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문화공간’ 숨넘어 간다
  • 조철 (2001jch@sisapress.com)
  • 승인 2008.10.21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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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 서점 생존 모색한 ‘2008 서울 포럼’ 열려…모델 서점·복합 매장 등 대안 제시

▲ 대형 서점들은 복합 매장으로 변신하는 등 살길을 모색하는데 중소 서점들은 절박한 상황이다. 위는 서울의 한 대형 서점. ⓒ시사저널 박은숙

서울시 강서구 목3동의 한 상가 건물 지하 1층에 위치한 100여 평 규모의 동네 서점. 명동에 버금 갈 정도로 유동 인구가 많은 상권인데도 이 서점에는 하루 중 손님이 한 명도 없는 시간이 많다. 10년 전만 해도 해볼 만했지만 점원을 내보내고 주인 혼자 서점을 지킨 것이 벌써 5년이 다 되어간다. 손님이라고는 급히 참고서를 구하러 오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다. 주인은 별다른 대책도 없고, 먼지 쌓인 판매대를 청소하는 일에도 관심이 없다. 무료한 시간을 TV 시청으로 달랜다. 점포를 내놓은 상태로 그만둘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10월14일 대한출판협회 4층 강당에서 열린 ‘2008 서점 포럼’에서 제시된 자료들에서도 ‘고군분투’하는 중소 서점들의 현실이 그대로 드러났다. 교보문고 등 4대 대형 서점의 전국 직영점은 2000년 13개였던 것이 40개 더 늘어나 2007년 53개인 것으로 나타났다. 5년 사이 홈쇼핑에서 도서 매출액이 10배 증가해 1천5백억원을 기록했고, 전국 2백60여 개 대형 할인점의 도서 매출액도 2천3백억원 규모로 추정되었다. 또, 출판시장에서 인터넷 서점이 차지하는 매출 비중이 30%에 육박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대한출판문화협회가 펴낸 <2008 한국출판연감>에 따르면, 2007년 출판시장 총 매출액(단순 추정)을 2조5천억원으로 보고 분석한 결과 인터넷 서점 5개사가 차지하는 비중은 28%에 이르렀다.

10년 사이 출판시장 판도 급변해

출판시장 규모는 큰 변화 없이 매년 소폭 증감을 반복하는 가운데 시장의 판도는 이렇게 급변해온 것이다. 이러니 동네 서점들이 하루가 멀다고 폐점하는 일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독서 인구의 감소도 동네 서점 퇴출에 한몫했다. 최근 서울시 웹진 ‘e-서울통계’의 2007 서울서베이 조사 결과에 따르면, 서울 시민의 여가 시간 주 활용 방법에서 ‘라디오·TV·DVD 시청’(31.1%)이 1위로 꼽혔다. 그 다음으로 인터넷 게임(14.0%), 수면·휴식(10.7%), 종교 활동(9.2%) 순이었으며, 독서는 6.0%에 불과했다.

‘2008 서점 포럼’은 이런 상황에서 중소 서점들의 생존 해법을 모색하기 위해 서점인들이 모여 ‘서점의 사회적 구실과 발전 방안’에 대해 토론하는 기회를 제공했다. 이창연 한국서점조합연합회 회장은 개회사를 통해 “동네 문화, 골목 문화의 첨병인 중소 서점은 생존을 위해 지속적으로 변해야 하는 것도 과제이지만, 도서정가제를 짓밟는 ‘문화 깡패’ ‘상업 깡패’들을 정리해야 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과도한 할인과 경품 행사들로 출판 유통을 어지럽히는 인터넷 서점 등의 행태가 사라지지 않는 한 중소 서점의 자구책 모색은 그 성과를 크게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일본의 서점 컨설턴트 노세 마사시 씨의 주제 발표 뒤 토론이 이어졌는데, 토론자로 나온 백원근 한국출판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중소 서점의 문제를 서점의 문제로만 두어서는 안 된다. 지역 사회의 모세혈관이 사라지는 일이 없도록 관련 공무원들과 지역민이 함께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한기호 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은 “한국의 서점에서는 출판의 흐름을 읽을 수 없을 지경이다. 일본의 경우 기초 학문에 대한 출판의 토대가 튼튼한데, 우리나라에서는 팔리는 책만 서점에 진열해야 하는 상황이다. 도서정가제를 완전히 실시해 서점도 살리고 출판사도 살려 좋은 책이 많이 나오게 하는 일이 시급하다”라고 말했다.

