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보편적 복지’로 가야 한다”
  • 감명국·김회권 기자 (kham@sisapress.com)
  • 승인 2008.11.04 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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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희 보건복지부장관 / “업무에 연속성·전문성 필요해…선배들 도움 구해 계승할 것”

ⓒ시사저널 임준선

전재희 보건복지가족부장관의 말에는 군더더기가 없다. 모범 답안을 달달 외우고 나온 수험생처럼 묻는 말에 일목요연하면서도 딱 적당한 양만큼만 답변한다. 최근 국민이 느끼는 식품 안전 문제 등 복지 정책에 대한 불만과 불안감으로 몰아붙이려 했던 기자의 의도는 한풀 꺾이고 말았다. “잘 할 테니 한 번 믿고 지켜보라”라고 하는데 뭐라고 더 타박을 할까. 이제 3개월째 접어드는 초보 장관인 그녀의 어디에서 그런 자신감이 넘쳐나는지 궁금했다. 국내 최초의 여성 관선 시장, 최초의 여성 민선 시장이라는 기록을 갖고 있는 전장관은 지금의 복지부장관 자리가 자신의 몸에 꼭 맞는 의자인 양 편안하고 자연스러워 보였다. 최장수 복지부장관이라는 새 기록을 더 만들 듯한 기세였다.      

국회의원의 자격과 장관의 자격으로 느끼는 국감은 상당히 다를 듯하다. 이번 국감에서도 여전히 구태에 관한 지적이 나오는데 장관으로 처음 맞은 국감의 문화는 어떠했나?

보건복지가족위원회의 경우 정책 국감을 하려고 애썼다고 생각한다. 부분적인 정치 공세가 있었지만 국회의 특성상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국감을 준비하기 위해 의원과 보좌관들은 몇 개월씩 준비한다. 지적당하는 부처로서는 아플 수도 있지만 오히려 감사한 부분이다.

민주당에서 평가한 국무위원들의 국감 성적 평가 결과에서 전장관이 3위라는 비교적 높은 점수를 받았다.

나 자신이 최대한 정직하게 임하려고 노력했다. 할 수 없는 것을 할 수 있는 것처럼 이야기해서도 안 되고, 잘못한 것을 잘했다고 강변할 수도 없다. 소홀하다고 하면 인정하고 개선하면 된다. 간혹 지적하는 부분이 옳지만 너무 이상적인 것도 있는데, 그런 것은 취지는 좋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일부 사안에 대해 복지부의 잘못을 인정하는 모습은 보기 좋았다. 하지만 문제는 그 후속 조치일 텐데.

국정감사 때 모든 과장들에게 의원들의 지적 사항을 메모해달라고 했다. 지적 사항을 고치는 것을 완료해야 국정감사가 끝나는 것이다. 나중에 각 과장들에게 얼마나 개선시켰는지 중간 점검을 할 예정이다.

부처 직원들이 긴장을 많이 하겠다.

그렇지 않으면 국감 자체가 국력 낭비이고 시간 낭비 아닌가. 개선할 점이 있으면 해야 하고, 국감을 받는 기관들은 더 철저하게 지적 사항을 받아들이려는 노력이 따라야 한다고 본다.

복지부의 경우 특히 업무 특성상 연속성이 필요하다. 그런데 장관의 교체가 너무 잦다는 지적이 있다.

지나치게 잦은 교체는 업무의 연속성과 전문성을 해친다. 일정 기간 동안은 소신껏 일할 수 있어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업무 파악은 어느 정도나 되었다고 보는가?

공무원 생활의 경험을 바탕으로 볼 때, 업무를 정확하게 파악해서 직관력이 작용하기까지 1년 정도 걸리더라. 그런 면에서 장관이 통찰력을 가지고 일하려면 1년은 넘어야 할 것 같다.

연속성이라는 점에서 전직 장관들과의 교류가 필요할 것 같다.

행정의 노하우를 전수받을 때 제1의 스승이 전임 장관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비교적 최근에 물러난 장관들이 부처 사정을 잘 아니까 시간 나는 대로 한 분씩 뵙고 자문을 받기도 한다.

행정은 일관성이 중요하다. 그리고 미래 지향적으로 기획해가야 한다. 개혁은 필요하지만 일관성의 토대 위에서 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행정은 제자리 뛰기 할 수밖에 없다.

