또 당첨 확률과 비슷하다. 함경북도 함흥 출신인 한회장은 “나도 살면서 삐라 이야기만 들었지 실제로 본적은 없다. 반대로 휴전선 인근의 주민들은 너무 많이 봐서 면역력이 생겼다. 더 멀리 날려서 평양 같은 대도시에 떨어뜨려야 한다”라고 힘주어 말한다.

이민복 대표를 지원해주는 북한구원운동의 김상철 변호사는 “세 가지 측면에서 돕는다. 전단 내용을 리뷰하고, 재정적으로 지원하고, 체포되었을 경우 도와준다”라고 밝혔다. 김변호사는 삐라가 큰 역할을 할 것이라는 믿음을 강하게 가지고 있다. 그는 “정보의 통로가 막힌 곳에서 삐라가 자유의 소식을 진실되게 알리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이대표는 “북한은 언로가 막혀 있는 대신에 구전 문화가 강하다. 그래서 삐라 한 장이 천 장, 만 장이 될 수 있다. 북측이 계속 항의하는 것이 그 반증이다”라고 강조했다. 과거 우리를 곤혹스럽게 만들었던 ‘삐라의 추억’이 이제는 북측을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는 ‘현재’가 되어버렸다. 


ⓒ시사저널 임영무

올해로 제9회를 맞은 서울평화상의 수상자는 디펜스포럼재단의 수잔 숄티 여사(사진)이다. 하지만 국경 없는 의사회, 코피 아난 전 유엔사무총장, 옥스팜 등 서울평화상의 역대 수상자들과 비교해볼 때 수잔 숄티는 그 성격이 약간 다르다.

수잔 숄티가 몸담고 있는 디펜스포럼재단이 우리나라에 알려진 것은 지난 2003년 황장엽씨의 미국 방문 때였다. 황씨의 미국 방문을 주선했던 단체가 디펜스포럼재단이다. 1997년 5월부터 지속적으로 황장엽씨에게 초청장을 보냈다. 게다가 1998년에는 탈북자 출신인 이순옥씨 등이 미국 의회 청문회에 출석해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의 실태에 관해 증언할 수 있도록 후원했다. 이순옥씨는 미국에서 여러 차례 북한과 관련해 증언을 했는데 이를 두고 탈북자들 사이에서도 “자신의 몸값을 높이려고 과도한 거짓말을 한다”라는 비판이 일었다. 그의 증언 중에는 “기독교도에게 쇳물을 부어 죽게 했다”라는 내용도 있었다. 한 탈북자 단체 관계자는 이씨를 두고 “남한으로 따지면 장영자 같은 사기꾼이다”라고 말했다.

정리해보면 디펜스포럼은 한국의 보수 대북 단체를 선점한 미국의 보수 민간 단체로 요약된다. 강경 매파인 도널드 럼스펠드 전 국방장관이 후원자 명부에 이름이 올라 있는 사실도 이를 증명한다. 북한 관련 단체의 한 관계자는 “북한 인권 문제를 선점하면서 디펜스포럼의 위상도 덩달아 커지고 후원금도 많아진 것으로 안다. 그래서 디펜스포럼은 남한 내 NGO 관리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라고 설명했다.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는 수잔 숄티 씨가 서울평화상 수상을 위해 한국에 도착한 뒤부터 각종 행사에동행했다. 디펜스포럼은 박대표의 단체가 삐라를 뿌리는 데 드는 비용을 지원해주고 있다. 지난 9월23일 박대표가 부시 대통령을 만나는 과정에서는 그녀가 가교 역할을 했다. 국내에서 큰 액수의 지원을 바라기 어려운 탈북자 단체들에게 미국측의 지원은 가뭄의 단비와 같다.  지난 10월10일 박대표가 준비한 삐라 10만장을 살포하는 이벤트에 수잔 숄티 씨가 참석했다. 거기에는 관계자보다 많은 내외신 기자들이 이미 당도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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