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립금 수익률 ‘반 토막’ 나도 내년에 등록금 또 올리면 되지?
  • 이석 (ls@sisapress.com)
  • 승인 2008.11.11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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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허가로 금융권 투자 나섰던 대학들 줄줄이 ‘낭패’…대부분 “큰 손실 없다” 변명

▲ 연세대 학생들이 학교 측의 투자 내역에 대한 정보 공개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주요 사립대학들이 최근 전세계적으로 터진 금융 위기의 ‘유탄’을 맞아 골머리를 앓고 있다. 대학 적립금 또는 법인 수익금으로 투자한 주식이나 펀드가 ‘반 토막’ 나면서 적지 않은 손실을 입은 것이다. 해마다 물가상승률을 앞질러 인상되는 등록금명세서를 받고 있는 학생들의 입장에서는 기가 막힐 일이다.  대학들이 적립금을 투자했다가 입은 손실을 결국, 자신들의 등록금으로 메우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이진선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간사는 “대학들이 그동안 ‘영업 기밀’ 운운하며 적립금 내역이나 투자 수익률 공개를 꺼려왔다. 그러나 상당수 대학들이 현재 엄청난 투자 손실을 입은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밝혔다.

현재 시장에서 거액을 잃은 것으로 소문난 대학들은 “펀드 등에 투자한 것은 사실이지만, 손실을 입지는 않았다”라고 강변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대학은 한결같이 투자한 내역을 공개하지 않아 불신을 키우고 있다.
연세대는 최근 2천3백97억원에 달하는 적립금 사용 내역을 교내 신문인 ‘연세춘추’를 통해 이례적으로 공개했다. 연세대 학생들로 이루어진 ‘부자학교 펀드 감시단’과 ‘등록금 대책을 위한 시민단체 전국 네트워크’(이하 등록금넷)가 수익률 공개를 요구하며 기자회견을 열자 마지못해 응한 것이다. 연세대가 밝힌 적립금의 투자 내역은 정기예금 51%, 채권 34%, 요구불예금 9%, 펀드 6% 등이다. 이 학교 역시 지난해 정부가 사립대학의 수익증권 투자를 허용하면서 펀드에 6%나 투자했다. 그러나 구체적인 펀드 투자의 내역이나 수익률은 공개하지 않고 있다. 그저 “손실은 크지 않았다”라고 답하고 있을 뿐이다.

광주대, 건설사에 투자했다 막대한 손실

▲ 학생들이 적립금 투자에 반발하고 있는 이유는 투명성 때문이다. ⓒ시사저널 박은숙

학생들이나 시민단체에서는 학교측의 이같은 해명을 액면 그대로 믿지 않고 있다. 금융 위기 여파로 코스피지수가 1년여 만에 반 토막이 나다시피 했다. 최근 주식시장은 마치 롤러코스터를 탄 것처럼 급등락을 반복하고 있다. 내로라하는 자산운용사의 펀드도 최근까지 50% 가까운 손실을 보았다. 이런 상황에서 구체적인 해명 없이 연세대가 투자한 펀드만 건재하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김영민 부자학교 투자 감시단 대표는 “연세대는 외환위기 직후인 지난 1999년 이래로 한 해도 빠짐없이 등록금을 인상했다. 학생들에게 등록금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양해해달라고 하면서 정작 중요한 것은 감추고 있다”라고 말했다. 금융 위기로 벙어리 냉가슴을 앓듯 고심하고 있는 것은 비단 연세대만의 일이 아니다. 주요 사립대학 전체의 딜레마이다.

박이선 참교육 학부모회 수석부회장은 “지난해 말 정부가 대학의 수익성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이유로 적립금의 제2 금융권 투자를 허가했다. 이에 따라 대학들은 고수익을 노려 공격적인 투자에 나섰다. 쉬쉬하고 넘어갈 일이 아니다. 적립금 운용 현황을 투명하게 알리고 개선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국립대인 서울대도 최근 수익증권에 투자해 적지 않은 손실을 입은 것으로 밝혀졌다. 김선동 한나라당 의원이 최근 교육과학기술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서울대는 지난 9월30일 현재 2천3백90여 억원의 발전기금 중 38.7%인 9백63여 억원을 수익증권에 투자하고 있다. 그 결과 -6.32% 손실이 났다. 현금으로 치면 61억원 정도를 잃은 것이다. 그나마 채권이나 현금성 자산 등이 5% 안팎의 수익을 내서 전체 운용 수익률은 마이너스를 면했다. 하지만 연간 수익률은 지난해 10.8%에서 올해 1.64%로 급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남 무안군에 위치한 초당대 역시 지난해 말부터 각종 펀드에 적립금 96여 억원을 투자했다가 곤욕을 치르고 있다. 9월30일 현재 이 펀드는 -7.8%의 수익률을 기록 중이다. 1년 만에 7억5천만원을 앉아서 날린 셈이다. 이 대학 역시 국공채 등에 분산 투자해 더 이상의 수익률 악화는 막을 수 있었다고 한다.

