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아리 없는 ‘투쟁’ “그래도 우리는 한다”
  • 김지혜 (karam1117@sisapress.com)
  • 승인 2008.11.11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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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학생회, 다른 대학과 연대하며 “정부가 해결하라”

▲ 지난 11월3일 ‘세대교체’에 소속된 고려대 총학생회는 정부 종합청사 앞에서 등록금 인하를 요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초겨울로 접어드는 11월 대학가에 때아닌 등록금 투쟁이 거세게 벌어지고 있다. 학생들의 등록금 투쟁은 매년 3월 개강과 동시에 반짝 일어났다가 4월과 5월이 되면 별 성과 없이 사그라지곤 해서 ‘개나리 투쟁’으로 불렸다. 여기에는 총학생회의 연례 행사나 이벤트로 전락해 별 성과 없이 끝나곤 했던 투쟁 자체를 비하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

그러나 대학별 총학생회의 임기가 끝나가는 지금 일어나는 등록금 투쟁은 무척 이례적이다. 방식과 투쟁 대상도 이전과는 다르다. 각 학교의 총학생회들은 학교 당국과의 ‘각개전투’를 넘어 다른 대학들과 연대해서 정부를 대상으로 투쟁을 벌이겠다고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이들은 1천만원이 넘는 대학 등록금을 감당하지 못해 원하는 공부를 할 수 없는 학생들의 현실은 학교 차원을 넘어서 정부가 해결해야 할 사회 문제라고 주장한다. 수많은  대학생들이 사회에 나오기도 전에 빚더미를 떠안고 평생을 신용불량의 위기에서 헤매야 하는 상황은 정부가 나서 획기적인 대책을 내놓기 전에는 타개할 방도가 없다는 것이다.

최근 등록금 투쟁의 시발점은 ‘서울 지역 대학생연합’이 지난 10월31일 현 정부가 대선 전 내걸었던 ‘반값 등록금’ 공약을 지키지 않았다며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이명박 정부를 검찰에 고발한 것이었다. 이들의 목소리는 점점 커져 11월1일 청계광장에서 열린 ‘반값 등록금 공약 이행 촉구 시민·학생·학부모대회’에서 정점에 달했다. 교육과학부는 11월3일 ‘기초수급생활자에 대한 전원 무상 장학금, 근로 장학금 확충, 정부 학자금 대출이자 지원 확대’ 등을 담은 등록금 대책을 발표했지만 학생들의 누적된 불만을 잠재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등록금 대책을 위한 전국 시민·사회 단체 전국 네트워크’(이하 등록금넷)와 ‘세상을 바꾸는 대학생들의 교육권리찾기 공동체’(이하 세대교체)는 “반값 등록금 공약부터 이행하고, 등록금 상한제와 후불제 등을 도입하라”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민주당은 2009년도 예산을 증액해 대학 등록금 부담을 낮추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대학생을 중심으로 시민단체와 정치권까지 합세해 정부에 등록금을 인하하라고 압력을 넣고 있는 모양새이다.

철 지난 등록금 투쟁이 의외로 활발하게 펼쳐지고 있는 것은 대학생들의 상당수가 매년 뛰어오르는 등록금이 버거울 만큼 절박하게 경제적 부담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대학생연합(이하 한대련) 조민경 집행위원장은 “그동안 쌓여왔던 학생들의 분노가 폭발한 것 같다. 우리는 정부에게 3월부터 줄기차게 반값 등록금 공약을 지키라고 요구했지만 달라진 것이 없다. 사립대학들은 이번에도 7~8%까지 등록금을 인상했고 상당수 학생들은 또 대출을 받아 등록금을 냈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빚을 내서 학교에 다니는 대학생들의 수는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교육과학기술부에서 2005년 2학기부터 시행한 ‘정부 보증 학자금 대출’의 경우, 2005년 2학기 18만2천 건, 2006년 51만5천 건, 2007년 61만5천 건, 2008년 63만5천 건으로 대출 건수가 계속 증가해왔다. 하지만 정부가 보증하는 학자금 대출로 학생들이 등록금을 장만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연간 등록금이 1천만원인 학생의 경우, 지금의 이자율인 연 7.8%에 거치 기간 10년, 상환 기간 10년을 조건으로 1년 학자금을 대출받으면 매달 이자만 6만5천원을 낸다. 3년간 대출받는 학생은 매달 이자로 20여 만원을 내다가 졸업할 때 3천만원의 빚을 갖게 된다.

