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 권하는 상아탑 “출구가 안 보인다”
  • 소종섭 (kumkang@sisapress.com)
  • 승인 2008.11.11 15:55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그림 김홍

날은 추워지고 있지만 대학생들의 등록금 문제는 뜨거워지고 있다. 벌써부터 대학가와 시민·사회 단체들이 중심이 된 등록금 투쟁이 펼쳐지고 있다. 정부는 11월3일 기초생활수급자 가정의 대학생들에게 무상으로 장학금을 주겠다는 등 부랴부랴 등록금 대책을 내놓았다. 하지만 달래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고려대 총학생회가 “지금 우리에게 돌아온 것은 등록금 반값이 아니라 등록금 폭탄의 예고이다”라는 입장을 발표한 것이 상징적이다. 경제 위기가 계속되는 가운데 대학생들의 취업이 어려워지는 상황과 맞물려 등록금 문제가 지금부터 내년 봄까지 사회 문제화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과거에 ‘등록금 동결’을 주장하던 학생들은 이제 ‘등록금 인하’로 구호를 바꿨다.

등록금 문제는 공부를 하고 싶어도 돈이 없어서 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자화상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등록금 때문에 부채를 안고 학교를 졸업한 학생들 사이에 돈을 제때 갚지 못해 신용불량자가 되는 경우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사회 안전망이 빈약한 가운데 사회 생활을 시작하는 초입부터 빈익빅 부익부라는 악순환에 빠져드는 경우가 더 이상 남의 나라 일이 아닌 것이다. 반면 일부 대학들은 수천억 원의 적립금을 쌓아놓고서도 해마다 등록금을 올린다. 이명박 대통령이 내걸었던 ‘반값 등록금’ 공약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2008년, 이 시대 대학생들이 처한 우울한 자화상이다.



“등록금 때문에 휴학한 적 있다” 26.2%

<시사저널>이 여론조사 기관인 미디어리서치에 의뢰해 11월4~5일까지 이틀 동안 전국의 대학생 1천5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등록금 문제에 대한 대학생들의 불만은 이미 임계점에 이르러 있다. 등록금이 비싸기 때문에 학교를 다닐 수 없어서 휴학하는 학생들이 속출하고 있고,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빚을 내는 학생들이 부지기수이다. <시사저널>의 이번 조사는 구조화된 질문지로 패널을 이용해 온라인으로 설문조사를 하는 방법으로 진행되었다. 신뢰도는 95% 신뢰 수준에 ±3.0% 포인트이다. 성별이나 학년, 학교 소재지 및 전공, 소득 수준 등에 따른 전국 대학생들의 표본이 골고루 반영되었다.

▲ 참교육을 위한 전국학부모회 회원들이 등록금 대책을 세우라며 시위하고 있다.

먼저 ‘등록금을 내는 시기가 되면 재정적·심리적으로 어느 정도 부담을 느끼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10명 가운데 9명이 넘는 93.6%가 “부담을 느낀다”라고 답했다. 예상했던 것보다 정도가 심했다. “매우 부담을 느낀다”는 사람이 62.4%, “어느 정도 부담을 느낀다”가 31.2%였다. “부담을 느끼지 않는다”라는 사람은 6.4%에 그쳤다. 이렇게 대답한 학생들은 아무래도 등록금이 싼 국공립대에 다닌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이것도 두고 볼 일이다. 국립인 서울산업대 3학년에 다니는 김명구씨(가명)는 “2006년도에 2백만원이 안 되었는데 지금은 3백만원이 넘는다. 신입생들의 등록금이 날로 오르고 있다”라고 말했다. 사립대뿐 아니라 국공립대생들의 등록금 상승세도 만만치 않다는 반증이다.

그렇다면 대학생들은 등록금을 어떻게 마련할까. 역시 부모님이 마련해준다는 응답이 가장 많았지만 등록금을 고민할 필요가 없이 공부에 전념할 수 있는 이런 행운아들은 절반도 되지 않는 49.0%였다. 학년으로는 1학년생들, 호남 지역의 대학교에 다니는 학생들, 가구 소득 4백만원 이상, 사범계열 학생들이 상대적으로 많았다. “부모님이 주신 돈에 자신의 돈을 합해 낸다”라는 사람이 18.7%, “본인이 대출이나 융자 등 돈을 빌려서 마련한다”라고 대답한 사람이 18.4%, “장학금이나 아르바이트 등으로 스스로 마련한다”라는 사람이 12.7%였다. “친척 등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는다”라는 학생도 0.9%였다. ‘빌려서 마련한다’라거나 ‘스스로 마련한다’는 학생들은 가구 소득 100만원 이하, 2~3학년생, 인문계열과 의·약학 계열에 다니는 학생들이 다수였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학교에 다니면서 등록금을 마련하기는 녹록지 않다. 방법은 휴학하면서 돈을 버는 것이다. 경희대 4학년생인 황명환 학생은 “주변에서 등록금을 벌기 위해 휴학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낯선 풍경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2학년 때까지는 아르바이트 등을 하며 등록금 일부를 스스로 마련했지만 3~4학년 때는 부모님이 학업에 전념하라며 전부를 내주었다는 그는 “다른 학교보다는 등록금이 싼 편인데도, 많이 올라 부모님께 늘 죄송한 생각이 든다”라고 말했다. ‘등록금 때문에 휴학을 한 적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26.2%가 “있다”라고 답했다. 학년이 높고 등록금이 비쌀수록, 전공 및 계열로 보았을 때는 자연·공학 계열, 지역별로는 대구·경북 지역의 대학에 다니는 학생들에게서 이런 답이 많이 나왔다.



