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뿌리’는 시민운동의 돌파구
  • 김회권 (judge003@sisapress.com)
  • 승인 2008.11.18 0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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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사회의 변화에 주안점 둔 지역 운동 확산…경제적 자립 위한 후원 절실

▲ 생일도의 어린이들에게는 바자회(위)도 도서관 건립 기금을 마련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생영지역아동센터 제공

전남 완도에서 배를 타고 1시간이 걸리는 섬 생일도. 문화 혜택이 전무하고 아이들을 위한 시설도 찾을 수 없는 곳이다. 일단 아이들을 위한 도서관이 필요했다. 도서관을 짓기 위해 기업에 손을 내밀 수도 있었지만 우선 스스로의 힘으로 시작해보자고, 생영아동센터의 선생님과 아이들은 힘을 합쳤다.

아이들은 지역 관공서에 모금함을 달고 상경해 있는 섬 출신 어른들을 찾아가 문화 공연도 펼쳤다. 모금 활동을 담은 홍보 영화도 만들었다. 모금을 한 뒤에는 아이들과 선생님 그리고 도와주신 마을 어른들과 함께 모금함 개봉식을 가졌다. 스스로의 힘으로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섬마을을 휘감았다. 그러기를 3년, 모인 액수는 무려 2천만원이다.

생일도의 아이들은 마을의 어른들에게 인사하고 여쭙고 의논하고 부탁드리고 감사하는, 다섯 가지를 실천한다. 생영아동센터의 김요섭 사회복지사는 이것을 ‘걸언’이라고 말한다.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 복지를 이루는 방법이다. 걸언을 통해 생일도는 바뀌고 있다. 인구가 8백명 정도인 생일도에 아이들은 30여 명에 불과하다. 하지만 아이들과 어른들의 유대감이 강해지면서 변화가 더딘 섬마을에는 이전보다 활기가 돌고 생동감이 넘친다. 아직 도서관은 건설하지 못했지만 이미 생일도 주민 마음  속에 한푼 두푼 모여서 도서관은 완공되어가고 있다.

빠르고 분명하게 활동의 결실 거둬

김요섭 사회복지사는 “아이들을 주인으로 세우는 일이었다. 어른들은 직접 해주기보다 아이들을 거들기만 한다”라고 말한다. 아이들은 스스로 회의도 한다. 고학년이 중심이 되어 꾸린 ‘한마음 위원회’의 회의를 통해 자신들만의 계획을 세우고 실천한다. 도시에 비해 경직될지도 모를 섬마을 아이들의 자신감은 풀뿌리 지역 단체의 활동으로 나날이 커지고 있다.

풀뿌리 시민운동이 확산되는 이유는 여러 가지이다. 지난 몇 년간 ‘시민운동의 위기’라는 화두는 항상 제기되는 문제 중 하나였다. 그 돌파구로 풀뿌리 운동을 이야기한다. 지난 5월 열렸던 전국 NGO 대회에서도 ‘풀뿌리’ ‘지역’ ‘삶’이라는 단어가 토론자들의 입에서 종종 오르내렸다. 김종호 ‘참여와 자치를 위한 마포연대’ 전 대표는 성미산 주민 운동의 경험을 예로 들며 “지역운동의 중요성은 점차 늘어나고 있으므로 주민과 함께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혹은 전국 규모의 단체에서 활동하다가 자신의 집이나 직장이 있는 지역에서 밀착형 활동을 하는 경우도 있다. 한 풀뿌리 환경운동가는 “직접 실천을 하고 싶지만 전국 단체는 조직 여건상 실천만 하고 살 수가 없다. 그래서 내가 사는 지역에서 조그만 운동을 하기로 했다”라고 이유를 밝혔다.

풀뿌리라고 해서 교육과 복지 등 부드러운 주제에만 관심을 두지 않는다. 지역의 정치·사회 현안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풀뿌리 운동도 많다. 지난 8월 ‘나주 풀뿌리 참여자치 시민모임’은 파행이 계속되던 나주시의회 원 구성안을 놓고 중재를 성사시켰다. 민주당측의 상임위원장직 싹쓸이에 무소속 의원들이 반발하면서 생긴 사건이었다. 풀뿌리 시민모임은 한 발짝 더 나아가 11월29일 1일 예산학교를 마련할 예정이다. 예산안 분석을 통해 의정 활동에 도움을 주고 시민이나 활동가들에게도 교육의 장을 제공하겠다는 계획이다.

