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에도 ‘은퇴 자금’은 모아라
  • 박원주 (재무설계사) ()
  • 승인 2008.10.21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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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재무 설계’ 모범 보여준 정 아무개 교수 사례 / 안전하고 확실한 노후 보장책은 ‘연금’

▲ 경제 호라동기에 충분한 준비를 한 사람이 노후를 여유롭게 보낼 수 있다. 위는 게이트볼을 치는 노인들. ⓒ시사저널 임영무

‘외로움, 불안감, 허탈함’. 어떤 단어를 떠올리면 이런 생각이 나는가? 한국인이 떠올리는 ‘노후’에 대한 생각들이다. ‘자유, 여유, 평화’를 떠올리는 서양인과 사뭇 대조적이다. 종신고용제가 유지되고 평균 수명이 짧고, 금리까지 높았던 시절에는 노후가 그리 문제되지 않았다. 퇴직금만으로도 어느 정도의 노후 자금이 충당되었고, 제대로 키운 자녀는 부모의 든든한 노후 보장책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인생 3모작 시대(30-성장기/30-경제활동기/30-은퇴기)를 살고 있는 우리는 짧은 경제 활동기에 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 먹고살아야 하고, 주택도 마련해야 하고, 자녀 교육에 결혼도 시켜야 하고, 긴 은퇴기에 대한 준비도 해야 한다. 이 많은 과업을 한정된 자원으로 어떻게 이루어나갈 수 있을까? 계획 없는 금융 생활로는 절대 해낼 수 없다. 인생 전반에 걸쳐 써야 할 자금 규모를 예상하고, 그 자금을 효율적으로 적립할 체계적인 재무 계획을 세우고 실천해나가는 ‘생애 재무 설계’만이 그것을 가능하게 한다. 그중 소득이 끊기는 시기인 은퇴기에 대한 체계적인 준비는 다른 어떤 재무 목표보다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사립대학 교수로 30여 년간 재직한 뒤 1998년 은퇴한 정 아무개 교수는 요즘 자주 가슴을 쓸어내린다. 일찌감치 대학 강단에 서 후학 양성에 평생을 바친 그는 은퇴 당시 상당한 고민에 빠졌었다. 퇴직금을 일시금으로 받을 것인가, 평생 연금으로 받을 것인가. 그 당시 가장 인기 있는 금융 상품 중의 하나인 금융채 금리가 12.8%였으니 일시금으로 받게 될 퇴직금 약 4억원 정도(주요 보직을 두루두루 거쳐 평교수에 비해 일시금이 많았음)를 은행에 넣어두면 한 달 이자로 약 4백만원을 받을 수 있었다. 더군다나 금융채는 확정 금리 상품이고 시중 실세 금리에 따라 금융채 금리도 등락하지만, 가입 시점의 금리는 만기 때까지 유지되므로 더없이 안전하다고 여겼다.

연금으로 지급받는 금액이 월 3백만원이 조금 넘는 금액이었으므로 연금보다는 일시금으로 받는 것이 더 낫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가족들의 반대에 부딪혔다. 평생 끊이지 않는 소득원을 만들어주고, 돌아가시면 유족에게 70%의 연금이 지속적으로 보장되는 연금의 형태로 받는 것이 더 안전하다는 이유에서이다. ‘늙어서의 목돈은 내 돈이 아니다’라는 말처럼 노후를 책임져야 할 목돈이 어떠한 형태로든 새어나갈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또, 지금과 같은 금리가 죽을 때까지 지속된다는 보장이 없다는 걱정도 있었다.

10년 전 두자릿수 금리에 혹해 일시금 수령 고민

그래서 그는 몇 번의 가족회의 끝에 연금을 선택하게 되었다. 은퇴 당시 두자릿수 금리는 2000년도 들어서며 7%대, 2001~2002년 4% 후반대, 2004년 3%대를 거쳐 최근 6% 가까이 오르기는 했어도 여전히 저금리 기조를 유지 중이다. 그 당시 은행 이자로 월 3백여 만원 수령이 가능했다면 지금은 그 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매년 물가상승률을 감안한다면 실질 구매력은 훨씬 낮다. 그것을 생각하면 그는 아찔하다고 한다.

그의 은퇴 후의 삶은 비교적 여유롭다. 연금 이외에 조그만 상가로부터 나오는 월세 수입도 2백만원 정도 된다. 부부가 살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래서인지, 여유 자금을 굴리는 것에 대해 그는 보통 사람과 생각이 다르다.

