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설픈 경제 정책 한국은 ‘밥’이었다
  • 정은호 (제로인투자자문 대표) ()
  • 승인 2008.11.04 0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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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의 고환율 정책이 ‘먹잇감’ 자초

▲ 헝가리의 한 금융 브로커가 중앙은행 앞에서 담배를 피고 있다. ⓒ연합뉴스

1997년 외환위기를 통해 헤지펀드에 호되게 당한 우리나라는 헤지펀드에 대해 심리적으로 히스테리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헤지펀드는 뮤추얼펀드와 마찬가지로 고객의 자금을 모아 수익을 내서 분배하는 금융 수단일 뿐이다. 다만, 레버리지를 활용한 대규모의 자금을 통해 전세계적으로 큰 영향을 미치며 투자 대상을 가리지 않는다는 점에서 헤지펀드의 움직임은 늘 주시의 대상이 된다. 대다수 헤지펀드들은 전환사채 등을 통한 차익거래나 롱/숏전략 등 투자 대상과 전략을 분명히 밝히는 방식을 사용하지만 글로벌 매크로 펀드(global macro fund)로 통칭되는 헤지펀드는 시장 방향성에 일방적으로 베팅을 하는 전략을 사용하며 주로 외환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조지 소로스의 퀀텀펀드와 줄리안 로버트슨의 타이거펀드가 대표적이다. 특히 외환 관련 헤지펀드로 가장 크게 명성을 얻은 것은 조지 소로스의 퀀텀펀드였다. 1992년 소로스는 파운드화가 고평가되어 있다는 주장을 펼치며 100억 달러 규모의 파운드화를 내다팔았다. 그의 의견에 따라 많은 투자자들이 매도 행렬에 동참했고, 메이저 총리의 지휘 하에 영란은행이 1백50억 달러 규모의 차입을 통한 방어에 나섰지만 결국, 실패하고 메이저 총리는 물러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소로스는 10억 달러의 수익을 얻었다. 문제는 순서이다. 소로스의 매도가 파운드화 폭락에 원인을 제공한 것인지, 아니면 고평가에 대한 정확한 예측을 기초로 한 정상적인 거래였는지는 규명하기가 어렵다. 어쨌거나 막대한 자금력으로 한쪽 방향으로 공격을 해대면 환율은 움직일 수밖에 없다.

아시아 통화 위기 때도 엄청난 수익 올려

동일하게 1997년 몇몇 헤지펀드는 아시아 통화 위기를 통해 막대한 수익을 올렸다. 역시 이들이 시장의 불안을 유발했는지, 단순히 상황을 적절히 활용해 정상적인 이득을 얻은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분명한 것은 이들이 위기 상황에 많은 포지션을 취해 이익을 얻었다는 것이며, 그 방향이 위기를 가중시켰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월가의 칼럼니스트인 윌리엄 페섹에 이어 최근 일부에서 주목을 받고 있는 약세론의 선봉장 누리엘 루비니 뉴욕 대학 교수, 올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폴 크루그먼 교수 등은 잇달아 헤지펀드의 위험으로부터 취약한 국가로 우리나라를 지목했다.

한국의 외환시장이 세계적인 움직임과 다른 길을 가면서 삐거덕거리기 시작한 것은 오래전부터이다.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에게는 잊고 싶은 일이겠지만, 강장관은 지난 2월 인사청문회 당시 ‘환율 안정을 통해 중소기업 경쟁력을 제고’하겠다며, 수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원화 가치를 끌어내릴(환율 상승)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장관 취임식 직후의 기자간담회에서도 “환율을 시장에 온전히 맡기는 나라는 어디에도 없다”라며 ‘환율이 주권’이라는 확고한 입장을 밝혔다. 시장은 즉각 반응해서 달러 환율이 오르기 시작했다. 금융 위기의 진원지로서 문제 해결을 위해 막대한 달러를 찍어낼 수밖에 없다는 예측이 실현되면서, 기축통화로서의 미 달러화의 지위가 흔들려 전세계 거의 모든 통화에 대해 달러가 헐값에 팔리고 있는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그 싸구려 달러화가 유독 한국 시장에서만 비싸게 팔리고 있었던 것이다. 누가 사들였던 것일까? 물론 투신권의 달러화 헤지에 대한 수요나 수입 대금을 위한 결제 수요, 외화 차입금 변제를 위한 일상적인 수요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강장관의 이같은 발언은 향후 달러화 강세 쪽으로 갈 것이라고 시장에 방향을 지시해준 격이었다. 당연히 달러화를 보유한 기업들은 환율이 올라갈 것에 대비해 공급을 줄였고 달러가 필요한 측에서는 하루라도 빨리 달러화를 확보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그럼에도 향후 달러화의 강세 기조는 유지될 수밖에 없다는 신호를 전세계에 직접 내려주었다. 헤지펀드 매니저들에게는 최고의 기회가 온 것이다. 환율의 방향을 안다는 것은 상대의 패를 보고 포커를 하는 것과 동일하다. 거기다가 외환보유고라는 상대의 실탄도 확인이 된 상태이다. 이제는 베팅만 남았다. 그러한 추세가 지난주까지 이어진 것이다.

