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 두 번 다 안 받는 스님, 어찌하오리까?
  • 소종섭 (kumkang@sisapress.com)
  • 승인 2008.10.28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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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관 총무원장, 이대통령과 통화 거절 불교계ㆍ정부 갈등 쉽게 풀리지 않을 듯

▲ 지난해 1월 조계사에서 만난 지관 총무원장(오른쪽)과 이명박 대통령. ⓒ연합뉴스

지난 8월27일, 서울광장에서 ‘헌법 파괴, 종교 차별, 이명박 정부 규탄 범불교도대회(이하 범불교도대회)’가 열린 이후 이명박 대통령이 조계종 지관 총무원장에게 두 차례 전화를 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지관 총무원장이 거절해 실제 통화가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사정에 정통한 한 인사는 “그 이후 총무원장이 대통령에게 전화하거나 만난 적은 없다”라고 말했다. 지관 총무원장은 이대통령과 같은 경북 포항 출신으로 올해 78세이다. 대통령보다 나이가 많고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의원과도 잘 안다. 세속으로 치면 같은 집안이기도 하다. 이의원은 불교계 인사와 만난 자리에서 “두 번 전화를 한 대통령이나, 대통령의 전화를 안 받은 총무원장이나 참 대단한 사람들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불교계의 대정부 요구 사항들 중 매듭 지어진 것 없어

지관 원장의 이런 행보는 불교계와 정부의 갈등이 쉽게 풀리지 않을 것임을 예상케 한다. 지난 범불교도대회 이후 지관 원장의 교계 내 리더십은 더욱 강화되었다. 그 전까지 나오던 “되는 일도 없고, 안 되는 일도 없다”라는 불만의 목소리가 쑥 들어갔다. 이런 흐름은 조만간 있을 중앙종회의원 선거와 내년 가을로 예정된 총무원장 선거 때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커 보인다. 벌써부터 불교계에서는 “차기 총무원장은 선거를 하지 말고 추대해서 뽑는 것이 어떠냐”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정부와의 갈등 구조 속에서 사정 당국에 책잡힐 소지를 최대한 줄이면서 지관 원장의 영향력을 막후에서 유지하려는 데서 나온 고민이다. 이 때문에 ‘추대’까지 갈 수 있을지는 몰라도 과거처럼 각종 선거에서 금품이 오가는 행태는 많이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정부와의 긴장 관계가 불교계 내부의 자정 능력을 키워주고 있는 셈이다.

불교계는 지금 대구·경북 범불교도대회를 11월1일에 열기로 하고 준비 중이다. 대한불교청년회 대구지구 등 청년 불교도들은 지난 10월18일 대구 시내에서 삼보일배를 하며 현 정권의 종교 편향을 규탄했다. 지관 총무원장은 10월24일 이 지역 다섯 개 교구본사의 주지와 주요 스님들이 참석하는 회의를 열 계획이다. 불교계에서는 이날 대회에 3만여 명이 넘는 불교도들이 운집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지난 8월 범불교대회 때처럼 지관 원장이 직접 일선 사찰에 전화를 걸어 참여를 독려하지는 않지만 대구·경북 지역에는 기본적으로 불교 신자들이 많기 때문이다. 조계종 한 종회의원은 “스님들도 3천명쯤 참석할 것으로 예상된다”라고 말했다. 이날 대회에서도 지난번 불교도대회 못지않게 현 정부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쏟아질 것으로 보인다.

현재 불교계와 청와대 간에는 천주교 신자인 맹형규 정무수석이 창구 역할을 맡고 있다. 맹수석은 범불교도대회 이후 총무원으로 지관 스님을 찾아가 만난 적이 있다. 불교계도 맹수석을 신뢰하는 편이다. 강윤구 사회정책수석은 밑바닥을 훑고 있다. 이미 전국 25개 교구 본사를 거의 다 방문했다.

현 정부 들어 불교계가 ‘종교 차별’을 주장하며 정부에 요구했던 사항들 중 확실하게 매듭지어진 것은 없다. ‘종교편향금지법’을 제정하라는 요구는 개신교계의 반발에 부닥쳤다. ‘어청수 경찰청장 파면’이나 ‘촛불 수배자 해제’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국회에서 추진되는 각종 입법도 결과를 낙관할 수 없다. 시간만 끌다가 불교계의 반발이 누그러지면 폐기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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