85.8%가 “아르바이트 한 적 있다”

휴학을 하지 않더라도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은 거의 필수였다.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85.8%가 있다고 대답했다. 1학년 때가 제일 적었고 상승 곡선을 그리다가 취업을 앞둔 4학년 때 다시 줄어드는 모양새를 보였다.

그러면 대학생들은 주로 어떤 아르바이트를 할까. 제일 많이 하는 것이 편의점이나 PC방, 식당 등에서 하는 서비스 일이었다. 57.1%가 이렇게 답했다. 다음은 과외 및 학원 강사(16.1%), 사무보조(11.6%), 건설 현장 등 일용직(10.9%), 직접 물건을 판매하는 장사(2.5%)가 뒤를 이었다. 아르바이트는 학년마다 그림이 달랐다. 1~2학년생들은 편의점 등에서 일하는 몸으로 때우는 아르바이트, 2~3학년생들은 건설 현장 등 일용직, 4학년생들은 상대적으로 수입이 많고 힘이 덜 드는 과외 및 학원 강사를 많이 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대학생들이 아르바이트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역시 등록금과 뗄 수 없는 관계가 있었다. “개인 용돈을 마련하기 위해서”라는 응답이 41.7%로 가장 많았지만 두 번째가 27.3%를 차지한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대구·경북 지역 대학생들과 3학년생들에게서 이런 답이 많이 나왔다. 나머지는 “가정 경제에 보태기 위해”(18.9%), “사회 경험을 쌓기 위해”(6.2%) 등의 순이었다.

등록금 문제는 빚과도 긴밀한 관련이 있다. 대학생들이 빚에 허덕이는 가장 큰 이유가 이것이다. 조사 결과 부채가 있는 대학생은 27.6%로 나타났다. 인천·경기 지역 대학생들, 가구 소득이 1백1만원에서 2백만원인 대학생들이 특히 빚을 지는 경우가 많았다. 빚의 규모는 5백1만원에서 1천만원 사이가 25.9%로 가장 많았다. 다음이 1천1만원에서 2천만원까지로 15.9%에 달했다. 1천만원을 초과하는 빚을 진 학생들은 대구·경북 지역 대학생들, 사범 계열, 4학년 학생들이 주류를 이루었다. 빚을 지게 된 경로에 대해서는 등록금과 관련 있는 ‘학자금 대출’이 66.6%로 1위였다. 2위는 ‘카드사·증권사 등 제2 금융권’으로 조사되었다. 은행은 3위였다.

‘빚을 지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인가?’라는 물음에는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서”라는 답이 73.8%로 나타났다. 지역과 학년, 소득 수준을 막론하고 다른 대답을 압도했다.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12.8%), “용돈 및 카드비를 충당하기 위해”(7.9%)가 뒤를 이었지만 차이가 컸다. 결국 대학생들 대다수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용돈과 등록금을 벌고 있지만 10명 중 3명꼴로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빚에 허덕이고 있었다. <시사저널>의 이번 조사 결과는 밑바닥부터 허물어지고 있는 대학생들의 실상을 잘 보여준다.



“등록금 인상은 정책 실패 때문” 48.3%


이와 관련해 지난 국정감사 때 자유선진당 이상민 의원이 낸 보도자료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한마디로 대학생 신용불량자가 급증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의원은 교육과학기술부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를 분석해 “2006년 6백70명이던 학자금 대출 연체자(대학생 신용불량자)가 2007년 3천7백26명, 2008년에는 10월 말 현재 7천4백54명으로 늘었다. 대학생들이 등록금 때문에 사회에 진출하기도 전에 신용불량자가 된다는 것은 큰 사회적인 문제이다”라고 주장했다. 

대학생들의 등록금 문제는 이미 정치적으로 주목되는 주제가 되었다. 학생과 학부모 등 관련자들이 많은 데다가 잠재적인 관련자와 졸업 이후의 사회 문제화 가능성 등이 충분히 폭발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학생들은 이 문제를 정부 정책의 실패라는 관점에서 보고 있었다. ‘등록금이 인상되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라는 물음에 “정부의 대학 등록금 정책의 실패 때문”이라고 대답한 사람이 48.3%에 달했다. 경우에 따라 언제든 정치적인 불만 세력이 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고 보인다. 충청권 대학생들과 가구 소득이 높은 학생들이 특히 이렇게 답한 경우가 많았다. “대학 재단의 투자가 미흡하기 때문이다”라는 답은 33.8%에 머물렀다.

정부·여당의 11월3일 대책에 맞서 민주당은 이미 “정부가 내놓은 등록금 지원 방법에서 나아가 2009년 예산을 증액해 차상위 계층까지 장학금을 주고 무이자로 학자금을 대출하는 방안을 확대할 예정이다. 등록금 후불제가 도입되도록 충분히 검토할 것이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전국 5백50개 학생·시민 단체로 구성된 ‘등록금 대책을 위한 시민·사회 단체 전국 네트워크’는 정부 대책을 ‘생색내기용’이라고 비판하며 한국대학교육협의회와 교육과학기술부에 등록금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끝장 토론을 벌이자고 제안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