광주대의 경우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이 대학은 지난해 8월 코스닥 상장 건설업체인 ㅅ사의 BW(신주인수권부사채)를 인수하는 방식으로 법인 수익금 50억원을 투자했다. 문제의 건설사는 당시 서울 명동에서조차 회사채가 거래되지 않을 정도로 신용이 악화된 상태였다. 미분양 아파트 증가로 인한 건설사 부도가 줄을 잇고 있던 터라 이 대학이 왜 이 회사에 거액의 투자를 했는지 의문시되기도 했다. 최근 이런 우려가 현실로 나타났다. 불과 1년여 만에 ㅅ사의 주가가 5분의 1토막이 나 장부가로 막대한 손실을 입게 된 것이다. 광주대측은 주식 전환 비중이 낮기 때문에 손실은 크지 않다고 말한다. 대학 관계자는 “등록금 위주의 수익 구조를 탈피하기 위해 공격적인 투자를 했다가 손실을 입었다. 50억원 중에서 15억원만 주식으로 전환하고, 나머지 25%는 여전히 BW로 유지하고 있다. 향후 주식시장이 좋아지면 손실을 메울 수 있다. 주식으로 전환된 물량 역시 앞으로 주가가 오르면 손실을 만회할 것으로 본다”라고 해명했다.

대학 관계자들은 정부가 대학들의 증권 투자를 허용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여서 피해 규모가 상상을 초월할 만큼 클 것이라고 말한다. 황희란 한국대학교육연구소 연구원은 “교육계에서는 사립대학 적립금의 증권 투자를 허용하기 이전부터 우려가 적지 않았다. 대학이 공격적인 투자를 했다가 실패할 경우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들에게 전가되기 때문이다”라고 지적했다.

때 아니게 요즘 각 대학에서 등록금 투쟁이 벌어지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이다. 주식 투자로 적립금을 날린 대학들이 등록금 인상 카드를 만지작거리며 학생들의 부담을 늘릴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그동안 대학들이 불려놓은 적립금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알리지 않고 해마다 등록금을 올려 받는 현실을 바꿔보겠다며 등록금 투쟁을 벌여왔다. 현재의 금융 위기는 그 투쟁을 한층 가열된 국면으로 몰아가고 있다. 

정부도 “손실 입은 대학은 극소수”

그러나 정부는 느긋하기만 하다. 적립금을 투자했다가 손실을 본 대학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교육과학기술부가 최근 조사한 사립대학의 적립금 현황을 보면 지난 9월30일 기준으로 적립금을 주식에 투자했다고 신고한 대학은 불과 다섯 곳에 불과하다. 교과부 관계자는 “최근 주식 투자 사실을 공개했거나, 수익률이 떨어져 손실을 입은 대학은 극소수이다. 현행법상 정부가 법인의 자금 운용에 간섭할 수 없어 설사 손실을 입은 대학이 있다해도 제재를 가할 길이 없다”라고 말했다.

김선동 한나라당 의원은 “정부는 지난해 사립대학의 증권 투자를 허용하면서 사후 감독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관리가 소홀한 틈을 타서 사립대학들이 주식 등에 적지 않은 투자를 한 것으로 알고 있다. 정부 차원에서 이런 무분별한 투자 행태를 제어할 조치를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정부가 뒤늦게 대책을 내놓았다는 사실이다. 정부는 지난 11월4일 국무회의에서 교육 관련 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특례법 시행령을 통과시켰다. 이 중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이 적립금 현황이다. 오는 12월1일부터는 대학이 등록금이나 적립금, 기부금 현황 등 구체적인 예·결산 내역을 인터넷을 통해 의무적으로 공개하도록 한 것이다. 각 대학의 구체적인 예·결산 내역이 알려지면 대학들이 근거 없이 등록금을 올리는 일을 막을 수 있을 것으로 교육계에서는 보고 있다. 