뉴스를 통해 잘 알려진 하남시 광역 화장장을 둘러싼 활동은 사회적 현안이 풀뿌리 시민단체를 창조해낸 경우이다. 하남시민연대(준)는 하남시가 추진하고 있는 광역 화장장 유치 사업의 절차상의 문제를 이유로 김황식 하남시장의 주민 소환 청구를 성사시켰다. 전국 최초의 일이었다.

양해영 준비위원회 간사는 “풀뿌리 시민 조직이라는 단어가 사용되고 있어서 다행이다. 지금까지 시민단체라고 하면 정치색부터 떠올리곤 했는데 우리는 그 부류를 벗어난 단체이다”라고 설명했다.

하남시민연대(준)는 현 시장과 대립각을 세우며 출범을 준비 중이다. 정치와 맞물려 돌아갈 수밖에 없다. 시의원 보궐선거와 2010년 하남시장 선거 때도 집중적으로 활동할 계획이다. 양해영 간사는 “참여하는 사람들이 다양한 정치적인 색깔을 가지고 있어 잘 조화시켜야 한다. 정치색을 떠나 초당적인 조직을 만들어야 하는 부분을 가장 고심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돈’ 문제 투명성 확보도 장기적 활동 과제

▲ 경기도 하남시 주민들이 광역 화장장 유치 반대 집회를 벌이고 있다. ⓒ뉴시스

사실 환경운동이야말로 풀뿌리 운동이 가장 활발한 부문이다. 지역민들에게 내 고장은 하나의 세계이다. 내 고장의 환경 문제는 그만큼 중요하게 다가온다. 부산의 ‘온천천 네트워크’는 온천천이라는 하천의 생태 복원이 지역에 어떤 영향을 가져오는지 보여준다. 청소년 우범 지대였던 온천천이 생태 학습지로 변모했고, 온천천을 중심으로 생활운동 모임 등 50여 개의 자발적 주민 모임이 생겼다. 이처럼 건강한 풀뿌리들은 많으며 이들의 경험을 공유하며 실천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이다.

이에 대해 ‘분당 환경 시민의 모임’을 꾸리고 있는 정병준 대표는 “수평적으로 연대하는 풀뿌리 운동의 네트워크가 이루어질 때 사회가 건강해진다”라고 말한다. 정대표가 1994년부터 사무실 하나 없이 시작한 ‘분당 환경 시민의 모임’은 현재 5백 가족이 가입했을 정도로 규모가 커졌다.

한 가족당 5천원의 월 회비를 받고 운영위원들의 회비, 그리고 강의 등으로 얻는 가외 수입을 통해 단체를 꾸리고 있다. 상근자를 5명으로 제한하는 대신, 적극적인 자원봉사자가 부족한 상근자의 역할을 대신한다.
정대표는 “전국 규모의 단체인 경우 사안에 따라 회원이 늘어나지만 문제가 생길 경우 그만큼 확 빠진다. 반면, 풀뿌리 단체는 회원 수의 증가가 더딘 만큼 감소도 더디다. 일일이 얼굴을 맞대고 만나 가입한 회원들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이들 풀뿌리 단체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고민은 ‘돈’과 관련된 문제이다. 우선 권력의 견제와 감시를 위해서는 경제적 자립이 필요하다. 하남 시민연대가 ‘준비위원회’의 꼬리표를 떼지 못하고 있는 것도 재정 문제 때문이다. 반면, 이미 재정이 마련되었다고 하더라도 투명한 지출을 위해 풀뿌리 일꾼들이 노력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정대표는 “일본의 경우처럼 앞으로는 전국 단체가 아닌 지역 풀뿌리 단체들에게 기업이 후원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라고 말했다. 돈의 투명성 확보를 위해 더욱 노력해야 하는 경우가 앞으로 계속 생길 수 있다는 얘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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