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까지 이럴 건가”
  • 이은지 (lej81@sisapress.com)
  • 승인 2008.11.04 0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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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침체에 아우성치는 서민들 “희망이 없다” 로또·경마장 매출 늘어 한탕주의 바람까지

▲ 소비 위축으로 패션업체들이 줄도산하는 가운데 재고 물량이 쏟아져나오고 있다. ⓒ시사저널 유장훈

“외환위기 때보다 더 먹고살기가 힘들다.” 기업인이든 자영업자든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다. 인건비를 비롯해 임대료, 원자재비 등 고정비 부담이 외환위기 환란 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기 때문이다. 소비 심리 위축으로 매출마저 뚝뚝 떨어지자 자본력이 없는 하청업체나 소상공인들은 버티지 못하고 줄줄이 문을 닫고 있는 실정이다. 불황의 여파를 직격탄으로 맞는 패션업의 경우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15개 브랜드에 옷을 납품하는 ㅍ회사는 가을 시즌 장사를 하면서 3억원을 손해보았다. 20억원에 달하는 물량을 계약하면서 마진율을 15%로 잡았는데 환율이 30%나 올라버렸다. 최 아무개 사장은 “중국에 옷 가공을 맡기던 5월에는 환율이 1천50원이었는데 통관 시점에는 1천4백원으로 뛰어올랐다. 그렇다고 브랜드 업체에 손실을 보존해달라고 할 수도 없다”라고 하소연했다.

70% 할인된 옷도 팔리지 않아

더 큰 문제는 손실분을 만회할 여지조차 없다는 점이다. 최사장은 “지금쯤 봄 상품에 대한 계약이 이루어져야 한다. 하지만 의뢰가 들어온 곳이 한 군데도 없다. 외환위기 때에도 이런 적이 있었지만 단기간에 끝났다. 그런데 지금은 회복될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구조 조정을 할 수밖에 없다. 그래도 안 되면 결국, 문을 닫아야 하지 않겠느냐”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브랜드 업체는 대신 판매 저조에 따른 재고 부담을 100% 안는다. 이를 견디지 못해 9월에만 패션네트를 비롯한 4개의 중견업체가 부도 처리되었다.

올가을부터 영업을 중단한 브랜드도 톰보이의 ‘잇셀프바이톰보이’, 예신퍼슨스의 ‘허스트’를 포함해 20여 개나 된다. 남은 의류들은 소비자 가격의 5~20%만 받고 땡처리 업자에게로 넘긴다. 이 덕에 땡처리 업자들이 호황을 누린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땡처리 업체인 ‘오렌지’는 영업을 중단한 ‘허스트’로부터 5억원어치의 물량을 넘겨받았다. 하지만 얼마나 팔릴지는 의문이다. 오렌지의 서명식 영업이사는 “소비가 워낙 위축되다 보니 70% 할인된 옷조차 팔리지 않는다. 외환위기 당시에는 신용카드 때문에라도 소비가 조금은 이루어졌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것도 없다. 한 번 겪었기 때문에 소비가 더욱 움츠려들고 있다”라며 답답한 심정을 털어놓았다.

경제가 어려우면 의류비 다음으로 줄이는 것이 외식비이다. 재료비와 임대료 상승으로 가뜩이나 힘들어하던 식당들은 손님마저 뜸하니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 한국음식업중앙회에 따르면 9월에 폐업을 신청한 외식업체만 4천개에 달한다. 휴업 신청은 2만 건에 달한다. 올해 전체로 따지면 전체 60만개 음식점 가운데 3분의 1이 폐업이나 휴업을 한 상태이다. 1개 점포당 평균 3명이 고용되어 있으니 60만명이 실업자로 전락한 셈이다. 이 가운데 80%가 30평 미만의 영세한 식당이다. 외식업체의 몰락이 서민 경제의 파탄으로 직결되는 이유이다.

서울 도봉구 창동에서 오리집을 운영하던 김 아무개씨 역시 열흘 전에 문을 닫았다. 외환위기도 잘 넘겼던 김씨였다. 그는 “AI 파동으로 매출이 급감하자 빚이 생기기 시작했다. 최근 경기 하락으로 빚이 불어나자 동업자가 야반 도주했다. 결국, 1억원 가까이 날렸다. 회생할 자본마저 없어 눈앞이 깜깜하다”라며 울분을 터뜨렸다.

