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 문학상 수상작 영화화한 작품…인간 본연의 선악 보여줘
<눈먼 자들의 도시>는 시대적 배경이 불분명한 어느 도시에 원인을 알 수 없는 전염성 실명 바이러스가 퍼지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담고 있다. 바이러스가 겉잡을 수 없이 퍼지고 사람들이 두려움에 휩싸이자 정부는 감염자들을 격리 수용한다. 바이러스의 확산에 대한 두려움은 <레지던트 이블> <28일 후> 등의 상업영화에서 익숙한 설정이다. 하지만 <눈먼 자들의 도시>는 바이러스에 대항하는 정부와 영웅들이 아니라 갑작스럽게 실명하고 격리 수용당해 어쩔 줄 모르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이들은 그 안에서 새로운 사회를 만들고 권력 관계를 형성한다. 권력은 폭력을 낳고, 두려움은 복종을 낳는다. 권총이라는 권력을 가진 자는 스스로를 왕이라 칭하며 식량을 독점하고, 이성과 논리로 무리를 이끌던 안과 의사는 이성이 무너진 사회에서 무력할 뿐이다.
영화는 큰 무리 없이 진행된다. 원작 속 인상적인 장면도 비교적 충실하게 옮겼다. 하지만 ‘왜’와 ‘어떻게’가 빠져버린 등장인물들의 행동에서 관객들은 쉽게 공감대를 얻지 못할 것 같다. 더구나 우리 근대사의 부끄러운 부분을 떠올리게 하는 영화의 하이라이트 장면에서는 분노를 억누를 수 없지만, 등장인물이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필연성을 부여하지 못하고 있다. 앞을 못 보는 세상에서 앞을 볼 수 있다는 가장 큰 힘을 가진 여주인공이 폭력 집단의 강압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치밀하게 전달하지 못한 탓이다.
낮과 밤의 극명한 빛의 대비가 인상적
그럼에도 스크린에 비치는 영상미는 훌륭하다. 화면을 하얗게 덮으며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화이트 아웃이 눈먼 자들의 세상을 효과적으로 표현하며, 낮 장면에서의 빛의 과잉과 밤 장면에서의 극대화된 어둠의 대비는 인간 본연의 선악을 이야기하는 듯하다. 각종 쓰레기가 나뒹구는 무너진 도시를, 밝고 선명한 화면에 아름답게 담고 있는 장면도 인상적이다. 유일하게 앞을 볼 수 있는 안과 의사 부인을 연기한 줄리안 무어와 권총으로 얻은 권력으로 마음껏 폭력을 휘두르는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의 연기도 일품이다. 11월20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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