2001년 12월 초 친한 친구의 권유로 여유 자금 3천만원을 주식형 펀드에 투자했다고 한다. 투자에 대해, 주식에 대해 아무런 지식도 없던 그는 친구의 말대로 딱 5년만 기다려보자고 생각했다. 돈에 신경이 쓰여 즐겨 읽지 않던 경제면 기사도 꼼꼼히 읽곤 했지만 이내 관심을 내려놓았다고 한다. 관심을 가질수록 일희일비하는 자신의 모습이 실망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는 정말 5년 후에 펀드를 환매했다. 투자 금액 3천만원이 1억3천여 만원으로 늘어나 있었다(총 수익률 3백37.84%). 엄청난 성공이었다.

그러나 그는 이렇게 말한다. “성공하지 못했더라도 미련 없이 나왔을 것이다.” “돈보다는 삶의 질이 더 중요하다고 믿기 때문”에 그랬을 것이라고 한다. 돈의 노예로 살기보다 돈의 주인으로 살고 싶다면서. 그는 지금 퇴직금을 일시금으로 받았더라면 상상하지도 못했을 삶의 여유와 평화를 누리며 살고 있다.
정씨의 예에서도 보았듯이, 가장 안전하고 확실한 대책은 연금 소득을 준비하는 것이다. 연금 소득 준비는 막연해서는 안 된다.

은퇴 자산 전문가의 도움을 빌어 내 은퇴 자산의 규모를 파악한 후 그 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방법을 연구해야 한다.

먼저 은퇴 후 부부에게 현재 가치로 월 얼마의 자금이 필요할 지를 예상해본다. 그 자금을 기대수명까지 쓰기 위해 은퇴 시점에 약 얼마의 일시금이 필요할지를 계산해본다. 그 다음 그 일시금이 현재 가치로 얼마인지를 계산해보고, 그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은퇴 시점까지 얼마를 저축해야 할지를 계산한다.

이에 앞서 은퇴 시기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즉 은퇴한 후 부부가 함께 살 시기, 배우자 한 명 사망 전 의료비 지출 기간, 홀로 생존 기간, 남은 한 명 사망 전 의료비 지출 기간으로 세분화해서 생각하고 각각의 기간에 따른 자금 규모가 다름을 이해해야 한다.

은퇴 준비에서 다른 어떤 재무 목표보다 중요한 것이 시간과의 싸움이다. 만약 은퇴가 10년 이상, 20년이나 30년 남았다면 주식의 편입 비율을 높여 수익률 제고 가능성을 키워야 한다.

지금과 같이 끝을 알 수 없는 금융 위기에도 하던 은퇴 준비(적립식 투자 방법)를 멈추어서는 안 된다. 만약 아직도 은퇴 준비의 중요성을 간과한 채 살아가고 있다면 지금 당장 시작하라.

체계적인 준비만 잘 한다면 위기인 것처럼 보이는 지금이 당신의 풍요로운 은퇴를 보장하는 최고의 기회이다. ‘외로움, 불안감,허탈감’이 ‘자유, 여유, 평화’로 바뀔 수 있게 말이다. 


노후 ‘할 일’ 구상도 젊어서 하라

1955년 65세 이상 노령 인구는 전체 인구의 3.3%에 불과했다. 하지만 지금은 9.9% 이상(2007년 자료), 즉 인구 10명 중 1명꼴이다. 또한 의학의 발전과 삶의 질 향상으로 기대수명이 연장되고 있다(2007년 기준, 남자 75.74세, 여자 82.36세, 2006년과 비교해 남자 0.6년, 여자 0.48년 기대수명 증가).

은퇴 후 후반 30년 인생을 무엇을 하며, 무엇을 먹고 살아가야 하나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 은퇴 후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분들에게 여쭤보면 가장 힘든 것이 ‘갈 곳이 없다, 할 일이 없다’는 점이라고 한다.

은퇴 후의 삶에서 재무적인 문제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비재무적인 문제, 즉 긴 인생을 무엇을 하며 보낼 것인가이다. 돈을 더 벌 것인지, 자아실현을 위한 삶을 살 것인지, 봉사의 삶을 살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필요하다. 또한 재무적인 문제, 즉 무엇을 먹고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따라서 경제 활동기를 살아가는 바로 지금, 소득이 끊기는 은퇴 후의 소득을 마련하는 시스템을 갖추어 놓아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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