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절한 ‘송금’ , 한 푼 아끼려다 ‘날마다 벼랑끝’
  • 정락인 (freedom@sisapress.com)
  • 승인 2008.11.04 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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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벌러 한국에 온 중국 동포 여성들, 숙식비 버거워 식당·고시원에서 잠자다 참변…“조선족은 나라만 있지 갈 곳이 없다”

▲ 중국인 동포 체류자들이 많이 살고 있는 가리봉동. ⓒ시사저널 박은숙

지난 10월20일 서울 논현동 ㄷ고시원에서 발생한 참사로 세상이 떠들썩했다. 고시원에 기거하던 정 아무개씨(30)가 무차별적으로 칼을 휘둘러 6명이 죽고, 7명이 다치는 살인극에 온 국민이 놀랐다. 특히 고시원에 거주하던 중국 동포들의 희생이 커 이들의 애환이 다시 한 번 세상에 회자되고 있다.

이 사건이 일어난 4일 후 서울 양재동 ㄱ식당에서는 또 하나의 참극이 벌어졌지만 잘 알려지지 않았다. 지난 10월24일 새벽 3시 중국 동포 김해진씨(가명·40)가 잠들어 있던 식당 3층 방에 괴한이 칼을 들고 침입했다. 괴한은 방문 열쇠를 따고 들어와 잠들어 있던 김씨를 성폭행하려고 달려들었다. 김씨는 한참 동안 저항하다가 “물을 달라”라고 요구했고, 괴한이 물을 뜨러간 사이에 창문으로 탈출하려다 그만 바닥에 추락하고 말았다.

당시 5층 노래방에 있던 손님이 ‘쿵’ 하는 소리를 듣고 노래방과 식당 주인에게 연락했고, 김씨는 곧바로 병원으로 실려갔다. 긴급하게 뇌수술 등을 받았지만 살아날 확률은 낮다고 한다. 두개골이 함몰되어 뇌 일부가 손상되었고, 골절된 갈비뼈가 폐를 찔러 폐에 공기가 차 있는 상태이다. 범인과 승강이를 하는 과정에서 귓불도 찢겨졌다.

범인은 같은 식당에서 일하는 남자 종업원 정 아무개씨(28)로 밝혀졌다. 정씨는 건물 폐쇄회로(CCTV)에 얼굴이 찍혀 범행이 들통났고, 인근 PC방에 숨어 있다가 경찰에 검거되었다. 경찰과 ‘중국 동포의 집’ 사람들이 김씨가 기거했던 방에 가보니 바닥에는 범인의 것으로 보이는 칼이 떨어져 있었고, 김씨의 머리카락이 뭉텅이로 뽑혀 바닥에 흩어져 있었다고 한다. 아수라장이 된 방 한쪽에서는 김씨의 딸이 보내온 편지가 발견되어 주위 사람들을 안타깝게 했다.

중국 지린 성 옌지 시에 사는 김씨의 딸 소은이는 올해 열한 살로 소학교에 다니고 있다. 김씨는 지난 2006년 5월 돈을 벌기 위해 한국에 들어왔고 기러기 엄마가 되었다. 딸의 편지는 엄마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득했다. “보고 싶은 어머니, 난 어머니가 빨리 왔으면 좋겠어요”라며 어머니가 가족들 곁으로 돌아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김씨의 딸은 또, 올겨울 엄마에게 받고 싶은 선물이 ‘겨울 모자’와 ‘운동화’라고 했다. 하지만 엄마 김씨는 사랑하는 딸에게 선물을 줄 수 없을 것 같다. 어쩌면 가족들에게 영영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 지금 병원 응급실에서 사경을 헤매고 있기 때문이다.

“보고 싶은 어머니, 빨리 왔으면 좋겠어요”

<시사저널> 취재진은 지난 10월28일 오전에 김씨가 입원해 있는 병원 응급실을 찾아갔다. 김씨의 모습은 한마디로 처참했다. 온몸이 붕대로 친친 감겨 있고 의식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산소 호흡기에 의지해 간신히 숨을 쉬고 있었다. 이 상태가 지속되면 병원에서 조만간 뇌사 판정을 내릴 것 같다고 한다. 김씨의 곁에는 한국에 돈을 벌러 온 친언니와 친동생이 번갈아가며 지키고 있었다. 하지만 두 사람도 일을 나가기 때문에 여러 가지 어려움이 많다.

김씨에 대한 치료와 보상도 막막하다. 범인이 잡히기는 했으나 범인에게 보상받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실정이다. 중국 동포의 집 김해성 대표(목사)는 “식당에서 일어난 사건이기 때문에 치료와 보상 등의 비용은 산업 재해 보상이나 민사 배상 등을 통해 받는 것을 추진하겠다”라고 했지만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는 의문이다. 고시원 참사 사건에 묻혀 국민의 성금을 기대하기도 힘든 상황이다.

