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 언어도 ‘완소’
  • 이정복 (대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
  • 승인 2008.10.21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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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 파괴 주범’ 아닌 역사적 자료로 가치 인정받아

▲ 통신 언어 중에는 쓰기 좋은 새말도 적지 않아 곧 국어사전에도 오를 전망이다. ⓒ시사저널 박은숙
언어 변화는 어느 시대에나 있었지만 인터넷이 출현한 이후 그 폭이 훨씬 넓어지고 속도가 빨라진 느낌이다. 인터넷은 개방성, 속도, 파급력 면에서 다른 매체와 비교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강력하다. 인터넷 공간에서 쓰이는 언어 표현은 특히 청소년 네티즌들 사이에서 빠르게 퍼져나갔다. 1990년대 초반에 나오기 시작해 인터넷이 대중화된 후 확산된 통신 언어는 이제 모든 세대의 네티즌들이 즐겨 쓰는 한국어 사회 방언의 하나로 정착되었다.

21세기를 ‘IT 혁명’의 시대라고 부른다. 인터넷, 휴대전화와 같은 통신 매체들의 발전으로 시·공간의 제약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게 되었다. 수백만 개의 카페 모임방을 만들어 교류하고 있으며, 더 많은 수의 사람들이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 우리말의 역사에서 지금처럼 모두가 열성적이고 자발적으로 글쓰기에 나선 적은 없었다. 이런 점에서 21세기를 ‘언어 혁명의 시대’ 또는 ‘인터넷 통신 언어의 시대’라 할 만하다.

통신 언어는 음운·문법·의미 면에서 일상 한국어와 구별된다. 언어 규범이 크게 무시되고, 새로운 표현들이 많이 쓰이며, 언어의 쓰임새도 차이가 난다. 이 때문에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낯설고 불편하며, 언어 파괴의 주범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그러나 네티즌들은 통신 언어를 ‘경제성, 표현성, 오락성, 유대성, 심리적 해방성’의 뚜렷한 동기와 기능에서 효과적으로 쓰고 있다. 국어 정책이나 우리말의 미래와 관련해서도 긍정적 요소가 많다.

한국어의 다양성·풍성함에 큰 도움

통신 언어는 무엇보다 청소년들의 언어적 상상력과 창의성을 기르는 데 도움을 준다. 청소년들은 인터넷에 접속하거나 휴대전화 등의 이동통신 매체를 이용해 수시로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는 과정에서 기발하고 다양한 표현들을 만들어내 공유한다. 통신 언어는 재미와 즐거움을 주는 오락적 기능도 강하다. 새말(남친, 완소, 엄친딸), 그림 글자(^0^, ㅠ.ㅠ, OTL), 흉내말(꾸벅, 덜덜덜, 허걱) 그리고 외계어(날흠뒈, 말おŀズı 않Øŀ도)까지 네티즌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즐거움의 양식이다.

그것은 한국어의 다양성과 풍성함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쓰기 좋은 새말이 적지 않으며, 기존의 표현에 새로운 뜻을 더해 쓰기도 한다. 일부 새말은 통신 공간을 넘어 일상어에서 확산되고 있으며, 곧 국어사전에도 오르게 될 것이다. 통신 언어의 새말과 새로운 용법은 우리말 어휘를 늘리고 쓰임새를 넓혀 준다는 점에서 높은 가치가 있다.

통신 언어는 21세기 한국어의 생생한 모습이자 중요한 역사적 자료이다. 인터넷 통신이 생활 전반에 뿌리를 내리면서 통신 언어는 화자들이 생산하는 언어 자료의 큰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한국어 연구자들이 더 이상 무시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으며, 학자들의 진지한 관심과 심층 연구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음이 사실이다.

‘인터넷 통신 언어’, 곧 ‘통신 언어’는 현대 정보통신 문화에서 꽃핀 한국어의 새로운 사회 방언이다. 통신 언어의 부정적 영향을 줄이기 위한 언어 정책 및 국어 교육적 노력을 계속해나가는 한편, 그것의 긍정적 기능에도 주목해야 한다. 국어사적 실체로서 통신 언어의 존재를 인정하고, 언어 문화의 다양성 면에서 깊이 있게 이해하려는 본격적 연구 활동을 열린 자세로 펼쳐나가야 한다. 통신 언어의 확산에 따른 한국어 연구의 확대가 무엇보다 절실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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