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요비’ 커플 뜨니 ‘리얼’이 달라지네
  • 하재근 (문화평론가) ()
  • 승인 2008.10.28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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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 식어가던 <우리 결혼했어요>, 멤버 교체로 새 바람

▲ 가수 환희(왼쪽)와 화요비(오른쪽)가 에서 결혼식을 치르고 있다. ⓒMBC 제공

<우리 결혼했어요>의 커플들이 일부 교체되었다. <무한도전> <1박2일> <패밀리가 떴다> 등 리얼 버라이어티와 <우리 결혼했어요>가 다른 점이 이것이다. 요즘 대세인 리얼 버라이어티 포맷은 일단 팀이 구성되면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아야 한다. <무한도전>에서 하하가 빠진 빈자리를 채우는 데도 아주 오랜 시간이 흘러야 했다. 그만큼 경직성이 크다. <1박2일>에서 누군가가 재미없다는 이유로 하차하는 모습을 상상하기 힘들다. <패밀리가 떴다>는 아예 프로그램 이름에서부터 ‘패밀리’를 내세우고 있다. 가족을 어떻게 갈아치운단 말인가? 이런 이유로 <라인업>은 사람을 교체해서 새출발하지 못하고 아예 프로그램을 폐지해야 했던 것이다.

반면에 <놀러와> 같은 유형의 프로그램은 매주 중심 인물이 바뀐다. 초대 손님이라는 형식이다. 이런 프로그램에서는 초대 손님이 2주 이상 겹치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사태라고 여겨진다. <우리 결혼했어요>는 리얼 버라이어티와 일반 예능물의 중간 포맷이다. 매주 중심 인물이 교체되는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영원히 함께 가는 것도 아니다. 시청자들의 관심이 멀어지면 주요 인물들을 새로 ‘장착’할 수 있다. 이것이 프로그램의 활력을 유지하게 한다.

오래 끌면 식상한 프로그램의 생존 전략

<무한도전>처럼 오랫동안 정을 붙일 수 있는 캐릭터들로 장기간 중독성을 유지하도록 하는 것과는 다른 전략이다. <우리 결혼했어요>는 애초부터 장기간 호감을 유지할 수 있는 포맷이 아니었다. 프로그램 속 커플들은 진짜가 아니라 가짜이다. 거기에는 삶의 희로애락이 없다. 꼭 삶의 이야기가 아니라 하더라도 <무한도전>처럼 다채로운 주제들을 배치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가상 연애담일 뿐이다. ‘결혼’을 내세웠다고는 해도 실질적인 내용은 ‘연애‘인 것이 맞다. 산전수전 다 겪은 커플이 결혼 후 삶에 직면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 보는 남녀가 프로그램 속에서 만나 그때부터 서로에 대해 알아가면서 감정을 형성하는 과정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 결혼했어요>는 기실 <우리 사귀기로 했어요>인 것이다.

몰랐던 남녀 둘이 만나 알콩달콩 티격태격 사랑을 키워가며, 서먹서먹해하다가 이런저런 사건 사고들로 서로에게 길드는 모습은 선남선녀의 마음을 달뜨게 한다. 그러나 남의 연애담 지켜보는 것도 한두 번이다. 이벤트도 세 번 이상이면 지겹고, 비슷한 형식으로 싸우는 것도 점점 지겨워진다. 그때는 인류가 옛날부터 애호해왔던 방식으로 끝을 맺어야 한다. ‘그 둘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 THE END.’ 더 끌면 늘어진다.

▲ 한자리에 모여 기념 촬영을 한 출연진들. ⓒMBC 제공

그러므로 <무한도전>과는 달리 캐릭터의 ‘내구 연한’이 짧을 수밖에 없다. 대신에 <우리 결혼했어요>는 캐릭터를 갈아끼움으로서 프로그램 자체의 내구 연한을 연장할 수 있다.

<무한도전>은 하하의 빈자리를 섣불리 채웠다가는 프로그램이 무너질까 봐 두려워, 교체는 고사하고 빈 곳 메우기도 못했지만, <우리 결혼했어요>는 하드디스크와 램을 교체하듯이 구성품을 교체해 시스템을 신선하게 유지하는 것이다.

기존 커플들은 이미 식상한 상태였다. 알렉스-신애 커플이 처음 등장했을 때는 수많은 시청자의 환호를 받았었지만, 두 번째가 되자 그 빛이 바랬다. 그 외 다른 커플들이 하나씩 번갈아 주목을 받았었지만 서서히 시청자의 관심이 식어가고 있었다. 그나마 가장 막차를 탄 황보-김현중 커플이 관심도를 유지하고 있었고, 바깥에서는 <1박2일>과 <패밀리가 떴다>의 공세가 날로 거세지는 상황이었다. 이 시점에서 ‘물갈이’가 단행되었다. 새로 장착된 커플들은 과연 ‘우결 시스템’의 업그레이드였을까?