 ‘부자학교 펀드감시단’에서 활동하는 연세대 윤태영 학생은 “등록금이 없어서 공부할 시간에 밤새워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고, 취업을 준비하는 중요한 시기에 휴학과 복학을 반복하면서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도 있다. 비싼 등록금은 단지 한 학생의 현재의 어려움이 아니라 미래의 중산층 붕괴로 이어진다”라고 주장했다. 고려대 임용수 학생 역시 “집세, 교통비, 식비 등을 빼고 매달 10만원가량의 학자금 대출 이자를 낸다. 과외 아르바이트를 네 개 해서 100만원 정도 버는데 학업과 병행하기 힘들다. 공부만 열심히 하는 학생들을 따라가기 쉽지 않다”라고 말했다.

그나마 과외 아르바이트는 사정이 나은 편이다. 편의점, 술집, 할인 마트 등에서 더 고단한 노동으로 더 적은 돈을 벌어 등록금과 이자를 충당하는 학생의 사정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체력적으로 지치고 휴학과 복학을 반복하다 보면 동료 학생들처럼 취업을 준비하기도 쉽지 않다. 학자금 대출을 갚을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인 취업의 길이 원천적으로 봉쇄되고 있는 것이다.

이화여대는 헌법소원 준비 중

▲ 본격적인 취업 시즌을 알리는 현수막. 그 앞을 지나가는 학생들의 표정이 무겁다. ⓒ시사저널 유장훈

그래서 이화여대의 ‘이화인 헌법소원추진위원회(약칭 헌소위)’는 현재의 비싼 등록금이 헌법 31조에 보장된 ‘누구나 교육받을 권리’를 침해한다며 헌법소원을 준비하고 있다. 청구인 자격이 되는 신입생들의 서명을 받아 내년 초에 헌법소원을 내겠다는 계획이다. 강정화 이화여대 총학생회장은 “여론을 환기시키고 사회에 문제를 제기하기 위해서이다. 부모의 경제적 능력에 따라 교육의 기회가 달라진다는 것은 불합리하다”라고 말했다.

대학가의 등록금 투쟁은 이제 ‘따로 또 같이’라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개별적으로 학교 당국에 문제를 제기하되, 다 같이 모여 정부에 대책을 요구하는 차원으로 발전시켜나가자는 것이다. 등록금 투쟁의 큰 틀은 등록금넷, 한대련, 참여연대 등을 중심으로 한 큰 축과 ‘비운동권’을 표방하는 5개의 총학생회가 모인 ‘세대교체’로 나뉘어 있다. 하지만 이들 모두 ‘반값 등록금, 등록금 상한제, 등록금 후불제’와 같이 뜻을 같이하는 활동에는 연대하겠다고 밝혔다.

총학생회와 별도로 진행되는 학생들의 자발적인 등록금 투쟁도 지속적으로 벌어질 가능성을 보여준다. 연세대의 ‘부자학교 펀드감시단’은 학교의 정보 공개가 부족하다며 5천명의 서명을 받아 법원에 ‘정보공개 소송’을 냈다. 총학생회와는 별도로 30명의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활동해서 이루어 낸 결과이다. 이들은 불투명한 재정 운영이 공개되면 결국, 등록금 인하의 명분을 얻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대 등록금 연대’도 총학생회와 협력은 하지만 별개로 활동하고 있다. 

학생들은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개나리가 피는 봄에 벌이는 투쟁은 너무 늦다는 데 공감하고 있다. 연세대 조윤선 부총학생회장은 “1, 2월에 등록금책정협의회를 통해 등록금이 결정되면 이후에는 바꾸기 어렵다. 학교측에 등록금책정협의회를 12월 전에 열어달라고 요청했다”라고 말했다. 대학끼리의 연대도 점차 강해지고 있다. 한대련 관계자는 “이미 등록금 투쟁의 마스터플랜을 마련해놓았다. 다음에 출범하는 학생회를 위해 등록금에 관한 공동공약도 준비했다”라고 밝혔다. 정수환 고려대 총학생회장은 “오를 만큼 올랐다. 빚을 내야 조달할 수 있는 대학 등록금은 우리의 생존을 위협하고, 교육의 양극화라는 심각한 사회 문제를 낳고 있다. 개별 대학 수준을 넘어 정부와 투쟁을 벌이겠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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