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는 팀 사정이 없나”
  • 이영미 (일요신문 기자) ()
  • 승인 2008.11.18 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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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식 WBC 국가대표팀 감독 / “코칭스태프 구성이 관건…나는 아직 대표팀 감독 아니다”

 

ⓒ시사저널 박은숙

“오긴 뭐 하러 와? 아직 (맡는다고) 확정된 것도 아닌데. 며칠 있다 다시 연락하자구.”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표팀 감독으로 내정된 한화 이글스의 김인식 감독은 인터뷰 요청에 난색을 표하며 ‘다음날’을 기약했다. 그로부터 이틀 후인 지난 11월12일. 한화의 마무리 훈련이 한창인 대전야구장에서 만난 김감독은 기자의 얼굴을 보자마자  “할 말이 없다니까”라고 하면서도 옆자리를 내줬다. 평소 기자들과 편하게 대화 나누는 것을 좋아했던 김감독은 WBC 감독 내정 이후 심적으로 더 많이 시달린 듯했다. 하루 자고 일어나면 ‘이번만큼은 소속팀에 전념하고 싶다’라며 대표팀 합류를 고사하는 스타플레이어들의 기사가 쏟아지는 상황에서 코칭스태프 구성까지 난항을 겪는 일련의 일들이 노(老)감독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던 것이다. 등 떠밀리듯이 WBC 대표팀 감독 자리를 떠안게 된 ‘국민 감독’을 만나보았다.

대표팀 감독 자리가 왜 이런 모양새가 되었는지 안타깝다. 서로 안 맡으려다 결국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데 심경이 답답할 것 같다.

한국 프로야구는 어느 스포츠보다 국민의 사랑을 많이 받는 종목이다. 특히 지난 베이징올림픽 때는 감동의 드라마를 선사하며 국민에게 큰 기쁨을 선사했다. 어느 해보다 풍성했던 프로야구가 풍년을 이룬 막판에 이런 일이 불거져 참으로 안타깝다. 각 팀마다 분명히 사정은 있을 것이다. 물론 나도, 또 우리 팀도 불가피한 사정이 있다. 모두 자기 입장, 자기 사정만 내세운다면 누가 대표팀 감독을 맡을 수 있겠나. 그런 점에서 고사했던 감독들한테 조금은 서운한 감정이 있다.

좀더 젊고 팀 사정이나 성적이 좋은 팀의 감독이 대표팀을 맡아주길 바랐던 것으로 알고 있다.

당연한 얘기 아닌가. 나는 보시다시피 뇌경색으로 쓰러진 이후 걷는 것이 불편한 사람이다. 건강으로 따진다면 내가 더 심하지 않은가. 김경문에 이어 김성근 감독마저 대표팀을 맡을 수 없다고 하자 KBO 하일성 총장이 나를 찾아왔더라. 하총장과는 40여 년을 형이니 아우니 하면서 지낸 사이이다. 그런 사람이 초죽음이 되어 나를 찾아와서는 도와달라고 통사정을 하는데, 정말 마음이 무거웠다. 그래도 내 몸 상태도 그렇고 팀 사정도 있고 해서 내가 지금 할 때가 아니라며 오히려 내가 사정했다. 그런데도 다른 방법이 없다면서 형님이 좀 맡아달라고 매달리는데 어쩌겠나.

구단측의 반응은 어땠나. 올 시즌 한화가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하면서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부각되었는데 앞으로 이 점들을 중점 보완해야 하지 않나?

우리 사장님이 야구단 사장으로 오신 지 8개 구단 사장들 중 가장 오래된 편이다. 그러다 보니 야구계가 돌아가는 상황을 잘 이해하신다. 대표팀 감독 제의를 받은 과정을 설명드리니까 입장이 참 딱하게 되었다며 어렵게 승낙하셨다. 캠프 중에 감독이 자리를 비우면 팀이 어떻게 된다는 것을 사장이 모를 리가 있겠나. 잘 아시면서도 대승적인 차원에서 승낙하신 것이다. 사장님이나 나나 우리 팀만 생각했다면 당연히 거절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아무도 안 맡겠다는데, 국제 대회에서 한국 야구가 망신당할 것을 뻔히 알면서도 모른 척하고 있기가 어려웠다. 나야말로 사장님 볼 낯이 없다.

