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 금융권도 좀 살려줘!”
  • 이석 (ls@sisapress.com)
  • 승인 2008.11.18 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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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성 위기 겪고 있는 여신협회, 정부에 ‘SOS’…저축은행 연쇄 부도설도

▲ 11월13일 전광우 금융위원장이 기자들에게 금융권 유동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뉴시스

제2 금융권에도 유동성 위기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정부가  은행의 유동성 해결에만 몰두하는 사이 제2 금융권의 병세는 점차 깊어지고 있다. 이미 일부 캐피탈사을 비롯해 여신 전문 업체들은 유동성 압박을 받으면서 사실상 영업을 중단한 상태이다. 여기저기에서 ‘흑자 도산’이 우려되는 업체의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상호저축은행들 가운데는 적지 않은 곳이 부도 건설사들의  손실을 고스란히 떠안아 쓰러질 지경에 놓여 있다.

문제는 위기를 타개할 만한 뚜렷한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정부는 “은행권의 유동성만 해결되면 나머지 문제는 자연스럽게 풀릴 것이다”라고만 대응할 뿐이다. 그러는 사이 제2 금융권의 면역력은 날로 약해지고 있다. 이대로 간다면 은행이 아니라 제2 금융권에서 금융 대란이 벌어지리라는 우려도 나온다.

이병구 여신협회장 등 주요 캐피탈사 대표 4명은 지난 11월11일 김종창 금감원장과 면담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이들은 만기 도래 차입금에 대한 기한 연장, 연기금의 여전채(여신 전문 회사 채권) 및 기업어음(CP) 매입, 장기 회사채 펀드 운용 대상에 여전채 편입 등의 조치를 공식 요청했다. 한마디로 정부에 ‘SOS’를 타전한 것이다.

여신 전문 업체들 ‘옥석 가리기’ 가능성도 대두

여신 전문 업체들이 자금난을 겪고 있다는 사실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글로벌 금융 경색 여파로 자금 조달이 어려워지면서 상당수 회사가 현재 리스크 관리에 나섰다. 그럼에도 여신 전문 업체들은 그동안 악성 소문을 우려해 사실을 드러내기를 꺼려왔다. 그런 점에서 업계 대표들이 금감원을 찾아 어려운 사정을 공론화한 것은 더 이상 자체 역량으로 버텨낼 재간이 없기 때문이라고 여겨진다.

여신협회 역시 최근의 어려움을 숨기지 않고 있다. 협회의 한 관계자는 “연말까지 만기가 돌아오는 채권 금액만 5조원에 달한다. 회사마다 처한 상황이 다르기는 하지만, 이대로 간다면 일부는 채무 상환도 버거운 것이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이 관계자는 “재무 건전성은 여전히 양호하다”라고 강조했다. 정부에 건의한 것은 일시적인 자금난을 넘기기 위한 자구책일 뿐이라는 얘기이다. 정부가 기업어음(CP)의 만기 연장이나 연기금의 여전채 매입 등의 지원을 해주어 자금 압박이 줄어든다면 현재의 위기는 곧 사그라질 것으로 협회는 보고 있다.
최중기 한국신용평가정보(이하 한신평정보) 수석연구원은 “과거에 비해 특별히 지표가 나빠진 것은 없다.

정부에서 은행권은 전폭적으로 지원해주면서 제2 금융권을 홀대하고 있는 데 대한 불만이 폭발한 것으로 본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업계 일각에서는 상황을 달리 보고 있다. 여신 전문 업체들의 현재 상황이 의외로 심각하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여신 전문 업체 관계자는 “대형 회사들도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영업을 줄이고 있는데 소형 캐피탈사의 경우 버틸 여력을 거의 상실했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이참에 ‘옥석 가리기’가 진행될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특히 일부 캐피탈사는 최근 대규모 차입을 통해 공격적인 영업을 벌여왔다. 자연히 장기적인 면에서 차입 구조가 불안할 수밖에 없다. 국내 위주의 차입 구조도 향후 큰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지난 9월 터진 리먼브러더스 사태 이후 해외 차입에 성공한 곳은 현대캐피탈을 제외하고 전무하다. 현재의 위기가 장기화될 경우 자금 조달이 막히는 업체부터 정리될 가능성이 크다.

