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 스타’ 대통령 쌍방향 소통은 언제쯤?
  • 유창선 (정치평론가) ()
  • 승인 2008.11.04 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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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설로 본 MB 리더십 / 세일즈형 스타일에 논리적 일관성 약해 콘텐츠도 부족하고 자기 얘기만 주력해 국민들 ‘시큰둥’

▲ 10월27일 오전 이명박 대통령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시정 연설을 하고 있다. ⓒ시사저널 임영무

이명박 대통령의 소통 행보가 계속되고 있다. 지난 9월에 ‘대통령과의 대화’를 가진 데 이어 10월에는 첫 라디오 연설을 했다. 여러 말도 많았지만 라디오 연설을 정례화하기로 가닥이 잡힌 상태이다. 10월27일에는 이대통령이 국회를 찾아가 시정 연설을 하기도 했다. 그동안은 총리가 대독하는 것이 관행처럼 되었는데, 이번에는 이대통령이 직접 연설을 한 것이다. 경제 위기와 관련해 국민에게 단합의 메시지를 직접 전하고 싶은 생각에서였을 것이다.

지난 촛불 정국 때 많은 사람들은 대통령과 정부가 국민과 제대로 소통하지 않고 있음을 지적했다. 국민과 소통하지 않은 결과가 얼마나 뼈저린 것인가를 실감한 이대통령도 국민과의 소통을 다짐했다. 그렇게 보면 이대통령은 그때의 다짐을 이행하고 있는 셈이다. 국민의 입장에서도 대통령이 국민과 적극적으로 소통하겠다는데 반기지 않을 이유가 없다. 대통령이 너무 많은 말을 해도 문제이겠지만, 국민과의 소통이 자주 있는 것은 아무튼 좋은 일이다.

연설이나 기자회견 때마다 논란거리 만들어내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시빗거리가 많다. 이대통령이 연설이나 기자회견을 하고 나면 이런저런 지적이 무성하다. 물론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도 그러기는 했다. 당시 노대통령은 속에 담았던 생각을 모두 꺼내놓는 식이었기 때문에, 연설이나 기자회견을 하고 나면 새로운 논란거리가 생겨나곤 했다. 지금 이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 때와는 달리 특별히 공격적인 연설을 하는 것은 아니다. 속마음까지 털어놓는 말을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여러 지적이 나오곤 하는 것은 역시 이대통령이 내놓는 소통의 콘텐츠 때문이다.

국민의 기억에 남는 이대통령의 연설이나 기자회견이 몇 차례 있었다. 한·미 쇠고기 협상을 둘러싼 논란이 확산되던 5월에 있었던 대국민 담화, 촛불 시위가 절정에 달했던 6월에 있었던 특별 기자회견, 7월의 국회 개원 연설, 10월의 라디오 연설과 국회 시정연설 등이 그것이다. 이대통령이 취임 이후 행한 각종 연설을 꼼꼼히 뜯어보니 몇 가지 공통점이 발견되었다.

먼저 이대통령의 연설은 주로 국민의 어려움을 껴안으려는 내용으로 시작하곤 한다. “제가 심혈을 기울여 복원한 바로 그 청계광장에 어린 학생들까지 나와 촛불 집회에 참여하는 것을 보고는 참으로 가슴이 아팠습니다”라는 심경 토로가 나오는가 하면, “정부가 국민께 충분한 이해를 구하고 의견을 수렴하는 노력이 부족했습니다.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소홀했다는 지적도 겸허히 받아들입니다” “캄캄한 산 중턱에 홀로 앉아 시가지를 가득 메운 촛불의 행렬을 보면서, 국민을 편안하게 모시지 못한 제 자신을 자책했습니다”라는 자책도 나온다. 금융 위기와 관련해서는 “요즘 참 힘드시죠? 저 역시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 또 무슨 우울한 소식이 없는가 걱정이 앞섭니다”라고 연설을 시작하기도 하고, “전대미문의 금융 위기로 인해 국민께서 얼마나 불안해하고 고통을 받고 계신지 잘 알고 있습니다. 금리 부담이 늘어나 가계 부담에 한숨 짓는 서민의 어려움을 이해합니다”라는 위로의 말로 운을 떼기도 한다.

