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브랜드’ 공연이 뭐 이래
  • 김지혜 (karam1117@sisapress.com)
  • 승인 2008.10.28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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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문화 알린다며 14억원 지원…1년에 한 번 볼 수 있고, 내외국인 모두에 ‘생소’

▲ 국가 브랜드 공연’을 볼 수 있는 국립극장. 최근 공연이 끝난 은 1년 후에나 볼 수 있다. ⓒ시사저널 임영무

많은 사람들이 한국을 대표하는 공연을 들라면 <난타>나 <점프>를 떠올린다. 그런데 문화체육관광부의 재정 지원을 받는 ‘국가 브랜드 공연’은 따로 있다. 국립극장에 소속된 4개의 전속단체(국립극단·국립창극단·국립무용단·국립국악관현악단)가 공연하는 <태> <청> <춤. 춘향> <네 줄기 강물이 바다로 흐르네>가 그것이다. 그러나 대다수 사람들은 이 작품들이 정책적으로 키우고 있는 국가 브랜드라고 생각하지도 않고 공연 이름을 아는 사람도 거의 없다. 그렇다면 외국인은 이 작품들을 많이 관람하고 있을까? 관련 직원들에 따르면 외국인 관람객 수는 전체 관객의 10%를 넘지 않는다.

국가 브랜드로 알려진 공연 중 심청 이야기를 다룬 <청>을 관람하려고 했지만, 이미 끝난 터라 다음 공연을 보기 위해 홈페이지를 찾았다. 하지만 올해 12월까지는 공연 일정이 잡혀 있지 않았다. 국립극장 고객지원팀에 언제 다시 <청>을 볼 수 있는지 문의하자 “한 1년은 기다리셔야 할 것 같은데요”라고 대답했다. 국가 브랜드 공연 네 편은 국립극장에 지원되는 정규 예산 외에 14억원 이상을 추가로 지원받아 만들어졌다. 그러나 관객들은 이렇게 1년에 한 번 정도만 볼 수 있다.

국감 자료에서 실태 드러나…‘흑자’ 지방 공연도 따져보면 ‘적자’

국가 브랜드 공연의 의미는 정확히 무엇일까.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은 2008년 정기 국정감사에서 ‘우리의 문화와 예술을 브랜드화해 외국 사람들에게 금방 인식시킬 수 있는 작품’이라고 대답했다. 국립극장측의 생각도 비슷하다. 국가 브랜드 공연의 홍보물에는 ‘우리 시대와 관객을 포용하는 한국의 대표작’ ‘세계적인 보편성을 이끌어내겠다’ 등의 표현이 담겨 있다. 한국의 전통문화를 토대로 한 작품을 만들어 우리 국민은 물론 세계가 공감하는 브랜드로 키우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문화체육관광부가 국가 브랜드 공연 사업의 예산을 전액 국립극장에 투입한 지 3년이 되어가고, 1차 사업 만료일이 세 달 앞으로 다가왔는데 외국인은 물론 우리 국민도 이른바 국가 브랜드 작품들을  쉽게 접하지 못하고 있다.

친박연대 김을동 의원이 국정감사에서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2006년부터 2007년까지 2만7천여 명의 관객만이 국가 브랜드 공연을 보았다. 이 가운데 반은 무료 관객이다. 2006년부터 2008년 9월까지 네 공연에 들어간 비용은 16억8천만원이고, 순수하게 ‘국가 브랜드 공연’이라는 명목으로 지원된 돈은 14억원가량이다. 반면 공연에서 얻은 수입은 들어간 비용의 절반도 안 되는 8억3백90만원이었다.

2006년에서 2008년 9월까지 국가 브랜드 공연의 내역을 살펴보면 네 작품 모두 ‘국가 브랜드’라는 이름을 붙이기에 미흡하다. <태>와 <청>은 해외 공연을 했지만 여기에서 나온 수입은 전혀 없다. 인도와 중국에서 공연하면서 오히려 1억3천만원, 3천8백만원의 비용을 썼다. 국립극장이 말하는 ‘해외 공연’은 홍보와 마케팅으로 외국에 작품을 판 것이 아니라 정부의 ‘구색 맞추기용’ 행사에 들러리를 선 것에 불과했다.

