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마음만 먹으면 ‘작곡’한다
  • 이은지 (lej81@sisapress.com)
  • 승인 2008.10.28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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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유행곡 대부분 짜깁기 편집으로 만들어져…표절 강요당하는 작곡가들 “괴롭다”

음악 표절이 위험 수위에 달했다. 한 작곡가는 “요즘에 유행하는 노래의 70~80%가 짜깁기 편집을 통해 만들어진다. 100% 순수하게 창작되는 노래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라고 비판할 정도이다. 과거 유행했던 노래의 2~3마디 소절만 베껴 표절 시비에서 벗어나는 경우가 가장 대표적이다. 올해 SK텔레콤의 CF송으로 대히트한 ‘되고송’이 이런 의혹을 받고 있다(아래).

▲ 김영광씨를 포함한 5명의 작곡가들은 이 기존의 히트 곡에서 2마디씩 표절해 짜깁기했다고 주장했다.


주현미의 <러브레터>를 작곡한 김영광씨를 포함한 5명의 작곡가들은 지난 9월2일 SK텔레콤에 내용증명을 보냈다. SK텔레콤은 무응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법적 소송을 제기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가 어떤 행동을 취할 수 없다. 정당한 절차에 따라 소송이 진행되면 대응하겠다”라고 답했다.

SK텔레콤의 T링은 현재 저작권침해금지가처분신청 항고심이 진행 중이다. T링과 되고송 모두 김연정씨가 작곡했다. 가처분 신청을 한 작곡가 정풍송씨는 “2005년 발표한 <사랑의 눈물>에서 총 16회나 반복되는 ‘솔미파라솔’과 T링이 똑같다. 서울중앙지방법원 역시 멜로디와 리듬이 동일하다고 인정했다. 그러면서도 화성과 음색이 달라 표절이라고 볼 수 없다며 가처분신청을 기각했다. 그렇게 따지면 표절로 판정받을 곡들이 뭐가 있겠는가”라며 분통을 터트렸다. 항고심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본안소송을 제기할 계획이다.

정씨의 사례처럼 표절 시비를 가리기 위해서는 표절 당한 작곡가가 소송을 벌이는 방법밖에 없다. 표절 여부를 가리는 심의기구가 없기 때문이다. 공연윤리위원회가 영상물등급위원회로 개편되면서 1990년대 말부터 표절이 친고죄로 바뀌었다. 소송에 대한 부담감이 크다 보니 표절 의혹은 일지만 표절로 판정받는 사례는 적다. 이효리는 올해 발매한 3집 앨범 수록곡 13곡 가운데 4곡이나 표절 의혹을 받고 있다. 하지만 표절이라고 판정을 받은 것은 없다.

“리듬이나 코드에 따라 작곡하면 표절 시비 벗어나”

▲ 한 작곡가가 음악 편집 프로그램을 이용해 짜깁기 편집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더군다나 최근 유행하는 대중가요의 특성상 표절을 쉽게 할 수 있다 보니 표절의 유혹에도 쉽게 빠진다. 정 아무개 작곡가는 “과거에는 멜로디가 중심이었다. 하지만 요즘 유행하는 대중가요는 리듬과 반주에서의 독특한 느낌이 중요하다. 멜로디는 다르지만 현재 유행하는 리듬이나 코드에 따라 작곡하면 분위기는 비슷해도 표절 시비에서 벗어날 수 있다”라고 귀뜸했다. 외국의 반주 음악을 갖다 놓고 코드와 리듬의 진행에 맞춰 다른 멜로디를 집어넣으면 법망에 걸리지 않고서도 표절할 수 있다는 말이다. 

박진영의 경우 히트곡의 상당 부분이 발표될 때마다 표절 논란에 오르내린다. 미국에서 유행하는 곡에서 마음에 드는 부분들을 따서 짜깁기해 작곡한다는 의혹이 따라다닌다. 실제로 기자가 여러 작곡가들에게 짜깁기 편곡 기술을 직접 보여달라고 하자 ‘박진영씨에게 가면 가장 확실하게 배울 수 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어렵게 작업실을 섭외해 컴퓨터 프로그램에 의해 표절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우선 마음에 드는 리듬이 있다면 컴퓨터로 거의 100% 똑같이 만든다. 여기에 음악편집 프로그램인 큐베이스, 소나, 로직을 실행해 리듬 소스를 한두 가지 바꾼다. 드럼의 리듬 소스 가운데 심벌 하나만 바꿔도 확연히 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이미 만들어져 있는 리듬 소스를 클릭해서 갖다 붙이는 데 걸리는 시간은 1초. 또한, 유행하는 리듬 파형의 한 부분을 떼어내 반복하는 방법을 사용하기도 한다. 특화된 리듬이 아니라면 샘플링이라고 표현하지도 않는다. 기존의 리듬을 사용하고도 100% 창작곡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이다. 