지금 국민의 최대 불안은 역시 식품 안전 부분이다. 주무 장관으로서 어떤 복안을 가지고 있나?

우선은 많은 먹을거리가 중국 등 다양한 나라에서 수입되고 있다. 국내에서 생산되는 먹을거리도 모든 안전이 보장되어 있지 않다. 유해 식품은 언제든 발생할 개연성이 있다. 유해 식품이 발생했을 때 대응 매뉴얼이 마련되어 있고 또 공무원이 그를 숙지하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번 멜라민 사건을 겪어보니까 공무원들이 부서가 자주 바뀌고 매뉴얼이 없으니 제대로 처리를 못하더라. 대응 매뉴얼을 만들어 전 직원에게 교육시키도록 하고 있다.

매뉴얼 외에 소비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인가?

매년 중국에서 수입하는 먹을거리가 전체 수입 건수에서 30% 정도이다. 그것을 다 검사하기 어려우니 앞으로 OEM의 경우는 자가 검사를 하고 현지에 민간 검사 기관을 만드는 방법 등으로 수출 이전 단계에서 안전을 확보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그리고 그동안 외주 작업을 했던 해외 사이트의 유해 정보 검색을 이제 식약청에서 직접 하도록 할 계획이다. 락토페린도 뉴질랜드 인터넷에 뜬 것인데, 이를 바로 우리나라에서 확인하고 첨가 제품을 확인하면서 대응할 수 있었다.

판매 중지나 회수, 폐기되는 제품을 방송 자막으로 보여주고, 휴대전화 미아 찾기처럼 메시지를 띄우는 방법도 관계 기관의 도움을 얻어 추진하고자 한다. 어떤 사건이 있었을 때 그 사건을 잘 활용하면 발전의 계기가 된다. 이번 사건도 식품 행정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기회일 수 있다.

빈부 격차로 생기는 건강 서비스에 대한 불평등 문제의 경우도 국민에게 직접 와 닿는 부분이다.

일단은 보험료를 높이고 보장성을 넓히는 것이 좋은지, 보험료를 덜 내고 보장성을 줄이는 것이 좋은지에 대해 국민의 뜻을 물어볼 생각이다. 국민에게 이것을 개선할 경우 가격이 얼마가 오르는지 구체적으로 알려주고 의향을 들어볼 생각이다. 전국 7개 지역을 돌면서 설명회를 할 생각이다. 일단 여건이 허락하는 만큼 보험료 인상과 보장성 확대를 동시에 기할 계획이다.

감기 등 비교적 부담이 적은 질병보다는 병원비 부담이 큰 중증 질병에 보험 적용을 확대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그것도 설명회를 통해 국민의 뜻을 물어볼 계획이다. 그런데 그 부분에 대해서 생각보다는 가입자들의 찬성이 적은 듯하다. 큰 병이 들었을 때는 그런 것을 강렬하게 갈망하지만 막상 그런 경우가 수적으로 많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그리고 병원을 수시로 가는 분들에게는 잦은 병원비도 큰 부담을 초래한다. 국민 건강보험에 대한 의견 통일을 이루기는 어렵지만 국민의 공감대 속에서 보험료 인상과 보장성 확대를 결정했으면 좋겠다는 것이 내 바람이다. 그동안은 너무 전문가 이야기에만 의존한 감이 있다.

의료 서비스를 강조하는 일부 계층에서는 대가를 지불하는 것만큼 질 높은 서비스를 받아야겠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건강보험 당연지정제 폐지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있다.

절대 폐지할 수 없다. 생명과 건강이 돈 때문에 차별을 받아서는 안 된다. 당연지정제를 폐지하면 형편이 어려운 위중한 환자가 큰 병원에서 진료를 받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의료의 공공성 때문에 당연지정제 폐지는 절대 안 된다.

일부 의사와 병원측의 불만이 제기될 수도 있겠지만, 궁극적으로는 국민이 의료 서비스를 잘 받을 수 있다는 목표와 맞닿아야 한다. 흉부외과나 산부인과 등 의사 지망자가 점차 줄어드는 과목에 의료수가를 조정해주는 노력은 할 수 있다. 하지만 당연지정제 폐지는 모든 국민이 적정 진료를 받는 목표와 상충하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다.

건강보험·국민연금의 재정 상태에 관해 불안해하는 국민이 많다.