국립극장이 흑자를 냈다고 주장하는 지방 공연은 따져보면 ‘가짜 흑자’인 경우가 많다. 겉보기에는 흑자이지만 이중삼중으로 예산을 지원받아 실제로는 정부가 적자를 메워주고 있다. 국립극장은 국가 브랜드 공연을 재단법인 ‘예술경영지원센터’에서 주관하는 ‘서울 아트마켓’에 등록하고 그 등급에 따라 공연료를 받고 있는데, 책정된 공연 가격의 50% 이상은 국가 보조금이다. 예를 들어, 7천만원을 들여 공연하고 1억2천만원을 공연료로 받지만 공연료의 절반인 6천만원은 국가 보조금이라 엄밀히 말하면 1천만원의 적자를 내는 것이다. 결국 국가 브랜드 공연은 국립극장의 정규 예산, 국가 브랜드 공연이라는 명목으로 받는 추가 지원비, 지방 공연을 할 때 지원받는 보조금 등으로 지원을 받아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홍보 부족으로 겉도는 행사에 내년부터 예산 더 늘려

국립극장 공연기획팀 담당자는 “국가 브랜드 공연으로 버티기에는 예산이 턱없이 적다. (14억원을 산술적으로 네 공연으로 나누면) 공연당 3억5천만원 정도인데 제작비로는 부족해서 힘들게 협찬을 받으러 다니고 있다”라고 토로했다.

▲ 국립극장 페스티벌에 나온 국가 브랜드 공연. ⓒ시사저널 임영무

하지만 이를 반박하는 의견도 적지 않다. 국립극장에서 일했던 김 아무개씨는 “두 개는 기존에 있던 공연 아닌가. 연극 <태>는 1970년대부터 공연했고 <춤. 춘향>도 2002년도에 나왔다. 영어 자막을 넣고 안무를 수정하는 것이 몇억 원씩 더  들여야 하는 작업인지 의문이 간다”라고 말했다. 그는 “현재 네 개의 전속 단체가 나눠 먹기 식으로 운영하다 보니 생기는 문제들이다. 가능성 있는 작품에만 집중 투자할 경우 효율성을 한층 높일 수 있다”라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국가 브랜드 공연들이 마케팅을 잘 못해서 성공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한다. 우선 국립극장에서 전체 홍보와 마케팅 담당자는 8명이고 이 중에서 해외 홍보 및 담당자는 3명으로 숫자가 적다. 참신한 마케팅 방법도 부족했다. <난타>의 경우에는 막 공연을 시작하던 2000년께 전 직원이 최초로 ‘여행사 마케팅’을 시도했다. ‘여행사 마케팅’은 일본과 동남아 관객을 끌어오기 위해 현지 여행사를 찾아가서 이들이 판매하는 한국 여행 패키지에 <난타> 공연을 선택 관광으로 포함시키도록 한 것이다. 하지만 현재 국립극단은 국가 브랜드 공연에 다른 국립 공연 기관처럼 항공사나 일반여행업협회와 양해각서(MOU)를 체결해 할인 혜택을 제공하는 흔한 방법도 이용하지 않고 있다. 국립극장은 현재 각 대사관이나 문화관의 공보관을 만나거나 공연 DVD를 보내는 방식으로 국가 브랜드 공연을 홍보한다고 한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지난 9월 초에 발표한 ‘국가 브랜드 사업 연차별 투자 계획’ 따르면 2009년부터 2012년까지 ‘국가 브랜드 작품 개발 및 레퍼토리화’에 지원되는 비용은 연간 35억원, 40억원, 45억원, 45억원으로 총 1백65억원에 달한다. 예산이 지금처럼 지원된다면 또다시 ‘자신들만을 위한 국가 브랜드 공연’을 양산할 가능성이 크다.

 국가 브랜드 공연이 국내외에 널리 알려지고 수익을 내려면 전용 극장을 신설해서 상설 공연을 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국립 공연장은 위치와 시설 면에서 <난타>나 <점프>가 공연하는 전용 극장에 비해서 월등히 뛰어나지만 대관 수입에 의존해왔다. 친박연대 김을동 의원은 “국립극장의 운영 방식을 대관 위주에서 전용 극장으로 활성화하고, 좋은 작품이 있으면 상설 공연하도록 해야 한다. 국가 브랜드 공연은 국민을 하나로 묶어주고 한국을 세계에 알리는 유·무형의 상징물이기 때문에 가능성 있는 작품에 과감하게 투자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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