태국·필리핀·인도네시아도 ‘꿀꺽’

▲ 이창용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헤지펀드 컨퍼런스’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런 상황은 당연히 1997년의 외환위기를 떠올리게 한다. 당시 조연이었던 강장관이 주연으로 부상한 것 이외에 외환시장에서 벌어지는 상황은 놀랍도록 유사하다. 1997년 초 경상수지 적자와 몇몇 대기업의 부도로 외국인 투자자의 투자 심리가 약해지면서 자본이 대거 해외로 빠져나가기 시작한다. 2008년 9월 우리나라 경상수지는 적자로 전환되었고, 외국의 자본들은 유동성 확보를 위해 연일 사상 최대 규모의 주식을 팔고 국내 시장을 떠났다.

1997년 당시 원화 가치 하락을 방어하기 위해 정부는 외환보유액을 쏟아붓기 시작했다. 정부의 움직임이 한쪽 방향으로 확정되면 헤지펀드와 같은 투기 세력이 가장 좋아하는 장이 펼쳐지게 된다. 어떤 식으로 거래를 해도 반대편에서 정부가 받아주겠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부터는 물량 싸움이 된다. 1997년에도 전세계 헤지펀드들은 레버리지를 활용한 막대한 차입을 통해 달러화를 사들이기 시작했다. 결국, 정부는 보유한 달러를 모두 날리고 국제통화기금(IMF)에 유동성 자금을 요청하게 된 것이다. 주식시장에서 헤지펀드가 보유한 물량이 외국인 소유 주식의 11%에 불과하다는 주장도 환율 문제와는 직접적인 관련이 적은 것이다. 주식시장의 자금 회수에 따른 달러화 수요가 문제가 아니라 원·달러 환율 자체에 대한 공격이 문제인 것이다.

헤지펀드와 환율 전쟁이 벌어지면 대개의 경우 개별 국가의 성공 확률이 높지 않다.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의 시발점이 되었던 태국에서의 국지전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당시 태국은 고정환율제를 사용하고 있었고 이에 따라 바트화는 달러화에 비해 상당히 고평가되어 있는 상황이었다. 먹이를 포착한 헤지펀드들은 바트화에 대한 대대적인 매도 공세를 펴기 시작했고, 태국 정부는 달러를 동원해 자국 통화를 매입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태국이 보유한 달러화 실탄은 헤지펀드들의 대규모 자금력에 비해 너무 미미한 수준이었다. 결국 고정환율제는 폐기되었고, 이어 필리핀과 인도네시아를 비롯한 동남아 국가로 무대를 옮긴 헤지펀드들은 최종적으로 한국까지 IMF에 손을 벌리게 만들었던 것이다. 물론 홍콩처럼 헤지펀드의 공격을 성공적으로 막아내고 오히려 이를 기회로 활용한 경우도 있다. 미 달러화에 대해 7.8홍콩달러로 환율을 유지시키는 페그제를 적용하고 있는 홍콩에 대해서도 공격이 시작되었다. 헤지펀드들이 홍콩달러를 매각하기 시작했고, 홍콩 당국은 금리 상승으로 대응했다. 물론 이에 따른 주식시장 하락은 불가피했다. 그러자 헤지펀드들은 홍콩달러 선물을 매도하는 동시에 홍콩 주식시장에서는 지수 선물을 매도하는 전략을 취했다. 이대로라면 홍콩의 주가는 더 하락하고 홍콩 달러화는 평가 절하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헤지펀드는 주가 하락에 의한 지수 선물에서도 이득을 내고 홍콩달러화의 하락에 따른 선물 매도에서도 이득을 얻는 포지션을 만들어낸 것이다. 이를 간파한 홍콩 정부는 2주 동안에 1백52억 달러에 달하는 자금을 주식시장에 투입해 단기간에 주가지수를 20% 끌어올렸다. 헤지펀드는 결국 막대한 손실을 입고 손을 들었고, 홍콩의 페그제는 올해 25주년을 맞이하며 건재를 과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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