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시대의 의미를 제대로 읽어라
  • 유창선 (시사 평론가) ()
  • 승인 2008.11.11 11:06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유창선 (시사 평론가)

40대 나이, 흑인, 초선 상원의원. 이런 인물이 세계 최강대국 미국의 대통령 자리에 오르게 된 것은 정치 혁명이라고 표현해도 지나치지 않을 일이다. ‘오바마 정치 혁명’은 레이건 이후 미국 정치를 주도해온 30년 보수주의 시대의 종언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또한 역사적 사건이다.

돌아보면 미국 대선에서 오바마가 당선된 과정은, 2002년 한국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가 당선되었던 과정과 매우 유사하다. 상고 출신에, 정치권에서는 비주류였고, 한국 사회 주류 세력으로부터 배척받던 노무현이라는 정치인이 대통령 자리에 올랐던 장면도 오바마만큼이나 극적이었다. 더욱이 이번 미국 대선 과정에서도 인터넷과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앞세운 젊은 세대의 힘이 유감없이 발휘되었다는 얘기를 접하면, 2002년 한국의 대선과 놀랄 만큼 유사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시장 만능주의 쇠퇴 등 ‘변화’의 내용을 짚어야

그러나 오바마 시대의 탄생을 보면서, 이미 6년 전에 그같은 정치 혁명을 이루었음을 자랑만 할 수 없는 데 우리의 안타까움이 있다. 결국 노무현 시대의 실험은 절반의 실패로 끝나고 말았기 때문이다. 변화를 향한 국민적 기대 속에서 출발했던 노무현 정부는 임기 내내 소모적인 논란에 파묻혀 막상 시대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막을 내렸다. 그래서 미국에서 시작되는 오바마 실험에 대해 기대를 가지면서도, 우리가 경험했던 기대와 좌절의 과정을 떠올리며 착잡함을 감출 수 없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그래서일까. 이번 미국 대선 결과에 대해 노무현 전 대통령측 사람들은 말을 아끼고 있다.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은 “새로운 미국의 변화를 주창하는 오바마 당선인과 대한민국의 새로운 변화를 제기한 이명박 정부의 비전이 닮은꼴이다”라고 자평했다.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도 두 지도자는 공통된 철학을 공유하고 있다며 거들고 나섰다.

오바마와 이명박 대통령이 어디 공통된 철학을 공유하고 있다는 말인가. 한 사람은 미국의 30년 보수주의 정치 시대와 대결해 승리한 인물이고, 다른 한 사람은 ‘진보 정권 10년’을 부정하며 보수주의를 구현하는 국정 철학을 갖고 있는 인물인데 어떻게 그런 논법이 성립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결국 오바마 시대의 개막이 낳고 있는 ‘변화’의 의미를 제대로 읽지 못한 소치이다. 보수주의의 퇴조, 시장 만능주의의 쇠퇴, 신자유주의의 수정, 일방주의적 대외 정책의 변화, 북·미 관계의 정상화. 이런 것들이 오바마 시대가 가져올 변화의 내용이라면 청와대는 표피적인 공통점 찾기 게임을 즐길 것이 아니라, 예고된 변화 앞에서 우리 사회는 어디로 향해야 할 것인지, 더 긴장하고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야 마땅하다.


그동안 좋은 글을 써주신 소설가 김홍신씨의 뒤를 이어 이번 호부터 시사 평론가인 유창선 박사가 시론 필진에 새로 합류했습니다. 유박사는 SBS 라디오 <시사진단> 등 다수의 시사 프로그램을 진행했고, ‘대통령과의 대화’에 패널로 출연하는 등 활발히 활동해왔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관심과 성원을 바랍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