하일성 총장으로부터 KBO의 입장을 전해들은 뒤 곧장 SK 김성근 감독에게 전화를 했다고 들었다. 무슨 내용의 통화였나?

김성근 감독이 금년에 우승하고 재계약까지 하지 않았나. 그래서 농담 반 식으로 ‘돈은 왜 다 갖고 가고 이런 어려운 것은 나보고 하라고 하느냐’라고 항의했다. ‘미안하다’ ‘어쩔 수 없었다’라고 말하더라. 나는 솔직히 이번 대표팀 감독 자리가 나한테까지 오리라곤 생각조차 못했다. 2006년 WBC 대회를 끝마친 후 더 이상 대표팀은 내가 할 자리가 아니라고 확신했다. 나처럼 몸이 불편한 사람보다는 뭐든지 완벽한 사람이 나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KBO에 다시는 안 하겠다고 통보했다. 그래도 아시안게임이나 올림픽 때 또다시 의사를 물어오더라. 그래서 절대 안 된다고 말하면서 올림픽 때는 선동열 감독을 추천했다. 하지만 선감독이 안 한다고 하는 바람에 김경문 감독이 했고, 선감독은 수석 코치를 맡기로 했다가 선감독이 그만두는 바람에 결국 김경문이 혼자 코치들 데리고 한 거 아니냐.

김경문 감독은 올림픽이 끝난 직후부터 WBC 감독을 맡지 않겠다고 말했다. 어쩌면 그때부터 대표팀 사령탑 문제가 시작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당시 김경문 감독이 대표팀을 더 이상 맡지 않겠다고 했을 때 어느 감독, 어떤 형태의 감독이 대표팀을 맡아야 한다고 생각했나?

제일 중요한 것은 KBO 기술위원회이다. 기술위원회가 뭐 하는 사람들인가. 이런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사람들이다. 거기서 대표팀의 감독이나 코칭스태프, 선수 구성에 관한 기본적인 안과 원칙들이 정해져야 한다. 예를 들면 김경문 감독이 포스트시즌 때 ‘우승팀 감독이 대표팀을 맡아야 한다’라고 말한 부분이다. 우승팀 감독이 맡든, 돈 많이 받는 감독이 맡든 어떤 확고부동한 원칙이 있어야 군말 없이 받아들이는 것이다.

최근 박찬호에 이어 이승엽마저 WBC 대회에 참가하기 어렵다는 뜻을 밝혔다. 앞으로 이런 선수들의 불참 의사가 줄을 이을 수도 있을 텐데.

곧 두 선수들을 만날 예정이다. 직접 얘기를 들어봐야 알 수 있는 문제이다. 아직 나는 대표팀 감독이 아니다. KBO측에 요구한 내용들이 이루어져야 최종 결론이 난다. 따라서 박찬호나 이승엽을 대표팀 감독 자격으로 만나는 것이 아니라 감독 내정자로서 얘기를 듣고 싶을 뿐이다(인터뷰가 끝난 그날 저녁 박찬호가 대전으로 김감독을 찾아와 내년 시즌 계약 여하에 따라 WBC에 출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가급적이면 두 선수를 붙잡고 싶은 생각인가? 

그렇다. 찬호나 승엽이가 직접 경기를 뛰고 안 뛰고의 문제가 아니라 상징성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몰라도 막상 중요한 경기 때 국민 입장에서는 왜 이 선수가 안 나왔는지 아쉬워하고 안타까워할 수도 있다. 오늘 (이)종범이가 좋은 얘기를 했더라. WBC 대회는 올림픽과 달리 메이저리그 선수들이 총출동하는 대회라고. 그래서 태극마크가 얼마나 자랑스런 일이냐고. 한 선수는 불러만 준다면 오겠다고 하더라. 물론 인터뷰 기사를 통해서 봤지만…. 추신수이다.