대통령이 국민의 상태와 정서를 깊이 알고 있다는 표시이기도 할 것이다. 그리고 무슨 얘기를 하기 이전에 국민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얘기부터 하는 것이 좋다는 판단의 결과일 것이다. 대통령이 자신의 말을 하기 이전에 국민을 걱정하는 말부터 하는 것은 일단 듣기 좋은 일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같은 내용이 종종 의례적인 수사(修辭)가 되곤 한다는 점이다. 이대통령의 말을 더 듣고 있노라면 이내 분위기가 180℃ 달라진다. 이대통령의 연설은 후반으로 갈수록 특유의 낙관론으로 기운다. “반드시 경제를 살리겠습니다. 국내외 기업이 마음 놓고 투자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내겠습니다”라는 약속은 연설마다 반복적으로 들어가고, “우리가 힘만 모으면 이 어려움을 어느 나라보다도 먼저 극복할 수 있습니다”라는 자신감 섞인 호소도 마찬가지이다.

위기 극복 자신감이 립 서비스로 들리기도

특히 이대통령은 위기 극복에 대해 강한 자신감을 드러내곤 한다. “자만은 경계해야 하지만 자신감은 가져야 합니다. 이 위기를 올바로 극복하면, 한국 경제는 다시 살아날 수가 있습니다. 살아날 것입니다”라고 장담하게 된다. 그 결과 “이번 위기가 끝나면 세계 모든 나라의 경제력 순위가 바뀔 것이고, 대한민국의 위상도 높아질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고, 대한민국의 미래는 여전히 밝습니다”라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연설 앞과 뒤의 분위기가 논리적 연결 과정 없이 반전되다 보니, 이미 꺼냈던 걱정의 언어들이 의례적인 ‘립 서비스’가 아닌가 하는 마음을 갖게 만든다. 대통령에게서 위로받아야 했던 국민이 중간의 연결 다리조차 없이 장밋빛 미래로 건너뛰게 되는 상황을 접하게 되기 때문이다.

물론 대통령은 국민에게 자신감을 갖는 모습을 보일 필요가 있다. 현실이 아무리 어렵다 해도 대통령이 앞장서서 국민에게 자신감을 고취시키는 것은 박정희 시절 ‘하면 된다’ 구호 이래의 전통적인 방식이다. 자신감을 불러일으켜야 국민의 힘을 모으는 일도 가능하다. 문제는 이대통령의 낙관적 전망에 항상 구체적인 대안과 방법이 빠져 있다는 점이다. 할 수 있다, 될 수 있다, 이런 식의 주장은 계속 나오지만, 그것을 위해서 대통령과 정부는 무엇을 할 것인지, 구체적인 방법이 함께 설명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종종 실천 방안이 없는 호언장담이라는 소리를 듣는 것이다.

낙관적 미래를 가능하게 할 정부의 구체적 전략과 방안에 대한 설명은 취약한 대신, 국민이나 야당에 대한 주문은 많은 편이다. 그래서 야당으로부터는 위기의 책임에 대한 사과는 없이 주문과 요구만 한다는 반발을 사기도 한다. 그렇지 않아도 이대통령의 연설은 야당에 대해 상당히 차가운 편이다. 야당이나 반대 세력을 껴안기 위해 손을 내미는 내용에는 무척 인색하고 자신의 주문만을 얘기하는 경향이 짙다.

“자기 말만 하고 끝낸다”

이대통령의 연설이 종종 일방적이라는 지적을 받는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자신과 정부에 대한 진지한 성찰은 없이 낙관적 미래만 얘기하고 야당과 국민에게 단합하고 힘을 모아줄 것만 주문하고 끝내니, 듣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대통령이 자기 말만 하고 끝낸다는 인상을 갖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국민과의 소통이 쌍방향의 것이 되지 못하고 일방적 모습을 띠는 것이야말로 ‘이명박 대통령식 소통’이 갖는 근본 문제라 할 수 있다. 이것은 앞서 지적한 내용적인 면뿐만 아니라 소통의 형식에서도 그러하다. 지난 9월 ‘대통령과의 대화’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청와대의 과민한 신경, 라디오 연설 정례화 추진 과정에서 나타난 일방적 시도 등이 그것이다.

이제 미디어 환경도 크게 변화하고 정치·사회적 소통 방식도 쌍방향성이 대세로 자리한 마당에 청와대의 일방적 소통 방식은 무척이나 고루해 보인다. 특히 대통령이 비판과 반대의 목소리를 듣는 기회를 피하고 자신의 얘기만을 전하는 데 매달리는 한, 국민과의 의미 있는 소통은 불가능할 수밖에 없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는 대통령이 아무 때나 토론하자고 공격적으로 나서서 문제였다면, 이제는 반대로 자기 얘기만 하는 방식을 고집하는 모습이어서 문제이다. 이대통령의 연설이 국민에게 가까이 다가오기 위해서는 청와대가 좀더 과감한 변화의 모습을 보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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