유 아무개 작곡가는 이런 방법으로 만들어진 곡이라는 의혹을 받고 있는 대표적인 곡으로 빅뱅의 <거짓말>을 꼽았다. <거짓말>은 발표되자마자 프리템포의 <스카이 하이>를 표절했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유씨는 “코드 진행이나 느낌이 완전히 똑같다. 하지만 멜로디가 다르고 리듬이 약간 다르기 때문에 표절 판정은 받지 않았다. 작곡하는 사람들은 들어보면 짜깁기 표절했다는 것을 금방 안다”라고 설명했다.

<거짓말>은 발표되자마자 <스카이 하이>와 닮았다 논란

유씨는 제작사에서 표절을 강요하기도 한다고 했다. 그는 “CD 하나를 던져주면서 이런 느낌으로 만들어달라고 요구한다. 작곡 의뢰가 10곡 들어오면 10곡 모두 그렇게 요구할 정도이다. 컴퓨터로 편곡 작업을 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어쿠스틱으로 작곡하던 과거보다 3배 정도 길어졌다. 비애감을 느낄 때도 있다. 하지만 다들 그렇게 하고 있다”라며 대수롭지 않은 듯이 말했다.

악기 소스나 키보드 소리는 똑같아도 법적인 문제가 되지 않는다. 제작자나 편곡자가 이 점을 노리고 유행하는 리듬 소스를 그대로 쓰는 것이다. 이런 음악계 현실에 대해 유씨는 “흥행을 위해 어쩔 수 없다”라는 반응이다. 음악평론가 임진모씨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오랜 불황으로 인해 쉽고 단순한 것, 감각적인 것만 추구하는 형태로 음악시장이 변질되었다. 이로 인해 창의적인 멜로디보다는 좋은 것을 베끼는 방향으로 나아간 것 같다”라고 원인을 분석했다.

자신의 노래를 표절한다는 논란에 휩싸인 작곡가도 있다. 빅뱅의 <마지막 인사> <바보> 등을 작곡한 용감한 형제는 최근 브라운아이드걸스의 <어쩌다>와 손담비의 <미쳤어>를 발표했다. 네티즌들은 이 두 곡을 절묘하게 믹싱해 한 곡으로 만들었다. 유씨는 “코드 진행이 처음부터 끝까지 똑같다. 후렴 부분과 간주 등 곡의 구성은 물론 노래 키와 템포도 똑같다”라며 혀를 내둘렀다.

심수천 작곡가는 표절이 거리낌 없이 이루어지는 음악계 현실을 인정하면서도 “작곡가의 양심에 맡길 수밖에 없다”라고 말한다. 표절했다는 심증은 가지만 물증이 없다 보니 시시비비를 가리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표절이라고 판정하는 데 일관된 기준도 없다. 도입부는 4마디, 중간 부분은 8마디 멜로디가 똑같으면 표절이라는 기준도 사라졌다. 박기동 변호사는 “법적 판단 기준은 ‘실질적으로 동일한가’와 ‘직접 작곡했다는 의거 관계가 입증되는가’이다. 사건별로 판단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소송에 따른 비용과 시간적 부담을 덜고자 정부는 저작권위원회에 저작권 침해 여부를 감정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다. 하지만 법적 강제성이 없어 조정 건수는 한 해 10여 건에 불과하다. 저작권위원회 조정감정팀의 관계자는 “위원회에서 내린 결정이 재판 결정에 영향을 주면 소송으로 가는 횟수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 과거 공연윤리위원회처럼 표절 여부를 심의하는 전문 기구를 만드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라고 말했다.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재고되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지적재산권 민사 5부의 이성호 판사는 “작곡가들이 무의식적으로 베낀 것은 표절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덜 전파되었기 때문이다. 저작권 침해를 따질 때 고의과실 여부를 요건으로 하지 않기 때문에 창작하는 사람들이 ‘고의로 베낀 것이 아니니까 문제 없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작품을 만들고 나면 기존의 작품과 유사한 것은 없는지 스크랩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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