한국외식산업연구소 신봉규 소장은 영세한 식당일수록 경기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신소장은 “영세한 식당의 경우 임대료나 인건비, 재료비, 세금의 비중이 전체 매출의 90%에 달한다. 남는 것이 별로 없다. 많이 팔아야 그나마 운영이 가능한데 요즘처럼 장사가 안 되면 금방 망한다”라고 설명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장사가 잘 되는 사람들도 불안에 떨 지경이다. 창업을 하는 사람도 지난해와 비교해 절반 가까이 줄었다. 올해 10월까지 음식점 영업 신고 건수는 3만 건에 불과하다. 슈퍼마켓도 마찬가지이다. 한국슈퍼마켓협동조합연합회에 따르면 최근 들어 월 4백~5백개 업체가 문을 닫았다. 하지만 8월 이후 새롭게 문을 연 곳은 거의 없다.

서울 마포구 도화2동에서 30년간 작은 구멍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김 아무개 할머니는 요즘 같은 불경기는 처음이라고 했다. 김할머니는 “이 가게로 네 식구가 먹고 살았는데 지금은 혼자 먹고사는 것도 벅차다. 용돈벌이밖에 되지 않아 자식들에게 손을 벌린다”라고 말했다.

상인들은 불황의 원인을 무분별하게 들어선 대형 마트에서 찾았다. 한국슈퍼마켓협동조합연합회 조대연씨는 “상인들의 불만이 극에 달해 폭동을 일으키기 직전이다. 하반기에 대형 유통점과 슈퍼마켓이 상생할 수 있는 법안이 통과될 수 있도록 조직적인 움직임을 벌일 것이다”라고 전했다. 경제난으로 민심이 흉흉해져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 행운을 바라고 로또 매장을 찾은 사람들. ⓒ시사저널 박은숙

이처럼 불황으로 서민들의 숨통이 조여오자 사행성 사업에  실낱같은 희망을 거는 이들이 늘고 있다. 로또의 경우 9월과 10월에 전년 동기에 비해 판매가 4% 늘어났다. 나눔로또 차승연 씨는 “로또 피로감으로 해마다 평균 12% 정도 판매량이 줄어드는 것을 감안하면 지금은 13% 정도 매출이 늘어난 셈이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기자가 서울 상계동에 위치한 로또 판매점에 가보니 평일 오후 3시임에도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로또 판매점 김현길 사장은 “9월부터 매주 매출이 10% 정도 오르고 있다. 외모로 판단해서는 안 되지만 딱 봐도 자기의 소득 수준에 비해 과도하게 로또를 하는 사람들이 최근 눈에 띄게 늘어났다. 가정주부들이 아기를 업고 와서 로또를 하는 모습도 자주 보인다. 그만큼 생활이 팍팍해졌다는 이야기이다”라고 말했다.

“1주일이라도 행복하게 보내고 싶다”

이 매장에서 만난 김순식 할아버지는 아파트 경비로 받은 월급 90만원 가운데 40만원을 로또에 투자하고 있었다. 의정부에서 왔다는 서동우씨는 1주일 전에 담배를 끊는 대신 매주 로또를 하기로 결심했다. 서씨는 “희망이라도 품고 1주일을 보내고 싶어서”라고 이유를 밝혔다.

경마장 매출도 올랐다. 10월 말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13.2%나 증가했다. 입장 인원은 오히려 1.8% 감소했다.

한 사람이 배팅하는 금액이 늘었다는 계산이 나온다. 강원랜드 카지노 입장객 수도 9월 한 달 7천6백여 명으로 지난해에 비해 9백명이 늘었다.

한탕주의 조짐이 보이고 있는 현 상황에 대해 고려제일 정신병원 김진세 원장은 “대박이라는 것은 어차피 존재하지 않는다.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능력 안에서 취미 활동으로 행운을 잡으려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비현실적으로 투자하면 더 큰 짐이 되어 자신에게 되돌아올 뿐이다. 경제가 최악일 때에는 개미처럼 일에 몰두하며 상황이 진전되기를 지켜보는 것이 최선이다”라고 충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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