우리의 건강보험 제도, 국민연금 제도는 세계적으로 우수한 제도이다. 건강보험 제도는 약간의 비상금을 제외하면 당해에 필요한 돈을 거두어 당해에 지출하는 시스템이다.

국민연금 제도는 당초 설계될 때 덜 내고 더 받는 제도로 출발했다. 덜 내고 더 받는 부분을 모두 고칠 수는 없어서 지난번에 부분 수정을 했다. 그로 인해 소진 시기를 2060년으로 늦춰놓았다. 즉, 연금이 50년 정도 지속될 수 있다는 것은 상당히 안정적으로 운용되고 있다는 증거가 된다. 그 사이에 추세의 변화에 따라 보완은 필요하다. 예를 들어 소득 구간으로 보험료를 내는데 그 구간을 좀더 세분화하고 현실화시키는 작업은 필요하다.

저출산율의 우려에 관해 말은 많지만 실질적으로 도움을 주는 제도적인 혜택은 거의 없는 것 같다.

우선은 아이를 낳고 싶어도 낳지 못하는 사람들을 돕고 있다. 우리나라 불임 부부가 대략 100만명인데 시술비가 3백만원 정도 한다. 현재 소득계층 하위 70%까지 지원해주고 있다. 세 번 정도 시술해야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내년에는 3회까지 지원해줄 예정이다.

직장 생활 때문에 아이를 낳지 않으려는 경향을 감안해서 앞으로는 보육 문제에 역점을 둘 생각이다. 그동안 차상위 계층까지만 무상 보육을 했는데 내년에는 하위 50%까지 무상 보육을 할 계획이다.

또, 0~1세까지 보육비가 한 달에 70여 만원이 드는데 그걸 가정에다 줄 것이다. 그동안은 보육료를 어린이집에다 직접 지급했는데 이제는 엄마들한테 주면 그걸 가지고 어린이집을 골라서 가는 것이다.

집에 일찍 돌아오는 ‘나홀로 아동’을 돌보는 지원 시스템도 시행하고 있는데, 생각보다는 이런 다양한 정책들이 국민에게 잘 안 알려진 듯하다. (웃음)

공무원과 달리 일반 기업들의 경우 육아 휴직을 길게 쓰는 것도 어려운 형편이다.

지금은 기업도 브랜드가 굉장히 중요하다. 따라서 각 기업의 복지 정책을 점검해서 가족 친화 기업을 인증하는 제도를 시행할 계획이다. 여성들에게 물건을 파는 데 유리한 요건을 만드는 것이다.

우리나라 기업들이 여유를 갖기 힘들지만 핵심 노동 계층이 지난해부터 감소세로 가고 있다. 이렇게 계속 가면 우리나라의 장래는 없다. 출산의 문제는 군에 가는 문제 이상으로 중요하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지난 정권에 대해 ‘잃어버린 10년’이라는 표현을 써서 논란이 된 바 있다. 장관으로서 지난 정부의 복지 정책 10년을 평가해달라.

국민의 정부 때는 기초생활평가 제도를 도입했고, 참여정부 때는 노인장기요양병원과 기초노령연금 등 저소득층의 생존권 차원에서 복지의 틀을 갖췄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동안 저소득층 복지 틀은 갖췄지만 좀더 보편적인 틀은 갖추지를 못했다. 저소득층이 아니지만 좀더 질 높은 삶을 살기 위해 세금을 낸 사람이 받을 수 있는 보편적인 복지 서비스는 못했다. 이제는 그쪽으로 가야 한다고 본다.

내년 경제가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면서 복지 정책이 위축될 것이라고 우려하는 시각이 많다.

재정의 한계 때문에 정부가 하고 싶은 복지를 하지 못하는 것은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이다.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서민층이 먼저 타격받기 때문에 복지 정책을 통해 정부가 배려해야 한다. 또, 경제가 발전하면 할수록 복지 재정은 늘어나니까 복지는 선순환으로 돌아갈 것이다.

공무원으로 출발, 오랜 의정 생활을 거쳐서 다시 공직자로 되돌아왔다.

이 자리에 있는 동안 보건복지의 과정이 나아지는 데 기여하고 싶다. 개인적으로는 공직자의 말에 에누리가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있는 그대로 정직하게 국민에게 말씀을 드리고, 또 약속한 것은 이행하고, 그래서 국민이 공직자를 믿을 수 있는 시대가 오기를 바라고 그런 공직자의 모습으로 기억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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