사립대 적립금, 얼마나 쌓여 있나

대학생들의 등록금 투쟁 명분 가운데 대표적인 것은 대학들이 보유하고 있는 적립금이다. 대학측이 돈을 충분히 쌓아놓고 있음에도 등록금을 연례 행사처럼 올리는 처사에 반발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11월 초 홍익대 총학생회는 학교 정문 앞에서 ‘적립금 7백80억 규탄 행동의 날’을 열고 대학측에 “적립금 내역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더 받은 등록금 2백만원을 환원하라”라고 요구했다. ‘더 받은 등록금’은 지난해 학생들이 낸 등록금에서 학교측이 적립한 7백80억원과 누적 적립금 3천6백97억원을 학생들 개개인에게 환원했을 경우의 금액이라고 학생회는 주장했다.

이런 움직임은 홍익대만의 현상이 아니다. 대다수 사립대학의 경우 적립금을 늘리면서 학교 재정을 등록금에 의존하고 있다.  장학금은 등록금의 16%에 불과하다.

한국사학진흥재단이 최근 발표한 ‘2007년 회계연도 사립대 재정통계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교육 관련 사립대학 재정 규모는 22조8천6백33억원으로 2006년 20조6천514억원에 비해 10.7%가 증가했다. 이 중 적립금은 사립대학 연 수입 규모 17조8천2백45억원의 40.6%를 차지하고 있다. 사립대의 누적 적립금은 전년에 비해 12.1%(7천8백88억원) 증가한 7조2천9백96억원으로 조사되었다. 이는 2005년도 적립금 총액 5조7천6백억원에 비해 25.7%나 늘어난 것이다.

대학별로 보면 이화여대가 5천1백14억원으로 가장 많았고 홍익대 3천6백97억원, 연세대 2천7백30억원, 동덕여대 1천9백93억원, 청주대 1천8백98억원, 수원대 1천7백34억원, 고려대 1천7백4억원 등의 순이었다. 적립금 규모가 100억~5백억원대인 대학도 55.1%나 되는 등 대학들의 돈 쌓아두기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문제는 적립금 대부분이 학생들이 내는 등록금에서 나오고 있다는 데 있다.

대학들의 전체 재정 규모에서 등록금 수입이 차지하는 비율인 등록금 의존율의 경우 평균 55.4%이다. 교비 회계만을 기준으로 하면 평균 65.7%로 등록금 의존도는 더 높아진다.

누적 적립금의 용도를 살펴보면 2007년 기준으로 건축이 49.7%로 가장 많았고, 그 다음 연구(6.9%), 장학(6.7%) 등의 순으로 집계되었다. 2005년과 2007년의 적립금 용도를 비교하면 장학 사업의 비중이 48% 증가했고, 건축은 18.9% 증가에 그쳐 장학 사업 비중이 점차 커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절대 액수를 비교하면 건축 분야 적립금이 2조4천7백51억원, 장학 분야 적립금이 4천4백44억원으로 대학이 공부하는 곳이라기보다는 마치 부동산 개발사처럼 여겨질 정도이다. 올해 정기국회에서 대학 적립금의 문제를 제기한 조전혁 한나라당 의원은 “사립대학이 절대 학령 인구가 감소하는 현실에서 교육시설을 확충하는 등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비하기 위해 돈을 적립하는 것을 탓할 수는 없지만 적립금을 터무니없이 많이 늘리고 있는 데는 문제가 있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사립대학 적립금의 20%인 1조4천6백억원만 활용해도 대학생 1인당 1천만원씩 14만6천명에게 등록금를 빌려줄 수 있다며, 적립금을 등록금 인상 논란 해결을 위한 대안으로 활용하자고 제안했다.

1조4천6백억원은 현재 4년제 대학의 1년간 학비와 맞먹는 액수이다. 일부 대학에서는 재학생들에게 저리로 등록금을 빌려주고 있으나 실적은 미미하다. 조의원은 “대학의 동록금 대여 제도가 실질적인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정부가 등록금 대여 이자 지원과 함께 대학 적립금의 일부를 등록금 대여 용도로 변경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주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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