지난 추석 특집 때 세 커플이 <우리 결혼했어요>를 통해 새로 만났다. 화요비-환희, 마르코-손담비, 이현지-최진영 커플이었다. 마치 프로그램이 새로 시작하는 것처럼 신선했다. 추석 특집 예능물 중에서 최강 기획이었다. 그중에서 화요비-환희, 마르코-손담비 커플이 <우리 결혼했어요>의 정식 커플로 확정되었다. 이현지-최진영 커플은 그 사이 최진영이 불행한 일을 당해서인지 정식 커플이 되지 못했다.

추석 특집 때 <우리 결혼했어요>를 최강으로 끌어올린 일등 공신은 ‘환요비’ 커플이었다. 환희와 화요비를 합친 말이다. 방영 다음 날 ‘화요비 4차원’이 검색어 1위에 오를 정도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필자는 당시 환요비 커플의 장면을 보다가 쓰러지고 말았었다. 너무 웃겨서이다.

환희는 너무 무게를 잡는 듯한 인상이었고, 화요비는 <우리 결혼했어요>라는 화사한 프로그램에 조금 안 맞는 듯한 느낌도 있었다. 그러나 첫 등장을 보는 순간 선입견은 저 너머로 사라져버렸다. 마치 <우리 결혼했어요> 커플이 되기 위해 원래부터 딱 맞춰져 있었던 것 같은 느낌이었다. 둘이 그렇게 잘 어울릴 수가 없었다.

무뚝뚝한 환희와 그것을 다 받아주면서 그럴수록 더 달라붙는 화요비. 둘에 대한 호감도가 급상승했다. 환희는 화요비에 대해 “밀어도 밀어도 달라붙어주는 매력이 있다”라고 했는데 시청자도 그런 매력을 느꼈다. 환희는 무뚝뚝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은근히 챙겨주는 모습을 보여 점수를 땄고, 화요비는 환희에게 매달리는 것 같으면서도 은근히 할 말은 다 하는 모습이 매력을 더했다.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생명은 ‘리얼리티’에 있다. 가짜인 것은 다 알지만 어쨌든 프로그램을 보는 동안만은 진짜인 것 같은 환상을 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 역할을 십분 해낸 것이 화요비였다. 화요비의 행동과 감정 표현이 너무나 진짜 같아서 폭발적인 감정이입을 이끌어냈다. 일부러 한 설정이었다면 별로 안 웃겼을 장면도 화요비가 하니까 웃겼는데, 정말로 진지하게 벌이는 일들이라고 믿게 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진짜처럼 보이는 환상은 선남선녀들에게 ‘춘심’을 불어넣는다. 게다가 화요비는 어법도 특이하고 생활 방식도 특이했다. 이것은 <우리 결혼했어요>에 신선함을 불어넣었다.

환희?화요비에게 ‘신선한 등장’ 평가 이어져

이들이 정식 커플이 된 후 두 주에 걸쳐 여행 이벤트가 진행되었다. 서인영의 군기 잡기가 어이없고, 몰래카메라가 구설에 오르기는 했지만 성공적인 커플 교체 이벤트였다. 화요비와 환희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마르코-손담비 커플은 처음에는 너무 인위적인 느낌이어서 별 감흥이 없었는데, 커플 교체 여행 이벤트를 통해 어느 정도 호기심을 갖게 했다.

한때 짝짓기 프로그램은 대단한 인기를 얻었었다. 강호동이 바로 짝짓기 사회를 통해 1급 진행자로 우뚝 선 사람이다. 타사에서 유사 프로그램을 만들고, 일반 오락 프로그램에서도 짝짓기 코너를 집어넣을 만큼 인기였다. 마치 요즘의 ‘리얼’ 열풍 같았다. MBC에서 엄청난 성공을 거둔 후, 강호동은 SBS에서 똑같은 포맷을 재연했는데 그때는 처음 했을 때만큼의 반응을 얻지 못했다. 시청자들이 연예인들이 예능 프로그램 속에서 보이는 감정의 일렁임이 전혀 ‘리얼’하지 않다는 것을 알아차렸기 때문이었다. <우리 결혼했어요>는 ‘결혼’코드를 통해 다시 ‘리얼 연예’의 불을 청춘의 가슴에 지폈다. 그런 의미에서 환요비 커플이 보여주는 ‘리얼의 환상’은 <우리 결혼했어요>에게는 단비와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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