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신뢰 되살릴 결단이 필요하다
  • 전남식 편집국장 (niceshot@sisapress.com)
  • 승인 2008.11.04 0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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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다소 한가하게 들리겠지만 ‘한국 위기의 중심에 리만 브라더스(이명박 대통령-강만수 기획재정부장관)가 있다’는 한 외신의 조크를 복기해보자. 이 조크에는 한국 경제 리더십의 실상이 그대로 담겨 있다. 한마디로 시장으로부터 얕보였다는 것이다. 그동안 이대통령이나 강장관이 시장에 전한 메시지들은 허공만 맴돌았다. 투자자들은 환율이 치솟으면 달러 사재기에 바빴고, 주가가 떨어지면 오히려 주식을 팔아 장세를 더욱 악화시키곤 했다. 악성 루머가 횡행하고 헤지펀드가 설쳐대 판은 더욱 어지러워졌으며, 한국이 ‘부도 도미노’에 걸린 나라로 거론되기까지 했다.

한·미 통화 스와프 협정 체결 덕분에 한숨 돌렸다 해도 시장 불안을 근원적으로 불식시키지는 못했다. 그동안 수조 원을 풀고 금리를 한꺼번에 무려 0.75% 포인트나 내렸어도 시장은 전혀 감동하지 않았다. 대통령을 비롯해 관료들이 나서 외환보유액이 충분하다고 그토록 강조했건만 누구도 믿지 않았다. 결국, 미국에 달러를 빌리는 고육책을 쓰고서야 급한 불을 끌 수 있었다. ‘글로벌 패닉’의 골이 워낙 깊다 하지만 재정과 금융 수단을 총동원해도 불안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리더십을 탓할 수밖에 없다. 

대통령은 실물 경제를 살리기 위해 온갖 조치를 취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국민에게 허리띠를 졸라매자고 호소했다. 그러나 가슴에 절절하게 와 닿지 않는 듯하다. 이명박 정부는 ‘1929년 대공황’의 수렁에서 미국을 구해낸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리더십을 벤치마킹해왔다. ‘노변정담(fireside chats)’을 본 따 라디오 연설로 국민 설득에 나섰고, “가장 경계해야 할 적은 공포심”이라는 루스벨트의 레토릭을 애용하기도 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루스벨트와는 달리 이대통령의 호소는 국민에게 어떤 희망도 주지 못하고 있다.

세계 경제는 지금 칠흑 같은 어둠을 헤쳐나가고 있다. 이전의 사고방식이나 기준으로는 납득하지 못할 불신이 시장에 짙게 깔려 있다. 세계 경제 대통령으로 불렸던 앨런 그린스펀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이미 완벽하게 망가졌고, 투자의 귀재라는 워렌 버핏의 말도 귀담아 듣는 사람이 별로 없다. 이런 때 우리 국민이 믿고 기댈 수 있는 것은 대통령과 정부뿐이다. 하지만 대통령을 비롯한 경제 사령탑은 오히려 불신을 키워왔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이대통령은 자신의 주변부터 정리할 필요가 있다. 그런 다음 국민에게 희망과 비전을 안겨주는 리더십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가 현 경제팀에 집착하는 것은 상황의 본질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결과라 여겨진다. 한국 경제의 당면한 과제는 불신의 늪에서 빠져나오는 것이다. 이런 마당에 신뢰를 잃은 참모들을, 마치 오기를 부리는 듯 껴안고 있는 모양새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경제난은 이제 막 시작되었고 언제 끝날지 모른다. 갈 길이 멀다. 결단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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