 KBO측에 감독급 코칭스태프 구성을 요구했다. 그러나 선동열·김재박·조범현 감독에 이어 히어로즈 김시진 감독마저 팀 사정을 이유로 고사한 상태이다.

답답할 노릇이다. 한 번 그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과연 한국 대표팀이 WBC 대회를 나가야 하는지, 나가지 말아야 하는지를. 누구는 팀 사정이 없나? WBC 대회는 세계에서 야구 잘한다는 선수들이 모여 진정한 실력을 가늠해보는 자리이다. 그렇다면 최고의 코칭스태프와 최고의 선수들로 대표팀이 구성되는 게 당연한 것 아닌가. 내가 감독급 코칭스태프를 요구한 이유는 그 분야에서 제일 잘하는 사람이 맡는 것이 합당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하총장이 아시아시리즈 때문에 일본으로 출장을 떠났다. 귀국하는 대로 얘기를 들어봐야 하겠지만 감독급 코칭스태프 구성은 내가 대표팀을 맡고 안 맡고의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될 수도 있다.

 조금 다른 얘기를 해보겠다. 올해 초 단장회의에서 해외 마무리 훈련을 포기하기로 약속한 뒤 한화는 일찌감치 대전구장에서 마무리 훈련 중이다. 그러나 다른 팀은 재활 훈련 등의 명목으로 해외로 떠났다.

우리만 순진한 거지. 우리는 약속을 지킨 거고. 난 이런 말이 나왔을 때부터 예상했다.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쌍방울부터 OB, 두산, 한화 등을 거치며 감독을 하고 있지만 단장회의나 이사회에서 합의 본 사항들이 제대로 이행된 것을 본 적이 없다. 우리만 순진해서 곧이곧대로 한국에서 겨울 훈련을 하려다 결국에는 예상대로 당하고 말았다.

올 시즌 최초로 도입되었던 무제한 연장 승부제, 이른바 ‘끝장 승부’가 폐지될 위기에 놓였다. 이 점에 대해서도 한마디 한다면. 

아직 한국에서는 무리이다. 왜 되지도 않을 일을 자꾸 만들어서 시끄럽게 하는지 모르겠다. 외국에서 하느니 마느니, 허 참, 여기가 지금 미국인가? 우스워. 너무 우습다고. 그것이 이사회에서 나온 결정이다. 이사회는 각 구단 사장들로 구성된다. 그런데 그 사장들이 너무 자주 바뀐다는 것이 문제이지. 뭐, 좀 알만 하면 사장 바뀌고 단장들 바뀌고, 자꾸 새로운 분들이 오시니까 야구계 현실을 잘 모르는 거야. 그래서 자꾸 시행착오가 일어나는 것이고. 끝장 승부는 아직 우리나라 현실에는 잘 맞지 않는 제도였다.

한화의 올 시즌 성적에 대해 아쉬움이 클 것 같다. 내년 시즌을 준비하는 마음가짐이 남다를 텐데.

실력이 없었다. 실력이 없는데 어쩌겠나. 올 시즌에 이런 실력을 보여줄 수밖에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1, 2번 타자들의 출루율이 낮아 득점으로 연결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결국 타율도 꼴찌였다. 그래서 내년 시즌을 앞두고 1, 2번을 키우는 데 중점을 두려고 한다. 나이 많은 선수들과 젊은 선수들이 어떤 조화를 이루느냐도 관건이다.

김인식 감독은 인터뷰 중간마다 ‘아직 내가 대표팀 감독이 된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KBO측에 제시한 조건들이 충족되지 않을 경우 대표팀을 맡지 않을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가까운 나라 일본은 일찌감치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하라 감독을 대표팀 감독에 발탁한 뒤 11월12일 일본 대표팀을 공식 출범시켰다. 표류하고 있는 한국의 WBC 대표팀이 언제쯤 제대로 된 모양새를 갖출지 궁금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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