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 나간 굴에 여우가 왕?
  • 이석 (ls@sisapress.com)
  • 승인 2008.10.21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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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조선해양 인수전, 파행으로 치달아…유력했던 포스코·GS 결별 두고 뒷말도 무성

▲ 표스코·GS그룹은 한때 컨소시엄을 만들어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입찰 제안서를 내기도 했었다. ⓒ연합뉴스

대우조선해양 인수전이 유례없는 파행으로 치닫고 있다. 지난 10월9일 포스코와 컨소시엄을 결성해 깜짝쇼를 했던 GS그룹이 나흘 만에 인수 포기를 선언한 데 이어, 이로 인해 포스코가 자격 시비에 휘말려 결국, 입찰 대상에서 탈락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포스코-GS-한화-현대중공업’으로 짜여졌던 경쟁 구도는 ‘한화 대 현대중공업’의 2파전으로 압축되었다. 유력한 인수 후보로 꼽히던 회사들은 빠지고, 상대적으로 인수 가능성이 낮았던 회사들이 대우조선해양을 손에 넣게 된 것이다.

전문가들은 당초 포스코-GS 컨소시엄이 인수전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한 것으로 관측했다. 두 회사가 ‘연합 전선’을 구축할 경우 인수 자금 마련에서 훨씬 유리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특히 포스코가 조선업의 전방 산업인 철강 부문에서, GS가 조선업 후방 사업인 에너지 부문에서 대우조선을 지원할 경우 ‘철강-조선-에너지’로 이어지는 라인업이 형성될 수 있다는 점에서 상당한 시너지 효과도 예상되었다.

이에 반해 한화그룹이나 현대중공업의 경우 상대적으로 인수 명분이 적었다. 한화그룹의 경우 오너인 김승연 회장의 의지에 비해 사업적인 시너지 효과는 상대적으로 적게 평가되었다. 현대중공업 역시 인수전에 뛰어들기 이전부터 독과점 논란에 휩싸이는 등 부정적인 평가가 줄을 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입장이 뒤바뀌었다. GS와 포스코가 떨어져 나가면서 그동안 ‘2약’으로 꼽혔던 한화와 현대중공업이 유력 인수 후보로 떠올랐다.

자격 시비 붙은 포스코, 입찰에서 탈락

     

                   ▲ 대우조선해양 옥포 조선소의 해상 크레인 작업 모습. ⓒ연합뉴스    
특히 한화그룹의 경우 최근 인수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대한생명 지분 21.36%를 매각키로 결정했다. 매각 가격은 주당 1만원 선으로, 모두 1조5천1백70억원의 자금을 조달할 수 있어 상당히 유리한 고지에 있는 것으로 재계 관계자들은 보고 있다.

이와 관련해 포스코측은 “아쉽지만 포스코의 법적 하자를 문제 삼은 산업은행의 결정에 따르겠다. 컨소시엄 파기에 따른 법적인 소송을 진행할 계획도 없다”라고 밝혔다. 이상춘 포스코 홍보팀장은 “입찰 규정상 매각 주관사인 산업은행의 결정이 중요하다. 산업은행이 컨소시엄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도 어쩔 수가 없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재계는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고 있다. “포스코와 GS가 순순히 물러난 이면에 다른 이유가 있지 않겠느냐”라는 것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사견을 전제로 “포스코의 경우 산업은행의 입찰 부적격 결정을 기다리기라도 한 듯 곧바로 수용했다. 인수 회사의 가치에 비해 입찰 가격이 지나치게 높기 때문에 그런 것 아니겠느냐”라고 반문했다.

‘거품 가격’이 인수 포기 부추겼나

실제로 대우조선 주가는 지난해 10월 6만4천원을 정점으로 계속 하락하고 있다. 지난 10월17일 오전 11시 현재 1만6천2백원을 기록했다. 인수 가격이 6조~7조원 정도임을 감안할 때 현재 주가의 3배 이상, 경영권 프리미엄만 2백% 이상을 물어야 하는 셈이다. 세계적인 금융 경색 여파로 경제 불안이 가중되는 상황에서 이런 엄청난 금액으로 인수한다는 것 자체를 부담스럽게 여긴 것이 아니냐고 업계에서는 보고 있다. GS와 포스코의 수익 악화도 이같은 결정을 키우는 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GS그룹의 경우 2분기만 해도 사상 최고의 실적을 올렸다. 매출 9조5천2백51억원, 영업이익 7천6백59억원, 순이익 8천2백80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대비 각각 96%, 2백%, 63% 증가한 수치이다. 이같은 계열사의 실적을 바탕으로 지주회사인 GS홀딩스는 대우조선해양의 인수를 추진해왔다. 그러나 3분기 들어 GS칼텍스의 실적 악화가 가시화되고 있다. 이상훈 동양종금증권 애널리스트는 “정유업계의 경우 차입금을 통해 원유를 구입하게 되는데, 최근 환율 급등으로 환차손이 커지고 있다. 일시적이기는 하지만 3분기에 적자가 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라고 설명했다. 

GS칼텍스 역시 3분기 실적이 안 좋은 것으로 보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정확한 결과는 집계가 나와 봐야 알 수 있겠지만 실적이 좋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환율 급등에 따른 환차손 발생분과 함께 정제 마진까지 하락하고 있다”라고 귀띔했다.

문제는 4분기 상황 또한 녹록하지가 않다는 점이다. 이대로라면 연말 순이익이 10년 만에 마이너스로 돌아설 수 있다고 한다. 이정헌 하나대투증권 애널리스트는 “4분기 상황은 3분기보다 나쁘면 나빴지 좋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상반기에 벌어놓은 흑자가 하반기 적자로 마이너스가 될 수 있다”라고 분석했다. 포스코 역시 3분기 영업이익이 1조9천8백4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84.9% 급증하는 등 2분기에 이어 3분기도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그러나 4분기는 후판 가격 상승 등 여러 가지 악재로 흑자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대우조선해양 인수전에 뛰어들면서 GS와 포스코의 지속적인 주가 하락도 양사를 주저하게 한 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포스코의 경우 지난 10월16일 이틀 연속 급락세를 보이며 30만1천5백원에 거래를 마쳤다. 1년 전 주가인 68만원에 비해 무려 55.79%나 빠진 상태이다. GS 역시 대우조선해양 인수전에 뛰어들면서 주가가 많이 빠졌다. 1년 전 6만8천원대에서 현재는 2만4천원대까지 주가가 떨어졌다. 이같은 점이 결국은 포스코와 GS의 의욕을 꺾은 것으로 재계에서는 보고 있다.

이와 관련해 포스코나 GS측은 “입찰 과정에서 컨소시엄을 결성했다가 다시 취소하는 사례가 그동안 많았다. 포스코가 단독으로 본 입찰에 뛰어들어도 충분히 이겨낼 여력이 되기 때문에 문제될 것은 없다고 보았다”라고 해명했다.

임병용 GS홀딩스 부사장도 지난 10월14일 서울 역삼동 GS타워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컨소시엄 파기는 입찰 가격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양사가 차이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포스코는 매우 공격적인 가격을 제시한 반면, 우리는 합리적인 가격을 원했다. 이 차이를 좁히지 못한 것이 결별의 원인이었다”라고 밝혔다. 어찌되었든 재계 판도를 뒤바꿀 초대형 매물인 대우조선해양은 한화나 현대중공업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세계 경제가 끝 모를 불경기로 빠져들고 있고 조선업 자체가 장기 불황의 조짐을 드러내고 있어 대우조선해양 인수가 이들 기업에 득이 될지 실이 될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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