김씨는 한국에 들어온 중국 동포 여성들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중국에서 직장인들이 받는 월급은 1천 위안(약 15만원) 정도이다. 반면, 한국에서는 월 평균 80~1백50만원을 벌 수가 있다. 단순 계산을 해도 중국에서 받는 월급보다 몇 배가 더 많다. 때문에 중국 동포들은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한국으로 밀려들고 있다.

▲ 병원 응급실에서 사경을 헤매고 있는 중국 동포 김해진씨(위). 왼쪽은 김씨의 딸 소은양이 보낸 편지. ⓒ시사저널 박은숙



우리 사회에서 중국 동포 여성들은 더 이상 낯선 이방인이 아니다. 서울 시내에 있는 식당에 가면 중국 동포 한두 명은 쉽게 만날 수 있다. 이들은 식당뿐만 아니라 가정부, 간병인, 모텔 등에서 내국인들이 꺼려하는 일을 도맡아 하고 있다. 중국 동포 여성들도 제조업체보다 월급이 많다는 이유로 이러한 일을 선호하고 있다. 한국에 온 중국 동포들의 고민 중 하나는 숙식 문제 해결이다. 돈을 많이 버는 것 이상으로 숙식 비용 등 생활비를 줄이는 것도 중요한 문제이다. 중국 동포들이 국내에 들어오던 초창기에 식당에서 일하는 동포 여성들은 식당에 딸린 작은 방에서 먹고 자는 일이 많았다. 식당 청소를 하거나 문을 열고 닫는 데 편했기 때문에 식당 주인들도 흔쾌히 허락했다. 그런데 최근에는 식당에서 숙식을 기피하는 추세로 바뀌었다. 생활비가 더 지출되어도 쪽방이나 고시원을 찾는다는 것이다. 그 이유가 기가 막히다. 

동포 여성 혼자 식당에서 잠을 잔다는 것을 안 남자 주인이나 종업원 등이 성폭행을 저지르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났기 때문이다. 동포 여성들이 식당이라는 우리 안에 갇힌 채 남자들의 성 사냥감이 되었던 것이다. 성폭행을 당했더라도 신고할 엄두도 못 낸다고 한다. 불법 체류자일 경우 “성폭행 사실을 입 다물고 있지 않으면 관계 당국에 불법 체류 사실을 신고하겠다”라는 협박이 뒤따랐기 때문이다.

합법 체류자도 마찬가지이다. 성관계 사실을 가족에게 알리겠다는 협박이 공공연하게 이어졌다. 때문에 신고를 기피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위에서 언급한 김해진씨의 경우를 보더라도 범인 정씨는 김씨가 중국 동포라는 것을 알고 성폭행하려고 했고, 신고하지 못할 것이라고 믿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일이 자주 발생하자 중국 동포 여성들은 식당에 딸린 방에서 숙식하는 것을 금기시하고 있다. 논현동 고시원 참사에서 중국 동포들의 희생이 컸던 것도 고시원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동포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전체 사상자 13명 중 중국 동포가 6명이었고, 사망자 6명 중 절반인 3명이 중국 동포였다. 또한, 모두 여성이었다는 것이 이를 입증하고 있다.

식당 사장·종업원이 호시탐탐 성폭행 노려

이번에 희생당한 중국 동포들은 국내에 들어온 후 악착같이 일을 했다. 고시원 주변 식당에서 아침 10시부터 밤 10시까지 한 달에 3~4일만 쉬고 2백만원도 안 되는 월급을 받았다. 보통 식당일을 하면서 받는 돈은 1백20만~1백50만원 정도이다. 처음 몇 달간은 입국 브로커에게 소개비로 100여 만원을 꼬박꼬박 챙겨주어야 한다. 중국에서 국내로 들어오는 데 드는 소개비는  6백만~7백만원 정도이다.

한 달에 1백50만원을 번다고 가정할 때 입국 소개비 100만원, 한 달 고시원비 17만원(방 크기에 따라 다름)을 지불하고 나면 나머지 33만원을 가지고 가족들에게 송금하고 생활비로 써야 한다. 

이번 참사에서 희생된 중국 동포 고 이월자씨(49)와 고 박정숙씨(52), 고 조영자씨(53) 등 사망자 3명은 갖가지 딱한 사연을 안고 한국에 왔다. 첫 희생자인 이월자씨의 경우 장애를 갖고 있는 아들의 수술비와 둘째딸 결혼 비용을 벌기 위해 한국에 왔다가 변을 당했다.

이씨의 아들 방 아무개씨(20)는 어릴 때 끓는 물에 발이 빠져 중화상을 입었고, 이후 두 다리를 온전히 사용하지 못하는 후천성 장애자가 되었다. 성인이 되었지만 장애 때문에 취업이 힘들었고, 이를 보다 못한 어머니 이씨가 수술비를 벌기 위해 한국에 왔다고 한다. 다행히 이씨의 아들은 서울 강남성모병원에서 무료로 수술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이씨는 죽어서나마 평생 소원이었던 아들의 다리를 고칠 수 있게 된 것이다.

손과 발, 허리 등에 타박상을 입은 김미자씨(가명·32)는 순천향병원에서 나와 중국 동포의 집에서 운영하는 외국인 노동자 전용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고 있다. 김씨는 3층 화장실 완강기를 타고 내려오다가 부상을 입었다.  