“도서정가제 완전 실시만이 살길”

부길만 동원대학 광고편집과 교수는 “중소 서점도 동네 약국처럼 운영할 수는 없을까 고민해야 한다. 약사처럼 서점 종사자들도 전문 교육을 받고 고객들에게 서비스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손재완 전 영풍문고 대표는 “경기 침체가 장기화되면서 소비자들의 라이프스타일이 지적 탐구보다 소비 지향적인 흐름을 보이고 있다. 중소 서점들도 생존하기 위해 고객들이 찾기 쉽고, 들어오기 쉽고, 쾌적한 서점을 만들도록 항상 연구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또 “저자 강연회, 독서 토론회, 책 읽어주기 행사 등 다양한 문화 행사도 마련하는 등 마케팅 기법에 관심을 기울이고 할 수 있는 일들을 해나가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서울시 송파구에서 온 한 중소 서점 대표는 패널들에게 질문을 하면서 “우리 중소 서점들은 아주 절박한 상황이다. 이론만 되풀이할 것이 아니라 중소 서점에 고통을 주는 일들을 좀 줄여 달라”라고 주문했다. 이를테면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나눠주는 ‘필수 권장 도서 목록’에는 오래된 책밖에 없어 아무도 중소 서점에서 그 책들을 구입하려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게다가 인터넷 문화에 익숙한 학생들이 큰 폭의 할인을 해주는 인터넷 서점을 이용할 것은 뻔하지 않느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래저래 ‘성토’는 분분하고 답답하기만 한 ‘서점 포럼’이었다. 모델 서점 운영, 복합 상품 매장화 등 대책들로 제시한 것들도 동네 서점들이 적극적으로 하기에는 현 상황에 그다지 어울리지 않아 보였다. ‘예외 없는 도서정가제 시행’만이 살길이라는 의견에 폭 넓게 공감한 것이 수확이라면 수확이었다. 중소 서점들은 돌파구를 찾지 못한 채 ‘불황’이 아니라 ‘절체절명’의 위기 국면에 놓여 있었다. 


▲ ⓒ시사저널 박은숙
일본의 출판 및 서점 컨설턴트로서 왕성한 활동을 해온 일본서점연합경영연구회 노세 사무소 노세 마사시 소장(사진)은 10월14일 열린 ‘2008 서점 포럼’에 참석해 ‘중·소 서점의 경쟁력 강화’를 주제로 발표했다.

노세 소장은 “한국 서점업계가 상당히 위험한 상황에 놓여 있다. 일본도 11년 동안 매출이 감소해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다”라며 본론에 들어가기에 앞서 일본과 한국의 출판 현실을 비교 분석한 내용을 들려주었다. 한국 서점업계가 인터넷 서점 등의 할인에 맞서 도서정가제 완전 실시를 주장하는 것과 달리 일본에서는 도서정가제가 마치 ‘공기’처럼 되어 있다고 말했다. 일본은 그런대로 ‘서점을 할 만한 나라’로 중소 서점도 각자 경쟁력을 갖춰 생존을 이어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노세 소장이 이날 포럼의 주제 발표자로 초빙된 것은 일본 서점들의 생존 방식에서 한국 중소 서점의 살길을 모색해보자는 취지에서였다.

노세 소장은 “일본에서 도서정가제가 무너졌을 때를 상상하면 소름이 끼친다. 책은 내용을 사는 것이지 가격을 사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하면서 한·일 양국 모두 도서정가제가 지켜지기를 바랐다. 일본의 일반 서점은 잡지·만화가 대세여서 참고서 매출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한국의 중소 서점에 바로 적용할 만한 노하우가 많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노세 소장은 “일본도 ‘서점 혁명’을 통해 동네 서점들이 살아남았다. 서점이 시골의 논밭에 있어도 길만 뚫려 있으면 고객들이 찾아올 수 있을 정도로 연구해야 한다”라며 영업 전략을 짜야 할 때라고 주장했다. 예를 들어 중소 서점도 고객과 상품 관리를 면밀하게 해야 한다며, ‘POS 혁명’으로 주요 고객을 잘 관리하고 도서 분류에 따른 매출 추이도 잘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노세 소장은 “한국 서점에는 책이 너무 많더라. 1백23cm 이상에는 책 진열을 하지 않거나 진열대를 낮게 해야 한다. 서점 주인은 지적 무장도 해야 한다”라며 세세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시대가 바뀌고 사회 환경이 달라지면서 독자도 변화했다. 책을 좋아했던 ‘근대 독자’들로 지탱해왔던 서점들이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노세 소장은 “현대 독자들은 엔터테인먼트를 지향하는 사람들로 그들을 만족시키려면 무엇을 해야 하겠는가. 대형 서점만 좇아가려 애쓰지 말고 작은 공간에 무엇을 담을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라며 적극적인 자세를 가질 것을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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