업계 관계자는 “장기 채권의 경우 초기 금리는 높지만, 요즘 같은 위기 상황에서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일부 업체는 단기 채권에 의존하면서 위험을 키웠다. 본격적인 옥석 가리기가 진행될 경우 이들이 정리 1순위가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전문가들도 옥석 가리기가 진행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최중기 한신평정보 수석연구원은 “금융 당국 입장에서도 여신 전문 업체들의 의견을 완전히 무시하기는 힘들 것으로 본다. 앞으로 창구 지도 등을 통해 우량 기업의 회사채를 구입하도록 권고할 가능성이 크다. 그럴 경우 신용도가 높은 회사는 숨통이 트이겠지만, 나머지 업체의 어려움은 더욱 가중될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금감원의 관계자도 “은행 위주로 정부 지원이 되다 보니 여신 전문 업체들의 어려움이 커지고 있다. 현재 관련 부처에 여신협회의 의견을 전달해놓고 대책을 강구 중이다”라고 귀띔했다.

지난 11월12일 여신 전문 업체들이 발행한 자산유동화채권(ABS)을 국민연금이 매입키로 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풀이되고 있다. 국민연금측은 여신협회의 건의와는 무관하다고 말하고 있지만 어떻게든 정부의 입김이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업계에서는 보고 있다.

6개 저축은행, 신성건설 회생절차 돌입으로 1백58억원 물려

▲ 최근 기업 회생 절차에 들어간 신성건설.

그래도 캐피탈을 비롯한 여신 전문 업체들은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국내 도급 순위 41위인 신성건설의 기업 회생절차(옛 법정관리) 돌입으로 저축은행업계에는 현재 암운이 깔리고 있다. 한동안 잠잠했던 저축은행의 연쇄 부도설도 다시 떠돌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신성건설의 여신 규모는 9월 말 현재 2천5백억원 정도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프로젝트 파이넌스(PF) 대출까지 합하면 금융권 대출 규모는 1조3천억원에 달한다. 이 중 6개 저축은행의 대출 규모가 1백58억원 정도이다. 시중 은행의 1천2백5억원에 비하면 큰 규모는 아니지만, 건설업계의 부도 도미노가 현실화된다면 해당 저축은행들이 치명상을 입을 것은   뻔한 일이다. 

이미 국내 저축은행의 연체율은 14%를 넘어선 상태이다. 은행권이나 캐피탈 등의 연체율이 9월 말 기준으로 각각 0.97%와 2.8%(할부채권)임을 감안할 때 턱없이 높은 수준이다.

한국기업평가 등 주요 신용평가업체는 저축은행의 신용 전망을 잇달아 하향 조정하고 있다. 한국기업평가는 지난 11월11일 한국상호저축은행, 솔로몬상호저축은행, 현대스위스상호저축은행, 토마토상호저축은행 등 4개 저축은행의 신용등급 전망을 기존의 ‘안정적(Stable)’에서 ‘부정적(Nega -tive)’으로 내렸다. 향후 상황에 따라 신용등급은 더 떨어질 수도 있다.  한신평 역시 조만간 5~6개 저축은행의 신용 전망을 조정할 예정이다. 

이와 관련해 한국개발연구원(KDI)은 “부동산 PF 관련 대출로 인해 부실화된 금융 기관은 신속히 구조 조정해야 한다”라고 밝혔다. KDI는 지난 11월12일 발표한 하반기 정책 제언에서 “저축은행의 총 자산은 은행 부문의 4.0% 수준에 불과하다. 부실화된 일부 저축은행의 구조 조정이 금융시장 전반의 불안으로 확산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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