외국인 노동자의 집측에 따르면 중국 동포 사망자 1인당 약 3천만원의 보상금이 돌아갔다고 한다. 지난해 2월 발생한 여수출입국관리사무소 화재 사건과 지난 1월 발생한 이천 냉동창고 화재 사건 당시에는 중국 동포 사망자에게 약 1억5천만원의 보상금이 지급되었다. 이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다.
 
서울 강남구에서 지급한 위로금 3백만원과 법무부산하 범죄피해자지원센터에서 지원한 3백만원을 제외한 나머지는 성금으로 마련된 금액이다. 내국인이 범죄로 인해 사망할 경우 보통 1천만원이 지급되고 있다. 하지만 중국 동포들은 중국 국적자인 외국인으로 분류되고 있어서 구조금 신청 자격이 안 된다. 이에 따라 법무부는 범죄피해자지원센터 자체 예산으로 위로금을 지급했다.

“중국 동포들에게도 재외동포법 적용해달라”

고시원 참사로 희생당한 고인들의 유해는 10월28일 서울의료원에서 장례식을 치른 후 벽제 화장터에서 화장해 외국인 노동자 전용 병원 안식의 집에 안치되어 있다. 유족들은 고인들의 주변정리를 위해 아직 한국을 떠나지 않고 있다.

유족 대표인 고 박정숙씨의 남편 차영선씨(52)는 “중국 동포들은 한국이나 중국에서 의붓자식 취급을 받고 있다. 조선족은 나라만 있지 갈 곳이 없다. 재외동포법을 만들어 국회를 통과했으면 중국 동포들도 내국인과 동일하게 적용해야 하는데 그렇지가 않다. 조국에 대한 배신감이 없지 않다. 그나마 민간 단체에서 힘을 써준 것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법무부에 따르면 4월 말 현재 국내에 머무르고 있는 중국 동포는 모두 38만여 명이다. 이 중 취업 등록자가 1만7천2백97명이며, 제조업이 7천6백60명으로 가장 많다. 그 다음으로 일반음식점, 건설, 가사서비스 순이다. 중국 동포 대다수가 취업 신고를 하지 않는 것을 감안하면 실제로는 음식점과 건설업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정부는 지난 2004년 ‘재외동포의 출입국과 법적 지위에 관한 법률(재외동포법)’을 개정했지만, 중국 동포와 러시아 동포는 미국·일본 동포와 달리 재외동포 비자(F-4)를 받지 못하고 5년 기한의 방문 취업 비자(H-2)를 받고 있다.

중국 동포의 집 김해성 대표는 “중국 동포들에게도 재외동포법을 즉각 적용해서 시행해야 한다. 한국 국적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사회적 안전망에서 배제되어 있고, 법적 피해 보상 등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중국 동포 범죄 피해자 구조를 위해 정부가 대책을 세워야 한다”라고 촉구했다.

한국 사회에서 중국 동포들은 여전히 이방인 취급을 당하고 있다. 사회 저변에 깔려 있는 온갖 멸시와 차별이 중국 동포들을 고통으로 내몰고 있는 것이다. 국내에 들어오는 재외 동포들에 대한 인권·복지 등에 대해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한 때이다.

 

▲ 정 아무개씨가 휘두른 칼에 6명이 숨진 논현동 ㄷ고시원(왼쪽)과 장례식을 마치고 한자리에 모인 중국 동포 유족들(오른쪽). ⓒ시사저널 박은숙(왼쪽),정락인(오른쪽)


국내 체류 중국 동포, 갈수록 는다

국내에 체류 중인 외국인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총 1백6만6천2백91명이다. 전년에 비해 17.2%가 증가한 수치이다. 체류 목적별로는 산업연수생을 포함한 외국인 노동자가 47.1%(50만2천82명), 결혼 이민자는 10.4%(11만3백62명), 어학 연수생을 포함한 유학생이 5.7%(6만1천29명)이다.

3개월 이상 장기 체류하고 있는 외국인 76만5천7백46명 가운데 중국 국적이 55%(42만1천4백93명)로 가장 많다. 이 중 중국 동포는 31만4백85명이다. 전체 외국인 결혼 이민자 11만3백62명 중에서 중국 국적이 57%(6만3천2백3명)를 차지하고 있다. 외국인 유학생도 중국 국적이 가장 많다. 전체 유학생 6만1천29명 중 78.1%(4만7천6백77명)나 된다.

한편, 국내에 체류하고 있는 외국인 중에서 불법 체류자는 22만3천4백64명으로 전년에 비해 5.4%가 증가했다. 국적별로는 중국이 10만2천4백26명(중국 동포 3만4천4백48명)으로 45.8%, 베트남이 1만4천9백92명으로 6.70%, 태국이 1만4천8백87명으로 6.66%, 그 외 필리핀, 몽골, 방글라데시의 순이다. 지난해 3월 방문취업제가 실시되면서 중국 동포들의 입국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 앞으로도 이런 추세는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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